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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ing of life/춘추학사

유교 수행

하이안자 2011. 6. 3. 20:54

글쓴이:haianist

조회:34
작성일:2006-11-26 05:04:05
수정일:2006-11-26 05:07:22

게시물주소: http://confucianismaskoreanhistory.ohpy.com/23221/7

글내용 본문

 

유교적  삶의 양식은

이 시대에 여전히 유효한가?

 

the Confucian Style of Our LIfe

is Available Yet, Now?

 

 

 

 

유교(儒敎)는 하나의 삶의 양식으로서 최대의 가치를 지닌다. 국민의 개별의 삶에 관여하여 그 삶이

가장 의미 있는 것일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 것이 유교 혹은 유학의 본연의 임무이며 존재이유일 것

이다.  물론 오늘의 유학은 이미 2500년  이상의  오랜 기초 교전에 근거하고 있고 2000년 된 유학적

문헌과  텍스트에 영향받았으며  유학의 혁신을 시도했던 새로운 유학운동일 성리학의 출현된 때로

부터 생각해도 거의  10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신유학으로서 성리학이  만개하였던 조선의

유학은 그중 우리들에게  가장  가까운 것이고 또 동아시아 지성의 첨단을 보여주고 있지만  대개는

난해하다고  느끼고  너무 사변적이라고 느끼기 쉽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우리가 유학의 본

모습에 질 접근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유교의  발전 지속 기간이  장구하였다든가  오래  되었다는 객관적  사실은  유학의 가치의  진면목

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기는 하나  그것이  유교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전통성을 이유로 유학

을 낡은 것으로  보려는 경솔한  시각은 우선 가장 잘못된 관점이다. 비역사적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의

조선 신유학이 사단칠정론 인물성동이론 예송논쟁 등 의례적이고 형식적 개념에 몰두하여 현실성을 약화시

켰다는  역사적 추궁도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조선 유학의 논쟁은 허공에 떠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

었으며 그  시대를 살아간 유자들이  자신의 일상을  신유학적으로 긴장되게 유지 수행하고  그 위에 시대적

가치를 세우고자한 문명적  노력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이는 진부한 것이 아니었고 치열한 삶의 기록이었다

고 보아야 하며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진정 역사적인 삶을 추구한 결과였다. 허식과 기만의 역사가 결코 아

니었다는 것이다.                                                                                                                               

 

 

우린  유교의 기초 교전들을 음미해본 경험이 없이는 함부로 유교를 논하거나 혜손해서는 안된다. 더욱이는

유교의  학습적  전수체제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는 현재의사정으로  인해 자의적으로 유교를 해석하고 또

왜곡하는 일이 성행하고 있는 일도 우리들  지성에 도움이  되지 안는다. 시중에  범람하는 유교전적의 해석

물들은 유교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공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게  유교에 대한 다소의 왜곡을 수반한 경우가

적지않다.  현재로서는  우리가 자장 믿을 것은  이미 맹자가 그러하였듯이 시대를 뛰어넘어 그 원래의 모습

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가치있고 의미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역시  유교 기초교전들을  담담히 읽으면

       이를  자신의 경험과 조율하면서 자신의 삶을  정립하려는 노력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된다. 분명  우리들 삶      

에 힘을 주고 뿌리를 무성하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Haianja the 1st. Haia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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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haianist

조회:24
작성일:2006-11-21 02:36:45
수정일:2006-11-21 02:36:45

게시물주소: http://confucianismaskoreanhistory.ohpy.com/23221/6

글내용 본문

 

祝調息元氣

 

 

 

일전에 등산을  다녀온 홍선생님께서  계족산 등산중에 노선생을 보았다는  말을 전해들었습니다

아마 노선생은 몰랐을 것입니다.  난 깜짝 놀랐어요. 등산이 가능하다니  마음 한편 저으기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잘 견디고 있구나....하는  안도감입니다.  사람의 몸은 막강한  회복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사람이 극한의 고통을 견디고  나서야  새로운 깨달음과  얻음을 이룬다는

