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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글은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임원집담회(2001. 12. 1-2, 광릉세미나하우스)에서 발표하기 위해 제공한 것이다. 원래 이것은 평소 생각하던 내용을 발상 차원의 기록을 해 둔 내용인데, 이번 집담회 발표원고를 준비하던 중 관련이 된다 싶어 뽑은 글이다. 하지만 집담회를 위한 내용으로는 약간 부적절한 점이 있어 실제 구두로 발표한 내용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구두발표에서는 대체로 다음과같은 요지의 발언을 하였다. 

 ‘우리’라는 범위 설정에서 오는 어려움, 혼란스러움 - ‘나’는 한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를 ‘서양’과 대응하는 ‘동양’의 개념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공부를 계속하면서 ‘한국’과 ‘동양’의 관계에 대해서도 갈등하게 되었다. 서구문화의 도전과 지배의 와중에서 ‘동양’과 ‘한국’은 같은 처지인 듯도 하였으나, 중화주의와 대동아공영권의 이념을 배경으로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많은 피해를 당해왔던 우리는 한국을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분리시켜 보고자 하는 강력한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이에 따라 ‘동양’과 ‘한국’은 한편으로는 동질성 내지는 동료라는 개념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적대적 관계로 인식하기도 하는 혼란을 빚어내었다. 한자문화는 이러한 갈등을 느끼게 하는 전형적인 한 영역이다. 한자로 쓰인 전적 속에서 한국적인 전통과 개성을 찾아내어야 한다는 작업에서 이러한 갈등이 첨예하게 느껴진다. 한국의 전통시대에 이루어진 한자문화는 중국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이 긴밀하게 얽혀 있어서 여기에서 한국적인 것만을 떼어낸다는 것이 지난한 일이고, 막연하게 섞어서 이야기하는 것을 한국인들은 달가와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또다른 하나의 갈등은 한국 안에서도 그 문화적 전통과 분위기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나는 경상도에서 성장하면서 경상도사람과 서울 사람, 또 다른 지방 사람들과는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경상도에서는 잘 통하는 이야기가 다른 지방에 가면 잘 통하지 않는 경우를 발견한다. 이러한 차별성을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통일시키고, 그 통일의 표준은 ‘서울’이 되기 마련이다. (최근 한국학술진흥원의 학술지 등급제는 지방의 자기지방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의욕을 빼앗는 매우 효율적인 장치이다. 전국에 통용되는 지식만을 인정한다는 명분으로 지방의 자기 관심을 위축시키고 있다)

 위의 두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우리’의 범위를 확산적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큰 문화권을 보면 솎아내기 작업보다는 포용하기 작업을 잘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 것이 아닌 것을 솎아내어 순수한 우리것만 남기려 하기보다는 밖에서 들어온 것, 들어오는 것도 ‘우리화’해서 우리의 범위를 넓혀나가는 것이 우리문화를 정착시키고 살려나가는 핵심적인 방향이다.

 둘째, 우리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하나로 묶어버림으로써 내적인 다양성을 저해해서는 안된다. 특히, 지역 문화의 개성과 자율성을 살리는 문화정책이 절실하다.

 셋째, ‘우리말’이라는 말이 일종의 민족주의적, 전체주의적 이념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나’를 중요시해야 한다. ‘우리’의 말 이전에 ‘나’의 말을 활용하고 발굴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개인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말로 학문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모이고 모여서 저수지처럼 큰 우리말 세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개인의 자율성과 진실성이 전제될 때 우리라는 집단의 건강한 문화가 가능할 것이다.  

