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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ing of life/자료실

몽양여운형평전

하이안자 2013. 10. 28. 18:53

 

 

 

여운형평전글

프레시안특집

 

 

.......

신한청년당의 결성과 파리강화회의 대표 파견은 몽양의 정치적 위상을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도쿄 유학생들의 2ㆍ8독립선언과 국내에서 3ㆍ1운동의 촉발재 구실을 하고,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신한청년당의 역할이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도쿄의 유학생들은 영국인이 일본에서 발행하는 <저팬 에드버타이저>를 통해 파리강화회의 개최와 신한청년당의 결성, 대표파견 기사를 알게 되었다. 또 국내에 파송된 장덕수는 각계 지도급 인사들을 만나 국제정세와 신한청년당 대표의 파리 파송 등을 설명하였다.

실제로 김규식의 파송은 3ㆍ1운동을 일으키는 데에 도화선이 되었다.
3ㆍ1운동이 국내의 기독교계와 천도교계, 그리고 불교계의 지도자들의 주동으로 조직되고 진행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지도자들이 어디에서 영감을 받고서 그 엄청난 사업을 추진했던가 하는 질문을 추궁해 보면 김규식이 상해를 떠나기 전에 남겼던 말로 귀착이 된다.(…)그 말은 그가 떠난 후에 국내의 지도층에게 전달이 되었고 3ㆍ1운동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었다. (김규식의 부인 김순애 여사가 필자(이정식)에게 전한)"나는 가서 일제의 학정을 폭로하고 선전하겠다. 그러나 나 혼자의 말만을 가지고는 세계의 신용을 얻기가 힘들다. 그러니까 신한청년당에서 서울에 사람을 보내어 독립을 선언해야 되겠다. 가는 그 사람은 희생을 당하겠지만, 국내에서 무슨 움직임이 있어야 내가 맡은 사명이 잘 수행될 것이고, 우리나라의 독립에 보탬이 될 것이다." (주석 4)

거대한 3ㆍ1독립항쟁 발발의 ‘지하수맥’(地下水脈)에는 여운형의 숨은 역할이 맥맥히 흐르고 있음을 찾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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