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의리의 기원과 전망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유교연구소 유 덕 조

 

 

 

 

 

 

 

 

 

 

 

 

 

 

 

 

 

 

 

 

 

 

 

 

 

 

 

 

 

 

 

 

 

 

 

 

 

 

 

 

 

 

 

 

 

의리란 진실을 배우는 삶이다

-Haianja the haianist-

의리의 과거와 현재

 

 

 

 

 

 

 

 

 

 

목 차

 

서문

술회

배경

여설

 

제1장 의리 연의

1.의리란 무엇인가

2.의리의 새로운 모색

3.인과 의리의 범주

4.인의 병칭의 의미

제2장 춘추좌전의 의리

제1편:의리의 일어남

제2편:의리의 전개

제3편:의리의 전성

제4편:의리의 변전

제3장 주역의 의리

제1편 주역상경

제2편 주역하경

제4장 공부수첩

1.책상의 주변

2.최근의 주요메모

에필로그

 

 

 

 

 

 

 

 

 

 

 

 

 

  서 문

 

 

이 글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유교정신의 에센스를 담담히 성찰하기 위한 것이다. 유교는 내면적으로 면면히 이어와 오늘의 삶을 지배하는 가장 유력한 현실적 사상의 실체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유교정신이 우리의 정신임을 적극 받아들이고 확신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 본질이 상당정도 곡해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교의 본령은 형식에 주로 있지 아니하며 진리와 진실에 접근하는 일반 인생의 방식(General Style of Life )으로서 그 길에서 얻은 체험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 보편적 삶의 실체일 뿐이다. 예컨대 예(禮)란 형신(形身)과 사사로움의 질곡을 벗어나려는 적극적이고 역설적인 지혜의 방책이다. 형식문제에 창조적으로 순응함으로써 극복하려는 수신의 노력이다.

고전의 논리와 어법 그리고 명분과 의리의 실제 모습을, 처음 발생했던 당시대 현장에서 생생히 살펴봄으로써 자연히 유교적 정신의 실체를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서두에 약간의 논설을 전개하고, 춘추 좌전과 주역의 내용을 소개하고 서술하여, 추체험이 가능한 설명을 가함으로써 이해에 도움이 되고자 하였다.

이 책에서 도표와 그림을 다수 넣었다. 인터넷 상의 검색을 통해 많은 자료를 사용하였다. 그림을 올려주신 네티즌들에게 아울러 특별한 사의를 표하고자 한다. 일일이 감사를 올리지 못한 점을 양해해주실 것을 정중히 청한다.(그림-주석표기하였음)

 

 

 

 

 

 

“이 글을 이 땅의 소박한 생활인들에게 바친다.”

 

초야에 있는 이들 가운데 보석처럼 빛나는 고전적 삶을 사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일반생활인이다. 큰 성취를 이룬 분들은 더욱

아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경서 한 두 권에 오로지 의지

해 배움의 삶을 살아온 분들이다.

그들이 진정 유자들이다.

 

 

 

 

 

 

 

 

 

 

 몇 가지 술회

 

 

사람은 삶이란 내내 배우며 사는 것임을 느낀다. 100년을 살아 100번을 고칠 수 있다면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일 것이다. 나는 몇 년 전에 둘째 외숙으로부터 가정사에 대해 개인적으로 상당히 이견을 들은 적이 있었다. 수신제가의 어려움은 참으로 큰 것이지만 이 모든 가정적 어려움은 결국 나의 부족함에 기인하였으므로 무슨 말씀인들 달게 받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외숙은 나에게“나도 학자다.”라는 반어법적 명구를 나에게 남기셨다. 그는 소싯적에 아버님에게 명심보감을 배웠고 지금 70이 넘은 연세에도 이를 애독하시고 또 생활 속에 대화로 풀어 쓰시는 분이다. 나는 그 말에 문득 크게 공감했다. 그 같은 자의식이 바로 유자의 삶 그것이기 때문이다.

한편“나도 학자다“란 표현은 아마도 요즘 말로 치면 반어법으로 ”네가 학자냐“ 라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정말 외숙의 지적처럼 나의 공부는 지지부진하였다. 돌이켜보면 평생 나의 공부가 아직 크게 미숙한 것이 사실이고 이룬 것이 없으므로 ‘네가 학자냐’라는 뜻은 나에게 화살처럼 와 닿는 면이 있었다. 물론 나는 아직 감히 학자라고 자처하지 못한다.