것은 살아가며 수시 느낄 수 있습니다. 진리가  그 너머 더 멀리에  있겠습니까? 빠른 쾌차를 빌어

요. 건강해진 몸으로 다시 만나서 여러가지 논할 것이 많지않아요?                                           

 

자연과 인문이 모두 상궤를 잃어가고 있는 요즘에 누군들 자신의 심신의 건강을 자신할 수 있겠습

니까? 다만 폭풍 속에 몸을 의지해서도 날리어버리지 않으려는 의지가 소중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해온 오랜 수련과 공부가 노선생께 진정한  힘을 줄 것입니다. 글을 읽고 수행을 하고 이를

자신의 일상 속에서 반추해온 그간의 날들이 이제 노선생  스스로에게 보다 절실하고 실질한 체험

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힘을 내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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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haianist

조회:29
작성일:2006-11-19 17:20:20
수정일:2006-11-19 17:20:20

게시물주소: http://confucianismaskoreanhistory.ohpy.com/23221/5

글내용 본문

수행인에게  보내는 서신

 

 

수행의 길에 대하여

 

 

 

몇년째  학사에서 문헌탐구에 임해주어 찬사를 드립니다 동아시아적 인격을

수행한다는  것은 참으로 보람있는 일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자유롭게 선정

한 글들을 읽어나아가는 것은 역시 새로운 기쁨을  줍니다  눈을 넓히어주고

또 새로운 감각과 지평을 여는데 아주 유용함을 느낍니다  역시 사람은 텍스

트를 통하여 스스로를  절제하고 시려할 수 있다는 생각을 확인하게  되는군

요  노선생의 경우도 진지한 탐구자입니다만  요즘은 지병으로 쉬고 있어 안

타깝습니다                                                                                          

 

요즘 읽고 있는 직론은 다른 도학서보다 매우 구체적이고 논리성을 구비하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이들 문헌들은 다른 일반 문헌

과 같이 자신의 절실한 경험과 결합될 때 그 문헌적 빛을 발할 것이라는 점

은 여러  차례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아울러 그동안 문헌읽기 자체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만 이제부터는 보다 정밀하게  읽는 공부를 깊이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핵심 경전을 읽는 경우에도  우리는 흔히 이를 상투적으로 읽

고 마는  경우가 있고  전문적인  학계의 번역을 살펴보아도 안일한 부분이

많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각 문맥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그 의미의 내포와

외연까지를 세세히 통찰하는 시도가  이제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습

니다 어제는 모임이 있으셨다구요...  토론과 의견의 교환도 중요한 공부의

길일 것입니다. 더욱 매진을 당부드립니다.                                            

 

 

 

春 秋 學 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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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haianist

조회:19
작성일:2006-11-19 07:45:09
수정일:2006-11-19 12:05:07

게시물주소: http://confucianismaskoreanhistory.ohpy.com/23221/4

글내용 본문

儒敎硏究所

 

유교는 종교에 머물 수 없다

 

 

유교의 과거와 미래는 보편한

지성사이며  사상사일 뿐이다

 

 

 

최근에 이르러 종교화합이라는 명분아래 일부 유교인들이 자칭 타칭으로 6대종단의 하나로서 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모습이 자

주국민앞에 비쳐지고 있다. 실제로 유교는 종교학의  대상으로서  다른 종교와 함께  연구되고 있고 체계적인 생활교리를  갖추

고 있으므로 종교적 속성을 엄연히 구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론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교는 다른  종교와  비교되거나 다른 종교와 상대되는 범주에서 충분히 그 본질을 논할 수 없다는 시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유교는 종교적 역할을 함

섭할 수 있으되 종교에 머물 수 없는 삶의 매우 보편적인 방식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그 사실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1)유교는 종교적일 수 있으나 종교는 아니다.

 

2)유교는 신앙적 형태의 종교적 속성으로부터 배태되었지만 이를 넘어서서 보편적 지성으로 승화한 삶의 양식이다.

 

3)유교는 종교적 경건함을 유지하고자 하지만 그 경건함이란 겸손이라는 삶의 원칙을 지향한 것이다.

 

4)유교란 스스로의 배움으로부터 지신을 갱신하는 기제를 가지고 있으며 초월자를 지향하지 않는다.

