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경호(景浩)이고, 호는 퇴계(退溪)·도유(陶)·퇴도(退陶)·청량산인(靑山人)등이며,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본관은 진보(眞寶:현재의 경상북도 靑松)로 경상도 예안현 온계리(현재의 경북 안동 도산명 온혜동)에서 진사이치(李埴)의 8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김인후(金麟厚)등과 교유하였다.
양반 가문의 출신이었지만 그리 가정환경이 유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생후 7개월 만에 당시 40세의 장년이던 부친을 여의고 어머니가 농사와 누에치기로 생계를 이어가는 빈곤한 생활 속에서 자랐다. 6세 때부터 이웃 노인에게『천자문(千字文)』을 배우기 시작하였고,12세 때부터는 숙부인 이우(李)에게서『논어(論語)』를 비롯한 유교를 배웠다. 20세경에는『주역(周易)』등의 공부로 침식을 잊어가며 독서와 사색에 잠겨 몸이 야위는 일종의 소화불량증이 생겨 일생동안 그를 괴롭혔다. 1527년(중종 22) 향시(鄕試)를 비롯하여 1532년 과거에 급제하고 1534년 34세 때 대과(大科)에 급제함으로써 벼슬길에 나섰다. 그 해 부정자(副正字)가 되고, 이어 박사(博士)·전적(典籍)·지평(持平)등을 거쳐 세자시강원문학·충청도 어사 등을 역임하고, 1543년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에 이르렀다. 이때 낙향 하려고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1546년 낙향하여 양진암(養眞庵)을 지었다. 이어 단양군수(丹陽郡守)가 되고 풍기군수(豊基郡守)로 3년간 재직하였다. 그러나 관직에서 떠날 결심을 하고 사직원을 제출한 뒤 곧 낙향했다가, 임의로 임소(任所)를 이탈했다는 죄목으로 직첩(職牒)을 박탈당하기도 하였다. 이때가 그가 야인(野人)생활에 들어가려는 준비기간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시기에 두 번째 부인을 잃고 둘째아들을 잃은데 이어 친형 이해(李瀣)를 사화(士禍)로 잃는 등 개인적 불행을 겪었다. 1552년 다시 소환되어 홍문관 교리에 임명 되었으나 신병을 이유로 곧 사퇴하였다. 이후로도 30여 차례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대사성·참의·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춘추관수찬(春秋館修撰)등을 잠깐씩 지냈을 뿐, 대부분의 임명을 신병이나 노쇠, 재질부족 등을 이유로 사퇴되었다. 향리에 돌아가 있으면서 본격적인 학문 연구에 전심(傳心)하여 활발한 저술활동과 강학(講學)에 몰두하였다.
*업적
60세가 되던 해에 강학하던 장소가 좁아 도산 남쪽에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짓고 임종 때까지 후진을 양성하였다. 62세에 『전도수언(傳道粹言)』을 교정하고 발문을 썼으며,63세에『송원리학통록(宋元理學通錄)』의 초고를 탈고해서(序)를 썼다. 64세에 이구(李球)의 심무체용론(心無體用論)을 논박했고, 66세에 이언적(李彦迪)의 유고를 정리하여 행장을 썼고『심경후론(心經後論)』을 지었다. 68세에 선조에게 「무진육조소」를 상서했으며,『논어집주』·『주역』등을 강의하였다. 또한 그간 학구의 만년의 결정체인『성학십도』를 저작, 왕에게 헌상하였다. 그의 문인들은 영남의 학풍을 이루었는데, 주요한 학자로는 정구(鄭逑)·유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조목(趙穆)·황준량(黃俊良)·이덕홍(李德弘)·박순(朴淳)·남치리(南致利)·권호문(權好文)등이 있다.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후에 퇴계학파(退溪學派, 율곡학파(栗谷學派), 영남학파(嶺南學派)·기호학파(畿湖學派)라는 학파의 형성을 가져왔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조의 성리학이 이황의 사상을 계기로 본격적인 한국화의 길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의 사상으로 인하여 한국 성리학이 보다 더 강한 독자성을 지니게 되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그의 사상은 한국 성리학을 대표하는 것이다.
2. 시대적 배경
당시 조선 왕조는 신진 사림(士林)들이 정계에 진출하여 개혁을 시도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개혁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오히려 ‘사화(士禍)’가 연이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사화란 말 그대로 선비가 화를 당한 사건이었다. 불의(不義)를 보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사람들은 보수적인 집권 세력을 향해 철저한 개혁을 요구했다. 그러나 힘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마음만 앞섰기 때문에 오히려 집권 세력에게 화를 당하게 된다. 따라서 사화는 정의(正義)가 수난을 당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왕조 500여 년 동안 수많은 사건이 발생했지만, 사대사화(四大士禍)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아픈 상처를 남긴 사건이었다.
