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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부르는...
절실하고 짙은 생명의 칼라와
그림 밖에 이어진 찬란한 빛의 공간....
마라의 죽음은 공식적 정치적 기록화로서 그려진 것이었다 기록적 성격이 강한 것이다
그림의 배경에 대해서는 거듭 서술하지 않겠지만 그림의 내면을 살펴보면 그 기록적 의
미 외에 많은 회화적표현이 순수한 형태로 함축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화가의 의
도적 표현도 있지만 그 이외에 더 순수한 측면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마라의 친구였던 다비드가 그린 마라는 친구에 대한 정감이라든가 자신의 의지 당 시대
에 대한 자신의 감각 등이 어우러져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배경의 벽을 타고 들어오는 빛
은 찬란하지 않지면 절실한 새 빛을 묘현하고 있다 벽 표면의 작은 길감을 따라 뿌려진
빛은 격정의 시대가 새로운 새벽을 부르고 있음을 그대로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마라의 머리께서 진입하는 빛은 그 몸을 타고 흐르며 작은 탁자와 종이 그리고 천 위로
펼쳐지고 있다 이 빛은 눈부시지 않으면서 충분히 밝고 어둠을 제거하기에 충분한 정도
로 '환한'것이다 사람의 표정을 충분히 살필 수 있고 사물의 세세한 특징을 하나도 놓지
지 않을 만큼 충분하다 아울러 잉크와 편지지가 놓인 나무탁자는 나무의 결과 색감을 생
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 중에 스포트라이트라고 할 것은 오른 손에 든 깃털펜 그 위로
는 작은 나무탁자와 이어진 왼손의 문서이다 빛의 진행과 흐름을 나타내는 빛의 공간 그
덩어리를 입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이 공간에서 그림에서 볼 수 없는 찬
연한 그림 밖의 빛의 존재를 느낄 수 있게된다 화가의 표현은 말릴 수 없구나 하는 감을
절실히 느낀다 또한 정면에 배치한 작은 나무탁자는 '다비드가 그린 마라' 라는 서명이
들어 있는데 나무의 질은 오래 사용한 것이면서 의와로 생생하고 붉은 빛은 완숙한 생명
의 빛으로 이해된다 '마라의 죽음'이지만 죽음의 빛이 전연 없다 다비드는 생명을 그린
것이었다
-하이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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