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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현대화 과정과 현황
이상호(경산대학교 교수․동아시아학)
2002.6.17, CCK
1. 최근 들어 유교 또는 유교적 전통에 대한 논의가 여러 방면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논의의 폭과 깊이 또한 전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유교나 유교적 전통을 바라보는 입장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맹목적 비판이나 수구적 반론의 경향에서 벗어나 다양한 학문적 성과와 결합된 진지한 논의는 어찌 되었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본 글은 제목이 말해 주듯이 '유교의 현대화' 문제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하는 의도로 쓰였다. 제목은 주어진 그대로 사용했지만 실질적으로 본 글의 내용은 '과정이나 현황' 구분 없이 서술될 것이다. 이는 현대화라고 하는 개념이 어떤 완결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시 과정 또는 지속적 변화라고 하는 의미를 이미 내포하고 있다는 인식에 의거한다.
이와 관련해 우선 현대화라는 개념에 대해 어느 정도 정의해 둘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데, 이는 현대화에 대한 정의가 학자들 간에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개념적 정의에 따라 그 내용 역시 큰 편차를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딱히 무엇이라고 관념적으로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다. 이는 '현대'란 말이 현재의 이 세계를 성립시키는 다양한 속성과 결부되어 이야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대화란 그 다양한 속성들, 예를 들어 산업화․민주화․합리화 등이 각각의 영역 속에서 상호 견제하면서 만들어 내는 그러한 상황으로의 이행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유교는 '우리 사회의 현대화'와 어울리는 데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첫째, 유교가 전통 사회의 지배 이념으로 작용하였다는 것이며, 둘째, 전통 문화의 저변에 유교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들은 현대화의 대립항으로서 유교가 놓일 수밖에 없도록 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유교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따라서 유교의 현대화란 우선 이러한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며, 결국 유교의 현대화 문제는 전통 사회에서 유교가 갖고 있던 시대성을 벗어나 정체성을 새롭게 확보하는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과 관련해 일찍이 박은식은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에서 인문주의․광포주의(廣布主義)․간이주의 세 측면에서 유교의 개혁을 논하였는데, 그가 파악한 당시 유교의 문제는 첫째, 유교파의 정신이 전적으로 제왕편에 있고 인민 사회에 보급할 정신이 부족했다는 점, 둘째, 공자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천하를 바꾸어 놓으려 한 정신을 강구하지 않고 동몽(童蒙)이 유학자를 찾아오기만을 기다림으로써 불교나 기독교처럼 전파되지 못하였다는 점, 셋째, 한국의 유가는 간이직절(簡易直切)한 법문(法門)을 버려두고 지리한만(支離汗漫)한 공부만을 숭상했다는 점이었다.
박은식의 ≪유교구신론≫이 발표된 것은 1909년 3월인데, 무려 100여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유교의 현실은 여전히 이러한 문제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운 것 같지는 않다. 이는 한편으로는 유교의 현대화 문제가 얼마나 지난한 과제인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본 발표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이론․조직․실천이라는 측면에서 유교의 현대화 문제를 조망해 보고자 한다.
