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의리의 기원과 전망
제1장 의리 연의
1.의리란 무엇인가
의리에 대한 정의 의리란 무엇인가를 명징하게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삶이 무엇이냐 라든가 혹은 사람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같다. 그러므로 맹자는 “인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는 사람의 길이”라고 정의하였던 것이다. 주자(朱子)는
“의는 마음의 제제이며 일의 합당함이요
인은 사랑하는 이치다“
라고 정의하였다. 과연 의리란 마음의 제제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당장에 개인적 사리와 사욕에 끌리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합당’하다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인데 그 정당함의 추구는 촌시도 끊임없이 그리고 무한히 시도하는 데 의미가 있다. 끝이 없는 일이며 또한 절절하게 매순간 확신함으로 이루어지는 어려운 일이다. 주자의 이 말 속에는 따라서 공자의 가르침이 숨어 있다. 공자는 스스로
“진실에 대한 믿음을 위하여
옛 공부를 좋아하였다“
라고 술회하였다. 공자의 배움의 일생은 결국 진실을 위한 것이었다. 그 진실이란 바로 성선(性善)의 사실성이며 그 실체를 생생히 느낌이다. 보통 사람이 가지는 삶의 의문과 공자의 의문을 다를 것이 없다. 그 의문을 풀려는 노력에서 달라지는 것일 뿐이다. 자신의 생명의 근원과 관계되는 것이므로 주자의 간결한 해설은 심중한 의미를 동시에 아우르고 있다. 사람은 의욕의 동물이다. 의지가 있고 결단이 있고 창조력이 있어 문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허점이기도 하다. 의욕으로 인해 진실과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부의 단계에서는 극기의 절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성은 서로 유사하나
습성으로 서로 멀어진다 “
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일에 대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하나의 정의를 내려두지 않고는 예컨대 인생의 매 순간 꼭 하지 하지 않을 수 없는 선택을 하여야 할 때 그 선택을 할 수가 없게 된다. 크고 작은 모든 일이 그러하고 어떤 일을 의지를 가지고 수행하고자 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바로 그 시점에서 현재로서 가능한 정의를 내리며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의 기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정의는 항상 새롭게 구체화되고 경신되는 것이지만 그 정의를 내리는 노력이 게으를 때 우리는 우유부단해지기 쉽다. 정의란 결국은 배움의 노력의 결정이다. 공자가 재여(宰予)에게
“진이 빠진 흙으로 된 담장은 흙손질 할 수 없고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다“
고 질타한 것도 그 같은 뜻에서였다. 잠시의 방심이나 나태함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중히 질타한 데서 그 깊은 뜻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란 상시적인 생활의 태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리란 넓게 정의 한다면 ‘삶의 모든 개개의 가치를 추구함이며 또한 그 총체이고 나아가 모든 의미 있는 일들의 극한’이다. 의리는 또한 ‘기쁨과 선택과 절제와 결의로 구성되는 모든 아름다움의 감동’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꼭 오직 절제만이 의리의 절대적 전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자가 맹자 양혜왕 장구 주에서 “의리는 마음의 제제다”라고 정의 하였지만 이는 그럴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 모든 의리가 절제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절제 이전에 있어야 할 것이 있다. 절제란 결국은 기쁨으로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기쁨이란 역시 배움의 기쁨이다.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않은가?“
“벗이 번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않은가?”
와 같은 마음의 열락(悅樂)에서부터 비로소 우리는 힘차고 당당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가 논어 초두에 이를 앞세운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의리는 막연한 선택일 수 없다. 의리는 배우는 자 혹은 배우고자 하는 자의 삶에서 우러나는 것이며 배움과 관계없는 삶에서는 생성될 수 없다. 또한 거짓의 배움으로는 의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의리는 진정한 학행(學行)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결국 의리의 문제를 마주한다는 것은 배움의 문제를 마주한다는 말과 전연 같은 의미다. 배움의 삶이 일단 시작되었을 때 진정 의리의 현상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자하가
“배우지 않았어도 배웠다고 하리라”
한 것은 형식적 배움만이 배움이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인생의 모든 장이 배움의 장이기 때문이다. 배우고자 하는 순리롭고 경건한 삶의 자세 오직 그것이 요긴한 것이다. 그 배움이란 당연히 진실의 배움이다. 배움의 결과로서 하나의 도를 간직하고자 함이다.
마음의 울림을 따라 인 의 예 지를 일으키고 살면서 배워 덕을 이루고 덕을 미루어 도를 간직하게 된다. 그것이 학행(學行)이다.
의리의 여러 의미층위 의리란 맨 처음 ‘의(義)’로 표현되었다. 여기서 의리란 ‘의’로부터 발전되어 쓰이게 된 다양한 어의를 포괄하는 뜻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의리의 의미는 크게 5개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제1영역은 적의(適宜) 선(善) 미(美) 호(好) 등등의 일반적 의미로 쓰이는 부분이다. 의(宜) 의(誼)와 유사한 개념으로 쓰이는 것으로서 의리의 원래의미다.
제2영역은 의리가 사상발전의 맥락을 따라서 새로운 깊이와 의미를 지니게 된 부분으로 인의(仁義)의 뜻으로 사용된 경우인데 이는 유교 학자들이 정립한 어의이다. 따라서 유교적 세계관 인간관에서 비롯된 어의다.
제3영역은 의리의 보편적 의미를 담은 것으로 의리(義理) 용어로 정착되었다. 이는 유학의 어의를 확대하여 천리자체를 파악하려는 원대한 의도에서 비롯된 말이다.
제4영역은 의리의 형식적 의미를 드러낸 부분으로 예의(禮義)를 나타낸다. 고대적 삶에서 ‘전범적인 생활’을 의미하는 데서 연유하였다.
제5영역은 여러 영역적 의미와 관계되면서 매우 특정한 뜻으로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경우인데 충의(忠義) 효의(孝義) 정의(情義) 정의(正義) 우의(友誼:友義) 신의(信義) 같은 경우가 그것이다. 의리의 의미가 특별한 지칭어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의리의 뜻이 모든 가치와 융통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의리란 동아시아 사상사의 처음과 끝을 포괄하는 장구한 발전사를 반영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의리 이외에도 장구한 발전사를 지닌 어의가 사상사에 허다하게 많지만 예를 들어 의리는 그 발전사의 중핵을 이룬다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인·의·예·지·신 가운데 의리가 그 중심이라는 사실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의미 영역의 탐구가 아직 미비하기 때문이다.
의리논설의 계통성 의리는 절제의 뜻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그 용례로 보아도 매우 엄정한 의미를 지칭할 수밖에 없지만 원래의 의미에서 보면 ‘아름다운’ 미학적 감성적 개념이다. ‘양양(羊) 자로 이루어진 글자 구성(義:羊我)에서 그 같은 의미를 살필 수 있다. ’아름다울 미‘자과 같은 어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양양 자를 공통 요소로 하여 ’큰 사람을 그리면 아름다울 미‘자가 되고 ’나를 그리면 옳을 의‘자가 된다.
사람의 삶과 사상 철학 문화 등 문화나 정신의 측면에서 의리를 정의해야 한다는 사실은 의리의 사실상의 중심문제다. 의리가 문헌적으로 명백하게 확인되고 일반의 삶의 중심 지표가 되었던 것은 대체로 춘추시대에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춘추시대 지식인의 삶이 의리로 일관되었다는 것은 이미 춘추 이전부터 이루어진 생활 전통의 결과로 보아야하겠지만 의리라는 사상적 권위를 확고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공자이후로 생각된다.
공자 이전의 의리란 신비적 색채가 농후하였다. 주로는 길흉화복의 논리와 연관된 것이었다. 말하자면 전통적 의리가 유지된 것이었다. 이 전통적 의리를 새로운 의리로 정립한 것이 공자였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상적 의미를 담은 의리는 공자 이후이며 학습(學習)이라는 새로운 삶의 양식이 수립된 이후 의리는 배움의 삶을 총괄하고 함축하는 위대한 어의를 거느리게 된 것이었다.
의리는 동아시아 정신의 핵심이다.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개념으로서 동아시아 역사성을 상징하는 일면도 있다. 처음엔 ‘의’ 또는 ‘대의’라고 칭위되었지만 후일에 이르러 ‘의리’라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의리’란 ‘의’와 ‘리’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는데 이중 ‘리’는 ‘도리’나 ‘원리’ ‘진리’를 의미한다. ‘의’가 홀로 완결되는 개념이 아니고 진리나 도의 실체와 긴밀한 것임을 의미하며 ‘인’과 ‘의’가 불가분한 개념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은 ‘리’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인·의’의 불가분성이 인식된 것은 춘추시대였지만 더 보편적인 개념인 ‘의리’로 정착된 것은 성리학의 시대 이후부터 였다.
중국의 진보적 사상가 대진(戴震:1723-1777)은 그의 ‘인의예지설(仁義禮智說)’에서 인은
‘생생지덕(生生之德)’
이며
‘한 사람의 생을 이루고 이를 미루어 천하와 더불어 생을 이루는 것’
이라고 하였다. 예는
‘천지의 조리이며 친소 상하의 구별이고’
의란
‘조리(條理) 절연(截然)하여 불가란(不可亂)한 것으로 인의 친애 장양(長養)에 부합하는 것‘
이라고 하였다. 지란
’인·의·례를 인식 파악하는 능력‘
이라고 하였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의에 대해서 ‘조리 절연한 것’이라고 하고 이어서 ‘친애 장양’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장양은 인(仁)을 말한 것이며 따라서 인과 의는 불가분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인에 대한 견해나 의에 대한 정의가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인의의 불가분성을 말한 것은 공자이래의 확론이다. 현재는 바로 그 불가분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더 필요할 것이다. 의(義)가 인과 불가분한 것일 뿐 아니라 도(道)라든가 천명(天命) 양심본성(良心本性) 이치(理致) 배움(學)과도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철학가 장대년(張岱年)은 의를 이(利)와 상대적 개념으로 보고 이를 중국철학의 중대과제라고 선언하였다. 유가에서 의를 중시하고 이를 경시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한편 의의 관념은 공자 이전에 생겨나서 공자에 이르러 확립되었다는 설명을 부가하였는데 이는 당연한 사실일 것이다. 문제는 그 발전과정을 더 소상히 밝힐 수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의와 이가 결정적으로 대립되는 개념으로 본 것은 일견 합당한 면이 있지만 의의 개념을 이(利)와 대립될 뿐 아니라 욕(欲)과도 대립되며 과(過)와도 대립되는 것으로 광범한 대립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의와 이의 대립만을 중대한 철학문제로 보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자체가 그대로 의과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 의미의 이는 인과 같기 때문이다. 의는 그동안의 어떤 논의보다도 보편적이며 강력한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신중하게 논해야 한다는 점을 먼저 강조하고자 한다. 논할 수 있는 방향은 많지만 보다 넓고 보편적이며 전승 측면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의리의 의미적 위상 의리는 동아시아 사상의 중심을 이루는 한 개념으로서 홀로 독립하여 존재하는 의념은 아니다. 다른 중심개념과 체계적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하면서 동시에 일반 개념과 소통하는 생동하는 개념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전자를 큰 의미 후자를 작은 의미라고 필자는 편의상 부르고 있다. 이러한 복합성은 의리 개념에 국한된 것은 물론 아니다. 다른 중심 개념들도 마찬가지이다.
의리는 사상사를 통해 형성되고 정립된 개념이다. 그러므로 그 지적 진보에 따라서 변전 발전하여 왔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다른 개념들과 통일적인 체계를 이루어왔다. 그 의미적 위상을 크게 분류하면
1)선천성에 기초한 영역
2)감성적 지적인 이해를 표현한 영역
3)배움의 삶의 영역
등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제 1영역 즉 선천성에 기초한 영역이란 성선설과 유사한 것으로서 예컨대 맹자의 4단설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인은 측은지심의 발로이고 의는 수치를 아는 마음의 발로이며 예는 사양하는 마음의 발로이고 지는 시비를 가르는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 의 예 지 등이 그것이다.