실로 생활로 공부 하시는 분들이 진정한 학자이며 유자임을 느낀다. 공자가 ”믿음을 가지고 옛 공부를 좋아하였다”하였는데 아마도 믿음이 없다면 공부란 아예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생활유자들이야말로 누구보다 배움의 삶을 확신하는 분들이므로 그 믿음의 면에서는 여느 학자가 따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아직 전통적 의미에서“나는 학자다”라고 할 수가 없다. 아직은 분명 사리분별 못하는 백면서생이다. 사실 절실한 실감이 부족한 공부나 믿음이란 역시 허무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연세가 80이 되시는 서광호란 분이 유교연구소로 나를 찾아오셨다. 자신은 평생을 명심보감과 함께 사셨다고 하였다. 시골에서 맨주먹으로 대전에 와서 안 해본 일이 없이 살면서도 명심보감 한 권을 애독하며 의지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8순을 맞으며 잠시 배운 붓글씨 솜씨로 명심보감을 번역 정서하여 이를 책으로 묶어 후손들에게 남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여러 차례 교정을 보아 드리면서 몇 번이고 감탄하였다. 역시 진정한 오늘의 유생의 한분인 것이다. 그들은 바른 독법을 익힐 여유는 없었다. 주경야독하면서 나름대로 그 글들을 그대로 생활하였던 것이다. 나는 문득 커다란 책임감을 느꼈다. 평생 원 뜻을 찾고자 읽는데 주로 몰두해온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바른 독법의 길을 보여드리면 더 나은 배움의 삶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40여년 경전 공부는 오로지 바르게 읽는 노력이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사서오경과 일부 역사서를 제대로 읽으려는 노력으로 보냈으니 어찌 보면 깊이가 부족하고 허무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르게 읽지 않으면 원 뜻을 바르게 알 수 없으므로 바르게 읽는 것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읽은 것을 생활로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배움을 업으로 삼고 있다면 당연히 유학의 의미를 깊이 있게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제 와서야 깊이를 따라 읽을 준비가 겨우 된 것이다. ‘15세에 경전공부를 시작하여 60세가 넘어서야 나는 논어 한권을 읽었다고 할 수 있다’고 하였던 한나라 훈고학자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나는 훈고학자들의 깊은 근고의 노력에 비할 수는 없지만 나 역시 18세에 읽기 시작하여 60이 넘은 때에 이르러서야 겨우 읽는 방법을 조금 알았으니 그 분 들과 유사한 삶을 살기는 살았다. 그러나 고전학자들의 굳은 믿음의 경지에야 어찌 따르랴.

나는 깨달음과 확신은 약하고 더뎠으니 분명 노둔한 사람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부는 영민함으로 되는 것은 아니므로 스스로 위로하며 이 글을 쓴다. 나의 경전독습의 경험과 그 결과들은 담담히 적고 싶어서이다. 나는 이제 스스로가 공부하는 삶을 진정으로 확신할 수 있는지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하는 처지에 어느덧 서 있음을 알았다.

끝으로 나는 평생을 죄의식으로 살아왔다. 원죄와 같은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로 인해서 상시 느끼고 생각돼온 죄의식이다. 아버님을 일찍 여읜 죄의식 불효하였다는 죄의식 무능한 생활인이라는 죄의식 크고 작았던 많은 잘못과 실수 등이 반복적으로 잊혀 지지 않는 삶이었다. 그것은 질곡이었고 나를 극도로 억압하는 그 무엇이었다. 그러나 역시 최근에 나는 모든 선악은 나에게 달렸다는 명제를 생각했다. 나의 내부에서 그 여부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노력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다. 아마도 그 판단을 내리기 위해 내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와 가족 사회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삶의 도리를 다하려는 의식도 아마 살아가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적어도 이제는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소학에 ‘편안한 삶에 안주하고자 하면서도 의를 향해 변신해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나는 ‘불안한 삶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의를 향해 갈 수 있는가,’를 자신에게 준엄히 묻고 싶다.

 

 

 

 

 

 

배경

 

 

본서의 집필 동기나 기획단계에서 유념한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물론 이 밖에도 유학의 역사성이라든가 문화 문명적 특성에 대한 심찰도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검토하였지만 가장 공통되고 중심이 되는 항목들만 요약해 예시한다. 이 글들은 매순간 유교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놓지 않았다. 필자가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 이 순간 까지 지니고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처음 유학에 대한 확신으로 시작하여 배움의 중간에 다소 회의가 있은 적도 있었지만 믿음을 버린 적은 없었다. 나의 이 믿음이 과연 유의미한 것인지를 최종적으로 밝힐 수 있다면 최상의 기쁨일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아마 후회는 없을 것 같다. 유교는 결과적으로 나의 삶을 지탱해준 하나의 유일한 동력이었으며 이유였기 때문일 것이다.

 

1.한국유학에 대한 책을 쓴다는 것은 한국유학의 현 위상을 직시하고 유학의 미래를 진단하고 오늘에 이루어져야할 사상적 당위의 전형을 절실하게 모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아니 될 것이다.

 

2.한국 유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확신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은 그 최대의 관건이 될 것이다.

 

3.유학은 원래 생활의 공부이며 삶의 양식으로서 출발한 것이므로 일반적으로 매우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내용이 되지 않을 수 없다.

 

4.유학은 진실에 접근하는 절실한 길이다. 철학이나 과학 종교 문학 인문학을 넘어서서 전인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진실을 호흡하는 유일한 양식이므로 진실과 일치함으로써 철학과 학문과 예술과 종교의 지평을 넓고 넓게 열어주어야 하는 심오한 사명도 있다. 유교는 삶의 진상에 대한 전인적 접근의 과정이므로 모든 사상과 문화의 추향과 일치하고자 한다.