2. 유교의 현대화 문제는 주로 유교의 본래적 이념과 현재적 삶의 양식 사이에 새롭게 다리를 놓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실성 있는 전통적 가치와 전통 사회에서만 유효하고 더 이상 의미 없는 다른 가치들을 구분해 내는 일이며, 그리고 어떤 가치들을 계승하고 어떤 가치들은 버려야 하는가를 말해 줄 수 있는 규범적인 논거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들은 구체적으로 유교적 전통의 봉건적 가치 질서를 극복하고 현대 사회에 의미 있는 본질적 가치를 재발굴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유교의 전통 규범인 '삼강오륜'(三綱五倫)에서 삼강과 오륜을 분리시켜 '삼강'의 수직적 규범 질서가 유교 경전의 본질에 어긋남을 비판하면서 '오륜'에 담겨 있는 상호적․수평적 도덕성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일도 그러한 작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첫째는 유교 경전의 한글화와 재해석 작업이다. 유교 경전 번역은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지금까지 사서오경(四書五經)은 모두 한글로 번역되어 있으며, 십삼경(十三經)도 네 경전(이아(爾雅),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주례(周禮),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만을 빼고는 모두 한글로 번역되어 있다. 사서의 경우는 수십 곳의 출판사에서 출판될 정도로 많은 번역서가 시중에 나와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문제는 연구 번역의 경우가 극히 적다는 점이다. 사실 이 점이 유교의 현대화와 관련해서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유교에 대한 신앙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번역서의 필요성은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유교의 의례와 그것의 근거인 전통적 규범들을 시대 현실에 맞도록 대대적으로 손질하는 것이다. 전통 사회에서 유교의 의례는 하나의 표준이었고, 그것은 국가적 차원의 뒷받침을 받았다. 그러나 전통 사회가 붕괴되면서 유교의 의례도 그 범위가 축소되어 지금은 문묘 의례(文廟儀禮)와 향사례(享祀禮), 그리고 통과 의례인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일부만이 존속되고 있을 뿐인데, 그것조차도 현실에 맞는 명확한 의례의 준칙이나 실천 지침이 마련되지 못함으로써 대중적 기반을 상실한 상황이다. 또한 의례는 유교에서 핵심적 요소이며, 단순히 가족 간의 유대 강화라는 실용적 측면에서만 접근할 사항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의례에서 체험하게 되는 신성성과 경건성이 더욱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데, 이러한 유교 의례의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유교의 현대화를 위한 노력들은 이러한 선결 과제에 대한 해결을 소홀히 한 채 이루어졌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그것이 유교 교단이 아니라 주로 학계의 학문적 활동 속에서만 이루어졌다는 데 있었다. 유교의 현대화라고 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실천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학계의 성과들이 유교 교단에 지도 원리로서 일정 부분 반영되어야 하는데 실제는 그러하지 못했다. 이 점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유교의 미래를 위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교의 현대화를 위한 노력은 주로 유교 이론을 재구성하여 그 본래적 의미를 천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위한 최초의 시도는 유교의 종교화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병헌을 들 수 있는데, 그는 '공자의 원상을 회복할 것'을 목적으로 하면서 유교의 종교상과 사회적 역할을 회복하고자 했다. 그는 ≪유교복원론≫(儒敎復原論)에서 유교의 교세가 불교나 기독교에 비해 뒤떨어져 있는 원인을 교조 숭배 관념의 부족, 사회 공공 사상의 부족, 교통수단의 부족, 쇄국주의로 보고, 그 반면에 공자의 교가 우월한 점으로 진지(眞知) 위주, 예양(禮讓) 위주, 대동(大同) 위주를 들고 유교가 문명 시대․평화 시대․세계 시대에 일치할 수 있음을 역설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교당을 건립하여 공자를 섬길 것, 경전을 번역하고 천하에 반포할 것, 교사(敎士)를 선정해 천하에 경전을 설파할 것 등 구체적인 조목들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유교의 종교화 시도는 유교를 철학․정치․사회․문화․교육 등을 포함하는 합리적 이성의 사유 체계를 강조함으로써 철학과 긴밀하게 연결하고자 한 '유교 비종교론'(儒敎非宗敎論)의 입장에 묻혀 버리고 말았는데, 최근에 와서 다시 유교의 종교화는 유교의 현대화 문제와 결부되어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선 제기되는 것은 종교에 대한 정의 문제인데, 여기서 종교는 기독교적 종교 관념이 아닌 신념에 기반을 둔 도덕 종교이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 관념에 의거하여 유교의 종교적 특성을 부각하고 궁극적 존재로서 천(天)과 상제(上帝), 의식으로서 유교 의례, 인격 수양과 실천의 측면으로서 경(敬)과 예(禮)의 덕목들을 강조하고 있다.
'유교 비종교론'의 입장이 대세를 이루면서 유교의 현대화를 위한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 것은 첫째, 서구 민주주의와의 조화, 둘째, 산업 사회에의 적응, 셋째, 전통적 도덕규범의 재해석 등이었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다양한 측면에서 이루어졌는데, 주로 유교의 이념과 덕목들을 재정립하는 방식이었다.
이에 대한 예로는 유교의 전통적인 민본주의를 이른바 민주주의적 민본주의로 재해석하여 유교 민주주의를 정립하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군주․민본으로부터 민주에로의 전환 가능성을 스스로의 사상 속에 포태하였던 유교의 민본 사상을 지적하고 이 시대의 요청에 맞도록 민주주의를 포용할 수 있다면 유교의 민본 사상은 현대 사회에서도 생동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유교의 민본 사상이 민주주의의 원리를 섭취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조화를 이루는 민본 사상으로 현대화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데, 이러한 논의는 유교에서뿐만 아니라 정치학이나 사회학 연구자들에 의해서도 새롭게 논의되고 있다.
