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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홍원식 2001/9/3(월) 23:09 (MSIE5.5,Windows98) 211.168.202.140 1024x768 96-274.hwp (12KB, DN:12) | |
유교문화와 자본주의
제목 : 유교문화와 자본주의 -유교자본주의론과 유학부흥설- 연사 : 홍원식(계명대학교 철학과) 일시 : 1996년 장소 : 1. 동아시아 경제발전에 대한 두 가지 해석과 유교자본주의론의 등장 유교자본주의론은 1960, 70년대 이른바 유교문화권이라고 일컫는 동아시아 국가들, 즉 일본을 비롯한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의 비약적인 경제발전으로부터 제기되었다. 세계의 여타 권역과 비교할 때 두드러진 이들 동아시아 지역의 자본주의 경제발전이라는 공통적 현상에 주목한 사회학자와 경제학자들은 그 원인을 다각도로 구명하는 과정에서 결국에는 이 지역의 문화적 공통성에 주목하게 되고, 문화적 요인 중에서도 핵심적인 요소로 유교를 제시함으로써 유교자본주의론이 대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의 두드러진 경제발전 현상에 대한 해명에는 크게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 구조적 해석과 문화적 해석이 그것이다. 구조적 해석은 일종의 정치경제적 접근법으로 경제제도와 정치제도 등의 안정성 내지 자본주의 발전에 적합한 요인들을 제시하고 이것을 동아시아경제발전의 일의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는 입장이다. 반면에 문화적 해석은 구조적 해석에서 이미 제시된 요인들을 낳을 수 있게 하였던 문화적 요소를 이 지역 경제발전의 궁극적이고 일의적인 원인으로 본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문화적 요소란 유교윤리로 대표되는 유교문화이다. 그러나 양자는 모두 다른 한 측면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두 가지 요인 중 어느 것을 이 지역 경제발전의 더욱 중요한 요인으로 보는가 하는 점에서 갈라지며, 이러한 분기는 그들이 지닌 문화에 대한 상이한 가치 평가에 기인한다. 1-1. 구조적 해석 동아시아 경제발전 원인을 해석함에 있어서 정치적 환경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경제정책의 패턴을 중시하는 이른바 구조적 해석의 대표적인 것이 로이 호프하인즈와 캔트 캘더의 공동 저작인 『동아시아의 도적 The Eastasia Edge』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문화적 요소를 통해 '동아시아의 기적'을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구조적인 측면, 즉 정치·경제적인 측면에서 ① 경제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적 발전에 필수적인 안정적인 정치제도, 즉 동아시아 각국에 공통된 일당통치체제, ② 일찍이 시행된 토지 개혁, ③ 관료적 리더쉽의 확립, ④ 민족주의 및 국가안보상의 위기의식, ⑤ 중앙집권적인 행정체제, ⑥ 일본경제의 견인력 등을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일차적인 동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들도 물론 동아시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권위를 강화하고 교육수준을 높이고 근면에 보답을 제공하는 가치의 배경에 문화가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적절한 구조가 전제되지 않으면 그러한 문화적 배경은 바람직한 경제적 성과를 만들어낸 수 없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일차적이며 직접적인 원인은 구조적인 정치제도의 장점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1-2. 문화적 해석 문화적 해석의 입장에 서는 사람들도 구조적 해석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치적 구조의 요소는 심층적인 의미에서 문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궁극적인 요인으로 문화적 동기를 중시한다. 이러한 문화적 해석의 전범은 막스 베버의 이른다 '동기의 방법'이다. 문화적 해석은 바로 이러한 막스 베버의 학술적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단지 다른 점은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의 대체물로서 막스 베버에게서 배척당한 동아시아 권역의 문화적 공통분모인 유가 윤리를 설정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해석의 대표적인 인물이 칸과 버거이다. 칸은 동아시아 사회가 모두 '유가후기문화' 지역에 속하며, 따라서 일본,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가 경제발전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주된 원인은 대다수의 조직 구성원이 유가 전통의 훈도를 받아 일련의 공통적인 특질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버거는 '현대화'의 길은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곧 서양식의 현대화와는 달리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새롭고 특수한 성격을 지니는 현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것은 유교문화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지닌다고 본다. 2. 유교자본주의론의 구분 유교자본주의론은 대체적으로 동아시아의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을 해명함에 있어서 문화적 접근법을 견지하여 유교문화를 이 지역의 문화적 공통인소로 파악하고 그것을 경제발전의 동인으로 제시하는 이론으로 규정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정의를 전제로 할 때 우선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해명에 있어서 문화적 입장에 서는 일군의 학자들(경제학자, 사회학자 등), 이른바 문화론자를 유교자본주의론자의 범위에 넣을 수 있다. 