 

5. 전통적으로 유학은 윤리학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외국학자들의 견해였다. 종교라고 규정하기도 하였다. 문학적 비유에 불과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었다. 그러나 유학은 진실의 학문임을 재확인 할 수 있어야 한다. 우주의 실체와 인간 생명의 진상을 사색하고 탐구하는 것이 그 본령이었다. 유학은 총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진실을 느끼고 확인 확증하고 실행하고 응용 창조하는 다차원의 공부다. 이점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예를 들어 논어 학이편

 

1)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2)汎愛衆而親仁 3)行有餘力則以學文

에서보면 이를

 

“1)제자들이 집안에 들어 효도하고 나가서 공경하면서 삼가 생각하고 신실하게 느끼며 2)널리 대중을 사랑하여 어진 마음을 가까이 접하여 3)행실 가운데서 배움의 공력이 넉넉해진다면 이것이 바로 배움의 아름다움이리라.” 라고 읽어야 할 것이다. 이 구절은 오직 윤리적으로 읽어서는 아니 되며 논어의 대부분의 글들이 다 그러하다. ‘학문(學文)’ ‘글을 배운다고 읽으면, 이전의 내용이 모두 학문(學文)인데 다시 학문을 말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즉이(則以)’라는 말은 ‘就是’와 같은 말로 ‘곧 ..이다’라는 어구로 보아야 한다. 앞의 則과 뒤의 則은 용법이 다르다. 경전은 진실을 접하고 배우는 과정으로서 읽어야 하며 윤리성을 그에서 자연 우러나는 것이다.

 

역시 학이편:

 

子曰:

1)學而時習之 不亦說乎 2)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3)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에서보면 이를

 

“1)배우면서 익숙히 느껴질 때 기쁘지 않은가 2)친구가 먼데서 찾아오니 즐겁지 않은가 3)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함이 없다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

 

이는 순수한 기쁨을 추구하는 길이 배움의 길임을 말한 것으로서 1)에서는 배움으로 진실에 다가가는 기쁨을 말하였고 2)는 삶의 순수한 기쁨을 말하였으며 3)에서는 인격적 자족의 기쁨을 말한 것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논어에서 배움이란 기쁨의 적극적 향유를 의미하는 것임을 강조하였다고 생각된다.

삶의 기쁨 배움의 기쁨 그리고 인격적 기쁨은 전연 같은 것임을 설파한 것이다. 무단히 고뇌하며 살지 말라는 뜻이다. 기쁨으로 살고 기쁨으로 배우라는 뜻이다. 어떤 것이든 불쾌함은 진정 어두운 삶의 징조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언제나 기쁨의 진실에 싸여 살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죽음과 삶을 초월하여 언제나 기쁜 것이므로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였다. 죽음을 꺼린다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진실을 접하고 나면 그 진실을 다는 몰라도 스스로 노여움이 없을 것이다. 공자의 말씀은 진실과 배움 기쁨이 아닌 것이 없다. 자신의 내외에서 여러 형태의 격함과 분노의 절제가 바로 극기일 것이다.

 

5.의리를 주제로 삼아 유학을 대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시종 스스로 자문한 문제였다. 의리는 극기(克己)로 이루어지므로 절제라고 하는 엄정한 어의를 가지고 있다. 그 엄정함은 기쁨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리란 오로지 엄정함을 말한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엄정해 보이지만 사실은 정밀한 선택일 것이다. 비록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기쁨의 선택이다.

이 점은 맹자의 ‘사생취의장’에서 잘 밝히고 있다. 마음의 수많은 하고자함 가운데 가장 깊고 크고 넓은 기쁨을 선택하는 과정이므로 의리는 결국 기쁨의 선택이다. 그것이 진정 기쁜 이유는 그 선택이 인(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이인장’ 에서 “어질게 사는 것이 아름답다‘고 하였고 이어서 ’잘 가려서 어질게 살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 하랴!‘ 라고 하였다.

의리는 결국 인을 구현하는 방도다. 어짊의 실천적 체계인 것이다. 우리는 인의 세계에 온전히 안주할 수는 없을 지라도 의를 통해서 무한히 접근할 수 있다. 우리는 완전히 극기할 수는 없을지라도 무한히 극기에 가까이 갈 수 있다. 그것을 희망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유학은 희망의 공부다.

 

6.의리를 주로 논하는 것이 시대에 맞는가 하는 것도 중요한 나의 안건이었다. 오늘의 시대는 기술과 물질의 발전으로 생활의 편의성이 극대화되었으므로 안일함에 기울 위험이 증대하였고 빈부의 격차와 소외감의 증대로 인해 내외의 갈등이 크게 증폭되고 있으며 사회는 급격한 조직성의 확대를 통해 정치 행정 이외에도 법인 단체 등의 구조적 틀 지워짐 강화되면서 개인의 자유영역이 축소되었고 그에 따라 심정적 정서적 왜곡이 극대화되었다. 이 역시 막대한 좌절과 갈등의 유인일 수 있으므로 어느 때보다 극기의 노력이 요구되는 때이며 의리의 강조는 바로 그 절제 요구라는 시의에 맞다.