제 2영역 즉 지적 감성적 영역이란 덕(德)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삶과 행실 속에서 실천과 관찰로 인해 일치감을 통해 확인하여 받아들이는 진리의 영역과 이를 지적으로 재구성하는 도(道)의 영역이다. 나머지 제 3영역은 일반적 탐구를 통해 이 지감을 끊임없이 쇄신하여 개선하는 학(學)의 영역이다. 이들 3개 영역은 모두 학(學)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절실함 혹은 실실함으로 그 공효를 얻을 수 있는 것이므로 신(信)이 요구된다. 신이란 ‘신의“를 의미하기도 하고 ’진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을 제4의 영역으로 구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는 이처럼 선천성에 기초하고 있으면서 그 실천 과정에서 새로운 지감을 획득하고 이를 재구성하고 다시 쇄신하여 의리의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였다고 생각된다. 현실적으로 의리를 정립하고 수행할 때는 오직 절실한 실감과 실증을 통해 신실(信實)하게 노력 하여왔다. 공자가 궁행군자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한 것은 바로 이 신(信)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의리의 내면성 맹자 ‘호연지가장’ ‘고자장’에서는 의리의 내면성을 논하고 있는데 맹자와 고자 사이의 의리의 내외논쟁이 유명하다. 맹자는 의리의 축적을 통해 호연지기를 이룬다고 보고 그 호연지기의 중심은 의지라고 보고 있다. 기의 주체가 의지라고 본 것이다. 그 의지의 면모가 의리의 축적(集義)으로 구현된다는 설명이다. 이를 보다 세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생각해보면 모든 경전이 의리가 아닌 것이 없다. 모든 유교경전은 아름다운 것 정당한 것 합당한 것 선한 것을 지향하여 긴장된 절조를 유지하기 때문이며 그 긴장된 절조의 실행을 이상으로 삼고 살아가는 양식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좀더 세분하면 의리란 기쁜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며, 원하는 것이며 절실한 것이며 분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의리란 열락(悅樂)의 추구이며 기원(祈願)과 소망이며 아름다움의 선호이며 절실(切實)한 것을 추구함이다.
의의 의미적 남상 의(義)에 대한 자원설명은 대개 미(美) 선(善) 의(宜) 등과 같은 의미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의(義)자의 구성을 보면 ‘양 양자’에 ‘나 아’자가 결함되었다. 이 때 ‘나 아’ 자는 날이 달린 무기를 그린 것인데 은주(殷周) 시대에 청동기가 유행하였으므로 은나라의 독자적 청동기의 높은 수준을 나타낸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그 자부심을 표현하여 청동기를 대표하는 무기가 ‘나’란 뜻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양 양’ 자와 결합하여 의(義)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라고 생각된다. 청동기의 아름다움과 우월함을 표하고자 하는 것이 의(義)의 원래 뜻이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은 시대의 자부심은 청동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그들의 문화 특히 제사 의례 등의 문화적 자부심도 아울러 있었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변방국을 토벌한 예에서 알 수 있다. 은 시대의 자부심의 일반적 표현이 의였던 것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제례와 같은 신비의식을 오직 그 기원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람은 처음부터 상당정도의 이지적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부정할 근거는 없다.
은의 발전에 따라 예의 제도와 문화 군사 등등의 여러 방면의 권위를 이 의(義)로 표현하였던 것인데 차후에는 무기에 국한되지 않는 뜻으로 옮아갔을 것으로 보인다. 의(義)가 예의(禮儀)와 같은 뜻으로 쓰인 데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의미는 사상의 발전에 따라 극히 보편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춘추시대 공자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생각된다. 공자에 이르러서는 무기나 기술 문화를 넘어서서 철학적 사상적 의미를 포괄하게 된 것이었다. 공자는 위령공편에서
“군자는 의를 바탕으로 삼고 예로 행한다.”
고 하였다. 안연편에서는
“극기복례(克己復禮)”
가 바로 인이라고 하고 안연이 그 요목을 물은데 대해서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
고 하였다. 위령공편과 안연편을 비교해보면 ‘극기복례’가 의(義)에 해당되고 이를 바탕으로 예를 행하는 것이 인(仁)이라는 어의가 성립된다. 안연이 인에 대해 물은데 대하 공자는 의와 예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인임을 밝힌 것이다. 인과 의는 예와 함께 불가분한 개념이었던 것이다. 한편 논어 양화편에서는
“어질기를 좋아하되 배우지 않으면 어리석어진다”
고 하였다. 여기서 인(仁)이란 타고난 어진 마음을 중시하는 의미로 보인다. 어진 마음을 배움을 통해서 진정한 인(仁)으로 고양하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극기복례는 배움의 일환인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예도 배움과 불가분한 것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의는 또한 배움과 불가분한 것이다. 또한 안연편에서 중궁이 인을 물은데 대해
“문밖을 나서면 큰 손님을 대한 듯이 하고 백성을 부리기를 큰 제사 지내듯이 하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
고 하였다.
이 모두 자신에 대한 절제를 말한 것이라고 생각되므로 극기복례와 유사한 뜻이다. 예를 통해 자신을 가다듬음으로 얻어지는 그 무엇이 인이라고 보고 있으며 그 가다듬은 바로 의를 말한다. 그러므로 드디어는 논어 양화편에서 자로가 ‘군자는 용기를 숭상해야 합니까?’물은데 대해 ‘군자는 의를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고 답하였던 것이다.
논어 이인편에서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고 한 것 역시 이와 같은 의미에서 상통하고 있다.
역사적 의미 ‘의리’는 사실 철학적 개념 이전에 이미 생활화된 일상 언어다. 의는 유교 경전의 많은 주제어 가운데 한 중심언어이기도 하지만 ‘인’ 혹은 ‘인애’란 말보다도 오히려 더 자주 쓰인다. ‘국민으로서, 사람 가족 혹은 동료 벗으로서 행해야 할 온당한 도리’ 정도의 포괄적인 뜻으로 널리 받아들여져 이미 하나의 생활규범으로 널리 통하고 있다. 물론 각 개인이 ‘의리’에 얼마나 철저하고 반성적인가 하는 실제의 수행 평가는 별도 문제이다. 또한 그 수행의 비율과 정도에 관계없이 이미 의리개념은 우리 사회에 상당 정도 확고한 지도력을 유지하고 있음은 명백하다고 생각된다. 고대 이래로 그러하였으므로, 그런 것이 바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하는 것일 것이다.
문화적 의미 그러나 이 말이 익숙하고 친근하다 하여 그 뜻을 깊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경전 용어 가운데도 우리가 대화에서 통용되는 의미의 범위에서 자유롭게 쓰는 말들이 이 외에도 많고, 그 역시 어떤 나름대로의 의미향유를 통해서 의미가 유지 되고 혹은 새로이 개척되기도 하는 등 매우 중요한 한 과정을 보여주면서, 현실의 삶 가운데서 그 의미를 실제로 구현하는 소임을 다하고 있는 사실도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의미를 보다 더 반성적 자각적으로 또 의지적으로 사용한다면 사상적 문화적 의미를 아울러 다할 수 있으므로 의미 있고 바람직하고 이상적일 것이다. 의리는 하나의 독특한 문화다.
의미의 긴장 어떤 개념과 언어가 사상 문화 등 정신적인 면에서 보다 활성화 되고 유용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늘 자각적이어야 한다. 일반의 언어생활은 그 자체로서 이미 그대로 일반적인 삶의 장이다. 삶 자체를 위한 장이므로 여기서 매순간 그 의미를 탐구하거나 상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럴 겨를을 가지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 자체를 명백히 배움의 장’으로 확고하게 의지적으로 전환한 사람들이라면 이야기기 달라질 것이다. 언어적 ‘의미의 긴장’ 상태를 항상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는 그처럼 명백히 일상의 가운데 끊임없이 돌이켜질 수 있을 때 자연히 생활화되는 것일 것이다.
물론 ‘배움의 삶’으로 인생을 재구성하려는 사람들이 매우 인위적이고 자연스럽지 못하며, 삶의 다이내믹한 상황에 멀리 물러서 있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배움의 의미를 매우 절실하게 일상화’하였음을 의미한다. ‘배움의 삶’이라는 정의에 대해서는 다른 지면에서 더 상세히 누차에 걸쳐 논의할 것이다.
고뇌는 배움만 못하다 미리 말한다면 의리는 그 같은 ‘배움의 삶’이라는 사전 전제 아래서만 그 역동적으로 의미를 논할 수 있다. 물론 천재적인 의리인도 있다. 신념으로 신앙으로 세워진 의리인도 있다. 민족애 인류애와 같은 고상한 정신으로 우뚝 선 의리인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의리인일지라도 아마도 반드시 그 삶이 어떤 형태로든 전적으로 학구적인 것이었을 것으로 믿는다. 모든 다양한 양식의 배움만이 진실에 닿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을 흐트러뜨리지 않을 수 있는 굳건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심각한 고뇌도 배움만 못하다고 하였던 것이다.
삶의 재구성 우리가 한 시대를 자연스럽게 느끼고 호흡하며 향유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 삶이 제한되고 엄정한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시간을 막연히 엄숙한 이념과 긴장으로만 보내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오히려 다만 담담히 자연스럽게 그대로 삶을 절실하게 느끼고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배움의 긴장이란 그런 자연스런 감성과 지성의 발휘 속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을 의미한다. 재구성이라는 점에서는 인생이란 진솔한 작가가 예술 작품을 하는 것과 같다. 의리란 그 최종적인 그리고 궁극적인 인생의 작품인 셈이다.
미리 요약한다면 의리란 이미 우리가 익숙하게 습용하고 있는 반면에 극히 보편적인 넓은 사상성을 함축하고, 동시에 전통의 공부와 배움을 요약한 역사성을 띤 개념이라서, 우리의 오랜 정신사를 반영하고 상징하는 말이다. 의리란 이름아래 모든 경전의 의미와 깊은 사유의 결과들을 대변할 수도 있다. 의리란 우리가 추구해야할 정신의 근간의 언어라는 것이다.
역사적 인간 진정 의리를 지향함으로서 우리는 역사적 인간으로 전환될 수 있으며 사려 깊은 사상성을 구현할 수도 있으며 모든 현실을 의미화 하는 문화적 마인드를 유지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의리일관(義理一貫)을 추구함으로서 우리 삶이 보다 순리에 따라 절실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의리란 전통공부의 요체이며 공부의 과정이기도 하고 또한 효험이기도 하며 그 최종의 드러남이기도 하다.
이모든 과정에서 의리를 추구함은 사실적 삶의 진상을 적극적으로 실감하고자 함으로 인하여 삶의 진실을 추구한다는 의미가 내재하고 있다. 진실이란 나의 존재적 실체이며 그 진실을 사유함으로써 나의 닫힌 자아를 넘어서는 힘이 되기도 하다. 의리란 주관적 의지적 결단이면서 동시에 나를 객관화하는 오묘함을 주는 것이며, 역시 진실을 적극 감지함으로서 가능한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의리란 실하기 그지없는 공부라고 정의할 수밖에 없다.
1)의리의 역사적 실체
의리의 보편성 현재 의리라는 말은 특별히 정의를 요하는 것은 아닐 것이나, 근래에 이르도록 그 의미가 본격 적으로 적극 탐구된 예도 보기 힘들다. 원래 의리란 유교경전을 대표하는 말인데 이를 새로이 거론하려는 것은 그 의미의 보편성이 발휘되기를 바람이며 이 땅에서 영위돼온 전통적 의리의 본모습을 지금 시점에서 살펴 확인하려는 것이며, 특히는 한국이 실로 ‘의리의 나라일 수밖에 없다’는 국민 문화사의 한 단면적 의의를 새로이 살피기 위해서다.
의리는 우리 국민이 역사상 내내 중시하여왔다는 점에서, 그 의미의 범주와 영역이라든가 보편적인 성격을 생각해보며, 오늘에 그 본의를 회복하고 나아가 이를 적극 향유하여 재창출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등등의 문제와 전망을 특별한 제한 없이 그리고 보다 자유롭게 논급하고자 하였다.
절대가치 물론 여기서 의리란 일반적인 용례로 막연히 모든 선악시비를 포괄하여 지칭하려는 것은 아니다. 의리의 의미는 일정한 대표성 일관성 내지는 절대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의외로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는 상대적인 입장의 모든 선악시비를 정돈하고 아우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정의라는 말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며 우리 사상의 중심을 상징하는 말이고, 보다 더 문화전통에 맞고 절실한 것임을 생각하려는 것이다.
대개 이상적이거나 상대적인 가치란 일시적인 혹은 추상적 가변적인 것이어서 불완전하기 때문에 절실한 절대가치의 측면에서 의리의 실체를 따져보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오랜 역사에서 이룩한 이 일관되고 절대적인 가치를 찾고 추구할 수 있다면 개개의 삶이 보다 유력하고 안정되고 중심과 형평을 이루어 안정되고 생산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울러 또한 의리란 동시에 우리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 보다 더 삶에 친근하고 더 절실하고 더 넓고 더 깊은 일반적인 그리고 특히는 기쁜 그 어떤 것이라 점도 특별히 주목하려하였다.
시대성과 의리 최근 우리 사회에서 유비와 조조를 언급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유비는 의리의 상징이고 그 상대편에 있는 조조는 실용적 지혜의 상징으로 통하고 있다. 그리고 난세에는 조조가 태평시대에는 유비스타일이 알맞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그 뿐이 아니다. 유가보다는 묵가가 더 유용하고 공자보다는 도가가 더 시대에 맞는다는 생각도 널리 통하고 있다.
