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파순과 딸들의 유혹 2004년 5월 26일 ▶ 5월 31일 갤러리 라메르 1층 1관 전시실 [약도보기]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94 홍익빌딩 T.02-730-5454 F.02-736-6003 www.gallerylamer.com 공력供力으로 빚는 금화金畵, 그 청정淸淨의 세계 금화(金畵) 작가 이해기 작품의 맥(脈)은 기본적으로 종교(宗敎)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것도 현재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불화(佛畵)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작가 자신이 불자(佛子)이기도 하지만 대학 시절 미술에 대한 감명의 충격을 준 것도 불화였고 불심(佛心)의 연마를 위해 오랜 시간 귀의(歸意)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하기에 그의 작품들은 종교화, 아니 불교회화로서의 색깔이 분명하다. 이해기의 작품은 현실적 문화와의 수평적 구조 속에서 인간중심의 신적(神的) 개념의 접목을 포괄적으로 펼치고 있다. 여느 종교화처럼 그의 작품도 작가의 정신세계와 영혼을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과정이며 ‘나’ 라는 주체를 참다운 모습으로 표현하는 양식이자 그림으로 표현하는 ‘교화(敎化)’와 ‘수련(修練)’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문화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는 개념상 단순한 불화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닌 인간과 종교, 그리고 문화의 확대 사이에서 전통과 현대를 잇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맞다. 내용에 따라 인물의 구도나 크기, 필선의 맛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날 뿐 그의 작품은 염원의 대상으로서의 신적(그러나 인간적인) 인격의 형상화(形象化)라는 기본 개념을 따르며 경전(經典)에서 거론되는 무수한 어휘들과 고찰된 역사에 따른 등장인물들의 인식성을 그려내어 희망의 가치를 획득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는 선현(先賢)의 족적(足跡)을 따름과 행함으로서 비로소 진정한 삶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을 훈화성(訓話性)으로 드러내고 있다. 교조인 석가모니(부처:釋迦牟尼)가 설파(說破)한 교법(敎法)을 종지(宗旨)로 하는 불교(佛敎)만의 평등과 자비, 그리고 인성의 깨달음을 그림이라는 문화적 장르를 통해 자신만의 컬러를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일반적 종교화가 차지하는 의미의 중요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여타 불교회화나 일반 종교적 작품들과 다른 점은 종교적 개념의 확장과 주체적인 시각의 인용을 보다 세련되게 수용함과 동시에 작가 자신의 종교에 관한 내면성을 특유의 공력(工力)으로 해석한다는 차이가 있다. 종교의 근본이 되는 현실성(現實性)과 현존(現存)의 의미를 신앙의 모체화로 타차원의 시공간적 관념으로 바라보는 내면엔 인본주의(人本主義)가 입지해 있으며 금니선화(金泥禪畵)라는 정석을 통해 현대적인 관점의 차별화를 선보인다. 그의 작품을 보면 우선 불교미술의 중흥을 새롭게 점칠 수 있다. 종교와 만나는 방법성과 실현성, 전도성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독창성으로 다듬어 간다. 마치 종교적인 개안(開眼)을 한 것 마냥 꼼꼼한 필력으로 가득한 작품의 핵심은 부처님의 일생을 통한 인간 존엄성의 소중함과 귀중함을 일깨우는 교화(敎化)에 있다. 그것도 담담하고 소박하게 사치와 과장됨이 없는 시각으로 새로운 국내 종교화의 예술세계를 이끌고 있다. 수개월에 걸친 작업 끝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그의 작업방식은 도제를 쌓는 그것과 유사하다.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수작업(手作業)으로 이뤄진 그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채움의 미학에서 시작되어 전체적으로 여백의 미를 살려내는 독특한 기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각적으로 바로 볼 수 없을 정도의 매우 가는 선(line), 선의 조합으로 만들어 내는 면의 치밀한 조우(遭遇), 상상을 초월하는 극한 세밀함은 비상하기까지 한 심적 여운(餘韻)으로, 보는 이들을 감탄에 젖게 한다. 