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향 박승무 회고전
대전시립미술관
2006.12.1-1.20
위와 같이 심향 선생의 전시회가
열립니다. 전통화맥을 이은 작가
의 소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
는 좋은 기회입니다...................
심향 박승무전을 개최하며....
심향은 전통화에 따른 산수화 부드럽고 소박한 겨울풍경과 현실감 있는 우리 생활
주변 풍경을 주로 화폭에 담아내면서 한국 최고의 설경작가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이지호 대전시립미술관장)
현대처럼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도 전통과 현대에 대한 담론은 늘 유의미합니다 시
대의 주요 전환기 마다 신.구 개념과 의식변화에 따른 순응과 저항의 과정에서 온
전히 지속되어 온 것과 새롭게 생성되는 가치들이 그러합니다 (윤후영 전시담당)
이상 - <<심향 박승무>> 전시텍스트(2006.11.) 가운데서 -
- ( 아래 그림들은 이번 전시와는 무관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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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향(深香)
박승무(朴勝武) 회고전을 보며....
선생은 근대화단의 거목이었으면서도 충분히 평가되지 못하였었으므로
그동안 우리 화단의 큰 아쉬움이었다. 193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그의 50년 화력은 그대로 우리 근대문화사의 명암을 반영하고 있으면서
예술로서 전통회화의 한계를 넘어 이를 근대화하여 온 하나의 중대한 전
환의 미학을 대변하고 있다. 아울러 주목할 것은 그가 누구보다도 충분히
근대적인 인간이었음에도 전통회화의 어법과 정신을 충실히 담아내면서
문명적 본 궤도를 넘어섬이 없는 충분한 전통적 인간의 면모를 지속하였
다는 특성으로 인하여 민족사의 입장 혹은 동아시아사의 입장에서는 충
분히 역사적 인간이 되고자 하는 분명 선각의 인격체였다는 사실을 지적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근대화 내지 현대화 나아가서는 미래지향성을 필연적으로 담아내야 한다
는 예술 본연의 소명에 충실하였던 그는 그 불가변의 중차대한 예술적 명
제에 대해서도 결코 과욕을 부리거나 조급함은 전연 없었다. 담담함 선비
상을 추구한 것이 그의 예술정신의 바탕이었음을 또한 주목하게 된다. 그
는 말하자면 인격에 기초한 예술을 추구하였고 예술 양식에 의지해 인격
을 넘어서려는 무리함이 없었다.과연 모든 학문이나 예술이 그 스스로 도
를 구현해주는 것은 전연 아닐 것이다. 도는 사람에게 멀리 있지 않지만
사람이 도를 멀리하는 것이라는 우리 전래의 믿음이 바로 그것이며 도 스
스로가 사람을 밝혀주는 것이 아니며 사람이 도를 밝힌다는 것이 곧 그것
일 것이다. 그는 끝내 한 명의 조선 선비이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속
에서 우러나는 자득의 경지를 추구했던 그의 일생은 또한 충분히 예술적
으로 역동적이었다. 말하자면 강산의 초목처럼 살아있는 엄연한 예술혼이
그의 생애를 지배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담담한 구도 속에 숨쉬는 그 생동
하는 내면의 살아 있음의 파동을 그의 화면에서 전율하듯이 느끼게 된다.
해방 후 격동하는 우리 역사의 격랑을 담담히 수용하고 결국 그의 튼튼한
믿음대로 역사는 진전된다는 사실성과 그 실질한 성과들을 유기체와 같은
민감함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그림들은 그대로
우리 근대사의 요약된 한 축도이다.