아마 이는 서구 합리주의와 중국의 실용노선이나 일본의 유교비판 같은 외래적 견해에 보다 영향을 받은 것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근대사에서는 이런 논쟁을 독자적으로 깊숙하고 치열하게 전개해본 적은 아마 없었기 때문이다. 전통유학은 그런 논쟁에 휘말릴 이유가 전연 없다. 의리란 스스로 충분히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사색으로 구성되는 절대적 보편사상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점을 많은 이들이 명백히 놓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교전통의 강인함 최근세 까지는 유학에 대한 논쟁이라든가 의심이란 그럴 필요가 없었으며 우리 사회가 유교적 전통을 생활로서 매우 강고하게 견지해오고 있었다. 근래에 들어 물론 부분적 유교비판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진정 진지하고 깊이를 갖춘 객관적 학구적 논쟁은 거의 없었다. 찻잔 속의 풍파 같은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식인 종교계에서 유교를 종교로 몰아가면서 극단적인 배척이 있어왔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데 그 영향도 현재에 아직 상당한 정도로 파급되어 미치고 있다. 물론 이 역시 절실한 학문적 탐구의 결과는 아니다. 서구나 일본의 일부 강력한 유교비판의 영향도 심각하게 받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대중 일반의 생각은 그와는 많이 다르다. 유교정신이 아직 엄연히 자연스럽고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일상의 관념과 생활로서 숨을 쉬면서 살아있다. 그들 순수대중들은 의심부터 하지는 않았고 서양 역사 문화를 기준으로 자신의 역사를 비하하려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유교와 근대 엄연히 유교는 비판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반의 삶을 아직 지배하고 있다는 것인데, 문제는 유교의 본모습을 보다 진지하게 탐구하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일반 생활유교로서 생활 스타일로서 존재하고 있으며 언어와 사고와 행동의 근저에 잠복하고 있으며 이를 일부에서 부정하려는 풍조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유학은 본시 생활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유교비판 현상은 아마도 근대화와 연관된 것으로서 전통적인 것들이 근대적인 개념의 반대편에 있다고 보고 유교는 반근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 일부 서구주의의 입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교의 중심과 지엽, 각 시대의 과제와 유교의 긴장관계 같은 문제가 이제 충분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유교를 유구한 전통사상사의 중심으로 인정하는데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나라의 실체적인 역사적 문화와 사상은 생각 없이 중절되어서는 안 되는 것일 것이다. 유교는 그저 소중한 보편적 배움의 양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근대성이란 반전통적인가? 사실 근대란 나아가서는 미래까지도, 하나의 역사의 발전 형태이므로 반전통적인 것은 전연 아니다. 서구에서도 신은 죽었다고 하였지만 역사가 죽었다고 한 적은 없었다. 서구의 역사상 중심사상인 그리스 철학전통이 반근대적인 것이라고 매도된 적도 없었다. 오히려 그 사상을 끊임없이 되살리고 진전하여 근대정신을 세웠다.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그러한 자신의 역사적 사상전통을 지금처럼 식자층이 매도한 예는 역사상 없었다. 그러나 이는 역시 치열하고 정중하며 심도 있는 사상적 학문적 결론인 것은 아니므로 역시 찻잔속의 태풍이다.
어떤 찬바람에도 불구하고 진정 고상한 역사적 정신은 소멸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그렇게 우리 역사적 정신을 요약 대변하는 것이 역시 바로 하나의 의리일 것이다. 물론 지식인들이 전통사상에 학문적으로 보다 주목하는 경향이 90년대 중반이후 서서히 대두하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물론 아직 우리 역사와 사상의 중심을 확고하게 잡아 나아가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전통적 의리는 별도의 독립된 체계를 가지고 사색 영위되었거나 예컨대 윤리학이나 철학 사회학 등 어느 특정한 학문양식으로 탐구되고 결행돼온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고유하게 유지해온 일반 보편적 사색과 가치와 신념을 여기에 포괄하여 표현한 의미가 강하였다. 매우 자연스런 귀결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널리 통하는 상식적 의미 아래 생활의리의 특징이 강하였고 이 역시 매우 유의미한 것이었다. 이것이 그대로 학문적 깊이를 추구함에 따라서는 그 스스로 깊은 철리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활의리 의리의 의미를 나름대로 생활로서 전승해오고 호흡하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만큼 체질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이 탐구되기 이전에 먼저 살아가야하는 것과 같다. 의리 자체를 향유하였던 것이다. 의리 독자의 의미에 대하여 일정한 논설이나 특별한 정의가 있어온 것은 아니었지만 주로 경학과 경서에 준거하여 그 행실이 요약 평가되어 왔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궁극적으로는 주로 경학적 사색과 그 확대 변용의 방식에 의하여 이해되고 가름되었으며 그 맥락에서 그대로 자유롭게 생활화된 것이었다.
물론 여기서 언급한 경학이란 특별한 전적만을 추종하였음을 말한 것은 아니고 우리들의 일상 보편의 사색에 어떤 역사적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란 의미이며 경학 텍스트에 오로지 몰두하여 개인의 삶이 그에 매몰되었었거나 고착되거나 나아가 그것이 타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어떤 특별한 경학적 체제를 추구하거나 정의를 새로이 하는 노력을 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보편 일반의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 단지 보다 넓은 이해를 도모하고 방만해 보일 수도 있는 다양한 입장에서 의리를 제한 없이 생각함으로써 의리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여러 가능성을 충분히 타진하여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정신 특히 의리는 동아시아 정신을 지탱해온 사상적 명분의 골간이었다는 점에 중심을 두고 과연 그렇다면 의리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다양한 행동지침은 구체적으로는 당연히 사상과 역사의 진전에 따라서 질적으로 변전해 나아갔을 것은 자명한 것이므로 세태에 따라서 변전한 그 내면적인 의미와 그 확장 가능한 의미를 최대한 생각해보고자 하였다. 또한 공자가 일생의 학행을 결산하기 위하여 춘추를 지어 대의를 천명하였다는 점을 내내 유의하고자 한다. 개인과 사회에서 수행된 의리의 궁극은 결국 온 천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왕의 시대와 국민의 시대의 가치관은 다른 것이지만 그 일관된 보편적 가치탐구를 결여한다면 역사적 의미의 의리를 구현할 수 없을 것이다.
논어의 개권초지: 모든 정당한 명분을 대표할 수 있는 이 의리의 일차적 근원으로서 제일 먼저 주목해야 마땅한 것은 논어다. 그중 ‘학이시습(學而時習)’은 명실상부한 성인의 가르침이며 의리의 남상이다. 또 의리의 끝이기도 하다. 시비선악을 분별하는 역량을 가르치고자 한 것이며, 단순한 학습론이나 공부 에 대한 논의가 아니고 그 자체가 하나의 인생론이며 삶의 양식이다. ‘배움이 기쁘다.’고 한 것은 의리의 바람이며 하나의 원과 망을 나타낸다. ‘벗이 찾아오니 즐겁다.’고 한 것은 배움의 소통의 기쁨이며 배움의 확산의 즐거움이다. 배움은 열린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알자주지 않아도 성나지 않는다.’는 것은 의리 결단이 전연 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의미하고 자신의 깊은 결의가 있는 자가 ‘군자’라는 뜻이다.
‘배우고 때에 따라 익혀 나아간다.’는 것은 인생에서 배움의 의미와 가치 나아가 그 방법론을 아울러 요약해 말한 것이다. 특정한 과목의 학습이나 일정한 가치관과 정해진 규율을 ‘지도’ ‘교육’ 혹은 ‘학습’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컨대 공직자들이 국민과의 행정적 관계를 ‘지도’한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 특별한 정의나 배려 없이 사용하는 ‘지도’라든가 ‘정신교육’ 혹은 ‘인성교육’이라는 말들이 뜻밖에 진실을 왜곡하고 거품을 일으키는 권위주의의 병폐를 일으킬 수 있다. 전통적인 배움의 삶의 뜻과는 많이 다른 것이다.
처음의 ‘학이(學而)’에서 학(學)이란 문자 그대로 배움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배움을 말한 것은 아니다. 삶의 양식 곧 배움의 삶을 말한 것이다. 배움이나 공부만을 논한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논한 것이라는 뜻이다. 배움의 삶이란, 삶 그 자체를 오로지 전체적으로 배움으로 인식하고 배움으로 영위하는 것을 말한다. 삶의 새로운 양식이며 삶의 바람직한 새로운 스타일을 말한 것이다. 물론 이 배움이란 삶의 진상이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겸허함을 말한다.
‘시습’에서 ‘시’란 삶의 시간 자체다. 삶의 시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상(事相)에 배움으로 대응할 것을 말한 것이다. 배움이 현실에 실시간으로 의기투합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임을 말한다. ‘습’이란 방법론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나 배움이나 느낌일지라도 실감되어 몸으로 구현되지 못한다면 의미 없을 것이다. 습이란 ‘익힘’이라고 해석되는데 기억 속에 익힘을 말할 뿐만 아니라 전인적으로 실감하고 실행할 수 있는 공부를 말한 것이다. 배움을 실제로 나의 영육으로 보다 더 친밀히 일치하게 하는 것이다. 습이란 모든 절실한 자각의 체험이다.
그러므로 ‘학’은 배움이라 할 수 있고 ‘습’은 공부라고 할 수 있다. 공부란 스스로 실감하고 이를 전인적인 조응(調應)의 상태로 긴장되게 유지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오로지 그 같은 ‘학습상황’에서 ‘시의적절함’을 견지하고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의리다. 그러므로 학습과 의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공자가 배움의 삶을 처음 제창하고 강조하였을 때 이 배움의 삶이 과연 옳고 정당한 것이며 인류가 추구해야할 최고의 이상적인 생활이라고 인정한다면 이때의 의리란 배움을 견지하는 것이다. 이는 따라서 ‘배움의 의리’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개 배우고 공부하는 것이 대개는 즐거운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늘의 학습개념에서는 분명 그러하다. 성취하고 난 보람은 무한할 수 있지만 그 배움의 과정이 힘들다는 것인데 과연 그런 배움 밖에 없는 것인가?
공자는 이와 다른 말씀으로 논어를 시작한다.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그러나 공자는 안연을 제외하고는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배움은 기쁨을 위한 것인데 그렇게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배움을 좋아하는 삶은 하나의 이상이지만 도달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쉬운 일이라면 공자가 그렇게 강조하였을 리가 없을 것이다.
배움의 삶의 진정한 가치를 공자가 발견하였지만 이를 제대로 구현한 이가 거의 없었으므로 우리에게 남아있는 최대의 과제 역시 배움의 삶을 관철하는 것일 것이다. 배움의 삶을 견지하는 정도와 수준이 바로 의리의 품격을 이루는 것임은 당연할 것이다. 안연과 같은 호학의 인격체가 의리에 있어서도 진정 이상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의 당당함 일어섬 : 인생에서 최선의 판단이란 사실 존재하기 어렵다. 삶은 다양하고 매순간이 새롭게 창조되기를 기다리는 속성을 스스로 지니기 때문이다. 인생은 그러나 항시 선택을 요구하며 이를 피할 수는 없다. 다만 변동하는 삶의 내외 상황 가운데서 보다 적절한 선택을 구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 적절하다는 것을 추구할 때 우리는 먼저 한없는 막연함을 느낀다. 주역에서 말하는 ‘선미후득(先迷後得)’의 그 막연함의 타개책은 단 하나다. 흔들림 없이 자신을 굳건히 모든 삶의 중심으로 자각 견지 하면서도 대외적으로 막힘없는 배움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 때 나의 정립이 먼저 요구된다. 내가 반듯이 서 있어야 모든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설 것인가 즉 반듯이 서 있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경건한 배움의 자세로 서는 것일 뿐이다. 그것이 바로 의리다. 우리는 오로지 배움으로 설 수 있을 것이다.
배움을 향하여 선 자신은 배움을 유지하면서 그 배움을 실행한다. 그것은 나의 새로운 세움이다. 내가 선 것은 결국 세움을 위한 것이다. 사람은 직립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으로 진화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스스로 섬을 넘어 나의 외부에 나의 뜻을 따라서 무언가를 세웠을 때 이차적으로 문명과 문화가 탄생하였다. 의리는 바로 배움을 중심으로 한 섬과 세움의 이중적인 문제다. 배움에 따라 당연히 무엇을 세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의리다.