여기에 순금(純金)이라는 금속의 특성마저 물씬 묻어나는 그의 작품은 단순한 수묵(水墨)의 멋 내기나 변용에 불과했던 이전 금화 작품들의 성격을 무색케 한다. 이해기 작품의 주 재료인 순금은 전통성의 고수(固守)에 있다. 즉, 고려시대 사경(寫經)에 사용된 금니선화(金泥禪畵-99.9%의 순금에 민어고기부레풀(魚膠)을 써서 만들어지는 불교미술의 한 회화 양식)라는, 조선후기 이래 오랫동안 잊혀진 기법을 계승하고 있다. 이채롭고 의미 있는 대목이다. 수지타의 우유죽 공양 무릎을 꿇고 앉아 예리한 세필로 이뤄지는 그의 작업은 수개월에 걸쳐야 간신히 태어난다. 화도(畵道)의 자세를 관찰할 때 그는 자신이 지닌 생명의 유한성(有閑性)을 의식하고 끊임없이 영원을 갈망하여 찾아나서는, 가장 근본적이며 실존적인 종교적인 욕구를 작품아래 분출시킨다. 앞으로 100점을 채우는 것이 목표일 정도로 그는 유한성을 무한의 독창적 작업으로 이끌어 간다. 이러한 작업 방식을 두고 스스로 업(業)이라 말하는 그는 형식적으로 석가의 언행을 담은 성전(聖典)이 중시되는 불교회화의 정통성을 배제하지 않지만 나름의 변성 감각을 통해 새로운 도상을 창조해 간다. 그러나 그가 표현하는 부처는 이상화(理想化) 된 부처이거나 절대(絶對), 무한(無限)의 성격을 부여받은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창조자, 정복자와 같은 권위적인 부처라기보다는 살내임 가득한 ‘지혜(智慧)’와 ‘자비(慈悲)’가 살아 있는 부처, 무상(無償)의 애정을 보여주고 있는 부처, 관용(寬容)인 동시에 일체의 평등을 관철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이는 부처를 만날 수 있다. 그의 작품을 유심히 보면 작가는 스스로와 현실을 종교적인 시각에서 시간적 ‘무상(無常)’과, 공간적 ‘연기(緣起)’를 종(縱)과 횡(橫)으로 연결시킴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이자 모든 일에 집착과 구애를 갖지 않는 실천의 반어라는 점에서 순수한 면을 발견하게 된다. 조용하고 편안하며 흔들리지 않는 각성(覺性)을 이상의 경지(境地), 신앙의 한 결정체인 동시에 불교적 사고방식에 기반을 둔 불교미학의 시각적 구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그의 작품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종교화는 거의 불화(佛畵)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시각혁명(視覺革命)으로서 우리나라 미술의 근간을 이루는 극점에 불교미술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 불화의 의미는 많이 퇴색했다. 화법(畵法)상 농채(濃彩)와 담채(淡彩)의 구분이 분명했던 양식은 점차 천편일률적인 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원숙하고 활달하던 묘선(描線)은 경직되거나 굵어지는 경향을 보이며 회화적인 격조를 잃어가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활동하는 작가들이 드물어 영역의 축소현상마저 보이고 있음은 불교미술의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불화 표현의 도식성과 전문성, 제한성은 작가 양산을 가로 막는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적어도 작금의 국내 미술계에서 고려시대 이후 걸작 불화는 보이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따라서 이해기 작품의 귀착점에 관심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할 수 있다. 작가 이해기는 금니선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정립하고 있다. 그가 그린 그림은 불화이지만, 이미 그림을 대함과 동시에 청정(淸淨)의 세계에 다가선다. 어쩌면 이미 부처의 세계마저도 떠나 버린 게 아닌 가 싶을 정도로 공적이다. “산은 산이되 물은 물이고 나무는 나무다”라는 현자의 목소리를 전달 받는 듯하다. 이해기의 출현은 현 미술계에 다양한 의의를 부여한다.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는 불교회화 발전의 견인차 역할은 물론 독창적인 면에서도 종교화의 기틀은 물론 새로운 구성을 기대케 하기 때문이다. 특히 불설(佛說)에 입각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통해 불교교리의 시각적 표현을 시도하는 장엄(莊嚴)한 조형미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무엇 또는 누구를 믿으라고 강조하는 대신 ‘마음을 닦는 종교’라는 점에서 성격을 달리하는 불교에서 그의 종교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