 

7.의리란 살아있는 개념이며 고정된 의미에 안주하고 있지 않다. 각 시대의 의리가 나름대로 그 시대를 반영한 역동적 의미를 항시 개척해왔다. 이점을 특히 주목하고자 한다. 의리개념이 살아있다 하는 것은 기존의 개념이 그대로 통용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향해서 확대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시대이든 살아있는 개념으로서 작용해온 측면을 중심으로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리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송대 성리학의 발흥을 말하면서 한-당 시대 1000년의 공백을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전통시대의 논리는 유교적 고전적 가치관을 준수하여 진전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위주로 생각한 것지만, 고전적 가치관이 묵수되는 것과 새로이 변전하고 강화되는 경향의 사이에서 이 양자를 구분하여 말하는 것이 무의미할 경우도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유교적 고전적 논리로부터 다소 어긋나는 이념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넓게 유학의 진전 과정 안에서 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한-당 훈고학 역시 나름대로 형이상학을 가지고 있었고 그 시대에 응하는 논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유학에서 형이상학은 변함없이 추구되었고 그에 기초한 다양한 가치관의 모색도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떤 형이상학이 그 논리적 변전이 미약하였다고 하여 그 사상이 질식된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논리의 발전과 내면화의 과정이 교호하여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당 시대는 비록 신비주의적 경향을 띠었다고 하더라도 내면화를 지향했던 시대라고 정의할 수 있고 새로운 논리의 발전은 다음시대를 기약하여야 하였음을 인정해도 좋을 것이다. 사상이란 반드시 정치한 논리적 구조만으로 전승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새로운 제국의 시대와 융통되고자 한 학문형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8.의리를 중심으로 유학을 논함에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유학이 동아시아 보편사상이라는 줄기찬 확신이다. 중국에서 경이롭게 성취된 문헌적 전통이 유교 문헌을 전승하고 유학을 발전되게 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유교 자체의 성립은 그 문헌적 성취 이전에 혹은 그 바탕에 거대한 동아시아 역사의 다양한 보편 성과와 그 진운이 작용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중원 땅에서 사상과 문화가 안정을 향하여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면 대륙의 북륙(北陸)에서는 역동적인 활동과 사상과 문화의 전개가 있었다. 중원의 안정화 역사는 이미 은주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일정하고 지속적인 문화의 전통이 형성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북륙에서는 수많은 나라들이 부침하면서 사람의 거대한 또 하나의 삶이 이어졌다. 한국과 만주 몽고로 대변될 수 있는 대륙북방엔 만주가 청나라로 편입되기 전까지 북방의 다양한 민족들이 교섭하면서 역사와 문화를 영위하였다. 중원과 북륙이 밀접 불가분하게 상호작용해 온 것이 동아시아 역사의 진상이었으므로 그 사상과 문화도 그 틀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대륙에서는 역동적인 삶과 문화 자체가 역사였으며 그 기록이었다. 중원에서는 이를 문자로 정착하여 강력한 문헌의 역사가 열렸다. 역동의 역사와 문헌의 역사가 상호교섭하면서 형성된 것이 유학이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역사가 문헌이나 유물의 형태로 전승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사람의 삶 속에 더 온전한 역사가 숨 쉬며 살아 있다는 것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생활관습 가치관 사회구조 사람의 정서와 성품 삶의 스타일 등 여러 면모 속에 역사는 더 크게 살아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유학의 탐구가 문헌 텍스트에 매몰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라고 믿는다. 중원이 구조를 위한 역사가 전개된 반면 대륙에서는 리얼한 삶을 위한 역사가 이어졌다. 구조주의와 삶의 진상 사이의 긴장이 있었던 셈이다. 유학의 기본 틀도 그 양대 기조 위에 서 있다고 생각된다. 유학은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9.유학이 보편사상의 성격과 중원의 문화가 어울려 이루어진 것이라고 정의될 수 있겠는데 중국적 텍스트의 방대함 자체는 중국적인 특징이다. 그 가운데 빛나는 사상적 개념들은 보편적 특질이다. 문제는 그 사상개념 까지도 구조화되어 보편성을 위협할 소지가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삼강오륜이나 인의예지신과 같은 계열화된 개념 그리고 사서삼경 같은 텍스트 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 불변의 윤리구조와 문화 사상구조가 틀 지워져 중국적 가치관을 형성하고 중국유학의 중심을 이루었으며 이 구조들은 다시 중국제국의 영향아래 각국으로 전파되었다. 그 전파 현상을 두고 대개는 유교의 수입이라고 이해한다. 사실은 중국적 형식 구조의 수입이었다. 그것은 유학의 본령과는 많은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유학은 중국적 텍스트와 구조화된 개념들의 내부에 생생히 역동하는 그 무엇일 것이다. 이점을 또한 유의해야 할 것이다.

 

9.거시적으로 유학을 이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예를 들어 역사성이나 문명성 등을 따지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개념을 탐구하지 않는다면 사상누각이 될 것이다. 유학은 정신적 삶을 위한 것이며 이는 개념을 중심으로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리의 탐구는 새로운 본격적인 개념 연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유념하였다.

사상사란 결국 개념의 발전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상 다양한 사상체계는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역시 역사적으로 그 개념이 변전 발전한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며 이 발전 변동의 사실은 생각보다 절실하고 또 구체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바로 이 점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같은 문자와 유사한 문맥에서 사용되었다고 하더라고 그 의미적 상황을 검토해보고 또 사상성을 따져본다면 많은 역동의 과정을 포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타진하고자 하였다.

