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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note/사색결단

순의 효에 대하여

하이안자 2015. 9. 21. 06:18

순의 효에 대하여


전통적으로 한국은 효의 사회로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효문화가 지배해왔다 최근에는 유교를 버려야한다는 젊은이들의

주장이 드물지않게 나오고 있다 장유유서 권위주의 등이 유교의 산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유교의 산물 중에 가장 대표적

인 것이 효사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효의 문제는 경전의 문제이고 동시에 대표적인 현실의 문제를 상징한다


중국 전통 역사서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상고시대에 순임금에 관한 사실이 전해오고 있다 순의 아버지 고수가 이복동생 상

과 함께 여러차례에 걸쳐 순을 죽이고 재산과 부인을 빼앗으려한 사실이다 순은 이에 굴하지 않고 요임금으로부터 신임을 

받아서 천자의 지위를 선양받아 요순시대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게되었다 역대 모든 사상가들이 요순시대를 이상사회로 보

아왔다


요순시대를 대표하는 사상이 효사상인 셈이다 순은 효의 전범으로 이해되어왔는데 자신을 해치려는 부모에게 도리를 다하

여 관계를 회복하고 대성하였다는 것이다 순은 오십이 넘어서까지 부모로 부터 위혐을 당해왔고 들에나가 하늘을 향해 호곡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효행을 하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인륜파탄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길을

잃지 않았던 것이 중심적 사실이며 요의 두 딸과 결혼을 할 때도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실에서 보면 순은 도리

를 어긴 것이지만 큰 도리에서 보면 인륜지대사인 결혼에 부모에게 알림으로서 결혼파경을 맞지 않으려는 배려였다고 한다

결혼을 못하는 것이 더 큰 불효라는 것이다 공자는 부모에게 어기지 말라는 가르침을 두고 이는 순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

라고 가르치고 있다 순종이 아니라 순리(順理)라는 것인데 구체적으로는 예(禮)를 의미한다 '예로 섬기라는 뜻'이라고 강조

하였다. 


맹자에는 광장이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아버지에게 쫒겨남을 당한 아들을 세상사람들이 불효라고 하였는데 맹자는

그와 변함없이 교유하였다 사람들이 맹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을 때 장자에게는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고 말하고 책선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맹자 이루장구 하) 사심이 없다면 실수는 용서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은 사심의 문제다 사심

을 갖지 않아도 보모자식 관계가 어긋날 수는 있지만 그 어긋남이 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므로 끊임없는 자신의 정화만이 답이

다 비록 인륜이 순리롭지 못하여 괴로울 때라도 사심의 정화로서 정면에서 대응할 수 밖에 없다 아래 주에 보인 왕양명의 방식

대로 잘못된 점을 보지 않으려한다는 것은 일견 옳은 말이지만 지실과 거짓 잘잘못은 감출 수 있거나 외면할 수 있는 것은 아

니다 그것이 보이더라도 간하는 선에 그칠 뿐 그이상의 행동은 할 수 없을 뿐이다 이 역시 사심의 정화만이 답일 것이다 사심이

없는 자세로 슬퍼하고 해결하려하고 하는 일은 비난할 수는 없다 










맹자의 불효요건


孟子曰(맹자왈) 世俗所謂不孝者五(세속소위불효자오)이니 惰其四肢(타기사지)하야 不顧父母之養(불고부모지양) 一不孝也(일불효야) 博奕好飮酒(박혁호음주)하야 不顧父母之養(불고부모지양) 二不孝也(이불효야) 好貨財私妻子(호화재사처자)하야 不顧父母之養(불고부모지양) 三不孝也(삼불효야) 從耳目之欲以爲父母戮(종이목지욕이위부모륙) 四不孝也(사불효야) 好勇鬪狠以危父母(호용투흔이위부모) 五不孝也(오불효야)이니 章子有一於是乎(장자유일어시호) 


광장의 일화


광장은 제나라의 장군으로『戰國策』에 그에 관한 행적이 다음과 같이 나온다. 광장의 어머니는 부정한 일로 하여 남편에게 죽임을 당하고 마판밑에 파묻힌다. 자식된 입장으로서 광장은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용서하고 다른 데에 옮겨다 묻기를 간청했으나 들어주지 않자, 아버지가 마음을 돌리지 않는 이상, 처자의 봉양을 받을 수 없다 하여 처를 내보내고 자식을 자기 앞에 오지 못하게 하였다. 아버지가 마음을 돌리지 않고 그대로 죽자 광장은 처자를 물리친 채 혼자 살았고, 어머니의 주검도 그대로 두었다. 제나라 위왕(威王)은 광장이 秦나라의 공격을 물리치고 돌아오자 그에게 모친의 개장(改葬)을 강권했다. 그러나 광장은 그렇게 하면 죽은 부친을 속이는 것이 되므로 할 수 없다며 그대로 두었다. 한번은 광장이 秦나라와 싸울 때, 어떤 자가 위왕에게 광장이 진나라 군사에게 세 차례나 항복했었다고 참언을 했는데 이때 위왕은 ‘죽은 아비도 속이지 않는데, 어찌 산 임금을 속이겠느냐?’라며 듣지 않았다고 한다. 광장은 이 싸움에서 대승리를 거두었다. - 경연서당의 맹자 중



왕양명의 순임금 평가


언제나 쉽게 화를 내고 다른 사람을 책망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양명]선생께서 그에게 주의를 주면서 말씀하셨다: 학문은 반드시 자기에게 돌이켜야 한다. 만약 부질없이 다른 사람을 책망한다면, 다른 사람이 옳지 않은 것만을 보고 자기의 잘못은 보지 못하게 된다. 만약 자기에게 돌이킬 수 있다면 자기에게 미진한 곳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되니, 어느 겨를에 다른 사람을 책망하겠는가?순임금은 상의 오만함을 변화시킬 수 있었는데, 그 비결은 오직 상의 옳지 않은 점을 보지 않은 데 있었다. 만약 순임금이 그의 간악함을 바로잡으려고만 했다면 상의 옳지 않은 점을 보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상은 오만한 사람이라 반드시 굽히려고 하지 않았을 것인데, 어떻게 그를 감화시킬 수 있었겠는가. (중략) 지금부터 그대는 단지 다른 사람의 시비를 논하려고 하지 말라. 무릇 다른 사람을 책망하고 비판하려고 할 바로 그때에는 그것을 자기의 커다란 사사로움으로 간주해서 극복하여 제거해야 한다. (『전습록』, 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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