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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a & culture/문물사상

논어 이단설

하이안자 2004. 7. 25. 19:59
논어 이단설의 이해방향
오픈백과 디렉토리 : 하이안자(hAIANJA)

<<논어>> <위정편>에 공자의 이단설(異端說)이 나타나 있고 상당히 "강한 어조로 이단을 경계"하는 내용으로 읽게된다. 오늘날 종교적 언설에서 각 종파들이 상대종파를 배격하는 용어로 쓰여온 전통이 있었으므로 이 이단설은 잘못 '자신의 학파만을 독존(獨尊)하려는 아집적인 학문 태도로 오해하기도 쉬운 것이 사실이다.

유교가 중국에서는 한(漢) 왕조이후 2000년간 독존되어온 것이 사실이고 남북조(南北朝)시대의 사상석 혼란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다시 성리학이 등장하면서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강해졌고 그 철학적 사유의 측면에서 깊은 발전이 있었다. 즉 중국 중세의 일시적 변동기를 제외하고는 유교사상은 언제나 사상사의 중심에 있었다.

그와 같은 현상은 종교적 독존의 노력으로 환언하면 종교적 열정이나 단순한 사상적 고수(固守)의 결과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유교사상은 그렇게 독존의 노력으로 역사성을 혹은 역사적 생명력을 증강해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말하여 유교는 종교와 같은 열정적 신념으로 신앙의 차원에서 신봉된 것이 아니므로 그 이단설은 역사상 하나의 학문의 방법론 방식이라는 차원에서 이해야한다.

한국은 특히 고대 이래로 의리유학(義理儒學)의 전통이 강하였고 퇴율이후 학설논쟁을 거치면서 바로 이 의리를 중심으로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강렬한 이단배척의 움직임도 있었다.

공자의 이단배척과 조선조의 사문난적론 같은 것은 유학의 궁리실천 즉 학문과 삶의 일치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핵심적 정체성은 유학사상의 역사적 전통성을 수호하려는 사상사적 본질회복운동이라고 정의해야 하겠다.

역사란 삶과 사상과 문명의 궤도와 같다. 우주상에 궤도가 없는 행성의 운행은 정상적인 천문현상에서는 벗어난 것이듯이 인간의 모든 창조의 힘과 그 역동도 일정한 궤도 위에서 특정한 의미를 유지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사상사>라는 분야의 최대의 임무는 바로 그 사상적 궤도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단설이난 사문난적설로 나타난 학문수호운동은 그본질이 역사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결국 그 유교의 역사라는 창조적 현상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것이 문제시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직 국내외를 막론하고 합의된 유학의 본질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천인합일설>이나 <문화주의> <인본주의> <정치주의> <도덕주의> <문학성> 등등의 설명이 유통되고 있다. 그런 설명방식은 그 논설의 목적이나 논의의 차원에 있어 많은 부족함과 시각적 편중성을 내포하고 있어 당위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므로 그보다 더 근원적인 본질론이 요구되는 싯접이다.

유학적 삶이 무엇이냐고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학에서 중요시하는 경험의 범주가 무엇이냐가 선결과제라고 볼 수 았는데 나는 이를 경험의 균형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간경험의 분야는 1)자연 2)인간 3)문물 4)신비현상 등의 4대 부문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인데 유교는 이 4대경험분야를 치우침 없이 받아들임으로서 비로소 그 본질성을 획득하는 사상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용의 원래 의미도 그런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의 이단비판은 결국 중용(中庸)을 강조한 것이라고 결론지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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