퇴계가 태어나 성장하고 활동하던 시기가 바로 사대사화의 시기에 해당한다. 퇴계가 태어나기 3년 전인 1498년에 무오사화가 일어났고, 퇴계가 4세인 1504년에 갑자사화, 19세인 1519년에 기묘사화, 45세인 1545년에 을사사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연속된 사화로 신진 사림은 화를 당했으며, 퇴계의 형인 이해(李瀣)도 사화의 영향으로 죽었다. 이는 퇴계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고 퇴계가 벼슬살이에 회의를 가진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당시 조선 사회는 이전의 집권 세력과 신진 사림 사이의 갈등이 심해지던 때였다. 권력을 가진 세력은 자신들은 권력을 지키고자 했고, 신진 사림 세력은 개혁을 통해서 국가를 발전시키고자 했기 때문에, 두 세력 사이의 싸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산군의 폭정과 두 번의 사화를 겪으면서 사림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사회적 분위기도 험악하게 되고 말았다. 하지만 사림들은 뜻을 굽히지 않고 중종반정을 일으켜 폭군이 연산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는다.
사림파의 우두머리로 떠오른 조광조는 연산군의 폐해를 복구하고 놀이터가 되었던 성균관을 다시 수리해 유학을 장려하였으며, 도학정치(道學政治)를 펴고자 하였다. 도학정치란 유교 이념에 따라 덕으로 통치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그리고 인재를 널리 등용하면서 신진 사림을 많이 뽑았다. 그러나 급진적 개혁을 시도했던 조광조는 당시 권력을 가지고 있던 훈구파의 모함을 받고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것이 기묘사화이다.
기묘사화 이후 사림 세력은 관직에 나가는 것이 소용없다는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고 그래서 정계에 나아가지 않고 시골에 머물면서 학문에 전념하거나 제자들을 키우는데 집중하게 된다. 그 결과 오히려 학문이 새롭게 일어났고, 정치적으로도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퇴계의 나이 45세때 일어난 을사사화 이후 퇴계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전념하려는 마음을 굳히게 된다. 정치의 주도권이 다시 사림으로 돌아오고 조정의 부름을 받기도 하지만 거의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학문에 열중했다.
3. 성학십도의 구성과 내용
《성학십도》는 제목인 성인 ‘성(聖)’, 배울 ‘학(學)’, 열 ‘십(十)’, 그림 ‘도(圖)’,에서 알 수 있듯이, 바로 성인이 되기 위해 알아야 할 성리학의 핵심적인 내용을 열 가지 그림을 통해 요약, 정리한 책이다. 퇴계가 68세 되던 해에 이 책을 썼는데, 그 이유는 17세의 어린 임금인 선조를 성왕(聖王)으로 이끌기 위해서였다. 열 개의 그림은 대부분 예전부터 전해오던 것이다. 그 가운데 제6 심통성정도는 옛것을 바탕으로 퇴계가 보충한 것이며, 제3 소학도와 제5 백록동규도, 제10 숙흥야매잠도는 내용만 있던 것에 퇴계가 직접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이다.
4. 주요 인물
주희(侏憙, 1130~1200) - 중국 남송 때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며 성리학의 집대성자로, 이름은 희(憙), 자는 원회(元晦)이다. 북송 때 학자인 장횡거(장재), 주렴계(주돈이), 정명도(정호), 정이천(정이)의 학설을 정리하여 주자학을 완성했다. 주자학은 중국 사상사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우리나라 조선왕조 때도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저서가 매우 많은데 대표적인 것으로 《주자가례》, 《대학장구》, 《주역본의》, 《근사록》 등이 있다.
주돈이(周敦이, 1017~1077) 중국 북송 때의 유학자로 이름은 돈이(敦이), 자는 무숙(茂叔), 호는 염계다. 태극도와 태극도설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설명하였다. 저서로는 〈태극도설〉과 《통서》가 있다.
장재(張載, 1020~1077) 중국 북송 때의 성리학자로 자는 자후(子厚)이며, 횡거진에서 오랫동안 학문을 했다고 하여 횡거 선생으로 불렸다.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주장하여 오늘날 중국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서명〉, 《횡거역설》, 《장자어록》등이 있다.