 

10.공부를 하다보면 대개는 자신의 기존의 공부경험이 동원되고 응용된다. 유학을 탐구할 때에도 동서양 역사지식이라든가 일반적 교양과 지식 혹은 서양 철학 등의 학문적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타 학문이나 문화 사상을 비교하고 검토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보편적 가치에 공명하는 의미를 지닌다. 보편성이야말로 학문이 도달하려는 최종 경지기 때문이다. 다만 유학의 보편성을 위한 길은 매우 독특하고 온전한 것이라고 믿는다.

유학은 요즘 학문의 입장에서는 아직 기초가 철저히 규명되지 않은 정신생활이라고 규정할 수 있으므로 오직 유학의 내부 논리에서 절실한 체험을 통해 각 개념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하나의 전승적 추체험이다. 유학 스스로의 내부연구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서야 비로소 오늘의 언어로 역사성 보편성이 더 뚜렷이 정립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글은 그 같은 소박한 내면연구를 위한 것이다.

 

11.유학의 내면성 탐구란 그 본래의 의미에서는 사실, 자신과의 투쟁이다. 인생의 과정에서 바라지 않는 쪽으로 이끌려 이인된 자신을 회복하고 많은 상처들을 스스로 치유하고 생의 활력을 되찾고 하는 일들이 일반 목적이기도 하다. 과도하게 달려간 도정을 관망하고 교정하며 부족한 부분을 활성화하고 강화하고 하는 일들도 그 일환일 것이다. 그러므로 매일의 반성적 삶이 요구된다. 이 반성적 삶은 결국 극기의 노력과 창조적 해법 사이의 긴장이다.

공자는 술이편에서 “덕을 닦지 못함과 배움을 익히지 못함과 의로움을 듣고도 따라가지 못함과 불선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나의 근심” 이라고 하였다. 공자는 치열한 자아탐구를 통해 성인의 경지에 아른 것이었다. 일반인들이 이 같은 삶을 따라간다면 분명 성인의 학도이며 성학의 일원일 것이다.

 

최근에 잠시 본 유교연구소 연구생이었던 박흥일 학인이 찾아와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품이 바뀌고 인품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라는 한글 작문을 해가지고 와서 이를 한문으로 지어달라고 요청하였다.

나는 그가 평생을 나름대로 사려하는 삶을 살아왔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최근에 유학을 접하고 나에게서 논어 맹자 대학을 읽었다. 아마 그는 고전을 읽으면서 자신의 평생의 습관대로 이를 스스로 생각하고 재구성하여 글귀를 지은 것이었다. 나는 그가 배움을 응용하는 생활 습관이 매우 뛰어난 것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가 작문해온 것은 이른바 길흉화복의 세속적 관심에 다소 치우친 것이었으므로 그의 작문을 조정하여 다음과 같이 한문으로 써 주었다. 그가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된 것은 역시 축하할 만한 인생의 한 성취임에 틀림없었다. 다만 그가 조화(造化)의 의미를 잘 이해하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易之思之 行之化之

行之化之 由之習之

由之習之 人之品之

人之品之 運之命之

 

평소의 사심을 바꾸어 생각하면

행실이 자연조화(自然造化)를 이룰 것이며

행실이 조화를 이루면

이를 따라서 조화에 익숙해지고

조화에 익숙해지면

인격을 이루고 품격을 이루며

인품이 이루어지면 천운 천명이 따르리라

 

이 학인 분처럼 스스로 배우고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겪다보면 배움이 깊어지고 넓어질 것은 당연할 것이다. 배움이란 자신의 삶 자체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배움이란 결국 ‘자신과의 긴장된 상호작용’이다.

박선생이 지은 글은 요즘 유행하는 리노베이션을 말한다. 사고의 혁신을 말한 것인데 그는 그 혁신적 삶이 고전 속에 이미 있다는 것을 목도하고 그 기쁨을 글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정말 고전이란 역사를 타고 변함없는 가치를 유지하는 그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읽으면 평범해 보이는 말씀들이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더욱 공감되는 글들이 많은 것이다. “매일 새로워지라”고 한 대학의 언명이 역시 그러하다. 항상 매사를 새롭게 느끼라는 말일 것이다.

적지 않은 시간을 일반인들과 경전을 공부하면서 그동안 느낌이 많았다. 그중에 경전을 읽고 이해하는 여러 가지 양태를 보게 되었는데 의외로 가정생활을 위주로 살아온 여성과 부인들이 남성에 비해 전연 손색이 없으며 경전 수용능력과 이해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이었다. 흔히 경전이나 유학은 남성의 학문인 것으로 이해되어 왔었다. 아마 전통시대에 유학이 주로 정치와 연관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본문을 읽고 이해하는 면에서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경험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순리적인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기존의 지식이라든가 평생 공부한 근대적 학문과 교양에 의해서 혹은 자신의 종교적 성향으로 인해서 순수하게 경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도 많이 보았다. 그들의 질문을 들으면 곧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유교 경전을 역시 진리의 서로서 그대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감상을 행하고 이를 자신의 삶 속에서 운용해보는 노력이면 족한 것이다. 그것이 유학의 출발이다. 유학은 매사를 부정적 논법과 견지에서 바라보고 의심하며 공부하는 서양철학과는 많이 다른 것이다. 유학은 긍정의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부면 그리고 변함없는 확고한 어떤 것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설

