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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한 옛날 관습처럼 느껴지는 유교. 이 고루함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남존여비와 가부장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이 유교의 매력에 홀딱 반하고 있는 중이다.
알면 알수록 유교의 중심에는 '인간'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귀함을 말하고 있다.

유교의 시작은 중국이라는데 의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전통의 남아 아직도 살아 숨쉬는 곳은 대한민국뿐이란 생각을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 국민들 속에 아로새겨져 있는 홍익인간 DNA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유교사상의 본질과 현재성』이란 책은 쉽지 않다. 문자만 읽으며 넘긴 부분도 있다. 같은 페이지를 두어번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용어의 어려움 때문이다. 그리고 비슷한 언어의 사용 때문에 확연한 구분을 할 수 없었다. 아마 배경지식이 짧아서 그럴 것이다. 사실 이 책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철학 관련 책들은 읽는 내내 지나친 집중을 요한다. 그렇다고 거기에 쓰여있는 글들이 쏙쏙 날아 뇌리에 가지런히 정렬되면 박히는 것도 아니다. 동양 철학은 더 그렇다.

그렇다고 읽기를 멈출 수 없다. 유교·유학에 제대로 필(feel)이 꽂혔기 때문이다. 읽다보면 언젠가는 내것으로 만들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면서......



▪ 판단에는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이 있다. 그런데 유교에서 주로 관심을 갖고 다루어 온 영역은 사실의 세계가 아니고 도덕적 가치의 세계였다. 유교사상에 있어서 판단의 기준 문제는 가치판단(p14)

▪ 유교는 전통적으로는 인식과 실천의 일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판단의 문제도 행위의 도덕정 정당성 여부를 판가름 해 주는 ‘당위의 준칙(準則)’이 핵심적 과제로 대두(p14)

▪ 유교적 입장에서 본다면 사실과 가치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를 갖는다. 유교의 목적은 도덕세계의 건립에 있으며, 도덕적 질서는 자연 질서에 기초한다. 따라서 객관적 사실은 그 자체보다, 도덕적 규범의 근거로서 한층 큰 의미를 갖는다.(p14)

▪ 『중용』에서 “천이 명한 것을 성이라 하고, 성을 따른 것을 도라 한다.”라고 하는 구절은 바로 천과 성, 그리고 이에 근거한 ‘인간이 마땅히 가야 할 길(當行之路)’로서의 도를 제시한 것이다.(p19)

▪ '인간에게 재재해 있는 천도(在人之天道)‘로서의 성이 곧 진리이다. 따라서 본성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진리의 구현이며, 여기에서 도덕적 가치와 규범이 정립된다.(p20)

▪ 성은 절대선이며 인간에게 내재된 천도이다. 그러므로 성의 발현은 천도의 발현이 된다. 성리학에서 천과 성이 리(理)로 정의된다.(p23)

▪ 의서에 수족이 마비되는 것을 ‘불인(不仁)’하다고 하니 이 말이 인을 가장 잘 형용한다. 인한 자는 천지만물을 한 몸으로 여기니 자기 아님이 없다. (천지만물을) 자기로 인식한다면 어는 것인들 이르지 못하겠는가. 만약 (천지만물을) 자기에게 소속시키지 않으면 저절로 자기와 서로 관여되지 않는 것이니 수족이 불인하며 기가 이미 관통하지 않아 모두 자기에게 소속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리므로 ‘박시제중(博施濟衆)’이 바로 성인의 공용인 것이다.(p38)
博 넓을 박 施 베풀 시, 옮길 이 濟 건널 제 衆 무리 중 - 은혜(恩惠)를 널리 베풀어 뭇사람을 구제(救濟)함

▪ 여기에서 인은 ‘타자와의 일체’ 곧, ‘타자를 자기로 인식함’으로 규정된다. 타자를 자기로 인식하지 못함은 수족이 마비된 것에 비유된다. 수족은 분명히 신체의 일부이지만 마비되면 나의 신체로 느끼지 못하고 분리되낟. 본래가 나와 한 몸인 타자(천지만물)를 나의 몸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불인’인 것이다.(p38) 

▪ 유교의 사상 체계를 구성하는 개념들 가운데 ‘중’은 유교가 유교일 수 있는 이유, 즉 자기 정체성의 근거로서 인식되어 왔다.(p44)

▪ 중은 중국사상사의 지반을 이루는 원형으로서 작용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유가는 중을 자기 정체성의 확인과 타 학파에 대한 비판의 준거로 삼고 있다.(p45)