정호(程顥, 1032~1085) 중국 북송 때의 성리학자로 자는 백순(伯淳), 호는 명도(明道)다. 아우인 정이와 함께 이정(二程), 또는 이정자(二程子)로 불리며, 오랫동안 낙양에서 학문을 연구했기 때문에 그들의 학문을 낙학(洛學)이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명도문집》등이 있다.
정이(程이, 1033~1107) 중국 북송 때의 성리학자로 자는 정숙(正叔)이다. 이한 이천(伊川) 지방의 수령이었기 때문에 이천 선생으로 불렸다. 정이의 학문은 주자에서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해서 정주학(程朱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저서로 《춘추전》, 《이천문집》, 《이정유서》 등이 있다.
정복심(程復心, 1279~1368) 원문에 임은 정씨라고 나오는 인물로, 자는 자견(子見), 이름은 복심(復心)이다. 원나라 때의 성리학자로 인종 때 향군박사로 등용되었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면서 공부하였다. 저서로는 《사서장도》세권이 있다.
권근(權近, 1352~1409)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때의 학자로 호는 양촌(陽村), 자는 가원(可遠)이다. 이색(李穡)의 문인으로 정도전등과 친분이 있었다. 정도전과 함께 조선 초기에 유교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여 성리학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학문은 이황이나 장현광 같은 주리론자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저서로는 《양촌집》 《사서오경구설》 《입학도설》등이 있다.
왕백(王栢, 1197~1274) 중국 남송 때의 학자로 주자의 문인과 함께 학문을 했다. 호는 노재(魯齋), 자는 회지(會之)다. 천문 역사 지리 문자 등에도 뛰어났다. 저서는 8백권에 이르지만 대부분 사라지고 《서의》 《독여기》 《노재집》등만 전한다.
섭채(葉寀, 연대미상) 호는 평암(平巖), 자는 중규(仲圭)이며 송나라 때 사람이다. 《근사록집해》를 썼다.
진백(陳栢, 연대미상) 자는 무경(茂卿)이며, 호는 남당(南塘)이라는 기록이 있다. 〈숙흥야매잠〉을 지었다. 송나라 말 원나라 초의 인물로 추정된다.
5. 내용 요약
1. 태극도
- 태극도(太極圖)는 염계 주돈이가 글과 그 림을 모두 만든 것으로, 우주의 근원인 태극과 음양의 변화, 그리고 오행의 결합을 통하여 인간과 만물이 생성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동양의 고대인들은 우주가 태극으로부터 생겨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태극이 운동하면서 소극적인 '음'과 적극적인 '양'이라는 요소가 나오고, 여기에서 다섯 가지 물질인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의 오행(五行)이 생성되고, 이 오행이 서로 결합되어 인간과 만물이 생겨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태극도는 단순하지만 우주의 근원과 만물의 생성원리, 인간과 만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그림으로 평가된다.
우주를 생성하는 원리는 무극이면서 동시에 태극이다. 태극이 움직여서 양을 낳는데, 그 움직임이 정점에 도달하면 고요한 상태가 되고 고요한 상태에서 비로소 음을 낳게 된다. 그리고 고요한 상태가 정점에 도달하면 다시 움직이게 된다. 이렇게 한번 움직임과 한번의 고요함이 서로 근원이 되어 음과 양으로 나뉘어져 두 가지 모습이 된다. 양과 음이 서로 변화하고 합쳐지면서 수 화 목 금 토를 낳는데, 이 다섯 가지의 기운이 순조롭게 베풀어져 사계절이 운행된다. 오행이란 하나의 음양이며, 음양이란 하나의 태극이고,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오행은 생성되면서 각각 하나의 본성을 갖게 되며, 무극과 음양과 오행의 정기가 오묘하게 결합하여 모여지면, 하늘의 도인 건도는 남성을 이루고, 땅의 도인 곤도는 여성을 이룬다. 음양의 두 기운이 서로 만나 반응하여 만물을 만들어 내고 변화시키며, 만물이 지속적으로 생성되어 변화가 끝없이 이루어진다.