또 다른 예로는 유교 자본주의론과 같은 논의를 들 수도 있다. 이는 서구 현대화의 문화적 요인이 기독교였다면 동아시아 현대화의 문화적 요인은 유교였다고 보는 데서 출발하며, 이러한 문화적 요인이 동아시아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이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유교 문화의 현대적 발전을 위해서는
① 유교에 본래 존재하였던 역사․자연․인간 사이의 조화 의식을 계승하여 역사와 인간․자연과 인간․인간과 인간 사이의 조화를 도모해야 하며,
② 가족 집단주의의 질서와 윤리를 계승하여 기능 공동체인 기업이 운명 공동체로까지 인식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③ 덕치주의와 경제 윤리를 조화시켜 자신의 관리를 통한 근면과 절약․청빈․위민 의식 등의 중요한 덕목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며,
④ 유교적 집단주의로부터 가족 집단주의 제도․민족의식․발전 의지․공동체 원리․상호 부조의 정신 등을 배워 경제 문화에 의한 사회의 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하며,
⑤ 유교의 덕본재말론(德本財末論)을 계승하여 금욕 윤리와 집단 윤리를 보존함으로써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도모하고 정신적인 기쁨을 얻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유교 공동체주의를 들 수도 있는데, 이는 도덕적 규범과 도덕적 주체, 개인 도덕과 공공 도덕의 통합 등을 중시하는 공동체주의의 특성이 유교의 특성과 부합하는 측면을 강조하여, 유교의 도덕적 유대성․상호 호혜․상호 신뢰․관용의 유대 관계․자기 규율․공동선․의무․질서․화해․겸양의 덕목들을 공동체 원리로 삼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교의 인(仁)은 자신과 타자의 관계를 바람직한 상태로 유지시켜 주는 정신적 원리로서, 예(禮)는 그것에 바탕을 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원리로서 강조된다. 자신과 타자의 관계에서 출발하는 관계망은 자신과 가족, 사회로 층차적 구조를 이루며, 예(禮) 속에서 타인을 자신과 똑같은 존재로 간주하고 행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인(仁)과 불인(不仁)이 달려 있다. 개인은 관계를 이루고 있는 질서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따라 그것을 조화시켜야 할 의무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논의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 왔는데, 특히 최근에 와서 유교에 대한 관심이 사회 과학이나 인문학 분야에서 확산되면서 이와 같은 제반 논의에 대해 긍정적 또는 부정적 입장에서 논란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3. 유교의 현대화 문제는 유교 교단의 현대화 문제와도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이는 유교의 현대화와 관련된 논의가 주로 학계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으며, 유교 이념의 실천 결사와 주체가 부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 실천 결사로서의 유교 교단은 1990년대 초반 한때 개혁의 계기를 맞았지만, 결국 광복 이후 보여 주었던 구태가 재현됨으로써 그 개혁의 노력은 다시 좌초되고 말았다.
현재 유교 교단 조직으로는 성균관과 향교, 유도회, 그리고 재단 법인 성균관이 있다. 성균관과 향교는 조선 시대의 국가 기구를 계승한 것으로서 중앙의 성균관과 지방의 234개 향교가 있으며, 유교 교단을 대표한다. 유도회는 1946년 유교 조직을 재구성하기 위해 수립된 기구로서 각도․각군과 읍면․리동에 이르기까지 전국 조직을 형성하고 있으며, 산하에 청년 유도회와 여성 유도회가 있다. 재단 법인 성균관은 유도회 산하의 재단 법인으로 출발하였으나 지금은 독립된 재단 법인이다.