우리는 생명을 찬미하고 모든 살아있음을 경애하지만 살아있음이란 얼마
나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또한 몸으로 느낀다. 그 고통이란 바로 창조와 아
름다움을 갈구하는 목마름이다. 그의 그림은 바로 그러한 갈구의 표현이
라는 사실은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화면에 지속하여 드러나
는 소년과 노인의 도상은 삶에 대한 그의 애환을 숨김없이 내보인다. 그
림은 그의 일상이며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봄의 꽃이 아름다운 것
이 아니었고 가을 의 찬연함이야말로 비장한 미학의 결정이었다. 지상을
박차고 솟아오른 굴기하는 산봉우리가 아름다운 것이었다. 분란을 고요
히 덮어 순결하고 통일된 설경이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산야에 노니는 금
수와 가지 끝에 파르를 떠는 꽃잎이 미학의 결정이었다. 바위를 끌어안고
사는 난이 삶의 미학이었다. 그는 평생 별로 해보지 못하였지만 유유한 강
물에 언제까지나 일엽편주 띄우고 싶었다. 이 강산을 마음껏 노닐고 싶었
다. 그러나 그는 그의 창문을 활짝 열어둘 수 없었다. 그 스스로 그렇게 받
아들였다. 말하자면 그의 시대를 바라보는 정신이 바로 그랬다. 그는 의외
로 크고 깊은 이상과 야망을 간직하고 있었던 때문일 것이다. 그는 예술의
경지를 넘어서는 은일하여 산 큰 사람이었다. 우리시대 마지막 군자였던
것이다. 심향의 그림들은 아름답고 세련된 것은 아니다. 그런 것들은 그가
추구하던 아름다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약된 정신과 마음껏 펼
쳐진 기상을 드러낸다. 그것은 바로 의로운 자유를 추구하였음을 의미한다
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통필법에 머물러 안주하지 않았고 전통적이어야 할 부분을 벗어나면 극
히 자유로운 필치를 구사하였다. 특히 도처에 수채화 같은 필법을 자유롭
게 구사한 것은 눈에 띄는 부분이다. 다만 산수화 혹은 화조도와 같은 전통
형식을 견지하면서도 그 형식 속에 가능한 한 자유롭게 회화성을 추구하였
다는 사실을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예술도 역시 감춤과 드러
냄일 뿐이다. 그는 무엇을 감추려 하였고 무엇을 드러내려 하였는가를 볼
수 있어야할 것이다, 어찌 드러남이 그의 모든 것일 것인가? 그 는 전통 양
식 속에 스스로의 큰 뜻을 감추어 담았고 호방한 필치 속에 큰 목소리로 말
하기도 하였다. 그 감춤은 자신의 삶의 일반이상이며 의리였으며 목소리는
예술의 새로운 발견이며 기쁨이었다. 그 감춤이란 진부함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단아함과 고요함과 명상과 깊은 응찰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의 드러낸 목소리는 생명의 힘과 희망과 믿음과 자신의 신념을 위한 결
연한 극기의 살아감이었다.
그의 화면은 일견 극히 평범하다. 단순한 산야의 배치가 있고 한적한 공간
에 최소한의 사람들이 있거나 없다. 위대한 자연 속의 존재로서 인간은 내
면화되어 있다. 자연은 그저 인간의 놀이와 걸어감을 허용하는 넉넉한 존
재로 묘사되었다. 이는 전통 회화의 정신 그대로이다. 그 그대로를 그리면
서 그 위에 그는 새로운 착색과 필법을 구사하여 새로운 경지를 제한 없이
그려내었다. 봄의 산등성이가 힘차게 솟아오르는 힘을 그린 자유분방한 필
치는 그 내면의 삶의 순수한 열정을 유감 없이 표출하였다. 가을 산의 엄숙
함과 대비된 강렬한 단풍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함을 드러내는 만큼 가을
색채의 신이함을 한껏 표현하고 있다. 설산의 모습은 그의 예술의 요약이
다. 높이 솟은 설봉들은 그의 높은 이상을 그렸고 역동하는 산의 능선은
당당한 삶의 기상을 담았다. 하늘과 산 지상을 사이에 두고 경계를 그린
선들은 충분히 열려 있어 무한한 가능성으로 충만한 인생의 본질을 제시
하고 있다. 그의 회화는 색채주의도 형상주의도 아니다. 언제나 텍스트적
면모를 간직하고 있다. 그의 그림 텍스트하나를 번역하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난초 가지가
나의 붓 자국 속에
다시 피어남을 보라
마음껏 그린 선은
초목보다 더 강하고
싱싱하다
내 이 한 필치로
살아 왔나니
- Haianja the 1st. Haianist -
<주기>이 평문은 위의 그림의 분위기와 다를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은 주로 이번의 전시 도록을 참고하였기 때문임을 밝
힌다. (위의 그림들은 매장화랑사이트에서 구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