- 태극이란 만물을 생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개념이다. 여기에 무극이라는 말을 덧붙인 이유는 '우주의 근원은 눈에 보이거나 만질 수 없고, 인간의 감각으로 알 수 없는 것' 이기에 무극이라는 말을 통하여 태극에 대한 인식을 확실하게 시켜준다. (즉 무극이면서 태극이라는 것은 태극을 눈에 보이거나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잡아준다.) 태극과 음양은 불가분의 관계다. 태극이 운동하면서 양이 나오게 되고 sin 곡선처럼 상승과 하강을 하게 된다. 곡선이 위로 올라가면 양이 일어나고 내려오면서 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렇게 곡선이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면서 다섯 가지의 기운을 만들어 내는데 이것이 바로 오행이다. 오행은 수 화 목 금 토를 말하는데, 동양의 옛 사람들은 이 다섯 가지가 만물을 만들어 내는 질료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음양의 변화에 따라 이 다섯 가지 기운이 생겨나고 이 다섯 가지 기운이 서로 결합하면서 구체적인 사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오직 인간만이 가장 우수한 것을 받아서 신령스럽다. 형체가 만들어지면서 정신이 지각(知覺)을 만들어 내고, 오행의 본성이 감동하여 선악이 나누어지고 모든 일이 나오게 된다. 이에 성인이 ①중정(中正)과 인의(仁義)로 선악을 구분하고 모든 일을 정하여, 고요함을 중심으로 인간의 도를 세웠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덕성이 천지와 일치하고, 밝음이 해와 달과 일치하며, 질서가 사계절과 일치하고, 길흉이 귀신과 일치한다. 군자는 바로 이러한 것을 잘 닦기 때문에 길하게 되고, 소인은 이러한 것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흉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하늘의 도를 세워 음과 양이라 하고, 땅의 도를 세워 부드러움과 강함이라하며. 사람의 도를 세워 인과 의라고 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시작을 알고 끝을 돌이키면 죽음과 삶의 의미를 알게 된다." 라고 했다.
- 인간이란 바로 음양의 기운에 의해 태어난 존재다. 가장 맑고 깨끗하여 신령스런 기운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이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사물보다 신령스런 존재로 인식된다. 그리고 인간의 형체가 갖추어지기 시작하면서 그 속에 사물을 인식하는 능력, 즉 지각하는 능력이 주어지기 시작한다. 성인은 인간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다. 군자는 바로 성인이 되기 위해 덕을 쌓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소인은 인간의 도리를 어기고 덕을 해치는 사람이다. 따라서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고 인간의 도리를 실천해야 한다. 인간은 우주의 한 부분이고, 만무로가 동일한 근원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그 도리를 이해하면 죽음의 세계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유가의 논리다.
* 주자의 설명
주자는 태극도설을 두 단계로 인식하였다. 첫 번째는 태극에서 음양과 오행으로 변화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우주의 본체를 설명한 부분이고, 두 번째는 인간의 타고난 성품을 밝힌 부분이다. 주자의 해석에서 인간은 태극에서 생겨난 존재이지만, 만물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기운을 받았기 때문에 신령스런 존재가 된다. 곧 인간과 우주가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다는 뜻이며, 우주의 모습과 일치하는 인간을 가장 이상적인 인간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인간의 표준이 된다. 성인보다 조금 부족한 사람을 군자라고 하는데, 군자는 자신을 수양하여 성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인간의 도리를 어기고 수양하지 않는 사람은 소인이다. 따라서 군자는 항상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소인은 결국 망하게 된다. 군자가 되거나 소인이 되는 차이는 수양에 달려 있고, 수양하고 수양하지 않는 것은 오직 공경하는 마음과 태도에 달려있다. 공경한다는 뜻의 '경(敬)'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성학십도》전체의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
* 퇴계의 설명
지금《성학십도》에서 태극도설을 첫머리에 놓는 것은 〈근사록〉에서 태극도설을 첫머리에 둔 의도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을 본받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여기서부터 단서를 찾아 소학(小學)이나 대학(大學)과 같은 것에 힘써야 합니다.