의리는 형이상학인가 : 의리란 순수한 가치탐구의 결과지만 서구적인 형이상학은 아니다. 형이상학과 똑같은 여러 가지 모순의 데이터에 기초하지만 그 현실의 여러 모순들을 성급하게 논리적으로 갈구하여 풀어보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리는 다만 우리의 매 순간의 갖은 생각과 느낌이 일으키는 자신과의 전인적 반응에 문제가 있을 때 일어나는 자연적 질문에 의한 것이며, 하나의 생명과 삶의 제 여건 사이의 조화 균형을 이루기 위한 정신 행동 기제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 그 스스로 온전히 심신이 편안하다면 그는 의롭게 사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공자가 삼년상의 단축을 주장한 재여에게 ‘네 마음이 편안하면 하라’ 고 한 것이 그것이다. 물론 나와 관계된 모든 주변 역시 편안해져야 할 것이다. 의리란 편안하고 당당한 삶의 방도를 찾음이다. 나의 모든 지감이 일체화된 상태에서 넓은 일치감의 감동을 느끼는 그런 것이다.
평소 우리가 알고 있는 의리란 결연한 행동과 실천으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그 본질 면에서 보면 분명 단지 정신적인 가치다. 비물질적인 가치란 뜻이다. 정신적인 가치 혹은 비물질적인 가치란 삶의 저변이나 그 궁극의 끝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최상의 가치다. 이는 확신으로 이루어진 가치이며 생각하고 느끼는 가치다. 주로 마음으로 인정하고 감동하는 가치다. 실제로 만져보고 감촉할 수 있어 일상에서 누리는 효용가치는 아니란 뜻이다. 맹자는 성선을 논하면서 ‘정(情)의 실상을 보면 선하다’ 라고 간단히 정의한 적이 있었다. 정이란 마음 의리 감정 의욕 애욕 등을 포괄한 지칭어이다. 이를 더 부연하여 인의예지를 말하였었다.
그렇게 실제로 누릴 수 없는 가치가 과연 의미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 의문에 도전하고 그 의문을 풀고 나아가 무상의 가치임을 확신하게 하고 또 이를 삶으로 승화하게 한 것이 고대적 정신이며 가르침이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동아시아 고대문화다. 의리란 그러므로 정신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나아가 정신과 삶과 특정 행동의 측면에 걸쳐 어우러져 있다.
의리의 문화 : 고대문화를 의리의 문화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은 고대 역사와 문화가 의외로 의리의 힘으로 구동되어 나아갔기 때문이다. 만일 의리가 없었다면 어떤 역사나 사상이나 제도가 끊어짐 없이 이어져 발전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리는 하나의 튼튼한 궤도와 같은 것이며 삶이란 그 궤도를 달리는 열차다.
예를 들어 중국이나 한국의 고대국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권력의 쟁탈과 전쟁 계급간의 모순과 충돌 착취 등의 난관에도 불구하고 제도와 문화 정치가 진전되어 나아간 것은 바로 그 내면에서 도저히 의리를 부정할 수 없었던 정신의 힘에 있었다. 인간의 타락상에도 불구하고 예컨대 비틀거리며 나아간 것 같지만 그러나 결국은 의리의 길을 따라갔던 것이었다.
공자 맹자가 만난 왕들이 그 정치적 도덕적 유세를 동의하면서도 받아들여 수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정을 주장하고 백성을 위하라고 한 가르침은 수용하였다. 권력을 나누고 재부를 분산해주고 세금을 줄이고 전쟁을 앞세우지 말라는 가르침도 수행하지는 않았지만 부정하지 못하였다. 이들 가르침이 정당함을 부정할 수 없었기에 스스로 어떤 순수한 권위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들 가르침은 바로 의리의 길을 보여주었고 이것이 하나의 중후한 기준이 되어 서서히 따라서 수행되어 나아갔다. 한나라 시대의 위민정치가 그 예가 된다. 그 가르침은 부정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게 된 것이며 수행이 가능한 여건에서 추진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공자와 맹자가 그 시대에 한일이 전연 없었다는 주장은 허무한 주장이다.
정신유산 : 동아시아의 정신유산은 서너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될 수 있다. 첫째 공자학이라는 특징으로 살펴볼 수 있다. 공자는 고대 학문의 집대성자로서 고대정신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의 논어는 ‘우주제일서’라고 칭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다는 표현이다. 논어가 진정 우주제일서의 가치가 있다면 이는 오로지 배움의 삶을 강조한데 기인한다. 공자 자신은 ‘의리의 서’인 춘추를 편찬하고 춘추라는 책을 통해서 자신을 평가해주기를 바랬지만 실은 배움의 삶을 설파한 논어로 인해 공자는 자신의 진면목을 온전히 보여준 것이었다.
논어에는 배움의 삶의 가치를 중심으로 배움이 인생에서 어떻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일 수 있는가를 논하고 가르치고 그 가치와 효용을 느끼고 체험하는 전 과정의 여러 내용들이 망라되어 있다. 공자는 배움을 통해서 한 시대를 이끌어가고자 하였고 군주들을 계도하고 사람을 가르치고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 모든 노력들은 오로지 배움의 자세로부터 시작되고 그 결실로서 그대로 가르침이 되어 빛났던 것이었다. 논어의 말씀들은 그러나 결코 그 결론이 아니고 배움으로 이룰 수 있는 가치와 의미 그리고 배움으로 얻어지는 기쁨 행복 보람의 증좌와 경험들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각 시대에 이를 익혀서 시대에 맞도록 배움의 삶을 구현하도록 한 것이므로 논어는 결코 결론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배움의 자세와 가르침의 노력 그리고 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려는 의지의 3가지가 어울려 이루어진 일이었다는 사실은 기억해야한다.
둘째는 역사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자시대는 춘추시대라고 칭해진다. 춘추시대는 혼란의 시기로 규정된다. 초기국가에서 마련된 제도와 삶의 양식 그리고 권력이 변동하면서 무한한 충돌과 모순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시대는 경제적 발전기 기술의 혁신시기 국가와 권력의 성장기 등으로도 정의된다. 변동하면서도 국가제도는 새로이 창안되고 있었고 권력이 구체화되어 갔다. 나아가서는 거대한 진·한 제국의 싹이 자라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국가적 사회적 제도적 진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역시 변함없이 중요한 것은 민생이었다. 백성의 삶이 보호되지 못하고 무너진다면 어떤 성장과 발전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이 같은 시대문제를 진단하고 민생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민생을 중심에 둔 모든 제도와 정치를 심사숙고하고 제시하였던 것이었다.
셋째는 정신유산은 절대적이고 자율적인 가치를 독립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점을 또한 생각해야한다. 말하자면 사상적 정신적 자율성에 따라서 순수한 정신가치가 절대적으로 추구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생물학적 삶에 머무를 수 없는 존재다. 사람은 나무처럼 조용히 살 수 없으며 동물처럼 싸우며 거칠게 살 수도 없다. 호랑이처럼 가죽만을 남길 수 없다는 것이다. 정신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바로 배움의 이유이기도 하다. 고전적 정신은 바로 그 가치를 묻고 탐구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결론이 바로 인의(仁義)였다. 정신적 삶의 지표로서 의를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얻게되는 것이 인이다. 또 그 인을 수행하는 것이 의다. 이 전 과정이 배움과 공부를 통해 영위되었던 것이 고대정신과 문화의 본질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부터 : 말 한마디 실수로도 우리는 흔히 크고 작은 여러 곤경에 처하곤 한다. 말이란 보이지 않으면서 우리를 지배하는 이치(理致)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 감촉되지 않는 것이 진정 중요하다. 그 빈 공간에서 질서와 힘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도 천지간의 어떤 사물이나 공간도 사로 감통한다. 왜냐하면 같은 이치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중용에서는 시경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내가 가진 명덕(明德)은 크게 소리 나거나 생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였고 공자는 말하기를 “소리와 색은 백성을 교화하는데 저급한 것이다.” 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 덕은 가볍기가 털과 같으니 털은 많이 모여질 수라도 있지만 위 하늘에 실린 것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면서 지극한 것이다.”
공간에 존재하고 공간을 지배하는 힘과 물질이 있다는 뜻이다. 3-4 천 년 전에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다름 아니다. 우리의 말과 우리 몸과 우리 주변과 모든 삼라만상이 공간과 함께 어울려 서로 상통하는 존재이며 그 뿌리에 있어 영원한 존재라는 사실은 자연과학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매일 일상에서 체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보이지 않는 공간의 이치를 느끼고 표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신통한 것일 것이다. 말이 ‘말이 씨가된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이 역시 그 한 예다.
겨울철에 접어들 때 누군가가 ”금년에 감기 안 걸릴 것 같아, 지금 몸 상태가 아주 좋거든...“라고 한 후에 바로 지독한 독감에 걸리는 경험을 흔히 하게 된다. 말의 저주도 자주 경험하는 일이다. 진정으로 저주의 말을 퍼부으면 분명 어떤 영향이 나타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마음속에 어떤 맺힘은 스스로 풀어야 하는데 그대로 방치할 경우 예기치 않게 그 마음으로 인해 어떤 불상사가 꼭 나게 된다. 저주의 말이나 원한의 마음 이런 것들이 무서운 것임을 본다. 왜 그런가 하면 마음과 말과 행동이 모두 이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 말과 마음과 행동이 이치와 일치하지 않을 때 즉 진실이 아닐 때 서로에게 분명한 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간의 존재를 말해주는 증좌다.
나에게 가두인 말이나 마음 행동은 나만의 독한 냄새를 가진다. 나의 냄새가 왜 독한가 하면 사사로움으로 뭉쳐져 있어 독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향기라도 지나치게 농축하면 독이 된다. 독한 것이 해를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일 것이다. 심지어 사람의 콧물도 보통 때는 비강을 적셔주는 윤활제이며 오염을 씻어주는 것이지만 많아지면 콧물이 되고 농축되면 지독한 악취가 되고 나아가서는 병이된다. 공간과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독함의 증상이다. 이들 역시 지주 경험하는 일이다. 문제는 그 소통이 말로 되는 것은 아니다. 소통의 진정한 원칙은 진실뿐이다. 진실은 어질고 생명적이며 편안한 그 무엇이지만 전인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절실함으로 다가오는 그런 것이다. 진실이 아닌 소통의 수단들은 길게 작용할 수 없다.
우리 신화에 홍익인간이란 의미심장한 표상이 있다. 홍익이란 이롭게 한다는 뜻이니 바로 공간의 의지 즉 진실의 모습이다. 진실은 천이며 명이며 하늘이며 땅이며 신이며 귀다. 인간이란 사람의 공간이란 뜻인데 이중적인 의미를 아우른 고차원의 언어다.
첫째는 ‘인간 공간’ 즉 일정한 공간의 점유자인 사람 자신을 말한다.
둘째는 사람 사이의 공간이다. 공간이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이며 그 끝이고 살 아감의 무대다.
바로 그 공간은 진실의 거소다. 사람 자신이 진실의 거소인 셈이다. 잘 응축된 진실 그것이 향기로운 인간이다. 다만 너무 농축하지 말아야 할 뿐이다. 홍인인간 사상은 사람이 공간의 존재임을 처음으로 설파한 파천황의 언어다. 사람의 공간 사람 사이의 공간 뿐만 아니라 지상의 공간도 있고 천상의 공간도 있다. 이를 삼재사상이라고 한다. 모두 공간을 깨달음으로 인해 얻어진 불멸의 철학적 범주다. 의리란 원의에서는 바로 그 공간정신을 고수하는 삶이다. 공간정신은 배움을 통해 절감하고 느껴 행하는 것이므로 배움과 공부의 소산이라고 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의리에서는 타고난 천재가 있을 수 없다. 어진 인정은 타고 날 수 있으나 밝은 지혜도 타고나는 것이나 의리는 전연 그렇지 않다. 배우고 공부하지 않은 자가 진정 큰 의리를 행한 적은 거의 없었다. 진정한 의리란 알고 느껴야만 확고하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움의 삶의 기쁨 : 우리에게 매일의 혁신은 오랜 삶의 지표였다.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이 새로운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고대 현자들은 그침 없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대학의 경 일장 첫머리에서 배움의 도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고 하였다. 명덕을 밝힌다는 말은 사실은 명덕을 분명히 깨닫는 다는 의미다. 또한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백성을 새롭게 함이란 새롭게 다스리겠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삶을 경신하고 개선하겠다는 말이다. 끝으로 지극한 선에 머무르는 데 있다고 하였다. 지극한 선에 머무른다는 것은 의리를 행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할 것이다.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게 아는데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무는 데 있다.”