 

사람은 대개 천성적으로 정당하게 살고자 한다. 그것이 무상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당하다는 것은 지적으로 정립되는 것으로, 무엇보다도 모든 생명이 지향해야할 진실이다. 그러나 정당하다는 사실자체를 생활로서 견실하게 구현하는 일은 범인이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정당하게 살고자 하는 그 추진력의 중심을 외부에 두었을 때는 불안정하거나 지나쳐 마음의 병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정당함의 기준이나 근거는 사실상 자신의 내부에 오직 존재한다. 자신과 진리와의 거리가 의리의 정당함과 반비례한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진실 공부와 그 감지의 노력과 인격적 수신이 필요하다. 자신이 의리의 유일무이한 준거이기 때문에 결국은 스스로 세워야 하는배움과 수신으로 귀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 정당함이 외부와 잘 융통되어야 한다. 순수하고 진정한 최심부 층위의 자아는 보편적 가치가 즉 고유한 천성적 가치가 응축된 것이므로 스스로 개방적이어서 융통 통달의 욕구와 그 본질을 또한 지니고 있으므로 결국은 역시 자신으로 모두 귀결된다. 이 자아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자성이며 성찰일 것이다. 이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부동심(不動心)이다. 그러므로 당당한 자아의식은 모든 의리의 근본이 된다. 그 자아가 무너진다면 아마도 의리의 길을 힘차게 열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아와 통달이 의리의 양대 자주일 것이다.

의리가 우주의 진상과 직결되는 것임을 깨닫고 수행하는 데는 오랜 시일이 요구되었다. 역사적으로 경험적으로 유지돼온 의리의 의미가 그 깊이를 더한 결과이며 특히 기원전 5세기 전후부터 일어난 지적 공부의 귀결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인과 덕 같은 개념이 지적 사유의 중심으로서 모든 학행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나 현실의 역사를 헤쳐 나아가면서 학행을 고수하는 일이 지난한 것임을 삶으로 겪으면서 인과 덕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의리의 개념으로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어질고 덕스러운 일은 좋은 일이나 그에 반하는 강력한 이욕의 도전에 대응하여 배움의 삶을 견지하고 그 결과로서 의리라는 이름으로 이를 수호해 나아갈 때 비로소 인과 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역지사지해보면 비록 이욕이라 할지라도 역시 생명의 욕구이므로 인과 덕과 정반대의 개념은 아니다. 다만 이욕이 정돈되지 못하고 사람의 심혼이 이욕에 끌릴 때 생명적 폭행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의와 이를 대립적으로 보는 설명도 있게 된 것이었다.

의리를 거론 하는 것은 역시 스스로의 삶을 보다 가치화 보편화하고 객관화하고자 하는 모든 의지와 결단과 노력의 단적인 상징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나를 객관화하는 것은 꼭 의리나 인 같은 개념을 통해서 가능할 뿐만은 아니다. 한 장의 인상 깊은 그림이나 심금을 울리는 명곡의 곡조 역시 그러하다. 나는 또한 어린 시절 할머니의 자애로움 모습을 떠올리며 나를 채찍질하거나 나를 질정해온 오랜 습관이 있었다. 물론 할아버지나 선친의 생전 모습을 상상하거나 꿈에 뵈면서 나 스스로를 다지곤 하였다. 아마 초상화를 그리는 이유가 역시 그런데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우리는 이미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보다 객관화 하고 넓히고자 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자연스런 삶의 일환이기도 하다.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보통의 방식이 언제나 유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성찰함을 교란하는 치명적인 삶의 요소들이 우리들 내외에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반성적인 삶을 매순간 이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스스로 매우 효과적으로 객관화 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수단이 요구되는 데 그 때 유용한 것이 바로 의리개념이다. 이 한 개념을 의식적으로 스스로 운용하여 확신을 가지고 언제나 소환해낼 수 있다면 자신의 아집에 빠지는 어리석음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막연한 자아에 대한 의심 혹은 의문을 넘어서서 나를 객관화할 수 있는 수단이 많을수록 좋겠지만 생활 속에서 손쉽게 그리고 언제나 확고하게 견지하면서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과제가 아울러 있기 때문에 보다 본격적이고 체계적이며 검증된 것으로서 정통적인 방식이 강력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의리라는 이 단 하나의 개념은 바로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도 유념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굳은 배움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구태여 의리란 무엇인가 하는 명확한 정의가 아직 없어도 좋다. 의리개념을 마음속에 유지하고 공부하다보면 일상에서 알고 있던 이 뜻이 점점 더 친숙해지고 깊게 이해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에 따라 나를 객관화하는 실효도 증대될 것이다. 그런 기대를 나는 항상 놓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객관화한다 함은 우선은 나의 심신의 균형을 유지함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나와 진실 실체 사이의 탐구의 균형이다.