▪ 예와 점은 중(특히 시중)을 구하는 장치인데, 그 기초를 인간의 주체적 도덕성에 두고 있는 것이 유교의 특징이다.(p62)

▪ 중의 본질은 ‘균형성’, ‘무고착성’, ‘주체성’으로 정리될 수 있다. 중은 음양이라는 대응항의 균형적 관계에 의해 ‘정립’되고, ‘치우침과 기우러짐이 없고 과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음’이라는 중의 형식적 개념정의 자체까지도 거부하는 무고착성을 전제로 하여 시중으로써 ‘운용’되며, 상황에 적중하는 주체로서 인간의 도덕적 자아확립에 의하여 ‘구현’된다. 이 중은 유교에 있어 최고의 덕목이며 실천윤리인 동시에 유교적 사유의 문법, 곧 논리이다. 특히 대립,대응하고 있는 두 항을 동시에 파악하여 그 균형성을 추구하는 중의 논리는 전형적인 대칭적 사고틀로서 유교 사상과 문화의 기저를 이루는 원형적 논리로서 기능하고 있다. 유교의 특징으로 일컬어지는 대자적인 자기완성(修己)과 대타적인 사회 교화(治人), 인식(知)과 실천(行), 경험적인 학습(學)과 주관적인 사유(思)의 통일은 바로 중의 논리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p62~p63)

▪ 유교에는 공동체주의적 요소와 함께 개인의 주체성과 자율성, 그리고 이난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전통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p67)

▪ 부족의 집단 의식이나 천명의 보편적 집단적 권위에 개인을 매몰시켰던 진시대의 덕치주의, 천명론을 극복하고 자주,자율의 입장에서 개인을 윤리 실천의 주체로 확립시킨 것이야말로 중국 사상의 비약적 발전이며 하나의 전회이다.(p68)

▪ 『논어』에서 “하늘이 나에게 덕을 낳아 주셨다”라고 공자가 말한 것은 ‘나’가 도덕의 주체임을 자가한 고백이며, “인을 이루는 것은 나에게서 유래하니 남에게서 유래하겠는가”라는 구절은 유교의 최고 덕목인 인이 바로 나 자신에게 달려 있음을 주장한 것이다.(p68)

▪ 음양이 중을 얻은 것이 도이다. 옛노인이 ‘음 또는 양에 치우친 것을 병이라고 한다’라고 말씀하셨다.(p97)

▪ 음양이 시간적 변화 따라 순환적우로 운동하여 중을 얻어 음,양 어는 한 편으로치우침 없는 것이 바로 도라는 것이다. 이 과정은 자기원인적이며, 이 과정을 통하여 도달한 ‘과,불급이 없는 상태’가 도라는 것이 ‘음양이 중을 얻은 것이 도다’라는 의미다.(p97)

▪ 첫째는 ‘자연이 순환적으로 변화하여 중(형평성)을 지향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길이 바로 도’라는 것이다. 둘째는 자연의 변화는 한갓 과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낳고 기름(생성)’을 그 본질로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를 이어받는 것이 선’이라는 것은 첫째 자연이 변화에 나가는 길을 인간이 마땅히 따라가야 할길로 자각하여 실천하는 것이 선이라는 의미가 된다.(p117~p118)

▪ '항(亢)‘이라고 하는 말은 나갈 줄만 알고 물러설 줄은 모르며, 보존할 줄만 알고 없앨 줄을 모르며, 얻을 줄만 알고 잃어버릴 줄은 모른다는 것이다. 오직 성인뿐일 것이다. 나감과 물러섬, 보존함과 없앰을 알아 그 올바름을 잃지 않는 자는 오직 성인뿐일 것이다.(p118)

▪ 성은 일차적으로 후천적인 경험, 학습에 훈습되기 이전, 타고난 그대로의 본성을 의미한다.(p123)

▪ 무릇 도는 이름이 있은 적이 없다. 사물에 감응하여 나오면 선이라는 이름이 정립되고, 사물에 의탁하여 나오면 성이라는 이름이 정립된다.…도가 인간에게 내재하면 밖에 나가 일하고 집에 들어와 쉬며 목마르면 마시고 주리면 먹으니 성은 거짓이 없다. 진실로 그 성의 본연을 얻어 자신에 돌이켜 진실하다면 천만무릐 이치가 얻어지고 도가 노로부터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성지자성(成之者性)’이라고 한다.(p131)

▪ "인간이란 천지의 자식이니 천지의 이치가 온전하게 인간에게 부여되고 인간은 그것을 받는다“라고 말할 때, 그 천지의 이치가 바로 성인 것이다.(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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