- 퇴계는 ②근사록의 첫머리에 나오는 태극도설을 통해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의 실마리를 찾고, 그 다음에 소학과 대학을 읽어서 학문을 점차 넓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면 우주 자연의 이치를 파악하고 인간의 본성을 실천하여 천명을 이해하게 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으며, 자연의 변화와 만물의 조화를 깨달아 자신의 덕을 왕성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 서명도
- 서명도(西銘圖)는 북송 때 사람인 장횡거(장재)가 쓴 서명(西銘)을 보고 원나라 때 사람 정복심이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서명'의 원래 제목은 정완(訂頑)이었다. 즉 '어리석음을 바로잡다.' 또는 '완고함을 바로잡다.' 라는 뜻이다. 서명도는 상도(上圖)와 하도(下圖)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상도는 '이일분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하도는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처럼 천지를 섬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일분수'란 성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이다. 여기서 '이일'이란 만물은 하나의 원리에서 나왔다는 뜻이고, 이것이 각각의 사물들로 나뉘는 것을 '분수'라고 한다. 천지를 부모로 둔 것은 모든 만물이 똑같다. 인간도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때문에 부모와 가장 가깝다. 그리고 형제와 친척과 이웃이 있다. 이렇게 천지에서 부모, 부모에서 형제와 친척, 친척에서 이웃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이일에서 분수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백성들이 다 나의 동포요, 만물은 나와 같은 존재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서명〉이란 본래 장횡거가 자신이 공부하는 곳의 양쪽에 써 붙여놓은 글 가운데 하나다. 서명의 글이 아름답고 의미가 깊어 많은 사람들이 ‘서명’의 가치를 높게 쳤다. 서명의 전체 요지는 인을 실천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다. 그것을 성리학 용어로 표현한 것이 바로 '이일분수‘ 이다. 이일분수란 만물이 존재하게 되는 가장 근원적인 이치는 하나지만 각기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서로 다른 모습일지라도 모두 하나의 이치에서 생겨난다는 말이다. 인간과 사물은 모두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 존재이지만 겉모습과 형태는 다르다. 즉 모든 인간을 똑같이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본래 성품이지만 인간은 가깝고 먼 차이에 따라서 사랑을 베푸는 것이 다르다. 내 가족을 남들보다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런 이치다. 그러나 여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내 부모에게서 남에게로 확대시켜 나가고, 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남의 아이들에게까지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이고 이일분수이다.
3. 소학도
소학도(小學圖)는 주자가 저술한 ‘소학’이라는 책을 퇴계가 도표로 그린 것이다. ‘소학’은 어린 학생들에게 인성 교육을 시키기 위하여 주자가 편찬한 책으로, 내용은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소학’은 집안의 작은 일부터 몸에 익히고 배우며,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과 어른을 공경하는 태도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습관은 제2의 본성이라는 말처럼, 어렸을 때의 습관은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이 그림은 어린 학생들이 익혀야 할 일들을 열거하고, 그 중심에 공경하는 마음을 두고 있다.
봄에 만물이 소생하고[원(元)], 여름에 성장하며[형(亨)], 가을에 성숙하고[이(利)], 겨울에 완성되는 것[정(貞)]은 변하지 않는 천도의 법칙이다. 어질고[인(仁)], 정의롭고[의(義)], 예의바르고[예(禮)], 지혜로운 것[지(智)]은 인간이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은 처음에는 모두 선하지 않음이 없는데, 네 가지 단서인 사단(四端,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사물과 만나면서 나타나게 된다. - 우주는 스스로 운행하는 법칙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자연스럽게 운행하면서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 것처럼 우주는 끊임없이 자연의 법칙 속에서 움직인다. 이것을 천도(天道)라고 한다. 인간은 이것을 본받아 자신의 본성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 이것을 인도(人道)라고 한다. 소생 성장 성숙 완성이라는 원(元) 형(亨) 이(利) 정(貞)의 네 가지 천도가 인간의 내면에 들어와서 인 의 예 지라는 네 가지 본성이 된다.
‘소학’의 방법은 물 뿌리고 청소하고 손님을 대접하며, 집안에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하여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을 실천하고 남은 힘이 있으면 시를 외우고 글을 읽으며,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생각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치를 탐구하고 몸을 닦는 것이 학문의 큰 요체다. 밝은 명은 환하여 안팎이 없으니, 덕을 높이고 학업을 넓혀야 본성을 회복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옛날에 충분했다고 해서 어찌 지금도 여유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대가 점점 멀어지고 어진 사람들도 사라졌으며, 경전이 없어지고 교육마저 해이해져 아이들의 교육이 바르지 못하게 되었으니 성장해서는 더욱 허황되고 사치스럽게 되었다. 마을에는 좋은 풍속이 없어지고, 세상에는 좋은 인재가 부족하게 되었으며, 사람들은 이기심과 욕망으로 싸우고 이단의 말들로 시끄럽게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인간의 떳떳한 본성은 하늘에 모아 후세를 깨우치고자 한다. 아아! 젊은이들이여! 이 책을 받아서 배우도록 하거라. 이것은 내(주자)가 노망이 들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오직 성인의 가르침이다.