 이상이 구두 발표의 요지이며, 인쇄물로 제공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인문학에서 언어와 표현의 문제

                    - 우리의 말과 우리말, 그리고 나의 말 - 
 

 연구한 결과를 문자언어의 형식으로 나타내고, 문자언어의 형태로 인문학적 지식이 유통되던 시대는 지나갔다. 사실, 인문학이 문자에 갇힌 것이 인문학을 갑갑하게 만든 중요한 요인이기도 했다. 김영민(1996)은 논문중심주의의 글쓰기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잡된 글쓰기’를 주창했지만, 인문학자는 이제 ‘글로만 쓰기’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글쓰기와 말하기도 사실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소위 우리가 성인(聖人)이라 일컫는 분들은 글을 쓴 적이 없다. 성인들이야말로 인문학자 중에서도 최고의 인문학자라 할 수 있을진대, 그들은 진리를 말로만 설하였지 글로 쓰지 않았다. 근자에는 인도의 성자로 추앙받았던 크리슈나무르티도 글쓰기를 거부하였다. 있는 글을 없애 버리거나 읽지 못하게 한 일도 있다. 진시황이 책을 태운 것은 좀 다른 경우라 하더라도, 대혜 종고(大慧 宗杲) 스님은 선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교과서인 ꡔ벽암록(碧岩錄)ꡕ을 불태워 없애버렸으며1), 노자나 장자, 최근의 성철스님도 글을 읽지

 마라고 하였다. 이로 볼 때, 글은 인문학의 유일한 수단이 전혀 아닐 뿐 아니라, 인문학의 본질을 그르치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는 경우까지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인문학은 이제 글쓰기라는 형식 자체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굳이 멀티미디어를 떠드는 시대라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실한 소리[또는 말]와 영상의 존재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소리와 영상은 글보다도 더 원초적이며, 인문학의 본질과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2).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글쓰기 자체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글쓰기의 방식에 관해서도 더 많은 논의와 시도가 필요하다.

 여기서 글쓰기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루기에는 무리가 있다. 본고에서는 글쓰기의 중요한 요소인 언어에 관하여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문화에 있어서 순결의식은 별로 환영할 만한 것이 못된다. 문화는 다양성 속에서 개성이 형성되고 활력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중국사람들은 불교가 인도로부터 들어왔다고 해서 자존심 상해 하는 모습은 별로 없다. 사실, 중화문화라고 했을 때 ‘중화’의 실체는 모호하고 막연하기 짝이 없다. 중화는 주변지역의 문화를 두루 풍부히 받아들여 종합한 데에 그 힘이 있지, 그들만의 순결한 그 무엇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는 중화문화의 핵심인 한자조차도 애당초 동이족이 만든 것이라고 하는 마당에 순수한 그들의 문화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일본사람들은 한자를 그렇게 많이 쓰고, 또 한자 못지 않게 영어단어도 많이 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전통을 잘 전승하고 있다.

 큰 문화권의 특징은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배척하기보다는 이것 저것 다 받아들여서 커다란 저수지나 바다와 같은 모습을 갖는다. 어떤 새로운 것이 들어와도 자신들의 체계 속에 포용해 버린다.

 우리도 문화의 틀을 키울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언어의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원래 우리 것’이라는 순결의식에 강박되지 말고, 세상의 다양한 언어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여건이라면 한자, 일본어, 영어 등을 가림 없이 두루 받아들여 쓸 필요가 있다. ‘한글 전용’은 순결심을 기르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세상은 순결심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풍요로운 문화의 자양분을 두루 흡수하고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폭과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외래 문자, 또는 외래어를 굳이 제한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들 문자와 단어 속에 담긴 그 깊고 넓은 문화의 전통을 일부러 내다버릴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외래 문자나 외래 단어를 두루 쓰되, 우리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체질이 있고 우리의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외국의 단어를 쓰는 데 원음에 충실해야 옳다는 관념이 팽배해 있는 듯하다. 특히 고유명사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일관성이 없고,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것도 많아 걱정이 된다.