여기에서 ‘신민(新民)’은 원래는 친민(親民)으로 되어 있는데 주자는 이를 신(新)으로 해석하였다. 고대 문사사용의 원칙에 비추어 신민(新民)으로 읽는 것 역시 아무런 하자가 없으므로 이견이 있을 수는 있으나 부정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친민’이라고 읽었을 때와 ‘신민’이라고 읽었을 때 사실상의 의미의 차이는 없다. 모두 배움을 말한 것이기 때문에 배움의 삶이 백성에게 일상화하도록 한다는 것이 ‘친민’이고 백성의 삶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 ‘신민’인데 배움 자체가 스스로 ‘새로움’을 지향하는 것이므로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배움의 내용이 새로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크고 작은 공·사의 삶에서 새롭게 하는 것이 왜 어려운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배움의 삶이 진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생명은 유한하다. 타고난 선한 마음이라 할지라도 이 선한 마음이 스스로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역시 생명이 쇠하면서 감쇄될 수 있다. 타고난 선한 마음과 함께 건강한 몸이 역시 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몸이 쇠하고 건전하고 선한 마음도 위협받을 때 무슨 힘으로 살 것인가? 그 때에 유일한 해결책이 배움의 삶을 강화하는 길이다. 밝은 사려분별을 유지하는 것이 빛나는 생명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움보다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그가 이상에 불타는 사람이라면 지금 바라는 이상을 향한 개혁이 왜 이렇게 더디게 나아가는지 답답하게 생각할 것이다. 역사상의 모든 시대의 변화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혁신의 이상이 살아있어서 현실의 더딘 진행을 이겨 나아갔었다.
배움의 삶의 시작 : 진정한 배움은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넓은 의미에서는 의리란 배움의 시작이며 또한 그 완성이다. 그것이 바르게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논어 첫머리에서 배우고 익히면 즐겁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가장 아끼는 수제자 안연이 독실한 학행의 삶을 이어가다가 예기치 않게 요절하자 그는 목 놓아 울었다. 배움이나 의리란 우리가 삶 중에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특수한 사상들에 대한 ‘희노애락’이 아니라 보편한 힘에 대한 믿음으로 출발하는 것이므로 어떤 슬픔이나 비극도 결코 공부와 의리를 무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보편한 힘이란 보이지 않는 데 있으나 또한 피부로 느껴 절감할 수도 있는 그런 것이다.
빈한한 생활을 하며 학문에 매진하던 안회는 천재적인 재능과 품성으로 높은 경지를 이룬 제자였고 공자를 이어갈 재목이었으므로 그의 예기치 않은 죽음은 공자에게 자식의 죽음과 꼭 같은 슬픔이었다. 안연의 빈궁한 삶과 요절 그리고 공자 자신의 고초에도 불구하고 공자에게 배움은 과연 기쁜 것이었으므로 공자는 저녁에 도를 들으면 아침에 죽어도 좋다고 선언하였다. 배움은 고통과 비극마저 넘어서서 진정한 희열을 향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배움은 꼭 세속적 행복이나 부귀영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공부는 안락함을 위한 것도 아니며 즐거움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배움과 공부는 과연 기쁜 것인가 하고 자문할 때가 있을 수 있다. 일신의 기쁨과 편안함과 부와 명예는 대개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일반조건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대외적인 조건에 주로 의존한다. 즉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거나 육체적인 것이다. 정말로 속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즐거움은 따로 있다는 데에 동의할 수 있다면 비로소 배움의 기쁨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배움이 기쁠 수 있는 진정한 이유는 사실 배움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배움으로 인해 얻어지는 넓은 이해와 공감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가 영위하는 삶이 드디어 당당하기 때문에 진정 기쁜 것이다. 떳떳함보다 더 큰 열락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나의 학당인 춘추학사를 찾아온 공부 수행자 노모씨가 있었다. 계룡산에서 17년간 도를 닦고 몸을 수련한 사람이었으며 세상에 알려진 우학도인의 몇 안 되는 제자였다. 그는 잠시 대담을 나누다가 나에게 잠시 후 물었다.
“경전을 공부하면 어떻게 됩니까?”
나는 한마디로 답하였다.
“당당해지지요.”
그는 그 길로 여러 해에 걸쳐 사서삼경 공부를 수행하였다. 물론 그의 주된 관심분야인 기학(氣學)을 위한 것이었다. 배움이란 결국은 떳떳함의 체험이다. 당당함 즉 떳떳함을 통해서 진정한 기쁨을 얻게 되는 그런 것이다. 그 떳떳함을 견지하는 힘 그것이 바로 의리다. 배움은 결국은 오직 의리를 통해서만 완성되는 것이다.
수행자 노씨는 공부를 생활화하는 데 힘썼고 진정한 학생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그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다가 큰 병을 얻었다. 다른 사제사이에 비할 수는 없지만 나는 한없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나의 가르침이 너무도 부족한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깊은 자괴감 때문이다. 그가 밝게 투병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나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언젠가 드디어는 치유가 가능할지 하는 것은 오직 공부의 보람이 어떤가 하는 문제외도 직결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어느 정도는 뚜렷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당당함과 호연지기가 회생의 힘을 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공자가 만년에 천하주유를 그만두고 노나라로 돌아와 학문과 편찬과 가르침에 전념한 것도 분명 하나의 명백한 의리였다. 피할 수 없는 수많은 삶의 고뇌와 근심은 그 당당함의 삶을 견지함으로 인해서 기쁨으로 전환될 수 있다면 그가 곧 다름 아닌 의인(義人)일 것이다.
유사 이래 공자가 배움의 삶을 처음 연 이래로, 사람은 무엇보다도 지적인 존재가 된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되었음’으로 인해 당당할 수 있게 되었고 보다 굳은 의지를 갖추었으며, 확신과 기쁨을 찾아가는 삶을 스스로 열어가게 되었다. 공자가 강조하는 배움이란 이미 늘 있어왔던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전에 비해 전연 새로운 삶의 양식이었다.
인생 자체를 그대로 배움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배움이란 과거나 현재에 이미 있어온 일이지만 배움이 삶이라는 일치 의식은 공자이전엔 없었다. 단지 일상으로 신앙과 제사의례가 일반 문화를 이끌었을 뿐이었다. 물론 그 내부에서는 지적 성장이 꾸준히 있었다. 의리란 바로 그 새로운 배움의 삶이 이룩한 영원하고 위대한 실천 양식이다.
‘배움의 삶’이란 일반의 단순한 ‘익힘’이나 ‘배움’과 질적으로 다른 면이 있다. 첫째는 배움이 어떤 이유에 의한 것이기 보다 그대로 삶의 질적인 실체를 이루는 것 즉 삶의 전부로 받아들인다. 둘째는 그 배움의 대상이 특정 사물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천리와 지리 인간의 광범한 문제에서 무제한으로 출발한다. 이 때 다만 사실성의 근거를 나의 지감으로 따라가는 공부이며 막연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천리란 요즘말로 형이상학적 관심이다. 지리란 자연 현상에 대한 탐구다. 인간이란 사람에 대한 이해다. 특히는 이 세 가지의 분야에서 순수하고 절실한 일치감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그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마음공부가 있다. 맹자가 지적한 “마음을 다하면 본성을 알고 본성을 알면 천리를 안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또 한 방법으로는 주지하듯이 대학에서 말하는 ‘격물치지’가 있다. 그 배움으로부터 일차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도(道)이며 이(理)이다.
의리란 그 같은 배움과 공부의 이차적인 완성 단계로서 한 실천 면모다. 조용히 삶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배움과 공부의 큰 뿌리는 역시 일상의 고뇌다. 우리는 삶에서 고뇌를 느낄 때 비로소 사물의 진상을 궁리하게 된다. 보다 진실에 입학하여 절실하게 대응함으로써 고뇌를 기쁨으로 전환하는 길을 열기 위해서다. 공자가 논어의 서두에서 “배우고 익히면 기쁘다” 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고뇌는 의리의 시작이며 동아시아 정신의 출발이었다. 군자란 자신과 사람들의 안녕과 기쁨을 위해 걱정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진실로 순수한 천리, 인을 공부하여 순리로 행하여 나아가는 삶을 이상으로 여겼지만 이미 공자 당대는 혼란과 상쟁의 시대였고 민생의 곤란이 극심한 여건이었다. 군자들의 내외의 삶은 고뇌와 우환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다. 공자의 시대는 이미 극명한 의리가 요구되는 시대였다. 인의 시대는 이미 고대의 황금시절에 지나갔고 그 후로도 이제껏 부활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이 바로 공자의 고뇌였다.
실제로 우리가 아무것도 고뇌하지 않는다면 아마 배움이나 공부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뇌는 부정이나 의심과는 다르다. 고뇌는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애정과 긍정의 표현이다. 동아시아 정신이 자신의 믿음과 삶의 긍정에서 출발하였으므로 그에 바탕을 둔 의리 역시 생명을 위한 ‘삶의 철학’의 한 구현형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의(義) 글자에 양(羊)자가 들어있는 까닭일 것이다. 물론 인(仁)은 더더구나 본격적인 생명존중의 생명지향성을 나타낸다.
물론 가장 흔한 고뇌의 인자는 과실이며 착오이며 막힘이나 실수다. 이로 인해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이다. 매사에 ‘과불급’을 경계하는 것도 그러한 고뇌를 해소하거나 막고자 함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중용(中庸)이란 개념도 일부는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게 된다. 대개 우리가 말하는 중용은 ‘과불급’이 없는 상태이므로 이상의 경지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공부의 출발일 뿐이다. 물론 그 끝일 수도 있다.
실수나 고뇌를 인정하지 않거나 스스로 합리화하거나 다른 아집이나 집착 혹은 고집을 가지고 있다면 물론 배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중용을 추구하는 마음 역시 배움과 공부를 희구하는 마음으로 귀결된다. 중용이란 판단의 회피나 중지를 의미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의 해석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다.
중용의 여러 의미 : 맹자의 설에 따라서 의리를 ‘악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하였을 때 의리란 결국 마음의 문제다. 부끄러움이란 당당하지 못함의 심태다. 이 스스로 미워할만한 혹은 부끄러워할 만한 마음의 심태는 결국 천심 혹은 양심의 일탈을 의미한다. 일탈하지 않은 상태를 ‘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변함이 없을 때 다시 ‘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건 중용(中庸)이 단지 실수나 부적절함이나 착오의 회피를 위한 단순한 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중이란 단적으로 천심과의 만남을 말하고 그 변함없는 적절함을 말한다고 보게 된다.
외형상으로는 치우침이 없는 것이지만 본질상으로는 순수함을 지키는 것이 위주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순수함이란 의미상 우주의 실체다. ‘용’이란 일상이라는 의미이다. 곧 일상의 삶 속에 만나고 견지해야 할 막힘이 없는 통달된 순수한 마음의 일치감이나 그 기쁨을 말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성찰을 전제로 한 배움과 공부를 통해서일 것이므로, 중용 역시 공부를 말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경에서는 단지 ‘윤집기중(允執其中)’하라고 말했을 뿐이다.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고 도는 은미하다“는 그 구절 앞의 수식어는 마음속에서 도를 찾으라는 어의로 보게 된다. 역시 공부를 말한 것이다. ‘중’이란 ‘만남’이란 어의로서 마음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서 도를 찾는다는 말은 맹자가
“순수한 마음을 다하면 본성을 알게 되고 본성을 알게 되면 천명을 알게 된다.”
고한 것과 잘 통한다.
전통적인 어의에서 본 ‘중용’은 서경에 대한 ‘심오한 해석’의 결과인데 ‘도(道)’부분에 중심을 두어서 도심으로부터 벗어남을 경계한 것이었다. 도란 물론 ‘배움으로 얻어진 순수한 이치의 이해규율’을 의미한다. 도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까닭이다. 도는 결국은 자신의 마음의 모습으로 재구성되고 궁극적으로 구현되는데 그 때 자신의 도와 일치되는 마음이 바로 중일 것이다. 우리는 성선설을 믿지만 본성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자신의 마음으로 감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마음의 감통은 그대로 자신의 기로 전환되는 것이며 나아가 스스로의 기와 형으로 형상화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맹자는 이를 두고 몸에 충만한 그 무엇이라고 하였다. 보이지 않는 도가 쌓임이며 그것이 성선의 증거가 된다. 맹자는 이를 고(故)라고도 하였는데 해와 달이 도는 이치 즉 공자의 ‘눈을 밝게 뜨고도 보이지 는(明目而視之不見)’ 내면에 존재하는 질서다. 맹자의 ‘의를 결집하여 생겨나는(集義所生)’ 것이 역시 그런 의미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보이지 않는 현상이 보임의 현상과 동질적이라는 이해가 이미 성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보이지 않는 현상이란 마음이며 공간이다. 공간의 비어 있지만 허무한 것이 아니라 생령이 충만한 것이라고 인식하였던 것이다. 허령불매(虛靈不昧)가 그것이다. 의리란 그같이 실을 직시하는 공부의 실행이며 그 실천이다. 우주 공간에 실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죽음마저 허무하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사생취의(捨生取義)’가 가능한 것이 아닌가. 의리는 생명적 공간의 사상을 실행함이기도 하다.