격변하는 오늘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꼭 심오한 형이상학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심한 공부 중에 불현듯이 어떤 전율하는 새로움을 절실히 느꼈다면 그 절실함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의외의 새로운 각성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한순간 진실과 닿았기 때문이다. 의리란 그런 진실을 느껴 배우고자 함이다. 스스로 절실함에서 배움은 언제나 요긴하다. 세상에는 많은 배움이 있지만 가장 큰 배움은 역시 그 절실함으로 ‘진실’을 느끼는 ‘의리’를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진정한 배움은 궁극적으로는 결국 의리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크고 작은 경험으로부터 일상에서 ‘더 새롭게 절감함’에 바탕을 두고 공부해야하는 유학경전은 ‘의리의 서’라고 볼 수 있다. 경전의 여러 전범을 나의 현재의 경험으로 전환하면서 그 질문을 끊임없이 유효화해주기 때문이다. 의리란 진실의 절실함을 몸으로 묻고 실감하고 체현함으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한다. 나는 최근에야 이 ‘절실함’이 공부와 인생의 진정한 출발이며 끝이고 그 본질임을 알았다.

나아가 의리는 거시적으로는 오랜 역사 전통 위에서 성립 발전하였으므로 동아시아 역사정신과 문화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오늘날 세계화의 격류 속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며 변전하는 삶과 문화의 여건에 비추어 ‘의리’라는 전통적인 의미를 지금의 시점에서 되새길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 삶의 중심을 역사와 전통과 연관하여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의리정신의 전형적인 의미를 찾고 오늘에 깊이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의리란 의미상 통속적으로는 일견 엄숙하지만 실은 친숙하고 다양한 보편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기원적 어의 혹은 넓은 뜻에서 정당함에 대한 사려로서, 의로움의 영역은 생활 일반 외에도, 정치 철학 문학과 예술 스포츠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 이를 수 있고 근본적인 자기성찰 기능을 할 수 있다. 곧 의리란 다름 아닌 순수한 성찰의 최종 결과이다. 성찰은 배움의 삶을 인도하고 무제한의의리의 길을 열어준다. “의리주역‘이란 말이 있듯이 의리예술 의리문학 의리과학 등의 용어도 가능할 것이다.

한편 인이 중심에 있는 것은 동아시아 사상의 중심 문제다. 인이란 사랑이라는 뜻이지만 공부에 따라 깊어지고 넓어지는 생성적 개념이다. 일반적으로는 인은 만물의 창조에 가치를 두는 생명의 사상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랑의 인정인 인을 성찰하지 못한 채로 살아도 좋을 것인가 하는 선택적인 성찰 자체가 바로 의리의 출발이다. 물론 그 답에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개성이 묻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또한 의리는 바로 개성이며 인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 인격이란 바로 의리의 한 스타일이다.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리는 역사의 산물이며 우리 문화의 개성이다. 우리의 개성이라 함은 우리가 인격공동체로서 의로운 정신을 가장 극명하게 이채롭게 그리고 가장 절실하게 역사상 향유하여왔다는 뜻이다. 의롭게 사는 것은 우리가 의식하든 아니하든 관계없이 우리들 삶의 궤도이다. 이미 우리는 의리의 의미에서부터 일탈할 수 없이 상당정도 의식화 내지 체질화되어 있다. 이를 적극적 자각적으로 재발견함으로써 역사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 정신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나라의 근간이며 이 역사궤도를 일탈하고 대성할 수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궤도가 뚜렷하고 확고할수록 미래를 향한 헤쳐감이 힘차고 당당할 것이다. 바로 역사가 가진 절대적이고 막강한 힘이다. 물론 이는 보편적 양식과 가치를 아울러 온존함을 그 전제적 담보로 한다. 의리는 우리의 삶의 궤도다.

우리는 ‘의리’ 혹은 ‘의’라는 말을 공사의 생활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다. 현재의 삶 속에 의로움의 개념이 엄연히 널리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의리란 친근하고 일상적인 용어이며 높고 낮은 여러 차원에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는 점과 오랜 역사적 전통을 지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의리는 일반 생활철학의 실천일 뿐만 아니라 역사상의 각 시대의 사상과 문화를 포괄하고 요약 표현한 것이므로, 역사적인 개성과 실체에서 나온 역동적인 말이다. 역동적이란 시대에 따라 숨 쉬며 그 질과 내용이 미묘하게 변동 발전한다는 특징을 말하려는 것이다.

의(義) 또는 의리(義理)라고 하면 대개 정의(正義:Justice)와 혼동하기 쉽다. 정의란 말은 우리의 역사적 전통용어는 아니다. 서구어를 번역한 말이므로 의리와는 다소 다른 말이다. 아마 ‘정의’에 ‘의(義)’자를 붙임으로 인해서 의리와 혼동하게 된 것 같다. 그 의미상의 혼돈을 없이하기 위해서는 아마 ’정의(正義)‘를 ’정의(正宜)‘라고 써야 할 것이다. ’바르고 마땅한 것‘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의(義) 역시 ’마땅하다는 뜻‘에서 시작되었고 의(宜)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 의(宜)와 달라진 것은 역사상 그 어의의 진화가 지속되면서 의미를 심화하였고 차원을 달리하며 시대에 따라 극적인 의미경신 있었기 때문이다.

