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브론치노의 <시간과 사랑의 알레고리>
그림을 선과 면과 색의 형태로 즐길 것인가? 아니면 비유와 상징을 해석하며 숨은 의미를 읽어낼 것인가? 이것은 온전히 보는 이의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철학이 담긴 그림 읽기가 역사가 남겨준 즐거운 놀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그림 속 기호들의 의미를 해석하는 도상학(Iconology) 이야기 첫 번째-브론치노의 <시간과 사랑에 관한 알레고리>부터 즐거운 놀이를 시작한다.
글 | 이진규 |

화폭 안에는 갖가지 표정을 가진 인물들이 창백한 흰색과 우아한 푸른색 등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감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들은 어떤 이유로 한 화가의 화폭 안에서 만났을까?
가장 기본적인 도상학적 기호를 떠올려보자. 정면에 키스를 하고 있는 여성과 미소년은 각기 비너스(아프로디테)와 그의 아들 큐피트(에로스)다. 그 단서는 미소년의 어깨에 달린 날개와 화살통, 그리고 여인의 발 아래에 있는 비둘기이다. 그리스신화에서 사랑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이들 모자가 나왔으니 이 그림의 주제는 단번에 명확해진다. 사랑에 대한 비유, 즉 알레고리인 것이다.

일단 비너스가 양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그녀의 화면상 왼쪽 손에는 화살이, 오른손에는 과일이 들려 있다. 사랑은 과일처럼 달콤하고 향기롭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것. 그림이 전해주는 첫 번째 메시지다. 화면 상단에서 대치하고 있는 두 인물은 각각 망각과 시간이다. 화면 오른쪽의 흰 수염을 기른 인물이 시간이고, 왼쪽의 뒤통수가 없는 인물이 망각을 의미한다. 시간은 어깨 위에 얹은 모래시계에서, 망각은 뒤통수가 없는 얼굴 묘사에서 힌트를 얻어 알 수 있다. 화면 속에서 망각은 사랑의 키스를 나누고 있는 비너스와 큐피트를 향해 서둘러 푸른 장막을 덮으려고 하고, 시간의 신은 이런 망각을 준엄한 표정으로 꾸짖으며 이를 제지하려는 듯 보인다. 망각은 사랑에 빠진 이를 눈 멀게 하려 하지만, 시간의 신은 장막을 거두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색하게 되는 사랑의 허위을 밝히고 싶어하는 것이다. 화면 왼쪽의 절규하는 노파와 오른쪽의 활기에 찬 소년도 대비된다. 노파는 무언가 고통스러운 듯 절규하고 있는데 오른쪽의 소년은 두 손에 쥔 장미꽃을 금방이라도 이들 모자에게 던질 태세다. 장미꽃을 든 소년은 쾌락의 어리석음을 뜻한다. 사랑에는 쾌락의 향기가 있는 반면 상처의 가시가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에 절규하고 있는 노파는 질투이다. 질투는 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가? 그것은 질투가 사랑에 빠진 인간의 영혼을 오랜 시간 동안 갉아먹는다는 의미이다. 쾌락의 장미꽃을 든 소년의 왼쪽에는 아름답지만 오싹한 느낌이 드는 여자의 얼굴이 있다. 그녀의 손에는 벌집(달콤함)이 쥐어져 있다. 그녀의 몸은 소년에 의해 거의 가려져 있는데, 시선을 아래쪽으로 돌려보면? 놀랍게도 그녀의 하반신은 뱀의 몸을 하고 있다. 바로 변덕과 사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비너스의 발치에 있는 가면은 사랑의 불성실함을(가면은 자신을 은폐하기 위한 도구이므로), 큐피트가 무릎을 대고 있는 방석은 사치와 게으름을 뜻한다.

사랑은 달콤하고, 향기롭고, 세상의 모든 시름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듯 보이지만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기며, 진실을 은폐하려 드는 것이니 인간이여, 사랑에 빠지기를 두려워하라. 이것이 매너리즘 시대에 그려진 <시간과 사랑의 알레고리>가 전하는 지적이면서도 우아한 설득이다.

(cafe.daum.net/artdh)

'dialogue > Galle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Fairy Works....  (0) 2004.05.29
실비아 에드워드  (0) 2004.05.26
김춘자-생명의 신비  (0) 2004.05.26
서기문-빛의 화가  (0) 2004.05.26
이명수-신화와 역사  (0) 2004.05.26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