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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징한 색광으로
시도한 충만한 의지
생각해보면 서법이란 서화일체의 미학적 감각을 기반으로 하며 심의가 하나 되는 일치감 즉 인격적 반영을 그 골자로 한다. 우리는 미적 감각의 공유를 통하여 작가가 인도하는 풍모를 접하게 되며 그로부터 샘솟는 일치감에 의해서 작가의 인격과 조건 없이 만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여산의 작품은 그 원칙들에 매우 잘 정합되고 있어 담담하면서도 친근하고 꾸밈없는 깊은 우러남이 있다. 나아가 그의 회화적 의기에 따라 새롭게 발휘된 멋을 추구하려는 낙천적 태도를 아울러 만나게 된다. 하나의 파격의 아름다움이다.
예술이란 진실의 전달자인 동시에 진실의 증폭자이며 진실을 빛내고 강조하는 자이므로 그 약간의 파격은 전연 거슬릴 것이 없다. 하나의 예술적 여운일 것이다. 예를 들어 주자는 시를 정의하며 ‘말의 끝’(여운)이라고 하였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경지를 운율의 차원에서 구현한 것이 시란 의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법도 역시 시의 정신과 통하는 것일 것이다. 말과 언어 문자로서도 이미 완전하고 충분하다면 시와 그림과 서법이 아마 발달하지 못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서법 혹은 서화란 ‘더없이 절실한 형식으로 수행한 진실의 표현’이다. 이름다움이라기보다는 실실함이며 백색의 교교함보다는 프리즘 같은 색광의 싱싱함이 좋을 것이다. 고대 시절에 무지개를 허탄한 것으로 이해했던 것은 엄숙주의에 빠진 백면서생의 주석적 관습에 불과한 것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여기서 서법 혹은 쓴다는 사실의 궁극의 의미를 자연히 또 생각하게 된다. 문자를 쓴다는 의미의 끝은 결국 그림처럼 그려서 표현한 것으로서 남게 된다는 사실성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자연은 말없이 드러내지만 사람은 말에 익숙하고 행동으로 나타내게 된다. 하지만 마치 글의 행간처럼 진정한 의미는 그 내외에 걸쳐 매우 광범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바로 누천년 비전되어온 서법의 진정한 비밀일 것이다. 우리는 다만 다면에서 사람을 보듯이 작품을 종합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내내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내부에 실제로 담긴 것’일 것이다. 담긴 내용물이란 예를 들어 의식 사상 의리 새로운 발견 등등의 성과다. 비록 그릇이 지극히 아름답다고 하여도 그에 담긴 것이 혼탁하다면 그 미의 정체성은 혼란될 것이다. 예를 들어 문자 자체는 그릇일 뿐이다. 그러나 일정한 문맥을 태워서 문장이 되었을 때 그 글자의 그릇들은 충만히 그 무언가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서법도 그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서법으로 구현되는 그릇은 매우 단순한 선 획에 의존하므로 회화의 선의 다양함과는 구별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서법의 획 역시 그림으로부터 출발하여 요약 귀결된 것이므로 그 선질을 살펴보면 회화의 축약된 양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도 회화 이상의 공간처리나 공간구현이 자유롭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간예술로서 아무런 손색이 없다. 나아가 예를 들어 요약 정리된 선 획을 바탕으로 이에 다양하게 변화를 줄 수 있으며 그 선 획의 내부를 확장 변형하면서 얼마든지 내적 공간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정형 가운데의 자유의 무한함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자는 외적 형식으로 규정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계면선의 다양한 변화는 제한될 수 없다.
계면선의 변화는 외형적 형식에 그치지 않으며 내적 질체를 같이 표현하기 때문에 회화의 선과는 매우 다르다. 내외 일치된 표현의 양식인 셈이다. 화화는 형태를 그리기 위해 폐곡선을 사용하지만 서법의 획은 내외일체의 표현 양식이므로 아무리 개곡선을 사용하여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의외로 서법은 외부세계와 만남에서 개방성을 본질로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개방성이 또한 서법의 자유 회화적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점을 가장 잘 구현한 것이 추사일 것이다. 굵은 선과 가는 선 큰 글자와 작은 글자가 차별 없이 회화적 위상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여산의 서법은 문자의 내적 소박함을 튼튼한 기초로 하여 외적 조화를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 서사의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과 천지의 표정을 아우르고자 하는 심의도 엿보인다. 하나의 열정이기도하고 원대한 원려일 것이다. 아울러 회화적 견지에서 심상을 표현하려는 서화일치의 긴장된 감각도 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큰 기대를 가지게 한다.