4. 대학도
대학도(大學圖)는 사서의 하나인 《대학》이라는 책을 조선 초기의 성리학자 권근이 그리am로 요약하여 정리한 것이다. ‘소학’을 통해서 실천해야 할 행동 규범을 배운 사람은 ‘대학’을 통해서 자신을 지속적으로 수양하여 집안과 국가를 잘 다스리고, 나아가 인류를 안정시키는 것을 포부로 사아야 한다. 그래서 ‘대학’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학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수기치인이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아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이끌어서 선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의미다. 대학도는 《대학》의 내용을 요약하여 그림으로 그린 것인데, 대학은 크게 삼강령(三綱領)과 팔조목(八條目)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학》의 도는 인간이 본래부터 타고난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극히 선한 경지에 머무는데 있었다. 머물 곳을 안 다음에 방향을 정할 수 있으며, 방향을 정한 다음에 고요할 수 있고, 고요해진 다음에 평온할 수 있고, 평온해진 다음에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다음에 얻을 수 있다.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으니,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을 안다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 대학의 앞부분에는 명명덕, 신민, 지어지선이라는 삼강령이 나온다. 즉, 자신의 선한 본성을 알고(명명덕) ‘나’의 존재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 보고, 자기완성을 위한 학문을 해야 하고, 자기의 학문이 완성되면 가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도곡 가르치고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한다.(신민). 또한 자기 혼자만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한 세상에 살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반드시 가장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지지선)
삼강령을 실천하기 위하여 반드시 실천해야 할 여덟 가지 세부 항목이 바로 팔조목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가 바로 팔조목 중의 네 가지다. 그 다음은 격물 치지 성의 정심이다. 자신을 수양하기 위해서는 사물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학문을 통해서 가능하다 따라서 학문을 암기하고 반복하는 것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사물의 이치와 삶의 이치를 미세한 부분까지 두루 살펴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런 다음 자신의 의지를 성실하게 하여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마음을 바르게 유지해야 한다.
5. 백록동규도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는 주자가 백록동 서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규범의 목차를 따라 퇴계가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그 내용은 가장 먼저 오륜을 배우고 익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학문이란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밝히고 그대로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 행복을 누리도록 본성을 실현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학문의 목적이다. 백록동규도는 인간이 되기 위한 학문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내(주자)가 가만히 살펴보니, 옛날 성현들이 사람을 가르쳐 학문을 연마하게 하는 의도는 모두 의리(義理)를 해석하고 밝혀서 자신을 수양한 다음 그것을 남에게 미치고자 하는 것이었지 한갓 내용을 외우고 많이 보아서 문장을 만드는 일에만 힘을 써서 명성을 구하거나 이익을 취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날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이와 반대로 한다. 성현들이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은 모두 경전에 갖추어져 있으니, 뜻있는 선비들은 진실로 이치의 당연함을 알아서 스스로 반드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면, 어찌 다른 사람이 규범과 금지 항목을 만들어 준 다음에 그것이 지켜지길 기다리겠는가?
- 주자가 백록동 서원에서 학생들에게 학문의 목적이 무엇이고 학교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기록한 글의 서문이다. 학문을 하는 목적은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자신을 수양하여 남에게까지 영향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자는 당시의 학생들이 학문의 목적을 잊은 채 무조건 암기하고 명예와 이익만을 추구하려 하자, 백록동 서원을 세우고 학교의 규범을 만든 것이다.
6. 심통성정도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는 글과 그림 중 상도를 정복심이 만든 것인데, 퇴계가 중도와 하도를 보완한 것이다. 대학도에 나왔던 ‘마음을 바르게 한다.’ 는 것의 성리학적 해설인데 그림도 복잡하고 내용도 꽤 어려운 편이다. 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마음과 본성, 감정이다. 마음이란 인간의 몸을 움직이는 주인이다. 그리고 마음은 본성과 감정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것들을 통제하고 포섭하는 역할도 함께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잘 수양하여 바르게 유지하면 자신의 본성을 알 수 있고, 감정을 조절하여 학문의 방법을 깨닫게 된다. 인간이란 사물과 달리 가장 신령스런 기운을 받고 태어난 존재이기에, 마음을 바르게 하면 자연스럽게 본성을 실현 할 수 있다.