이들 세 조직은 성립 초기에는 그 역할이 분명하였으나, 분규를 거치면서 그 역할의 구분이 불분명해짐으로써 종단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각 기구의 규정과 헌장, 정관 등에서 보이는 목적과 사업의 구분은 중첩되고 있으며, 심지어 성균관장이 교단을 대표함에도 재단 법인 이사장의 통제를 받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들 기구들이 유교 종단으로서의 정상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교단 조직이 빨리 정비되어야 할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균관은 종무를 맡고, 유도회는 유교 교의의 실천과 일반 대중을 향한 교화 사업을 담당하며, 재단 법인 성균관은 유교 재산 유지 재단으로서 재산의 보존과 관리를 담당하는 기구로의 재편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러한 교단 조직의 정비 시도는 곧바로 분규로 이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원인은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우선 그 가장 큰 원인은 태생적으로 유교 교단이 국가 조직으로 출발했다는 데 있으며, 여전히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제가 1910년에 유림 친일화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한 ≪향교 재산 관리 규정≫으로부터, 1945년에 제정한 군정 법령 제194호 ≪향교 재산 관리법≫을 거쳐, 1962년에 제정되고 1967년에 개정된 현행 ≪향교 재산법≫은 현재 유교 교단의 종무 활동에 큰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법령들은 주된 제정 방향이 상대적으로 규제의 측면에 두어져 있는데, 그것은 유교 교단을 종교 단체라기보다는 교육과 교화 기관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교 교단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우선 ≪향교 재산법≫의 개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또한 유교 교단이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는 데는 1953년부터 시작된 유림 분규의 양상이 지금도 종결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는 것 또한 큰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956년 유도회의 자유당 지지 활동에 대한 논란과 유도회 간부의 비리 문제로 시작된 극단적 대립으로 유교 교단 정비의 중요한 시기를 놓치게 되었고, 1970년 법률적 판단으로 분규가 명목상 종식된 것은 유교 교단 유지에 치명적인 선례를 남겼다. 분규가 재현될 때마다 당사자들 간의 끊임없는 고소 고발이 행해진 것도 그러한 선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일반 대중의 유교에 대한 인식에서뿐만 아니라 유림들에게도 등을 돌리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유교 교단 종무 종사자들의 유교에 대한 신앙적 자세의 결핍도 큰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전통 사회에서 성균관과 향교는 교육과 의례 수행 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유교에 대한 정체성도 확고했으며, 호교적 신념도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의 성균관과 향교에는 교육의 기능은 없으며, 단지 문묘 의례의 봉행만을 수행할 뿐이다. 현재 성균관이나 유도회, 재단 법인 성균관 모두 유교 교직자로서의 기준은 없으며, 전문 교직자 양성 기관도 없는 상태이다. 단지 임원의 자격 요건으로 타종교 단체의 가입 여부만을 따질 뿐인데, 이런 점에서 보면 유교 교단에서 '유교에 대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유교 지식인'이라고 하는 전통적 의미의 유림이란 찾아보기 힘들며, 지금은 명목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현재 유교 교단이 처한 이러한 상황들은 그 상징성 때문에 유교의 당면 과제인 현대화에 큰 장애가 되고 있는데, 유교 교단이 종단으로서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기구의 개혁이 시급하다.
4.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현재 유교 교단은 유교의 현대화를 위한 역량을 상실한 상태이며, 상당히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그 기능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전통적 규범의 선양'을 위한 강연회나 강습만을 가지고는 현대화의 목적을 이룰 수 없으며, '전통적 규범의 고수'를 위해 감성적 측면에만 호소해서는 효과를 거둘 수도 없다. 반면에 유교 관련 단체들이나 학회, 지방 자치 단체들이 오히려 현대화를 위한 가시적인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유교학회나 동양 철학 연구회, 유교 문화 연구소 등에서는 다른 단체, 이웃 종교 또는 다른 학문과의 대화 자리를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그것을 통한 유교의 정체성 재정립을 시도하고 있는데, 비록 이해의 차이를 크게 좁힐 수는 없었지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여성계와도 자리를 함께 한다든지, 사회학이나 정치학 분야 등의 연구자들과 유교 전공자들 간의 토론을 통해 새로운 관점의 수용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라든지, 그리고 유교와 타종교 간의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점 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이러한 노력들이 있기도 했지만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유교의 입장에서 기획된 프로그램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지방 자치 단체 중 경상북도의 경우 '유교 문화권 개발'이라는 거시적 프로젝트 속에서 다양한 유교 문화 행사들을 열고, 유교 이념의 재조명을 위한 여러 가지 사업들을 기획하여 시행하고 있으며, 유교 정보화를 위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유교 정보화 사업을 유교 교단보다도 앞서 진행하고 있는 것은 더욱더 큰 의미가 있는데, 이는 문화 사업과 정보화 사업이 현대화의 기획에서 중요한 요소임에도 지금까지 변변한 유교 문화 행사나 유교 관련 사이트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유교의 현대화 척도는 이론과 조직, 실천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조망해 볼 수 있는데, 현재의 상황에서 볼 때 그것은 각 측면이 유기적 또는 균형 있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특히 교단 조직의 개혁과 대사회적 실천 노력이 절실하다고 여겨지는데, 이것이야말로 유교의 현대화 문제에서 유교계가 당면한 최대의 핵심 과제라고 할 수 있다.