 일본에 유학간 한 후배에게서 서신이 왔다. 일본서 공부해 보니 과연 한국하고는 다르더라는 감탄조의 이야기였다. 일본에서는 한문문헌을 읽을 때 중국어 발음으로 먼저 읽고 해석을 한다는 것이었다. 중국어로 읽어보면 그 문장 구조나 뉘앙스가 더 정확하게 잡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중국어 발음으로 읽으면 문장이 끊어지는 부분도 단지 통사론적인 고려 외에도 음운론적인 고려도 함께 되어 더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에서 그들의 철저하고 엄밀한 학문적 자세에 큰 자극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필자는 이러한 내용의 글을 읽고 상당한 의문이 들었다. 원어 발음으로 읽어 보아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면 원효나 지눌의 저술을 읽을 때에는 중국어 발음으로 읽는가, 아니면 한국어 발음으로 읽는가? 그리고, 중국인의 저술이라고 해서 ‘현대’ 중국어로 읽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예컨대, 중국어의 발음은 그 변화가 매우 심해서 당나라 때 한자 발음과 현대 중국의 발음은 크게 다르다. 반면, 당나라 때의 한자 발음이 우리나라로 들어와서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결국, 당나라 한자의 발음은 현대 중국어보다는 오히려 우리나라 현대 한국어의 한자발음과 더 유사하다. 그렇다면, 당나라 한문 문장을 읽어 그 원래의 어조를 느끼고자 한다면 현대 중국어보다는 현대 한국어의 한자발음으로 읽는 것이 오리지널에 더 가깝지 않을까? 낭독을 통해 원래의 분위기를 근접해서 느끼고자 할 경우, 그 글이 쓰여진 시대를 불문하고 ‘현대’ 중국어로 읽는다고 해서 그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발음으로 읽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현대’ 중국어로 변형된 것을 원형인 양 착각하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문장 뿐만 아니라 단어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요즈음 고유명사는 현지의 발음을 살려서 쓰는 것이 잘하는 것인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크게 잘못되었다. 일관성도 없다. ‘북경(北京)’은 ‘빼이찡’이라 하고, ‘모택동(毛澤東)’은 ‘마오쩌뚱’이라 하면서 ‘中國’은 ‘쭝궈어’라 하지 않고 그냥 ‘중국’이라 한다. 일본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동경(東京)’을 굳이 ‘토오쿄오’라 하면서 ‘日本’은 ‘니혼’ 또는 ‘닛뽄’이라 하지 않고 그냥 ‘일본’이라 쓴다. 더구나 ‘도이치런드’를 ‘독일(獨逸)’로 그대로 쓰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닌가? ‘중국’, ‘일본’, ‘독일’을 그들의 발음대로 하지 않고 우리 식대로 하는 것은 우리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된 전통이기 때문에 그것이 습관으로 굳어져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에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요즘 이상하게도 우리가 흔히 쓰고,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써 오던 용어까지 마구 바꾸고 있어서 혼란이 극심하다. ‘공자(孔子)’를 ‘콩쯔’라 읽어야 된다 하고, ‘왕희지(王溊之)’를 ‘왕시즈’로 적어야 한다고 한다. 왕희지에 필적하는 서예가인 顔眞卿은 현대 중국어 발음으로 하면 ‘옌쩐칭’이다. 이것을 원칙으로 삼는다면 서예계에서 고전 중의 고전으로 치는 ‘顔勤禮碑’는 례비’로 읽어야 하는가, 아니면 ‘례비’로 읽어야 하는가? 현대 중국어 발음으로 굳이 적음으로써 일어나는 혼란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삼국지 한 대목을 이야기하려 해도 등장인물 발음을 몰라 말을 못하게 될 지경이다.

 그런데 문제는 ‘孔子’를 당시에 과연 ‘콩쯔’라고 읽었는가 하는 점이다. ‘콩쯔’라는 발음은 ‘현대’ 중국어 발음에 불과하다. 孔子가 살았을 당시의 발음은 오히려 ‘공자’에 가까울 수 있다. 고전 소설이나 판소리, 탈출 대사 등에 나오는 그 숱한 중국인명과 지명을 ‘현대’ 중국어로 발음한다고 해 보자. 참으로 배꼽을 잡고 뒤집어질 일이다.