공부와 의리: 우리는 배워서 의리를 알고 인의 경지에 도달한다. 그 이후에는 공부를 통하여 이를 체현한다. 이 역시 의리다. 배움과 공부는 의리의 시작이며 끝이다. 공자의 배움이란 주지하듯이 사람과 사물에 대한 공감 이해 앎 깨달음이며, 공부란 그 실천이며 익힘인데 그 본질은 하나 됨이다. ‘하나 됨’을 행하는 것이 인이며 하나 됨을 고수하여 지키고 견지하고 관철하는 것이 의리다. 그 같은 배움을 구현함이 공부일 것인데 공자의 ‘30십이 되어 입(立)하였다는 것’이 그것이며 배우고 시습(時習)하는 것이 그것이다. 공부의 단계에서는 인의가 따로 없는 것이다. 도달함이 인이며 견지함이 의인데 일상에서 평소 수행하는 단계에서는 인이 시작이며 의가 끝이다.
하나 됨이란 사물이 나의 마음과 격의 없이 공감함이며 그 절실한 체현이다. 그로부터 나아가서 궁극에서는 보이지 않는 천리를 공감함이다. 그 하나 됨의 방법론이 바로 구체적인 여러 공부개념일 것이다. 예컨대 서심(恕心) 극기(克己) 자성(自省) 무본(務本) 종시(終始) 격물(格物) 자중(自重) 자락(自樂) 자안(自安) 지언(知言) 신언(慎言) 적자심(赤子心) 등의 절실한 생활 체험공부가 그것이다.
대개 의리의 어의는 일반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배움과 연관하면서 ‘궁극적인 옳고 그름’을 ‘밝히고’ 이를 벗어나지 않고 ‘실행해 나아가는 것’ 즉 결국은 역시 공부를 말한다. 일견하여 매우 평이하고 광범한 혹은 매우 일상적인 의미를 가진 듯이 보인다. 그러나 막연하고 안이한 것은 아니며 절실한 말이고, 오히려 인생에서 배운 모든 결과를 잘 요약한 말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무엇이 옳은가 하는 중대하고 철학적인 질문을 항시 그 안에서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질문의 중심 상대는 언제나 공부의 실효(實效)에 두어져 있다.
옳고 그름을 밝히는 일은 타고난 지혜로 되는 것은 아니다. 배움을 통해 깨닫고 공부를 통해 체현한다. 절실히 느끼고 진실한 현실로서 행한다는 의미다. 맹자는 시비를 가리는 마음이 지혜라고 하였는데 시비를 가리는 마음이 바로 의리의 소임이다. 맹자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의리라고 하였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시비를 절실하게 수행하고 있음을 말한다. 이 역시 의리다. 다만 수치를 안다고 한 것은 지적이고 정의적인 양면에서 시비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비와 나 나 자신이 하나 된 표상이다. 그것이 의리라는 것이다. 지혜는 의리의 과정이다. 맹자는 또한 차마하지 못하는 것이 인이라고 하였다. 본성적으로 그러할 수도 있으나 시비를 알고 이 역시 지적 정의적으로 그 아는 지혜와 일치되어 일으키는 마음의 작용이 또한 차마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시 인도 시비와 연관된다. 맹자는 또한 사양할 줄 아는 것이 예라고 하였다. 맹자는 ‘얻음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라’고 하였다. 의리에 옳지 않을 때는 사양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도 시비와 의와 직결된다. 맹자의 사단설은 결국 의리설인 셈이다. 의리가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의의 전제인 배움이란 다름 아닌 삶의 진상인 이치에 관한 전인적인 지적 갈구다. 또한 밝힌다는 말은 내외의 자각, 즉 객관적 탐구가 내적으로 순수한 자각과 체험으로 일치되어 균형을 이루는 일의 중요성을 아울러 말한 것이다. 대학에서 스스로 깨달음을 의미하는 ’자명(自明)‘을 말한 것이 그것이다. 자명이란 스스로의 체험과 스스로의 절실함으로 깨달아가는 것을 지칭한 말일 것이다. 이 때 밝을 명자는 깨닫는다는 뜻과 깨달음을 결행한다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명(明)이란 글자 안에서도 인의의 뜻이 동시에 아울러 묻어나고 있는 것이다. ’깨우쳐 행함‘은 인의 속성이며 ’밝게 행함‘은 의의 속성이다. 의는 인보다 더 엄정한 실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리란 깨달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진리와 상황과 사리 도리에 맞는가? 하는 점과 이를 행동으로 철저히 실천 견지하였는가? 하는 점이 극도로 긴장되게 어우러진 말이다. 행동의 질과 순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 때 그 물음에 응한 스스로의 지적 기준과 그 답에 대한 개인의 실천 양태가 구체적 의리의 질과 내용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무엇을 의롭다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의를 행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코 자의적 임의적인 데에 그칠 수는 없다. 지혜와 결단 즉 배움의 삶과 공부의 내용과 깊이에 따라, 실은 그 쌓임에 따라서, 강화되고 뚜렷해지는 그런 속성의 것이다.
배움과 공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논어에 잘 나타나 있다. 양화편에서 공자의 6언 6폐를 언급한 것이 그것이다.
“ 인애를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으로 어리석어지고 지혜를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으로 방탕해지며 신의를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으로 해치게 되고 곧기를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으로 긴급해지고 용기를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으로 난을 부르게 되고 굳셈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으로 광간(狂簡)해지느니라. ”
6언 이란 어짊 지혜 신의 곧음 용기 굳셈 등 여섯 가지 언행의 품덕을 말한 것인데 이에 대하여 공부를 겸하지 않고 이 품격만을 고수한다면 각각 어리석음 방탕함 해로움 긴급함 혼란 지나치고 거침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제자들의 언행을 말한 것이지만 의리적 측면을 주로 칭하여 말한 것으로 보인다.
6언 스스로는 인을 행하기 위한 불가결한 전제로서 배움을 통하여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예를 들어 어진 마음일지라도 절제가 필요하며 나머지 품격들도 모두 적절한 절제를 통해서 상호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배움이 전제되지 않은 어짊의 실천은 불의한 것일 수밖에 없다. 어리석음 방탕함 해침 진급함 혼란 거칢 등은 모두 역시 불의의 영역에 드는 것이므로 결국은 불의를 경계한 것이다. 의리란 어짊과 배움과 직결되는 것임을 잘 보여준다. 인을 행하기 위한 의리의 품덕에 비교되는 것인 인 자체의 품격인데 학이편과 양화편의 언급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학이편 : 자금이 자공에게 물어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이들 나라에 이르시면 반드시 그 나라 정사를 들으시게 되는데 그 나라에서 자발적으로 들려드린 것입니까? 공자께서 요구하신 것입니까?” 자공이 말하기를 “선생님께서는 온화하시고 양순하시고 공손하시고 검소하시고 사양하시는 인격으로 그런 대접을 얻으신 것이니 공자께서 구하시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구하시는 것과는 다르니라.”
양화편 : 자장이 공자께 인을 물은데 공자께서 말하기를 “다섯 가지를 천하에 향할 수 있다면 어질다 하리라.” 청하여 물은데 공자 말하기를 “공손함과 관대함과 신의와 민첩함과 은혜로운 것이니라. 공손하면 모욕 받지 않을 것이며 관대하면 대중을 얻을 것이고 신의를 지키면 사람들이 맡겨줄 것이며 민첩하면 공을 세우게 될 것이며 은혜를 베풀면 사람을 다스리기에 충분해지리라.”
학이편의 내용은 자공의 입장에서 즉 제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공자의 어진 인격을 정리해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온화하고 양순하며 공손하고 검소하며 사양하는 마음이 공자의 인격 즉 어짊을 대표한다고 본 것이다. 에에 비하여 양화편의 내용은 공자가 자금에게 어진 인격의 특징을 설명한 것이므로 이 역시 어진 품격을 정리하여 발한 것이었다. 공손함 관대한 신의 민첩함 은혜로움이 그것이다.
학이편의 어진 덕성과 공자 자신이 언급한 어진 덕성은 다소 달라 보이지만 자공의 말은 어진 인격적 덕성 자체를 말한 것이며 공자의 언급은 어짊을 행하기 위한 품덕을 말한 것이므로 오히려 의리에 가깝다. 인의란 이같이 다르면서 같고 또 공통요소가 불가결한 것으로 보인다.
배움과 연관하여 논어 양화편에서 “본성은 서로 비슷하나 습관으로 서로 멀어진다”는 말씀은 바로 학문의 이유를 지적하는 말로서 역시 유용하다. 사람의 본성은 순수하고 선하여 천리와 감통할 수 있는 것이나 살아가면서 사사롭게 익숙해지는 일들에 의해 순수성을 잃고 감통의 힘을 잃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를 정화하려는 것이 공부임을 밝힌 내용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특히 익숙해지는 일이란 습관적으로 행하는 사사로운 행실로 인해 천성 천리와 멀어진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삶 자체를 성찰할 것을 요구하며 이것이 배움의 시작이다.
섭공과 번지와 공자 : 섭공(葉公)이 공자에게
“우리 고장의 처신이 곧은 이는 아버지가 남의 양을 훔쳤을 때 이를 증명해 준다.”
고 하였다. 이에 답하여 공자는
“우리 고장의 처신이 곧은 이는 이와 다르니 자식이 아버지를 위해 죄를 숨겨주고 아버지가 지식을 위해 죄를 숨겨준다.”
고 하였다.
의리란 원초적으로는 곧은 마음에서 나오며 순수하고 자연스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아울러야 함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특히 ‘직(直)’ 즉 ‘곧다’는 말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바르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서 정직으로 표현되며 의의 범주에 직접 소속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의미로 보면 시비를 가린 곧음 마음도 직이며, 순수한 마음도 직이다. 이 두 요소가 잘 어우러질 때 의리가 된다. 그러나 의리도 인과 같이 친친(親親)의 원칙에 의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의리(義理)는 인애(仁愛)의 외연이기 때문이다. 궁극의 문제는 역시 순수함 즉 천리성을 견지하고 있느냐 인위적이냐의 분별에 두어져 있다고 생각된다.
의리에 속한 개념은 다 매거할 수는 없지만, 정직 어짊 정의 공정 아름다움 선함 신의 의지 등등의 여러 가치를 포함한다. 위 글에서 직이란 정직을 말한 것인데 섭공의 말은 통속적인 의미를 표현한 것이며 공자의 대답은 천리를 전제로 한 넓은 의미의 정직의 본질을 아울러 직시한 말씀이다. 통속적인 정직이란 누구나 알 수 있으나 그 절실하고 깊이 있는 의미를 충분하게 누리기 위해서는 지성스런 배움과 가르침 성찰 등이 요구된다는 점을 또한 알 수 있다.
논어 자로 편에서 공자는 인(仁)을 물은 번지에게
“공손하게 생활하고 경건하게 일에 임하며 신의를 지키는 일은 이적(夷狄) 나라
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아니 된다.”
고 가르쳤다. 어느 곳 어느 경우라도 지켜야 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 공손과 경건과 신의임을 말씀한 것이다. 바로 그 의로운 삶의 본질이 인임을 또다시 구체적 형식으로 말한 것이다. 공손과 경건함이란 그 자체의 의미적 이름다움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심의 요소인 오만함과 자만을 견제하기 위한 내면적 목적의 말씀이다. 공손하고 경건함이 없다면 자신의 자의적 생각이 자신을 지배할 것이며 따라서 천리와는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번지가 공자께 인을 물은 것은 이 이외에도 두 번이 더 있었다. 번지가 인을 물은데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니라.”
라고 하였다. 언제나 사람이 공부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지혜를 물은데 공자가
“사람을 아는 것 이니라”
라고 한 것도 그중의 하나인데 번지가 이를 알아듣지 못하여 공자는 다시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여 부정한 사람 위에 두면 부정한 사람을 바로잡을 수
있다”
고 하였다. 이 역시 인의 실행을 매우 현실적으로 말해주신 것인데 이에 대하여 자하는 번지에게 설명하여 말하기를
“풍부하다 말씀이여!” “순이 천하를 차지하고 사람들에게서 뽑아서 고요를 등용하니 불인한 자들이 멀어졌고 탕왕이 천하를 차지하여 사람들에게서 뽑아서 이윤을 등용하니 불인한 자들이 멀어졌다”
고 하였다. 공자의 말씀을 잘 설명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사람을 강조한 것을 두고 정직한 삶을 등용하는 것이라고 부연한 것은 당연히 사람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말한 것이며, 사람을 아는 것이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 중심이 됨을 말한 것인데 천리와 이치를 바탕으로 하면서 사람을 강조한 이유는 사람이 그 배우고 자각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제한된 사색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할 것이다.
