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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오후에

 

외츨하여 전주를 찾았다.

 

롯데갤러리를 거쳐 o's 미술관에 들렀다.

 

오후에서 밤까지 건축가 화가 지인들과

 

그림을 논하고  아늑한 정원을 거닐었다.

 

윤화백은 내가  써준 글을 다시 인쇄하여

 

팜플릿과 함께 나누어주고 있었다.

 

오랜만에 흠씬 마셔본 자연의 향취는

 

눈물나도록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거의 갇혀산 세월이 전연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유하는 몸짓]에 대한 평문

 

조화형평의 정취 미세한 격물치지적 성찰

 

-하이안자-

 

 

윤화백의 "사유하는 몸짓"의 그림들은 사실적이면서 무엇보다 편안함을 준다. 화제가 친근하고 칼라적 현란함이 없으며 빛의 번쩍거림도 없다. 더욱이 어떤 다른 세속적 거느림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념적으로 고요하고 미학적으로 태평의 의취를 간직한다. 물론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이 같은 표현의 실체를 구축하게 된 것은 아니다.


윤화백은 어린 시절의 고향의 정취를 그 미학의 근원에서 반추하면서 언덕과 비탈에 노닐던 염소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물론 염소뿐만 아니고 소도 그렇고 자연의 풍경도 그랬다. 그러나 그중 염소에 애착을 느끼게 된 것은 아마 그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의 진지함에 끌렸던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 신비한 고양안면(羔羊眼面)의 표정이 고스란히 현상적 실재성을 확보하면서 새로운 의미로서 되살아날 수 있게 된 것은 적지 않은 미학적 성찰의 결과였다.


그는 처음 동양 사상의 신비함에 이끌려 깊은 사유의 세계로 들어섰다. 심미안의 개척을 위한 고뇌의 표현이었다. 쌓여 나아가는 화력(畵歷)을 추동할 정신적 영적 근원을 갈구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는 결국 카톨릭에 귀의하여 신비체험을 하게 되고 방언과 사유문자를 쓰게 되면서 새로운 경지에 들어서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염소 소 사람의 얼굴 자태 등 영혼을 가진 것들을 떠나지 못한다. 아마 그의 산수 수묵화가 일견 보기에 아무 부담 없고 자연스러우면서 농밀한 필치를 자유롭게 그려내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면 그에 대비된 염소의 세필 속에 긴장된 사실성의 추구는 그의 영적 갈구를 대변한다고 생각된다. 그의 사실표현의 역량의 두께 그만큼 그는 편안한 영혼이고 싶은 것이다.


그는 그 긴장을 염소의 사색적인 눈동자와 표정 속에서 풀어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의 염소는 하나의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그러나 탈언어적인 쏘울(Soul)을 상징하고 있다. 그 사실적 필치의 뒤로 펼쳐진 은은한 공간은 사실 그가 갈구하는 이상의 일반공간이다. 염소가 무중력 공간에 편안히 떠있을 수 있는 것은 필시 인(仁)이거나 의(義) 혹은 신(神)일 공간정신에 대한 갈망과 믿음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여 그는 인간의 고독함을 뼈아프게 자각하고 느끼며 사는 후기산업사회의 고행자의 일원인 셈이다.


화면을 구축하는 어법은 단순 직솔하여 허명한 빛의 공간과 그에 대비되는 절실한 현재적 실재의 존재공간으로 양분된다. 그 공간에 쓰여지는 언어는 철학적 의미의 생생한 개체(個體) 염소이다. 우리는 대개 도의 경지와 경험적 현상을 공존하여 표현하기 극히 어려운 것이다. 거기에는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의 “개체가 보편”이라는 정도의 사색을 최소한의 전제로 한다. 전통산수화에서 외외한 산악과 은은한 들의 사이에 운무가 배치되는 것도 그와 같은 도와 생활의 조화를 추구하는 심의의 표현이었다고 하겠는데 여기 고양(羔羊)의 그림들은 산 물 들 새 꽃 일엽편주.. 등의 탈세속적 기법으로 이상을 표현하던 표현관습을 보다 더 삶의 지근 가까운 곳으로 확대하여 일상의 친근하기 그지없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충분히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물론 화가 자신의 이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므로 그에 내포된 미학적 문제는 염소라는 몸으로 그려진 주요 표현 항목과 그 성찰 근거 이유를 생각해보는 일에 있을 것이다. 사실로 절감하는 실재성과 성정적 편안함이 그 이상의 본질의 모습이라고 그는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뿔, 눈의 포용적 시선과 가는 털, 많이 닳은 앞 무릎과 길쭉한 코, 의지와 미소를 아울러 머금은 입술 그리고 상하좌우로 변화하는 목과 고개의 자태 등이 바로 실재를 추구하는 언어성을 획득한 요목이다.


공자는 인생의 도를 물에 비유하였고 맹자는 인간의 정기를 우산(牛山)의 나무에 비유하였다. 또한 공자는 제자 자공을 제기(祭器)에 비유하였었다. 그러한 비유에 만족할 수 없었던 노자는 “도라고 정의된 도란 도가 아니며” “이름 지워진 이름은 이름이 아니다”라고 하여 불만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노자마저도 그러한 “정의를 경험적으로 시도하였음”을 하나의 역설로서 나타내고 있다. 노자의 “반표현주의적 언설”은 사실은 표현된 사물의 내면을 깊이 응찰하라는 가르침이었을 뿐이다. 자신의 존재를 타의 존재와 나란히 사유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위대한 일일 것이다. 이를 공(公)이라고 할 수 있고 인(仁)이라고 할 수 있고 도(道)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의 서심(恕心)이란 그러한 정신을 친근한 언어로 깨우친 것일 것이다.