  ‘황하(黃河)’를 요즘 언론에서는 ‘황허’라고 한다. 그러면 ‘백년하청(百年河淸)’도 ‘백년청’으로 바꾸어야 할 판이다. “낙양성(洛陽城)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이 노래를 우리는 어떻게 부를 것인가? “로양청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 

 근자에 중국에서는 ‘法輪功’이 성행하고 있다. 이를 우리 언론에서는 모두가 ‘파룬궁’이라 표기한다. ‘파룬궁’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다. 그저 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이를 ‘법륜공’이라 하면 ‘법륜’이 불교용어인 점을 감안, 뭔가 불교와 관련이 있다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왜 ‘법륜공’이라 하면 안 되고 ‘파룬궁’이라 해야 하는가? ‘파룬궁’이라 할 때 우리의 주체성이 살아나는가? 혹시 이것이 한자에 대해 전혀 무감각한 미국식 사고 체계에 편입되는 것은 아닌가?

 이미 수백, 수천 년 동안 써 오던 우리 식 발음을 쓰면 쉽고 편리하기 그지 없는데, 왜 굳이 사전 찾아가며 ‘현대’ 중국어로 읽어야 한다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말이란 쉽고 편리한 점과, 오랜 시기 동안 써 왔다는 관습의 측면이 어떤 원론적 당위론보다 더 중요하다. 그리고 언어는 느낌과 뉘앙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에게 ‘동경대학’과 ‘토오쿄오대학’은 전혀 다른 대학이다. ‘모택동’과 ‘마오쩌뚱’도 다른 사람이다. 필자가 성장한 경상남도적 문화 속에서는 ‘모택동’도 아니다. ‘모택도이’이다. 사실, ‘모택도이’ 식의 발음이 사투리 내지는 지방발음이라 하여 배척하고 부정하는 풍토조차도 정당한 것인지 의심이 든다.

 어떤 사람이 교수라는 존재를 비아냥거려 말하기를, ‘교수란 양반들은 화장실 낙서에서 문법 틀린 부분을 바로잡고 있는 따분한 존재’라고 하였다. 화장실 낙서는 어법에 틀린 그것이 제맛인 줄을 모른다고 꼬집은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삶터 속에 배어 있는 우리 방식이 있다. 그런 걸 옹졸한 원칙을 따져 억지로 고치려 해서는 안 된다.

 고유명사는 특히 원음을 밝혀 써야 한다고 하지만, 만약 진정 한문을 외국어로 치부한다면 고유명사만 그리 할 일이 절대 아니다. 모든 보통명사도 현지 발음대로 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쓰는 모든 한자단어를 현대 중국어 발음에 따라 바꾸어 주어야 한다. 왜냐? 언어란 단어와 문장이 별개가 아니고, 고유명사와 일반명사가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문학’도 원래는 한자 용어이니 ‘인문학’이라 할 게 아니라 ‘런원셰’라 하는 것이 더욱 엄밀한 원칙에 부합하는 일이다. 모든 일반 명사까지 다 이렇게 발음하라 하면 복잡하고 어려워서라도 순수 우리말만 쓰게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만 된다면 ‘이취량더(一擧兩得)’가 될 것이다. 그런 엄청난 매력이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우리말의 역사성과 편리성의 때문이다.

 요즘 중국 고유명사를 ‘현대’ 중국어로 표기하는 경향이 거의 일반화 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김용옥의 글(1985)이 큰 계기가 되지 않았는가 한다. 김용옥이 한문을 중국어로 인식하고자 하는 것은 일본 학풍의 무비판적 이식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부인이 중국어 전문가이며, 자신이 중국어에 능통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의미까지 겸해 있다. 작은 원칙만 고집하는 사람은 전국 화장실을 다니며 벽에 적힌 낙서에 교정이나 보게 하는 것이 좋겠다.