번지는 또한 논어 옹야편에서 인을 물었는데 공자는
“어진 사람이란 먼저 어려운 일을 행하고 얻고자 하는 것을 뒤로 미룬다면 어질다 하리라”
하였다. 공자는 번지에게 어짊의 실천적 측면을 말하여 행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임을 말하고 있어 인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물론 이는 사심의 극복이 인을 알게 되는 길임을 말한 것이 주된 뜻일 것이다. 아울러 그 행함이란 바로 의리를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번지에게 어려운 것이란 역시 스스로를 이기는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무지라든가 조급함 등을 아울러 극복할 것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인과 의는 사실상의 경계선은 없다. 다만 결연히 엄중히 인의 속성을 견지한다면 이를 특히 구분하여 의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공자는 농사를 묻는 그에게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이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없으며 윗사람이 의(義)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감히 복종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신의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진실하지 않을 수 없다.”
고 가르쳤다. 번지가 중시한 것으로 보이는 농사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은 의의 대전제이며 그 본질이다. 인은 경제적 혹은 물질적인 것이 위주라고 하기 보다는 정신적인 것임을 깨우친 말씀이기도 하다. 아울러 극히 실천적인 것임을 지적한 것이다. 전통적인 의리의 바탕과 그 일반의미가 공자의 언명에 살아있음을 보게 된다. 여기서 공자의 말씀은 예와 의와 신의를 지극히 평범한 뜻으로 그리고 지적으로도 긴장된 의미 없이 편안하게 언급한 경우이다. 그러면서도 인의의 효를 아울러 설명한 것이다.
의리는 이같이 편안히 여러 가치 개념과 공존되기도 한 것이다. 예는 공적인 행실에서, 의는 일반적인 전체 생활의 장에서, 신의는 세세한 언어와 일들에서 지킬 일을 말한 것이지만 결국은 역시 넓은 의미의 의리를 말한 것이다. 이는 결국은 곧 다름 아닌 어짊의 실천을 말한 것이다. 인의라는 말 속에 다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엄밀히 따져보면 이들 개념 가운데서는 맨 처음에는 예가 가장 전통적인 가치다. 역사적으로는 처음 예로부터 모든 새로움의 의식이 발전되고 분화되어 새로이 나온 것이었다. 예는 신에 대한 제의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보아야 한다. 공자는 논어 위령공에서는
“군자는 의를 행하여 바탕을 삼고 예를 지켜서 행하며 공손히 일을 시작하고 신의로 이루어야 군자답다.”
고 하였다. 여기서 특히 의를 바탕으로 한다고 하였던 것은 의리가 인을 실천하는 바탕임을 말한 것으로 각별히 주목된다. 맹자 이전에 공자도 이미 새 시대의 이념 혹은 행동주의로서, “의리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특히 위의 글에서 의(義)란 어진 청치를 구현하는 불가결한 한 요소로 말한 것이며 윗사람 지도자 즉 그 당시의 용어로 군자들의 실천 항목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 당시는 거개가 군자들만이 국가와 백성의 삶과 문화를 책임질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의롭다면 백성은 불복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아울러 의리란 예와 신의와 인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의리와 예와 신의와도 특별한 경계선을 없는 것이다. 공손과 경건함은 인의 의지이며 예와 의는 그 행동이다. 양자에 공통된 신의는 진심으로 행한다는 의미다. 여기서는 특별히 지혜를 언급하지 않았다. 번지에게 말씀해준 내용을 알고 자각 체득하는 것 그 자체가 지(知)이기 때문에 다시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주목할 것은 공손 경건 신의는 일상생활 중에 인을 자각하고 행하는 길로서 말씀한 것이며 예와 의는 인을 자각한 이후에 그 배움을 실제 수행하는 것으로 말씀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예는 일상중의 아름다운 행실이며 의는 보다 특별한 어떤 경우에 지켜야할 보다 절실한 행실을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심각한 시비선악 선택의 결정적 순간을 말한다. 그 시비선악의 선택은 결국 자신과 외부세계의 도리 사이의 사심의 문제이기 때문에 공자는 논어 안연 편에서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인이라고 가르쳤다. 극기복례의 요목에 대한 설명을 청한 안연에게 “극기복례가 인이다.” “예가 아니거든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거든 듣지도 말며 예가 아니거든 말하지도 말고 예가 어니거든 움직이지도 말라“고 엄중하고 철두철미하게 가르쳤다. 바로 의리의경지다. 또한 한편 공자시대에는 전통적인 주례가 절대적인 준거였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에 있어 예는 인의 정신의 역사적 기원이며 동시에 그 결정체였다. 여기서 우리는 공자사상이 철저한 역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이후 예법은 시대에 따라 변하거나 의미가 재해석되고 재편성되면서 변모하게 된다. 여기서 공자의 예란 말은 의리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다만 엄정한 논자로서 공자가 강조하고 싶은 영역에 따라 예의 영역에 서서 말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의리가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인의(仁義)의 정신은 공자이후 2500년의 역사를 통해 이어지면서 변모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그 과정에서 유의할 것은 맹자의 역할이다. 공자는 인을 위주로 말하여 그 내부에서 의를 언급하였는데 맹자에 이르러 인의를 병칭하면서 오히려 의를 앞세워 표현하였다. 이는 맹자 자신의 말대로 시대의 변화에 기인한다. 이때부터는 명백하게 의리표방의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그러나 인과 의는 표리관계에 있는 것이므로 ‘인의’라고 하거나 ‘의리’라고 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理)는 바로 인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맹자의 의리표방은 전통질서의 광범한 혼란 속에서 전통가치관을 지키려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오늘날과 같이 광범하게 역사정신 자체가 무차별적으로 동요하는 이 시대에는 의를 어떻게 더 강조할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의의 강조를넘어설 수 있는 대안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오히려 의의 강조를 위해서 원래의 인의균형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허허실실의 대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현재 의리 : 대개 우리 문화 풍토에서는 특히나 항상 의리의 문제와 직면한다. 비난할 때도 칭찬할 때도 의리에 의거할 때가 많다. 우리 전통 가운데 강력하고 변함없는 떨칠 수 없는 한 인자이다. 의리는 우리 일상에서 마치 유전자처럼 존재하게 된 것이다. 부언하면 크고 작은 공 · 사 양면의 삶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결단적 행위과정(行爲過程)에서 우리는 대개 “의리상 옳은가?” 하고 자문하는 정신행동기제(精神行動機制)를 겪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유컨대 의리는 우리 삶을 순화하는 일종의 자가 정수기인 셈이며 또 하나의 지남인 셈이다. 그러므로 의리란 자신이 스스로를 당당하고 자긍심 있게 인도하는 자주성 넘치는 지표이며 자기의 처신을 궁극적으로 지탱하는 불변의 패러다임이다.
서양의 지혜가 ‘지식에 대한 사랑’이라면 의리란 ‘삶 자체의 도리(道理)에 대한 사랑의 염원이며 그 행동’이라고 대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의(義) 리(理)’라고 한다. 도리란 의리의 절대적 전제로 광범한 이치 탐구의 최종 결과이므로 의리란 밝은 통찰에 근거하는 것이며 널리 보면 역시 지혜의 한 양식이다. 이는 우리의 전통적 배움과 공부의 최종적인 공효(功效)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배움이 삶의 본질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의리는 바로 우리 삶의 시작과 끝을 좌우하는 종결자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의리는 우리들 삶의 수호자인 셈이다. 이상적 인격인 군자란 공부하는 자임으로 인해 의로운 존재이다.
이미 살펴본 대로 서구문화에서 정의(justice) 역시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정의(justice)는 대개 법률과 도덕 혹은 미덕과 자유의 가치 등의 형식으로 명확히 정해진 의미를 기준으로 하는 반면에 의리의 영역은 특별히 제한된 형식은 없으며 확정 혹은 고정된 규율도 없고 끊임없는 엄정한 원리지향성이 있을 뿐이다. 의리란 특히 법과 제도 규정 규율 나아가 그 이전 질서까지를 포함하는 그 어떤 것이기도 하다. 의리란 다만 인정(人情)과 시비선악(是非善惡)에 관련하여 그 마음과 행동이 합당하다는 뜻 혹은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이란 소박한 뜻에서 출발한다. 이어서 배움과 공부에 따라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엄정하고 확고하게 된다. 그 의로움의 가치와 의미가 자각 수립된 후에는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운용되어 재구성되고 구체화되면서 변함없이 결행되어 나아간다. 그러므로 의리의 크기는 일상에서 특별한 것까지, 극미한 것에서 극대한 것까지를 모두 함축한다.
경건함과 품격: 의리란 특별히 의미영역을 특정하여 일정하게 정의 하지 않았으면서도 정상적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오묘한 덕목이다. 박식함과 정밀한 지식을 위주로 한 의미영역에서는 서구적 학문의 언설을 따를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 살아있는 삶의 내외에서 그 탐구와 배움의 의미를 자연스럽고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그 일치 공감된 지혜에 바탕을 둔 의리 자체를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함’으로 대하는 동아시아적인 경건함의 전통에서는, 그 탐구된 의미를 재구성하고 확립함에서는 의미의 제한이나 치우침을 피하려는 절대적 노력이 견지되며, 신중하고 철저하게 운용하면서 또한 아울러 반지성의 부끄러움을 피하려는 당당함의 추구가 굳게 유지된다. 그것이 바로 의리의 정의에 해당된다. 의리에는 모든 종류의 지성 감성의 균형을 이룬 성과가 종합 응축되었다는 뜻이다.
그로인해 의리의 의의에 대한 높은 품격과 믿음이 유지 강화된다. 의리는 지상적이며 인간적이지만 본질적으로 천상적인 것이므로 존귀한 위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고한 정신활동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다만 생활의 장에서 의리가 자주 도외시되는 것이 문제지만 의리 자체를 망각하거나 중요성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의리란 출발에서는 자각하고 이해가능한 선에서 하나의 믿음으로 시작된다. 이는 보통 사람다운 것으로 언급되어왔다. 문제는 그 의리 자체의 가치를 철두철미하게 견지하고 배우며 고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선비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뜻을 고상히 하라”고 하였던 것이다. 의리의 보다나은 이해를 뜻하는 말이다. 뜻을 고상히 한다는 것 역시 인의에 철저함을 말한 것이었다. 철저하다는 것은 단순한 뜻이 아니다. 인생에서 최고의 가치를 부여한다는 의미에 철저함이다.
성인의 학도: 여기서 의리가 꼭 정의될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은 아니다. 아주 손쉽게 정의할 수 있지만 그 높고 낮은 의미의 가변성으로 인해 어떤 정의에도 안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면서 아울러 그 의미를 깊게 이끌어 확고하게 하여 이끌고 나아가야 하는 이상적 개념형태다. 언제나 살아 숨 쉬며 변용할 수 있고, 의리 자체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과 성찰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물론 인(仁)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들 인의라는 개념들은 ‘무오류’를 지향하는 의지의 언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로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언어영역적인 성스러움을 지니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이 인격화될 수 있다면 곧 성인의 경지이다. 따라서 성인이란 인간초월(人間超越)의 지칭어가 아니다. 우리가 최소한 성인의 학도가 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선택이 의리다. 그러므로 의리는 진실을 추구하는 엄정함에 있어 종교적 신성함에 비해도 전혀 손색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우리가 이 의리란 두 글자를 마음에 새기고 이를 자신의 신념으로 승화하여 살 수 있다면 이미 성학(聖學)의 문도로 입문한 것이므로 당당한 동아시아 군자학인(君子學人)이다. 의리란 존재론적 의의에서 보면 가장 명쾌하게 원시종교나 신을 대체한 실체성을 지녔으며 혁명적 의념이었다. 위대한 자립(自立)과 자명(自明)의 상징인 셈이다.
의리란 주로 결연한 실천적 영역을 대표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가장 적실하게는 의행(義行)으로 표현될 수 있다. 본질을 말하면 의리(義理)이지만 진리의 깨달음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수행(遂行)’이 필요한 것이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아는 것도 행하는 것도 일관된 의미를 지킬 수 없게 될 것이다. 알고 깨달아서 진정한 확신을 가지게 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인의 품성이라면 이를 고수하여 수행하는 것이 의리다. 공자는 예기 표기에서
“인이란 천하의 드러남(表)이며 의란 천하의 다스림(制)이다. 예란 천하를 이롭 게 (利)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인은 이 세상에 사표(師表)가 될 만한 것이라는 뜻일 것이며 의란 천하를 정돈되게 할 수 있다는 뜻이며 예란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드러남‘이라든가 혹은 ’사표‘라는 의미는 천리를 깨달음이며 ’다스린다‘는 것은 그 수행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천리를 행하는 것이 이로운 것이므로 예를 이롭다고 하였다. 인은 천하의 진실을 앎이며 예란 그 깨달음의 실상을 행함이며 의란 그 실상을 고수하여 변함없이 지키고 관철하는 것이다. 인과 예와 의 역시 실체에 있어서는 곧 서로 일탈됨 없이 일관된 그 어떤 것이다.