이들의 방법론적 틀은 막스 베버에게서 상속받은 '문화론'이라는 유산이며, 그러한 유산을 재투자한 것에 바로 동아시아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발전 현장이다. 그러나 이들이 유교문화를 강조한 것은 어디까지나 문화론의 견지에서 동아시아의 경제발전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이론적으로 요청한 때문이지, 유학부흥에 대한 자각적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들을 '넓은 의미'의 유교자본주의론자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 기본적으로는 이들과 같은 노선에 서 있으면서도 유가전통의 직접적 담지자이며 동시에 현대신유학의 계승자로서 유학의 부흥이라는 자각적 목적 아래 전통문화(유교를 중심)와 서구사조의 접합점에서 유학의 새로운 출로를 모색하려는 일군의 학자들이 있다. 이들을 '좁은 의미'의 유교자본주의론자라고 말할 수 있다. 주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중국출신 학자들인 성중영, 여영시, 유술선 등이 바로 그들인데, 이들은 현대신유학의 계보에서 보면 현대신유가 제4세대에 분류되는 인물이다. 3. 현대신유학과 유교자본주의론, 유학부흥론 중국은 1840년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배하여 세계자본주의 질서 속에 강제로 편입되면서 이른바 '왜곡된 자본주의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 가운데 중국 지성인들은 민족존망의 위기의식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게 되며, 서양을 배우자는 기난긴 '향서방학습'이 시작된다. 1911년, 천신만고 끝에 이룬 신해혁명이 다시 중국판 앙시아 레짐이라고 할 수 있는 원세개의 황제복벽으로 이어짐으로써 젊은 진보적 지식인들은 마침내 비판의 화살을 전통으로 돌리게 된다. 곧 전통에 대한 철저한 부정을 바탕으로 서양을 철저히 배우자는 '전반서화론'이 제기되면서 서양의 '과학'과 '민주'가 시대정신으로 자리잡게 된다. 한편 전통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진 일군의 지식인들이 반전통의 구호에 맞섬으로써 마침내 1923년 '과학과 현학 논쟁'이 벌어진다. 이후 현학파의 입장이 적극 계승되면서 현대 신유학의 장이 비로소 열리게 된다. 현대신유가들은 중국민족의 진정한 위기는 중화문화의 위기로부터 비롯된다는 인식아래 문화적 위기를 극복함으로써 중국민족의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였다. 그들은 과학파(전반서화파)들이 문화의 시대적 차이에만 주목하는 것과는 달리 문화의 민족성에 주목하면서, 서로 다른 문화의 시대적 차이에만 주목하는 것과는 달리 문화의 민족성에 주목하면서,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은 간단히 대체할 수 없으며 중·서간의 차이를 곧바로 고·금간의 차이로 환원하여 논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갖는다. 그들의 철학적 작업은 전통유학, 특히 양명학을 중심에 두고 당시 비마르크스주의 계열의 서양철학 제조류를 결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도덕적 인본주의를 중국철학의 핵심으로 파악하여 유가적 도덕형이상학의 구축에 주력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 현학파의 양수명, 장군매를 이어 오십력, 풍우란, 모존삼, 당군의 등을 들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대시유학은 제4세대로 오면서 새로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곧 그들 중 일부는 1960, 70년대로 접어들면서 '유교문화권'이라고 일컫는 오아시아의 경제발전에 자못 흥분하면서 시야를 넓혀 갔던 것이다. '좁은 의미'의 유교자본주의론자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은 유학의 재건립을 통한 현대화의 모색이란 점에서 앞선 현대신유가들을 잇고 있지만 차별성도 존재한다. 이전의 현대신유가들이 유학과 서구사조의 이론적 접목을 통해 유학을 재해석해내는 이론영역에 치중했다며, 이들은 이것을 계승하면서도 이론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평을 넓혀서 자본주의 경제현장에 뛰어들어 전통물화로서의 유학을 과감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재해석해내고 그 외연을 확장시켜 적용하고 있다. 또한 앞선 현대새유학들이 현대화라는 강박 속에서 서구사상을 의식하면서 전통의 현대화라는 과제에 매달린 수세적 입장에 서 있었던 반면, 이들은 이제 유교문화권의 '자랑스러운' 경제적 성취에 고무되어 이러한 경제적 성취에 대한 유교의 지분을 당당히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유교부흥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있다. 동아시아 경제발전에 유교는 긍정적 기능을 하였으며, 그런 만큼 유교는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부흥의 당위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어찌보면 이들에게서의 유교자본주의론은 차분한 분석의 결과라기보다는 규교부흥의 당위성 확보를 위한 이론적 전제,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 막스 베버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 : 첨부 발제 자료 참조 두유명은 동아시아 지역의 두드러진 문화적 특징으로 ① 교육의 중시, ② 정부와 기업간의 긴밀한 관계, ③ 가족, 향토, 동문 등을 중심으로 한 대가족 관념, ④ 도덕 윤리적 사회관계, 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 ⑥ 집단의식, ⑦ 저축습관, ⑧ 강한 문화적 동질감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이 모두 유교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말함은 물론이다. 