■ 약정 토론:유준기(총신대학교 교수․사회교육원장)
발표자는 유교의 현대화를 이론, 조직,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조망하고 있다.
이 글의 특징점은 이론을 실천하는 매개자(중간자)로서 조직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개선 방안까지를 예리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곧 성균관(향교), 유도회, 재단 법인으로 지칭되는 조직의 분규와 그에 따른 문제 등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이론과 실천의 매개자로서 학계의 연구 성과를 교단의 지도 원리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모임의 가치가 주목된다고 하겠다.
'현대'는 전통 문화를 현대 문화로 전환시켜 온 원인으로서의 생각과 결과로서의 실천을 통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화'는 전통과 현재 사이의 호환성에 근거한다. 봉건적, 공동체적 질서에 충실한 유교를 '민주주의', '자본주의'같은 현대 개념으로 재구성하여 현대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은 재고되어야 한다.
일찍이 중국에서 유교가 인도 불교의 도전에 대응하여 신유교로 재생한 것처럼, 조선 시대 국교로 자리했던 유교가 현대화의 소용돌이에서 부침을 계속하고 있다가 어떤 모습으로 부상할 것인지가 문제이다. 이 글에서 민주주의, 자본주의, 공동체주의를 서구 민주주의와 조화, 산업 사회에의 적응, 전통 도덕의 재해석 차원에서 짧게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유교의 본원적 신념을 논하는 차원에서 유교의 종교성 문제가 가장 핵심적이라고 본다.
유교, 특히 조선의 유교를 논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조선의 정부가 하늘신(상제)에 대한 제사를 포기했다는 점이다. 종교적인 숭배의 지고신으로서 '천', '상제'가 필수적인데, 조선의 유교의 바탕은 성현이 되는 것이고 그에 근접한 '군자'나 '선비'로서의 지향을 견지했던 것이다. 왕권을 천명으로 이해하는 유교적 정치 논리는 초인적이고 초자연적인 힘으로 상징되는 천신과 제신이 왕을 보좌하고 국가를 보호한다고 보아 이에 제례를 올린 것이다.
국가에는 왕조의 조상신을 섬기는 종묘, 토지와 곡물신을 모시는 사직이 있어 이에 대한 제사의 특권이 국가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것으로 보았다. 타인에게 존경받는 국가의 지도자는 유력한 가문 공동체의 출신으로 조상신인 '가신'을 섬기고, 풍부한 지식으로 타인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유식함'으로 특별히 존경을 받지 않는 서구적 태도는 서구 그리스도교가 '신의 피조물로서 비천한 인간'이라는 인간관에 입각한다. 이와 같은 가치관의 근본적인 차이는 현대를 매개로 유교를 논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조선 말기에 이병헌, 이승희 등이 공(자)교 운동을 벌이면서, 당시로서는 근대적인 개혁을 주창하였다. 특히 이병헌은 향교식 유교에서 교회식 유교로의 전환을 강조하면서, 유교가 보편적 종교 이념으로서 세계성과 진취성을 띠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공(자)교 운동은 청나라 말기의 공양학자인 강유위가 주창한 유교 종교화 운동인데, 서구 근대 문화에 대한 긍정적 수용을 전통 문화의 입장에서 화응시키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면서 철저히 그리스도교적인 방법을 통하여 유교를 개혁하려는 점이 특이했다.
조선 말기의 고민과 시도는 일제 침략기라는 국권 상실의 시기를 거치면서 미해결의 문제로 남게 되었다. 유림의 일부가 친일 집단으로 역할을 하면서 한국 유교의 주체적 현대화는 또 '친일 문제 해결'이라는 또 다른 걸림돌을 갖게 되었다. 결국 현대화는 서구화이고, 현대 종교는 서구 종교라고 하는 기존의 인식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계승하느냐의 문제와 더불어 외세(일본, 서구)의 극복이 '유교 현대화'의 최우선적 과제라 하겠다.
P. 윤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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