 요즘 한문을 외국어로 보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과연 자국어와 외국어의 차이가 무엇일까? 인도는 수백 년 동안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는데, 인도에 있어서 영어는 외국어인가, 자국어인가? 필리핀은 어떠한가? 필리핀인에게 영어는 외국어인가? 우리는 과거 천 수백 년 동안 한문을 국가공용어로 사용해 왔다. 모든 공문서가 한문으로 작성되었고, 대부분의 전적은 한문으로 기록되었다. 우리 역사도 한문으로 쓰였고 철학 논쟁도 한문으로 이루어졌다. 우리 삶의 체험과 느낌도 한문으로 기록되었다. 그렇다면 한문은 외국어인가, 자국어인가? 한문은 중국고전어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구어가 아닌 문어이다. 한문은 문어로서 한자문화권에 포함되는 여러 국가의 공동재산이다. 지금은 한문이 외국어처럼 보이지만 오랜 기간 동안 우리에게는 자국어처럼 쓰였다. 한문은 중국인에게조차 고전어에 불과하다. 그래서 현대 중국인 대부분은 한문을 알지 못한다. 한문은 현대 한국인에게나 현대 중국인에게나 낯설고 어렵기는 한가지이다. 김용옥(1985)은 한문이 외국어임을 역설하고 있지만 그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그는 사서삼경을 중국발음으로 읽어야 한다고 하지만 백화문을 쓰는 현대 중국인의 발음에 우리가 굳이 맞출 필요가 무엇인가?

 근자에 한자를 동아시아의 공동 문어로 되살리자는 견해가 나오고 있어서 주목이 된다. ꡔ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ꡕ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써서 세간에 물의를 일으켰던 김경일(1999: 229)은 바로 이 책에서 ‘한자(漢字)’라는 말 대신에 ‘Asia Sign'이라는 명칭을 쓰자고 제안하면서3), 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이 될 시기를 대비하여 서로의 다른 언어를 굳이 배우지 않고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아시아 사인‘을 배우도록 하자고 역설하였다. 그의 용어를 빌자면 아시아 사인이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문화적 패스포드‘가 될 것이라 하였다.4)

 조동일은 더욱 적극적이고 실천적으로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동아시아의 문화를 전공하는 학자들은 대개 한문에 대한 상당한 소양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이 모여 국제학술회의를 열면 소위 국제어인 영어로 발표하고 토론한다. 미묘하고 심오한 한자 용어를 영어로 번역하여 설명하고 토론하면서 말할 수 없는 불편을 느낀다. 이럴 경우에 한문으로 논문을 발표하면 의사소통이 극히 용이해진다. 그래서 조동일은 실제로 1998년 북경대학에서 열린 제3회 동아비교문화연구국제회의에서 「東亞文化史上‘華‧夷’與‘詩‧歌’之相關」이란 제목의, 한문으로 된 논문을 발표했다.5) 이러한 실천적 노력은 한문의 소유권이 어느 나라에 있는가 하는 편협한 논쟁을 해소하고, 동아시아적 공동문어 전통을 되살리는 산뜻한 제안이라 생각한다. 이 방법의 효율성 문제는 그 다음 또 고민해 나가야야 할 사항이다. 

각설하고, 필자는 ‘우리말’이란 말에서 권위적인 억압같은 것을 함께 느낀다. 우리말을 쓰지 않으면 비난받을 것같고,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이 될 것같다. 민족주의 사관이 식민사관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듯이, ‘우리말’을 강조하는 노력이 ‘외래말’ 추종주의와 결국은 같은 궤도에 있지 않은가 하는 불안감을 불러 일으킨다. 진실한 인문학, 삶에서 출발하여 삶으로 돌아오는 인문학은 오히려 ‘나의 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체험과 사유로부터 우러나오는 나의 언어! 큰 저수지는 작은 시내가 모여 절로 이루어지듯이, 풋풋한 향내나는 ‘우리말’은 수많은 ‘나의 말’이 모여들어 절로 이루어내는 큰 저수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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