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처럼
싹틔우지 못한
밀알 하나
한동안
깊은 흙속에 있었다
처음엔 기다림의 일월을
상당한 기간을 지나면서는
무의식의 세월을 보내고
이제 시간의 물가에 섰다
아마 그건 거의
마지막 도전의 비장함을
뜻하는 것이리라
그동안 내내
그저 아름다운 언어가
세상을 가득히 채우는 것만을
아득히 전도체를 통하여
사물의 울림으로만 느끼다가
차거운 흙더미 위로
두터운 각질의 머리를 내밀고는
이 세상에 그래도
포용의 시어들이 아름답게
젊은 문화인들의 입가에
피어나는 모습을
발돋움하여 안개 빛으로 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 고운 목소리를
가슴의 울림으로는
들을 수는 없었다
한 시대의 풍경이란
한 개인의 풍모와 불가분한 것
나는 지금이 다름아닌
다만 <기만의 시대>라는
무서운 정의에 동감하지는 않는다
대단한 <성취의 시대>라는
넘치는 규정에도 공감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은 기다림이 요한다고
조용히 거두어 믿는다
거름이 되고자 하는 말알처럼
왜냐하면 결국은
대지의 큰 힘으로
모든 생명의 바램을
이루게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말알은 그 소박한 결심이
기켜지길 기도하며
발끝은 묻는다
이미 새벽을 가까이 맞이하며
나는 이제 비로소 잠시
무거워 오는 눈을 붙이려 한다
문득 어제 아침 출근길에
길가들 질주하던 차들의 소리
귀에 가득 들려온다
조금만 자고 일어나야지
요즘엔 왠지 시도 때도 없이
상시 졸음이 찾아온다
-하이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