한국의 경제학자인 김일곤은 다음과 같이 유교문화를 현대적으로 발전시킬 것을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① 유교에 대한 본래 존재하였던 역사, 자연, 인간 간의 조화의식을 계승하여 역사와 인간,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간의 조화를 도모하여야 한다. ② 가족집단주의의 질서와 윤리를 계)승하여 기능공동체인 기업이 윤명공동체로까지 인식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③ 덕치주의와 경제윤리를 조화시켜 자신의 관리를 통한 근면, 절약, 청빈, 위민의식 등의 중요한 덕목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④ 유교적 집단주의로부터 가족집단주의의 제도, 민족의식, 발전의지, 공동체 원리, 상호부조의 정신 등을 배워 경제문화에 의한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⑤ 유교의 德本才末論을 계승하여 금욕윤리와 집단윤리를 보존함으로써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도모하고 정신적 기쁨을 얻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도록 해야한다. 김일곤의 주장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유교적인 문화요소로 단순히 해석한 것만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유교문화와 윤리의 현대적 계승을 통한 새로운 경제문화의 수립을 제안한 데 있다. 이것은 유교부흥론의 한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4. 유교자본주의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 ① 유교자본주의론자들은 막스 베버가 유교는 자본주의 발전에 역기능을 했다고 분것에 대해 비판하면서, 현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발전에 순기능을 한 유교적 요소만을 찾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막스 베버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여전히 베버리안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한편 막스 베버는 역사발전의 동인을 문화, 사상적 요소만에서 찾은 것이 아니다. 경제적 요인의 분석이 중요함도 아울러 강조한 역사발전 다인론자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문화일원론적 역사관에 기울어져 있다. 이런 점은 '좁은 의미'의 유교자본주의론자들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데 그들의 참 모습은 중화주의적 신도통론자란 점이다. ② 과연 그들의 말처럼 유교의 제요소가 반드시 자본주의 발전에 순기능만 한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반대자들이 있다. 또 자본주의 발전에 순기능을 하였다고 치적한 유교적 요소가 과연 옳게 해석되었는지도 의문이다. 요소간에 일대일 대응을 시키는 과정에서 해석상의 오류가 얼마든지 빚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동아시아 경제 발전의 특정 요소를 유교의 특정요소와 연결시켜 설명해냈다고 할지라도 그 유교적 요소가 항상, 어떠한 제도와 결합되어도 순기능을 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좀 시니컬한 질문을 던져본다면, 유교가 그렇게도 자본주의 발전에 순기능을 하였다면 왜 유교가 극성하였을 때는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못하였는가? 또 동아시아 각국간에는 역사적 현실적 차별성이 엄존하는데 유교문화권 하나로 묶은 것도 문제이다. * 유교자본주의론과 유교사회주의론 ③ 유교자본주의론자의 주장은 개발독재와 국가지상주의와 군사 파시즘에 대한 정당화의 논리를 담고 있다. 계급화해론의 논리도 담고 있다. 그 속에서는 얼마든지 노사화합과 산업혁평화의 구호를 만들어 낼 수 있다. * 대우가족(윤리적 관계) ④ 최근에 와서 한국의 철하계에서도 유교자분주의와 같은 맥락에서 유학사상의 현대적 요소를 발굴함으로써 유학의 부흥을 시도하려는 학술적인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냉정하게 우리의 위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현재까지 부단히 지속되는 유학의 재평가, 공자의 재평가는 현대 중국의 역사적 현실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어느 정도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국학'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에게는 결코 국학이 될 수 없다. 또한 그들의 집요한 국학 탐구에는 중국역사상 그들이 결코 손에서 놓지 않았던 중화주의에 바탕한 중국중심의 세계관이 여전히 본질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중국은 정치적으로 팽창의 세기를 맞고 이러한 정치적 팽창에 문화적 중화주의가 충실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유교문화권', '후기유가사회', '범화교사회' 주장은 바로 중화논리의 관철을 통한 중국중심적 세계관의 현재적 전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의도를 우리가 간과하고 그들의 뒤를 추종하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착실한 현대판 '소중화론자'가 되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유교(문화)가 동아시아 자본주의 발달에 과연 영향을 미쳤는가? 이것은 우문이다. 유교(문화)가 동아시아 자본주의 발달에 과연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곧 그것은 순기능을 하였는가, 역기능을 하였는가? 이것은 생산적인 논의를 낳지 못할 것이다. 유교자본주의론의 논의의 핵심이 주로 기업의 경영에 맞춰져 있는데, 기업의 '소유' 형태의 관점에서 보면 동아시아,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유교자본주의론은 정형적이다. '재별공화국', '삼성현대공화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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