 

5)유교는 순교를 넘어서는 생명적 결의가 있으나 종교적 신앙심에서가 아니라 바로 자유로운 지적 의지에 따른다

 

6)유교의 본질은 사물에 대한 탐구와 균형된 사려로부터 축적되는 것이며 주어진 지혜에 머무르지 않는다.

 

 

위의 몇가지 예에서 보듯이 유교가 지니고 있는 여러 면모들은 일반적으로는 유교가 오히려 종교적 속성을 강화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물론 유교인 가운데 일부는 실제로  종교지향적인  경우가 적지않다.  바로 그렇게 종교지향화된

경우는 우리는 이를 진정한 유인이라고 부르기 어렵게 된다. 하나의 신흥종교인 것이다.  유교는  결코 무한히 신흥종교의 양산

을 뒷받침하는 존재는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부산물이다.

 

 

 

 

 

春 秋 學 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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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haianist

조회:23
작성일:2006-11-17 01:53:25
수정일:2006-11-28 21:13:20

게시물주소: http://confucianismaskoreanhistory.ohpy.com/23221/3

글내용 본문

直  立

 

 

 

 

 

직립에 대하여

 

 

사람은 호모 에렉투스 이래로 지

구상에 직립함으로서  비로소 인

인간이 되었다 직립은 진화론상

의  경이를  불러왔을 뿐 아니라

창조적 동물로서 인간을 재탄생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서 있음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우린 언제나 서 있으려하되 세상

은 서있음을 영원히 용납하지는

아니한다 사람은 영원하고자 하

고 불후하고자 한다 그러나 단순

한 영생을 바라는 이는 없을  것

이다  의연하게  똑바로 서 있기

를 바란다.............................

 

당당하게  강건하게  서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또 얼

마나  장한  일인지를 느껴가는

것인 인생일 것이다 그 서는 순

간이 무엇을  의미할 지라도 그

스스로  이미 찬연한 것임을 자

주 느낀다. 아마 이미 늙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린  존재하는 자체의  미학을

느낀다  직립한  인간들이 서로

얽히어서  이루어내는   새로운

공간은  더욱 찬연한  것일것이

다   말하자면  곧 그것이 홍익

인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화는  함께 일어섬을  말하고

있다....................................

 

우린 서 있음으로  인해서 비로

소 사람이  된다는 인류학자의

말은  진리일 것이다.............

 

내가 서고 네가 서고 우리가 서

서  세상을 편안히 활보하는 날

을 향해 가는 것이 문명사의 최

종 목표임을  부정할 수 있으랴

 

역사란 단지 희망을 결집 과정

일 것이다  문화란  다만 그 소

망의 아름다움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바램을 위해서

우리들은 아마도 진실을 버려

야 하는지도 모른다 진실은 너

무 삭막하기 때문이다 나와 너

의  진실 나와  세계와의 진실

더구나 자연과 우주와의 진실

은 정말 냉엄하지 않은가......

 

결국은  만들어 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삶은 진실과 사실을 초

월하는 그 어떤 환상적인 것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초

월의  이상이며 예술의 혼이며

문명사의  진정한 내면이리라

 

그것이 바로 문명의 원뜻이다

 

 

 

 

-hian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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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2
글쓴이:haianist

조회:26
작성일:2006-11-11 19:05:47
수정일:2007-02-02 02:54:10

게시물주소: http://confucianismaskoreanhistory.ohpy.com/23221/2

글내용 본문

 

工 夫

 

 

공부하는 삶을 위하여

 

 

 

    - 비우며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

 

 

 

우리는 오랜  믿음이  있다

마음을  비우지  못해 편안

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 우린 과연 비울 수 있는가? -

 

 

 

사실 마음을 비울 수 있고 또 그래야한다고 믿는 것은

불교나  도교의 태도일 것이다. 물론 유교에서도 사심

을 없이 하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가운데에 있는  사사로운 마음 모두를 없이 하라는 뜻

은 아니다. 사사로운 마음이 자신을 지배하게 하지 말

라는  말이기 때문에 자신을 비운다고는 하지 않는다.

