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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루총서에 대해>
요즈음 중국에는 새로 나온 기서(奇書)가 매우 많으며 그중 우리나라로 온 것 역시 많다. 《해국도지(海國圖志)》 수십 책이 있으며, 《완씨전서(阮氏全書)》는 일명 《문선루총서(文選樓叢書)》라고도 하는데, 1백 책이다. 각로(閣老) 완원(阮元)이 지은 것으로 완 원의 자는 백원(伯元)이며 강남(江南) 의징현(儀徵縣) 사람이다. 건륭(乾隆 : 청 고종〈淸高宗〉의 연호)ㆍ가경(嘉慶 : 청 인종〈淸仁宗〉의 연호)ㆍ도광(道光 : 청 선종〈淸宣宗〉의 연호)의 세 조정에서 광동 독무(廣東督撫)로 있다가 태학사(太學士)가 되었다. |
孟子論仁論
孟子之學純於孔子堯舜之道漢唐宋以來儒者無間詈也今七篇之文具在試總而論之孟子於孔子堯舜之道至極推尊反覆論說者仁也元於論語之仁己著論矣由是再論孟子之論仁孟子論仁無一道君治天下之仁士充本心之仁無異也治天下非仁不可故述孔子吝口日道一仁與不仁而已矣又日君不行仁政而富之皆棄於孔子者也又日齊人無以仁義與王口者我非堯舜
인용문은 완원(阮元)의 문선루총서에 실린 '맹자논인론'의 총서다. 논인론의 대요를 밝힌 것으로생각된다
맨먼저 맹자의 학구가 공자와 요순의 도법에 순수하였다는 사실에 대해 역대 유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음을 제시하여
맹자의 인설이 순수한 학설로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것임을 밝히고 있다
맹자는 공자와 요순의 도에 대해 지극히 추존하였고 반복하여 논한 주제가 인(仁) 이었음을 지적하여 맹자 인설의 중요성
을 인증하고자 하였다 맹자는 논어의 인에 근본을 두고 자기의 설을 지었다. 이 때문에 맹자의 논인을 재론하니 맹자의 논
인은 군주가 천하를 다스리는 인과 선비가 본심을 확충하는 인이 한결같아 다름이 없었다. 천하를 다스리는 데에 인이 아
니고는 불가하므로 공자를 서술할 때 말을 아껴 말하기를도는 인과 불인뿐이라고 하였다. 또한 말하기를 군주가 인정을 행
하지 않는데도 부강하게 해준다면 모두 공자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하였으며 또한 말하기를 제나라 사람들이 인과 의로서
왕과 더불어 말하지 않으나 나는 요순이 도가 아니면 왕의 앞에서 말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대개 맹자 당시에는 각국이 전쟁하여 백성을 사랑하지 않았고 오로지 이익으로 천하를 얻고자 하였다.맹자는 이에 반대하
였으니 첫째는 어진 자는 적이 없다는 것이며 둘째는 나라의 군주가 인을 좋아하면 천하무적이 된다고 하였으니 반복해서
백성을 사랑하고 인정을 행하며 이익을 숭상하지 말라는 뜻으로 제나라 양나라의 군주에게 힘쓰게 하였다.
또한 말하기를 3대에 천하를 얻은 것은 인 때문이며 천하를 잃은 것은 불인 때문이다 하였다. 이후에 한비자와 이사의 무
리가 오로지 불인으로 나라를 이롭게 하고자 하여 진이 망하고 돌이키지 못하였다. 맹자가 인을 논한 것은 지극이 선명하
고 지극정성을 다한 것이어서 한 점의 폐단을 남기거나 후대 사람을 오도하지 않았다.한 명의 선비가 마음에 인을 갖추었
다면 그렇게 마음에 갖춘 것은 인의 실마리이다. 이를 확대하고 채워서 행하는 일로 드러날 때 비로소 인이라 할 수 있다
맹자는 비록 측은지심을 인이라고 하였으나 측은지심이라는 것은 인의 실마리이고 신의 실제적인 사실은 아니다. 맹자는
또한 말하기를 인의 실상은 사친이 이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에 이 마음을 채워 사친 하기에 족하고 사해를 보전하기에 족
하다하였다. 예컨대 제나라 왕은 소를 양으로 바꾸었으나 은혜를 미루어 행하지 못하고 효자가 다만 이마에 땀이 났으나
어버이를 덮어드리지 못하며 어린 아이가 갑자기 우물에빠지는 것을 보고서 구원하지 못하면 이는모두 인의 본심을 잃은
것이며 인의 실사로 확충할 수 없었던 것이니 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맹자는 또한 양지와 양능을 말하였는데 양지는 마음의 실마리이며 양능은 실사다. 실사를 버리고 오로지 마음만 말한다면
맹자의 본뜻이 아니다 맹자가 인을 논함이 지극히 뚜렷하고 지극히 성실하여 심상을 거론해 공연히 후세 사람을 미혹시키
지도 않았다.그러나 군주가 천하를 인으로 다스릴 때 한비자의 무리가 어지럽히고 선비가 본심의 인을 확충할 때 불교도가
어지럽히니 한비자의 설은 그 오류가 드러났고 불교의 설은 그 미혹됨이 깊다 그 근원을 찾아보면 모두 노담의 설에서 나
왔으니 한비자가 이에 의지하여 급히 크게 무너뜨리는 데 이르렀고 불교설이 이어져 그 유래를 어둡게 하였으니 논하지 않
을 수 없다. 이에 맹자 각장을종합하여 부류별로 서로 딸리게 하고 차례로 순서를 정하여 趙岐의 맹자장구의 뜻을 모방하고
(조기의 자 臺卿) 각각 안어(按語)를 첨가하였다.
맹자의 인과 공자 요순의 인이 조금도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나누어 본다면 익혀도 자세히 알 수 없을 것이며 합해본
다면 문장의 뜻이 나란히 밝혀져 성현의 대도가 분명해져 마치 일월의 밝음과 같을 것이다 넓기는 마치 강하가 흐르듯 할
것이며 분별됨은 물과 물 같고 견실함은 금석같을 것이다.각박하고 은혜가 적은 선비나 영명(靈明)함이 지나친 선비는
모두 맹자에게 버림을 받았다.
<게시자 안>
- 侯外庐称,阮元“扮演了总结18世纪汉学思潮的角色”,“在汇刻编纂上结束乾嘉汉学的成绩”[3]。
- 胡适说:“阮元虽然自居于新式的经学家,其实他是一个哲学家。”[4]
- 梁啟超推其為「乾嘉學術的護法神」[5]。<유기백과>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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