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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1947년 3월 13일. 중국에 있던 한국 임시정부의 수장인 김구 씨와 윌버(Wilbur) 장군이 대담을 나누고 있다.” (출처 : NARA) 김구는 공식적으로는 임시정부의 주석이었고, 또 한국에서는 이승만과 함께 우익의 2인자 역을 맡고 있었지만 미군 정보계통에서는 언제나 ‘테러리스트’로 간주되던 요주의 인물이었다. 저 꽉 쥔 왼 주먹을 보라. 웃으면서 한 대 맞으면 얼마나 아픈 줄 맞아본 사람만 안다. 1947년 3월 초반이면 임시정부측이 정식정부로 포고하는 시기와 비슷한 시기였다. 이승만도 미국에 출타 중이었기 때문에 “김구의 위상이 훨씬 나아졌다”고 바라보는 미국인들도 있었다. 게다가 한민당 계열과는 지난 찬반탁 국면 때부터 여러모로 좋지 못했었다. 또 한민당은 말 많은 친일정당 어쩌고 하는 모함에도 빠져있지 않았나? 김성수도 문제가 많고 장택상도 맘에 별로 들지 않는 인물이라는 말이 김구의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던 시점이었다. 게다가 임정 측의 특별행동대(Special Action Group) 대장인 김석황이 이런 저런 인물들을 주변에 모아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문제는 이런 점들을 정보원 등을 통해서 미군정이 거의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정보를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다. 결정적인 시점이 온다면 결국 이런 것들이 모두 증거가 될 것이다.



서북청년단 그리고 암살들 [정지된 역사] 해방 이후 한국에서의 "테러리즘"





......서북청년단은 그 유명한 “경찰의 보조조직” 가운데 하나였다. 미군정이 이렇게 썼으니 그대로 옮기는데, 이들은 “경찰서와 들어가는 입구는 다르지만 사무실은 같은 곳을 쓰기도 했던 조직” 가운데 하나였다. 최근 한 책(‘대한민국 정체성 총서’의 『서북청년회』)에서는 이 집단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해 놓았다. “지적으로 수준이 높은 단체”라거나 “이념과 확고한 행동목표를 가진 단체”였다든지, “경제적 평등주의를 내세웠던 단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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