그와 같은 사유의 정신은 그러나 단순한 직관이나 비유로서 시종일관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엄정한 사물의 이해를 대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이를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일환이라고 말해야 하겠다. 동아시아적 선(善)은 미학과 도를 아우르는 것이며 절실한 경험적 성찰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염소의 뿔 결과 가는 양털 올을 생생하고 치밀하게 묘사하는 것은 그 묘사의 절절한 만큼 엄연하고 실질한 대상의 탐구를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한 치열한 대상의 탐구묘사의 성과로서 부각되는 그 은은하고 태평한 양의 미소가 인간의 미소와 통하게 된다.


양의 자세가 인간의 자세로 통달하면서 장대한 통일의 한 가능 공간이 열리게 된다. 적어도 열 가지 이상의 다양한 자세와 포션으로 그려진 양의 자태와 표정은 이미 “기린의 발‘처럼 성공적으로 인간화하고 나아가 음영의 효과를 통하여 일반 공간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양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앞에 배치한 그림들은 얼굴에 스치는 운무공간을 통하여 양의 분위기를 일반화한 의도를 내포하고 반면, 화면 가득히 선묘로 채운 얼굴은 그야말로 미세한 격물치지의 요구를 말하고 있다. 작가가 특히 아마도 염소의 눈을 가장 정성을 들여 묘사하고 있는 사실도 그런 의미에서 주목된다. 그의 눈에는 거의 빠짐없이 속눈썹을 은미하게 그려 넣었는데 이는 천자의 면류관에 12줄의 앞 드림(旒)을 달아서 보는 것을 성찰할 것이나, 귀에 귀막이 옥(充耳)을 늘어뜨려 듣는 것을 성찰하라는 의미를 나타낸 것과 통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동아시아 정신의 근저로서 극기(克己)나 격물치지(格物致知)를 강조하는 것과 같은 의미 맥락을 이루는 것일 것이다.


그의 화제는 전통적 칭호로는 고양(羔羊)이었는데 시경에 등장하는 고양은  사람의 삶에 물질적으로 편안함을 주는 것이요 아름다운 것이었다.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그 무엇이었다. 역사상 한국과 중국의 역대 군주들은 현명한 나라의 원로대신들에게 염소를 하사하여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였다.


    고양의 가죽에

    하얀 실 다섯 타래로 꾸몄도다

    공실에서 천천히 퇴근하여 식사하는 이여


    고양의 가죽에 흰 실 다섯 솔기 보이네

    천천히 공실에서 퇴근하여 식사하는 이여


    고양의 솔기에

    흰실로 다섯 묶음 장식하였네

    의젓하게 공실에서 퇴근하여 식사하는 이여

         <고양(詩經 國風 召南 羔羊)>


염소는 귀족들의 값비싼 옷감이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염소는 제사에 쓰이는 오랜 중요한 제물이었다. 전통시대의 염소는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의 희생물이었으며 인간의 삶을 풍요하게 해주는 은혜로운 것이었으나 그 스스로가 개성과 사유의 주체로서는 주목되지 못하였었다. 그러나 고대인들은 희생이나 가축의 신비함 영능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그 은혜로움의 근원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시경의 “기린의 발(麟之趾)”을 보면


    기린의 발이여

    무던하신 공자(公子)는

    오오 기린이로다


    기린의 이마여

    무던한 공성(公姓)은

    오호라 기린이로다


    기린의 뿔이여

    무던하신 공족(公族)은

    아아 기린이로다

        <인지지(詩經 國風 周南 麟之趾)>


서민의 수호자로서 공실과 공족의 존재를 기린(麒麟)이라는 이상의 동물로 이상화하고 있다. 이는 가죽이나 동물을 단순히 이용대상으로 받아들이는 일상을 넘어서서 그 신비하고 독자적 보편 의미를 관조한 결과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기린은 발로 산 것을 밟지 않으며 이마로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 뿔은 부드러워 위험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시경의 기린은 바로 특정한 동물을 표현하였다기보다는 영물로서 가축이나 동물을 응찰한 결과를 담은 것이므로 실제로 기린이란 양일 수 있고 소일 수 있고 말일 수 있다. 기린의 형상이 모양은 사슴 같고 이마는 이리, 꼬리는 소, 발굽은 말 같고 머리에 뿔 하나가 나있다는 식의 설명이 그를 증거하고 있다. 기린이 성군의 시대를 상징한다는 것은 이상의 상징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윤화백의 그림은 말하자면 의념적으로는 일종의 기린을 그린 것이다. 염소의 기린적 속성을 그렸다고 말할 수 있겠다.  기린적 속성이란 "기린의 발"에서 보듯이 인간과 동물이 구분되지 않고 동질적인 차원에서 사유하는 높은 관조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시에서 기린이 공자(公子)라고 말하고 있듯이 윤화백은 염소를 통해 인간을 그리고 자신의 꿈을 그리고 있는 것일 것이다. 우리가 그의 그림에서 넉넉한 깊이와 미소를 느끼며 우아한 인간의 자태를 접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멕시코의 유명한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상처입은 사슴(The Little Deer)에서 보듯이 화살 맞은 사슴의 몸에 자신을 직접 합체한 충격적인 표현이나, 해부학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그리려한 그림과는 다른 묘한 대조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의 회화는 자아의 절실함을 승화하여 보다 보편적인 일반 이상을 그리고 있고 더욱 깊숙이 은유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단순히 동물화가라거나 인물화가, 염소의 화가라기보다는 오히려 기린적 화가인 셈이다.

 

 

윤여환 충남대 예술대학 교수(동양화) 홈페이지에서

   http://www.cnu.ac.kr/~yhyun/sayumomcr.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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