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적 전통의 의미
이미 1990년대 중반으로부터 우리 지성계는 유교적 전통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지성계 뿐 아니라 경
제계에서도 그러하였다. 유교자본주의론이 바로 그것이다. 유교적 삶의 전통이 동아시아의 근대화에 기여하였다는 논의이다
그러나 경제부분에서 동아시아가 크게 성공하고 그것이 유교적 전통에 힘입은 것이라는 분석은 상당한 반론도 있었다 실제
로 동아시아의 근대화가 유교적 삶의 방식에 의해 잘 추진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동아시아에 유교적 전통이 굳건하
게 중심적 삶의이념으로 견지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유교가 남긴 절제와 절약의 정신 혹은 사회-국가이념 같은 것이 유용하
였다는 것일 뿐이다 유교는 사실 근대이후 동아시아에서 철저하게 방치되거나 평가절하되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므로
유교공헌론은 상당히 공허한 것이었다.
근대 한국의 사회 정치 문화 교육의 전 국면에서 유교는 거의 무시되었었다 다만 일상의 삶 속에 뿌리깊게 유지돼온 유교적
문화의 일부만이 많은 사람들에게 애호되었다 효사상의 가치라든가 가족에 대한 정념 가문적 전통에 대한 믿음 사양하고 공
경하는 삶의 자세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그러한 삶의 밑바탕에 있는 가치관 마저 붕괴되는 조짐을 급속하게 나타내고 있다
호주제폐지라든가 양성평등논의 등 절대적 개혁논의 주장 속에서 유교는 단지 타파되어야할 구습으로 매도되었다 그절대
적 주장이란 서구를 모델로 하고 있으므로 분명 비주체적인 것임에도 이 시대의 한 흐름으로까지 고착화라려는 움직임들이
있다 그 문명적 의험성에도불구하고 역사적 성찰을 상실한 운동적 동태는 심각한 우려는 낳고 있는 정도이다
여러 사회 지도층이 앞장서서 유교적 잔재의 청산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유교청산론의 최대의 문제는 그것이 깊
은 성찰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하나의 전통의 가지를 논함에는 자신의 역사에 대한 충분하 배려가 긴요한 것
임에도 이른바 세계사라는 공허한 대세론을 가공하고 그 반대편에 있는 자신의 지적 전통은 무한이 격하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것이 과연 옳은 태도인지 절실히 반추할 때일 것이다
그 이유는 너무도 지명하다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로서 유교의 질실한 가치를 공부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서구에 조기유학하고 하바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반대로 확고하게 자신의 문명과 지
성의 가치를 확신하고 깊이 탐구하는 인재들도 똑같이 이 사회에서 중시되어야 마땅하다 전통에 선 문화가 기초가 되고 그 위
에 새로운 역사를 써나아가야 하는 것이 전체 민족사-세계사의 보편법칙일 것이다 이 원칙이 무시되는 것은 <역사주의>에
기초하여 일어난 서구 근대문명과도 상치되는 것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민족의 개념이 재정립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지만 민족 문화는 근본적인 질전 변전이 없이 전승되어야 하는 것이 신성한 책무일 것이다 바로 우리가 가치로운 개성을 유감
없이 유지하기 위해서다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아직 유교의 본질의 중심을 충분히 구현하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이미 성리학 이래 조선유학이 유
교의 부흥을 추구하였음에도 그 부흥을 불충분하였던 것이며 그 결과가 오늘의 유교침체로 이어졌다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우
리가 유교를 우리의 지성으로 받아들이려하지 않고 단순히 수입된 이념으로 보려는 데에 있다 최근 중국이 유교를 부흥하려는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이를 남의 일로 보려한다거나 자기들 사상이니까 당연하다고 보는 것은 커다란 착오이다 중국의 동북공
정도 문제이지만 유교를 중국의 브랜드로 하려는 그 움직임은 동북공적을 능가하는 역사왜곡일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할 것이
다.
유교는 단순이 중국사상이 아니다 그 출발과 전개 발전의 전 과정에서 중국은 독자적이고 중요한 문화사적 업적을 이룬 것이
사실이지만 이 동아시아 지성의 유일한 생산자는 아니다는 점을 생각할 때다
-하이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