서사는 기예를 넘어선 것이며 일상의 삶에서 우러난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일상을 넘어서서 근본에 도달하려는 심의를 가지며 의리나 도리의 경지에서 삶을 설계하려는 포부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일반회화와 크게 다른 점이다. 미국의 미학자들이 1970년대에 이미 동아시아 예술론에서 유교적 논리의 부재를 ‘기이한 현상’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예술정신에 있어 동아시아 인격의 반영은 필수적인 것이므로 그것은 합당한 확론이었다.
여산은 동아시아적 교양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이 작가로서 최대의 장점이다. 우리가 역사라든가 전통의 유산을 중시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 민족의 생명의 요핵이기 때문이며 영원히 전개될 인격적 개성의 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어떤 예술적 발상이 도가적이거나 음양학적인 것일지라도 그 본류를 주목해야 되는 이유는 그런데 있다. 여산의 작품의도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소박함과 겸손함이다. 근후함과 튼튼함이다. 그 위에서 추구하는 멋은 결코 경박하거나 허황한 것이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바로 그것이 충만함의 근원이며 허무함을 부정하는 문화적 어법이다. ‘허허실실’이란 사실은 충만함을 강조한 말이다. 우주 간에 완전한 무의 진공은 없는 것이 아닌가. 동아시아 미학은 있음으로 드러나고 축적으로 빛나며 그 응결된 힘으로 이루어내는 자연생명의 경이이다. 인격의 실체와 그 진전이 모든 학문과 미학의 목표였던 셈이다.
예술과 서법이 역시 꼭 그러하다. 예를 들어 토의 기운이 응축되어 산이 되고 확장되어 땅이 되며 고도로 집적되어 빛이 되고 자연조화의 힘이 되고 성신(聖神)의 궁극을 이룬다. 그 시작은 소박한 흙 알갱이이면 족한 것이다. 악정자가 위정자가 되었을 때 맹자는 매우 기뻐하였다. 제자들이 악정자가 강한 의지나 재주가 부족하다고 여겨서 의아해서 물었더니 맹자는 ‘악정자는 선하다’라고 대답하고 ‘선하면 충분하다’고 하였다. 모든 일에 인격적 바탕이 중요한 것임을 설파한 것이었다. 물론 이 때 선하다는 의미는 ‘진실을 보유한다’는 의미다. 지금의 우리들에게 그와 같은 미학론 학문론이 절실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여산에게는 지금의 아름다움보다 더 이상의 커다란 진전의 여지가 기대된다.
또한 예술은 그 어떤 류의 논리보다도 적극 실체에 접근하려는 리얼리즘의 정신을 기초로 한다. 서법을 구현한다는 자체가 끊임없는 실험이며 실체의 면모를 재발견하려는 노작이며 노력이기도하다. 서사된 작품은 그 결과로서의 미학적 드러남 이전에 자연 우주 인간과 마주하는 전연 새로운 만남과 마주침의 시도를 통해 새로운 실체감을 희구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작업의 디멘션이 다를 뿐이다. 작품 과정이 역시 작품 자체 이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지로 작업한다면 자연히 허심탄회하고 소박하며 겸손하고 조화된 그러나 극히 적극적인 실체를 향한 열정과 탐구가 동반 될 것이다. 서법과 그 서사가 동아시아 정신과 문화를 응축한다는 깊은 사명감이 그런 점에서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시대변화를 모른다면 즉 시대에 역행한다면 새로운 발전은 불가능할 것이므로 시대성이 역시 불가결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막연한 시대의식이나 유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욕구의 집체도 아니다. ‘자아가 수립된 후’의 일이다. 새롭게 일어난 사회 문화의 제 현상을 모두 아울러 전통 속에 수용하고 소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서사에서 첨단의 회화적 경향을 참조하고 수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화면의 충만한 긴장’이라는 근대회화의 특징이라든가 ‘미니멀리즘’ 혹은 단순화의 경향 등은 충분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여산은 이 같은 몇 가지 경향들은 일부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의 여러 시도를 통해 이루어질 그 새로운 개안을 축도한다.
하이안자(夏夷案子)
Haianja D.J 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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