임은 정씨(정복심)가 말하였다. 마음이 성(性)과 정(情)을 통제한다는 것은, 인간이 오행 중에서 빼어난 것을 부여받아서 태어났고, 그 빼어난 것 속에 오성(五性)이 갖추어져 있으며, 그 오성이 움직이는 데서 일곱 가지 정(七情)이 나온다는 말이다. 무릇 성과 정을 통제하는 것은 마음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으면 성이 된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본체다. 또한 마음이 사물과 만나 통하게 되면 정이 되는데. 이것이 바로 마음의 작용이다. 마음이 성을 통제하기 때문에 인 의 예 지를 성이라 하며, 또한 인의의 마음[인의지심(仁義之心)]이라는 말도 있게 된다. 다음이 정을 통제하기 때문에, 불쌍히 여기는 것, 부끄럽게 여기는 것, 사양하는 것,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을 정이라 한다. 마음이 성을 통제하지 않으면 아직 나타나지 않은 마음이 절도에 맞을 수 없게 되어 성이 뚫리기 쉽다. 마음이 정을 통제하지 않으면 절도에 맞는 조화를 이룰 수 없게 되어 정이 방탕해지기 쉽다. 학자들이 이것을 알아서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고 자기의 성을 길러 정을 다스린다면, 학문의 방법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정복심이 쓴 것이다. 여기서 ‘심’은 마음, ‘성’은 본성, ‘정’은 감정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제목에 나타난 ‘심통성정(心統性情)’ 이라는 말은 ‘인간의 마음이 본성과 감정을 통제하고 끌어안는다.’ 는 뜻이다. 즉, 마음속에 본성과 감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마음이 고요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본성이 되고, 마음이 사물과 만나 움직이면 감정이 생긴다. 따라서 본성은 선한 것만을 말하고 감정은 선과 악이 함께 있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인 의 예 지는 본성에 속하고, 측은 수오 사양 시비는 감정에 속한다. 본성은 항상 선하지만, 감정은 잘 조절하면 선하게 되고 조절을 잘못하면 악하게 된다. 이 그림에서는 마음이 움직일 때나 움직이지 않을 때나 모두 마음을 살피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고난과 역경도 극복할 수 있고, 아무리 화가 나도 한 순간만 참으면 욕을 면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음을 수양하고 극복하며, 욕심을 자제하는 것이야말로 성학의 지름길이다.
7. 인설도
인설도(仁設圖)는 성리학의 집대성자인 주자가 글과 그림을 모두 만들었다. 인이란 공자 사상의 핵심으로, 쉽게 말하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는 마음이 인이고, 사람도 이것을 이어받아서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즉 인은 생명을 낳는 소중한 마음이기에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네 가지의 덕이 있는데, 바로 인 의 예 지다. 그 가운데 인은 나머지를 모두 포괄하는 가장 중요한 덕이며, 인의 발현이 곧 사랑의 실현이다. 따라서 인을 깨닫고 잘 보존하면 세상의 모든 선함이 그 속에서 나오게 되고, 인간의 모든 행실도 인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인설도는 인의 본질을 인식하고 인의 실현을 통하여 인간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주자가 말하였다. 인이란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는 마음으로, 사람이 그것을 얻어서 마음으로 삼은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기 전에는 마음에 사덕이 갖추어져 있는데, 인 의 예 지 가운데 오직 인만이 모든 덕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인은 모든 것을 함양하고 육성하여 포괄한다. 이른바 ‘생성하게 하는 본성’ 이라든지 ‘사랑의 이치’가 인의 본체이다. 이미 겉으로 드러났을 때는 사단이 되지만, 사단 중에서 오직 측은지심만이 나머지를 관통한다. 이른바 ‘성의 발현이 정이다’라든가 ‘사랑하는 마음의 발현’이 바로 ‘인의 작용’이다. 전체적으로 말하면 아직 발현되지 않은 것이 본체이고 이미 발현된 것이 작용이다. 부분적으로 말하면, 인은 본체이고 측은지심은 작용이다.
- 여기서 ‘인’이란 인간의 마음인데, 그 인간의 마음은 천지의 마음으로부터 주어졌다고 한다. 천지는 만물을 생성시킨다. 하늘은 만물을 덮어 주고, 땅은 만물을 길러 주는 역할을 하면서 생명을 키운다. 천지가 만물을 생성시키는 마음이 바로 인이다. 그리고 이것을 인간이 받아서 자신의 마음으로 삼았던 것이다. 따라서 인은 ‘생명’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공이란 인을 몸소 체험하여 얻는 방법인데, 마치 “자기의 욕망을 극복하여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을 행하는 것이다.” 라는 말과 같다. 공적이면 어질게 되고, 어질면 남을 사랑하게 된다. 효제(孝悌)는 인의 작용이고, 서(恕)는 인을 베푸는 것이며, 지각은 곧 인을 아는 것이다.
- 인의 실천은 바로 공적인 이익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누구나 함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하고 봉사하며,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내가 좋은 자리에 앉고 싶다면 남에게 그 자리를 먼저 권하는 것이 바로 인의 실현 방법이다. 이것을 서(恕)라고 한다.