의리란 옳게 살고자 하는 평소의 정상적인 마음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므로 처음 ’마땅하다‘ ’옳다‘ ’아름답다‘ 등등의 뜻으로부터 변동하는 사상사의 발전 과정과 결과를 함축하면서 ’의리(義理)‘의 뜻으로 고양 진전된 것이었다. 물론 서양의 정의 개념은 서양철학 진리와 연관된 것이며 그 실천적 측면을 진리와 구분하여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정의의 배경이 되는 진리의 실제 의미는 동아시아적인 도리와는 다르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의리란 동 아시아적 진리와 그 실천적 측면이 미분화된 개념이라기보다는 상호 융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과 의가 표리를 이루며, 즉 그 통합적 본질성은 긴밀하게 유지하면서, 인과 의가 시의에 따라 적절히 중점을 달리하며 표방 사용되었다.

예컨대 인의가 모두 ’실천을 전제‘로 한 말이지만 공자시대에는 인이 맹자 시대에는 의의 측면이 강조되었다. 다만 세속적인 의미에서는 인을 행하는 것은 대개 일상의 범주에 있으며 의를 행하는 것은 보다 특별한 또는 어떤 궁극적 선택적 여건상황의 범주에 있다. 그러나 인의는 매우 일상적인 의미와 고상한 의미를 아우르는 무한정한 것이다. 언제나 결국은 의가 없는 인은 없으며 인이 없는 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리(義理)‘는 ’인의(仁義)‘로 병칭되었다. 인이란 ’변함없이 추구하는 가치‘이지만 의란 단적으로는 ’하지 않는 것이 있는‘ 데에서 출발한다. 엄정한 선택의 의미가 더해지는 것이다.

의리란 처음의 원의에서부터 생각하면 도리와 원리에 따라 벗어나지 않고 옳게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의리에는 강력한 원리지향성이 있다. 이 단순한 원의가 보존 유지되면서 자성의 공부로 삶의 이상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고래로 항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 하는 질문 앞에 엄숙히 서있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을 살아가면서는 자주 까마득히 잊게 되는 것이 또한 의리다. 현실은 가깝고 절실하며 의리는 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 아시아적 관점에서는 우리의 태어남도 바로 의리 자체이며 살아감 또한 의리의 힘으로 존립하는 것이므로 결국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의리다. 인생은 의리로 시종되는 그 무엇이다. 의리란 무엇인가 상시 생각하는 것은 바로 생의 의미와 깊이를 추구함과 연관된다.

한국 땅에 의리라는 말은 살아 있지만 그 실체적 의미와 가치나 그 역사성 그 깊이 그리고 그 영원한 정신인 점 등에 대해서는 의식이 부족하다. 이에 여기서 잠시 주요 경전의 구절들과 문헌 역사에 남겨진 유산들을 담담히 재음미하고 의리의 실체를 다각으로 조명하고 재구성 하고자 하였다. 의리의 이해와 관계되는 발상이나 정의 의미 가치 등을 다시 자유롭게 생각해보려는 것이다.

부언하면 의리는 우리 민족과 국가를 한국답게 영위하게 해준 민족정신이었다. 국가를 극히 존중한다든가 부모 가족의 윤리를 지고한 것으로 유지하는 등 한국적 가치를 극명하게 구현해 보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개개의 삶을 인도해준 견인차였으며 우리 역사와 문명을 이채롭게 한 궁극의 빛이기도 하였다. 의리는 한국사의 시작이며 끝이고 미래 궤도다. 그러므로 의리는 우리 역사의 이채로운 결단의 성과이며 역사 가치의 골간을 포괄 함축하는 그런 것이기도 하다.

특히 의(義)란 배움의 최종적 결과다. 그러므로 배움으로 얻어지는 이치라는 뜻에서 이(理)자를 더하여 의리(義理)라고 한다. 당연히 이 이치란 탐구된 자각적 의미에서는 인(仁)이다. 그러므로 의리란 인의(仁義)와 같은 뜻이다. 의리란 또한 삶에서 절감하여 얻는 하늘의 은혜이며 인간 궁극의 지혜다. 의리란 스스로 열어가는 것이므로 동서고금 어떤 인간사에서도 변함없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의지이기도 하다.

요컨대, 의리란 난폭한 혈기가 아니며 과도한 용기도 아니다. 의리란 날카로운 것이 아니며 모난 것도 아니다. 의리란 뾰족한 것이 아니며 의리란 좁은 평면도 아니다. 의리란 순간에 번쩍이는 섬광이 아니다. 의리란 굳어 있는 딱딱한 것도 아니다.

의리란 단지 옳은 일일 뿐이지만 높고 깊고 넓은 삶의 진실과 사물의 진상을 꾸준히 담아 충실해진 것이므로, 그리고 수행으로 회복하여 얻어진 순수한 심혼에서, 혹은 천성적으로 순결한 심성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큰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의리는 결국 순수한 자아의 회복이며 동시에 그 탐구다. 이제 그 의리의 다양한 의미와 그 본질을 자유롭게 성찰 해보려한다.

 

 

 

'history & letters ... > 주석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교논설 논문목록  (0) 2014.02.26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0) 2012.08.31
간재사상연구  (0) 2012.08.28
덕천선생 문목고/하이안자 글  (0) 2012.05.23
한국의유교사상  (0) 2010.11.22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