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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엠마오의 그리스도]Supper at Emmaus




    [엠마오의 그리스도]Supper at Emmaus
    1648 Oil on canvas, 42 x 60 cm Musée du Louvre, Paris

    누군가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거기에 경이로움과 신비마저 넘친다고 덧붙이면 지나친 과장이 될까? 검은 몸뚱이에서 하얀 꽃을 터트리는 나무, 마른 섶에 피어나는 생명의 풀, 나이가 들면서 하나씩 겪어 나가는 인생의 체험들은 말로 설명해 내기에는 부족할 만큼 오묘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놀라움들을 체득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살만한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우주는 각각의 질서가 정연하고, 지금의 그 상태가 최상이기에 사람이 보탤 수도, 삘 수도 없는 존엄을 지닌다. 렘브란트 하르멘스존 반 레인(Rembrant Harmenszoon van Rijn, 1606-63년)의 [엠마오의 그리스도]를 보노라면 나는 그 같은 깊이와 엄숙함을 다시 느끼게 된다. 그림 앞에 서면 우선 넓은 공간감이 사람의 마음을 침잠시키는데 그 중앙에는 그리스도의 얼굴이 정면으로 그려져 있다. 그의 눈망울에는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다음에 찾아오는 평온, 모든 것을 이룬 뒤의 안도감, 그리고 무엇이든 용서하고 받아들여 줄 것 같은 사랑이 바다처럼 넘실대고 있다.

    렘브란트는 탁월한 재능과 함께 많은 작품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남아 있는 동판화만도 300여 점이고 드로잉도 1,500여 점에 이른다. 더구나 80여 점의 자화상은 렘브란트가 삶의 고비마다 만난 이런저런 정황과 내면의 정서를 정직하게 담고 있는 수작들이다. 그는 20대에 큰 명성을 얻었으나 그 정점에서 아내를 잃었다. 또한 풍요롭게 살다가 파산하는 쓰라림을 겪었다. 인생의 황혼기에도 가난을 떨쳐 버릴 수 없을 만큼 영고성쇠 (榮枯盛衰)의 아픔을 맛본 그는, 그래서인지 사람의 외양을 통해 그 내면의 깊숙한 곳을 탐구하는 데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돌아온 탕아]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c. 1669 Oil on canvas, 262 x 20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돌아온 탕아] 등의 성서를 주제로 한 그림들도 진솔한 신앙 체험과 삶의 내적 심화에 도달하지 않고는 그릴 수 없는 경지의 작품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비록 그리스도의 얼굴 생김새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지만 렘브란트의 그리스도상이 가장 실제 모습에 가까우리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리스도상은 기독교 미술이 시작된 이래 줄곧 그려진 소재였는데, 초기에는 양을 치는 모습으로, 중세 말에는 우주를 지배하는 제왕의 위엄을 갖춘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에 비해 렘브잔트의 그리스도상은 가장 인간과 가까운신의 모습이었다.

    [엠마오의 그리스도]는 "누가복음" 23장 30-31절을 소재로 한 것으로, 부활절 오후 늦게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 그리스도가 두 제자와 동행하였으나, 제자들은 집에 들어가 그가 빵을 떼어 나눠 줄 때까지도 부활한 그리스도인 줄을 몰랐다. 이그림은 그들이 집에 들어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그리스도가가 빵을 떼어 나누어 주는 장면으로, 이는 바로 최후의 만찬인 동시에 성찬식이며 인류를 삶과 죽음으로 나누는 역사적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자화상]Self-Portrait
    1660 Oil on canvas, 80,5 x 67,5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바로크풍의 화면 상단에 아치형의 열린 공간을 세움으로써 정확히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나머지 제 사람의 시선이 모두 그리스도를 향하도록 하였다. 화면 전체에 안정감과 신비감이 가득한 것은 대칭의 구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연 채광이 아닌, 그리스도로부터 방사되는 빛이 그 강도를 조절하며 빛과 어두움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내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이 그림을 보면서 영국의 웨일스에서 만난 농부를 떠올렸다. 그는 순수하고 겸허한 땅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깊은 밤안개 속에 길을 잃고 헤매다가 새벽에 어느 집의 문을 두드렸을 때, 농부는 기꺼이 문을 열어 주었고 우리가 찾는 먼 목적지까지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말없이 떠났다. 엠마오에서 만난 예수님이 저런 분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매일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빚지고 살면서도 항상 더 많은것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단지 승천의 의미가 아니라 이 그림에서처럼 사람들과 더불어 있는 부활이라는 점에 각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렘브란트는, 그리스도는 우리들 속에 살아 있으며 우리의 모든 일에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던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보듯 연민과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그렸다.

     

    그림을 배우자 
    (
    cafe.daum.net/art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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