 

 

 

 


    *** 마음이 행복한 사람 ***


    (행복의 주인공이 되세요.)


    가난해도 어려워도 마음이 행복한 사람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모든 것을 소유하는 사람입니다.

    남이 보기 부러워 할 정도의 여유있는 사람은
    모든 것이 행복해 보일 듯 하나
    실제로는 마음이 추울지도 모르겠습니다 .

    어려움을 아는 사람은 행복에 조건을 알지만
    모든 것이 갖추어진 사람은만족을 모를 터이니
    마음은 추운 겨울일지도 모르겠네요.

    몸이 추운 것은 옷으로 감쌀 수 있지! 만
    마음이 추운 것은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까요.

    사는 기준이 다 같을 수는 없지요
    행복에 조건이 하나일 수는 없답니다 .

    생긴 모양새가 다르면 성격도 다른 법
    가진 것이 적지만 행복을 아는 당신이면 좋겠습니다 .

    비록 부유하지는 않지만
    남과 비교하지 않는 당신이면 좋겠습니다 .

    그것이 행복에 조건이기 때문이지요
    남과 비교할 때 행복은 멀어집니다 .

    그저 감사한 마음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행복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출저:ezday

 

 

위는 좋은 글 나누기에서 보내온 메일이다. 아름다운 내용을 소개하여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려는 고운 마음이 보낸 것이다.    

 

위와 같이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성찰해 보는 것이 결국 행복에 이르는

길임을 말한다. 그것이 사실 모든 공부의 기본일 것이다.                   

 

요즘은 학문하는 이, 전문가들이 많아졌으나 공부하는 이는 드물다. 오

늘 아침 강의를 하는 중에 김선생이 물었다.                                   

 

학문과 공부는 어떻게 다름니까?!                                                  

                                  

 

學  問                          

工  夫                          

                         

 

나는 다소 궁하지만 나름대로 소신을 말하였다.                              

 

 

요즘  학문이란  살피고 분석하고 새 지식을 발견하는 것이니 이런 학문

은 우리들 삶을 증진하고 편리하게 하고 사람을 밝게 하는 것이다. 그러

나 그에 그친다. 더이상 이를 의미화 하고  내 마음의 일 부분으로 영위

할 때에 공부가 되는 것일 것이라고 말하였다.                                 

 

 

 

- 하이안자 -

 

 

 

春 秋 學 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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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haianist

조회:21
작성일:2006-11-09 04:18:55
수정일:2006-11-21 01:39:26

게시물주소: http://confucianismaskoreanhistory.ohpy.com/23221/1

글내용 본문

       常 軌 論

 

 

 

   우리들의 궤도를 위하여

 

 

        軌              

 

        歷  史

 

 

 

사람들이 요즘 사는 것이 말이 아니라고 한다.

 

 

 

정치 종교 문화 사회에 대한 전방위적 불만이 서민들 사이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많은 이들이 생활은 어렵고 행복하지 못하다고들 한다.

 

 

 

난 인생이 행복을 위한 거라고 생각해보지는 못하였다.

 

단지 보람으로 산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생각이 구식이라서 그런가 하고 생각해볼 때가 많다.

 

 

 

난 인생이 해야할 일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믿고 살았다.

 

그런데 해야할 일이라고 믿은 일을 하기가 어렵다는 모순 속에 어느덧 나는 살고 있었다.

 

 

 

삶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어느덧 엷어져 가고 있다.  나는 나이탓이 아닌가 생각도 해보았다.

 

공자도 만년에는 좌절의 언어를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만인가 보구나!"

 

그 말씀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새로운 레일은 어디에 있는가? 를 묻다가

 

문득 역사가, 역사상의 문화가, 정신이 바로 그 레일이라는 오랜 생각으로

 

돌아오고만다. 우리의 궤도를 잃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내가 이렇게

 

편안하지 못하구나 생각했다.  이 역시 낡은 생각은 아니겠지?

 

 

삶을 레일, 우리들의 궤도를 회복하여 찾는 일이 시급하다.

 

 

 

    春 秋 學 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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