8. 심학도
심학도(心學圖)는 정복심이라는 학자가 글과 그림을 모두 만든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글은 성현들이 마음에 대해서 말한 명언을 정복심이 모아서 적은 것이다. 여기서는 인간의 마음을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유학의 관점에서는 인간의 타고난 마음은 선한 마음이므로 이것을 잘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간의 선한 마음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욕심에 물들어 악한 모습을 띠기도 한다. 그러므로 항상 ‘경(敬)’으로 몸과 마음을 잘 통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복심이 말하였다. 갓난아이의 마음은 사람의 욕심에 물들지 않은 양심이요, 인심(人心)은 그 욕심에 눈이 띄인 마음이다. 대인의 마음이란 의리가 모두 갖추어진 본래의 마음이고, 도심(道心)이란 의리를 깨달은 마음이다. 그러나 이것이 두 가지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 형태와 기에서 나오면 모두 인심이 없을 수 없게 되고, 인성(人性)과 천명(天命)에 근원을 두면 도심이 되는 것이다.
- 유학에서는 전통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선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때로는 그 마음이 악한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사악한 욕망에 물들어서 본래의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도 거울과 같다. 처음에는 아주 깨끗하고 맑지만 시간이 흐르고 때가 끼면서 점차 흐려지게 된다. 마치 거울에 얼룩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마음도 항상 닦아 주어야 한다. 그래야 처음의 맑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마음에 때가 끼는 것은 욕심 때문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욕심을 줄이고 없애는 방법을 통해서 깨끗한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요컨대, 공부하는 요체는 오로지 경(敬)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마음이란 한 몸의 주인이고 경이란 또한 한 마음의 주인이다. 배우는 사람들이 ‘마음을 하나로 정하여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않으며, 몸가짐을 가지런하게 하고 마음을 엄숙하게 하고, 마음을 단속하며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학설을 깊이 연구한다면, 공부가 충분하게 되어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 사람의 몸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인데 이 마음의 중심이 바로 ‘경’이다. 따라서 경을 잘 간직하고 유지하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지름길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마음을 하나로 집중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흐트러지기 쉬운 마음을 잘 가다듬고 맑은 상태로 깨어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이것을 실천하면 성인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9. 경재잠도
경재잠도(敬齊箴圖)는 주자가 쓴 ‘경재잠’이라는 글에 왕백이 그림을 그린 것인데, 주자는 이 글을 자신의 서재에 걸어 놓고 항상 경계했다고 한다. 경재잠도는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경(敬)의 세부 항목을 열거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눈의 모습을 존엄하게 하고 손과 발의 모습을 신중하게 하라는 등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살아가면서 겪게 될 많은 일과 만나게 될 많은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러한 모든 것들은 경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움직일 때나 고요하게 있을 때나 항상 경을 간직해야 한다. 만약 경을 잃게 되면 욕심이 생겨서 모든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경재잠도는 제10 숙흥야매잠도와 서로 안과 밖을 이루는 것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는 공부방법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다.
* 주자의 설명
행동을 하고 말을 할 때에는 항상 절도에 맞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주자는 오직을 경을 중심으로 하되, 경은 한 가지만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 무엇을 하던지 예를 들어 공부를 할 때에도 시간이 길어도 집중하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고 그와 반대로 짧은 시간이라도 집중을 한다면 더 큰 효과를 얻는다는 말이다.
10. 숙흥야매잠도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는 진백이 글을 쓰고 퇴계가 그림을 그린 것이다. 퇴계는 경재잠도를 보고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숙흥야매’란 말은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을 잔다는 뜻인데, 그만큼 시간을 아껴서 학문에 전념해야 한다는 말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의복을 단정하게 갖추고 앉아서 책을 읽어야 하며, 사람들과 묻고 답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고치고, 일이 생기면 처리한 다음 다시 마음을 가라앉혀 학문에 집중한다. 간혹 휴식을 취하며 다시 정신을 맑게 하고, 밤이 되면 몸이 피로해 기운이 쇠약해지므로 더욱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밤에 잘 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깊이 잠들어 맑은 기운이 다시 몸속에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숙흥야매잠도에서 말하는 대강의 줄거리다.
1. 숙오(夙悟) - 일찍이 잠에서 깨어난다는 뜻이다. 2. 신흥(晨興) - 새벽에 일어난다는 뜻이다. 3. 독서 - 글을 읽는다는 뜻이다. 4. 응사(應事) - 일에 대응하는 자세 5. 일건(日乾) - 낮이 다할 때까지 부지런하게 노력하라 6. 석척(夕滌;) - 저녁에도 항상 조심하고 정신과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7. 겸숙야(兼夙夜) - 낮부터 밤까지 자신의 정신과 기를 가다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