2)역사의식과 의리
의리는 역사의식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의리사상이 명백히 역사적 방식에 따라서 역사적으로 수립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시간과 더불어 동시대를 호흡하였다는 뜻이다. 해외학계에서 동아시아에 철학이 없다거나 역사가 없다는 평가를 받곤 하는데 이는 단지 우리들 스스로가 매순간을 숨 쉬며 영위된 자신의 역사와 철학을 평가절하한 데서 기인한다. 의리사상은 바로 그 핵심에 있다. 의리는 단순한 도덕률이 아니다. 인의로 병칭되게 되었던 그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역사의식이라고 하였지만 단순한 역사의식이 아니라 역사의식의 중심 골간을 이루는 역사의식의 실체다. 그러므로 실질적으로 역사를 밀고 온 동력이기도 하다.
의리가 역사의식의 결정체라는 말은 의리란 개념이 춘추시대에 처음 생겨나 성립되면서 그 후대로 이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춘추시대 이전부터 성장해온 의리라는 말이 새로운 체계를 갖추고 의미를 경신하면서 역사적 생명을 영위하는 살아있는 개념이 되었다는 것이다. 시대를 호흡하고 개성을 수용하고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절실한 가치를 더해 나아갔다는 뜻이다. 다만 역사란 현재로서 의식하는 자에게만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시간적 진전의 의식이 없는 허울의 역사는 무의미한 것이다. 의리도 그러하다. 그 단순한 의미의 허울은 정말 의미가 없다. 시대의식과 역사의식이 어울려서만이 살아있는 의리가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의리가 일상의 실생활에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그 무엇이 되어야 하며 특별한 때에 행하는 것은 아니다. 절실한 삶이 되지 못한다면 살아있는 역사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는 단순히 언어나 문자이거나 개념에 머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리가 역사 자체라는 말은 의리가 역사 문헌 같은 추상적이고 지적인 범주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의리는 오히려 그 기록이나 지성의 내적 실체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추상이 아니라는 말이며 삶이나 문화 그 자체라는 뜻이다. 예컨대 “회화는 빛이다”라고 하였을 때 회화와 빛의 관계는 일치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빛이 회화일 수는 없다. 회화역시 한 실체의 존재이며 그것이 빛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모든 문화가 다 그러하다고 생각된다. 회화가 결국 문물(文物) 즉 ‘창조된 실물’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하겠다. 의리는 그런 문물에 가깝다.
회화나 문자가 자연물이 아니고 어떤 아이디어나 사상이나 이름다움 혹은 주장을 나타내는 형식이지만 그 형식 스스로 사람의 진실한 감응을 유발한다는 점에서도 역시 물화(物化)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최근에 ‘물화되는 회화’를 비판하는 의견들도 있었다. 그러나 물화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회화적 의미의상실을 나타내는 말이다. 황금만능의 물화는 문제지만 순수함의 ‘물화’자체가 문제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의리의 의의도 그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이 양쪽 면을 다 포괄 함축한다. 정신과 감성 시대적 실상이 어우러져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의리란 바로 그러한 양면성을 견지하는 것이므로 이런 의미에서도 ‘질적으로도 역사적’ 이라는 정의가 명실상부하게 어울린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역사의 부재현상은 광범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자신의 정신의 부정이라든가 자신의 문화의 경시라든가 생활양식의 서구화 학문의 서구화 언어의 서구화와 같은 여러 분야에서 역사적 전통이 왜곡 내지는 부정되고 있다. 세계화의 시대를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외부문화와 사상을 수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수용하는 주체가 그 내부에 그 수용을 주관하고 정돈하고 정리할 아무것도 없다면 그 수용은 단지 추종이 될 것이다. 중심이 없는 추종은 민족사상 위험한 일일 것이다. 국가와 민족의 존립의 이유 자체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국가와 민족은 왜 존립하여야 하는가하면 민족 국가의 확고하고 온전한 전승이 안정되고 행복하며 최상의 창조력과 개척능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를 자의로 해석하여 왜곡하는 것은 역사의 부재 이상으로 위험하다. 결국은 역사를 말살하고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의 중화주의라든가 일본의 제국주의의 잔재는 역시 역사왜곡에 속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중화주의 제국주의의 잔재는 없으나 그 피폭된 영향이 있고, 자신의 역사를 존중하는 태도는 지녔으나 실제로 자신의 구체적 역사의 가치를 몰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역시 동질적이다. 역사는 그 진상을 똑바로 이해하고 계승하기 전에는 역사라 부를 수 없다. 예를 들어 우리는 백제 토기의 넉넉함을 말한다. 신라 토기의 미려함을 말하고 고려 토기의 강건함을 말한다. 그런 부분적 해석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넉넉함의 역사적 기원과 정신태도, 그 역사적 전개상, 그 정체성과 미래지향성까지 탐색되어야 한다. 의리 역시 그러하다.
3)의리의 단초
의리가 역사사실 기록 중에서 생생한 의론(義論)의 모습으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기원전 722년경, 노나라 은공 때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기록이다. 정나라 장공이 즉위한 후 일어났던 공숙단의 난에서였다. 공숙단(共叔段)이 모부인 강 씨의 비호를 받으며 경성(京城)에서 반란을 도모하고 있을 때 장공(莊公)은 “ ‘불의’를 많이 행하면 스스로 죽게 되리라” 하였고 이어서 “ ‘의롭지 못하면’ 친목할 수 없으니 많이 모여도 장차 무너지리라”라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이 당시에 의리란 ‘난(亂)’이라든가 ‘반역의 위험성’을 지적한 말로 쓰였다. 역(逆)이란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므로 난(亂)과 동의어이며 순리(順理)의 부정어이다. 순리란 이치(理致)의 따름을 의미하며 이 이(理)는 어느 면에서나 당시의 우주관 자연관 인생관을 상징하는 말이다. 신앙이나 점법(占法)보다는 이시기에는 이미 당대의 철학적 지적 진리관이 더 중요해진 것을 의미한다. 의외로 순리(順理)를 의미하는 순(順)의 개념이 바로 의와 직결되어 통하는 것임을 역사현실로서 보여준다.
공자는 인(仁)을 말하였고 맹자는 인의(仁義)를 붙여 의(義)와 인(仁)을 한 말처럼 언급하였다. 인의가 상호 불가분한 것임을 명백히 하였다. 맹자가 비로소 일반적인 의미로 통용되던 의를 전면에 강조 부각함으로써 새로운 의미의 차원으로 승화하였던 것이다. 이 이후 시대에 따라서 인과 의는 동질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시대상황에 따라 그 중점을 달리하였던 것인데 지금은 의를 말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일반 도리(道理)의 가르침은 이미 경전 속에 충분하고, 배우고 공부하는 방법도 자세하다. 문제는 이를 체득하여 이어가고 공부하고 흔들림 없이 지켜야하는 일 즉 의가 오늘의 최대 과제라 점을 인식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의리는 동아시아 정신문화의 남상이며 동시에 최후의 보루이며 그 정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의는 공부하는 삶을 대표하는 말이다.
인의는 공맹이 선창하였던 것이며 동아시아 정신가치를 대변하는 양대 지주다. 인이 없는 의가 없으며 의가 없는 인도 없기 때문이다. 동질적인 가치를 지칭한 말이지만 현실차원을 대변하는 것이 의리라면 이상차원을 대표하는 것이 인이다. 아무런 일호의 갈등이 없이 인을 행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성인의 경지이며 천연(天然)하거나 신묘(神妙)한 경지다. 주저함 없이 의리를 선택할 수 있다면 호연지기를 지닌 최대경지의의 용기이다. 물론 공맹은 스스로 인의의 경지를 자처한 적이 없으며, 다만 공자는 호학(好學)을 자부하고 맹자는 말을 잘 알아듣는다고 겸손히 말하였다. 말을 알아듣는 것 역시 공자의 언급에 따르면 역시 가장 높은 배움의 경지다. 공자는 논어의 맨 끝에서
“ 천명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모르면 세워 나아갈 수 없으며
말을 모르면 사람을 알 수 없다. “
고 하였다. 이 때 말을 안다는 것은 사람을 아는 길이고 사람을 아는 것이 최고의 지혜의 결과였다. 지혜란 바로 배움의 끝이다. 번지가 지혜를 물었을 때 공자는 “사람을 아는 것”이라고 대답한 것이 그것이다. 이 지혜란 공자의 이어지는 설명에서 보면 사람을 잘 등용하여 널리 인을 행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지혜 역시 인과 불가분한 것이다. 인문에서 천명이란 이치나 순리를 의미한다. 요즘의 언어로 진리다.
우리 현재의 시점은 개인과 국가의 어떤 측면에서든 그 이룩한 성취나 성과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지만 전통적 정신과 도리의 역사에서 보면 그 진보 발전의 역사현상은 아직 미미하거나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생각된다. 중국이 공자를 새로이 내세우고 있다든가 한국에서 전통문화를 내내 강조하고 있다든가 하는 일들은 국한된 세태를 반영하는 현상이며 정통 정신사의 흐름과는 관계없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지식인들 사이에서 동아시아 정신과 문화를 재평가하는 강한 흐름이 일어났지만 주체적 역사정신의 회복을 향한 역량의 결집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의로움이 우리들 삶의 중심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지식인의 공동책무다.
다시 말하여 자신의 전통에 대한 배움의 노력은 일어났지만 넓은 공감이라든가 공부의 깊이는 아직 축적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역사를 믿음 은 더욱이나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문화 생활정신으로서 재정립하거나 계승 부활하려는 공감된 역사성을 띤 움직임은 아직 거의 없다. 결국 자신에 대한 믿음의 부족 때문이다. 공자가 ‘신이호고(信而好古)’를 언급한 뜻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인의 정신은 장구한 역사를 타고 그 면면한 힘으로 완성된 동아시아의 초민족적이고 보편적인 최고 가치다. 인의 정신의 전사(前史)로서는, 예컨대 복희는 하도의 그림을 보고 팔괘를 그어 주역의 남상을 열었으며 우왕은 낙서의 무늬를 보고 서경의 홍범구주를 지었다. 팔괘는 고대의 점법을 승화하여 철학의 길을 연 것이며 구주는 고대인의 삶을 종합하여 대원칙을 수립한 것이다. 이는 하늘과 땅의 진정한 만남이었다.
그런 가운데서 인도에 대한 성찰이 일어났으니 그것이 바로 시경에 보이는 삶의 의지적 혹은 정감적 승화다. 그러나 인의 이전에는 다만 순수한 형태의 시비와 선악과 호오와 미추와 길흉만이 있었다. 인의는 이를 승화 통일하려는 위대한 지적 노력이었다.
모든 역사적 성과는 인의정신으로 귀결되었으니 공맹학이 그것이다. 이 오랜 역사정신은 가나긴 역사무대에서 심한 굴곡과 부침이 있었다. 공맹이후 1000년간의 공백이 있었고 성리학 이후 근세를 지나면서 오늘날 다시 100년간의 공백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1000년의 공백에도 부활했던 역사상의 힘을 믿는다. 그것이 동아시아 문화의 고유한 본질이며 생명이기 때문이다.
1000년 100년의 공백기란 표현은 완전히 텅 비었다는 뜻은 아니다. 인의의 이름은 있었지만 그 가치와 의미를 반추하고 새로이 하고 절실히 자각하고 결연히 실천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인의가 살아 움직이게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물론 그 대신에 다른 정신이 유행했었다. 불교와 도교 같은 것이 그것이며 실증적 학문이 그것이며 실용에 치우친 학문이 그것이다. 여담이지만 이때의 실용주의는 오늘의 합리주의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정신의 체제나 학문이 꼭 나쁘고 배격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공자 시대에도 이단이 있었고 그 이단마저도 오로지 배격할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들 인의체제와 다른 체제들은 우리의 각 시대 삶에서 유용한 면이 있지만 그것이 정신의 본류가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또 그것이 역사적인 것으로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강한 역사성이 있는 것만이 온 세상을 이끌 수 있고 모든 이의 삶을 가장 복되게 할 수 있다. 역사성이란 무엇인가. 정신과 문화의 뿌리 중에 그 역사와 함께 문화를 특징짓는 핵심 줄기란 뜻이다. 그 문화권을 규정하게 하는 계기를 끊임없이 창출할 수 있는 힘이란 뜻이다. 이를 정통이(正統)라고 한다. 의리는 정통사상의 실천주제다.
오늘의 공백기가 지난 1000년의 공백기와는 매우 다른 특별한 것이다. 과거 한-당 시대에 걸친 공백기는 비록 유학은 역동하는 사상성이 쇠퇴하였지만 경학에 대한 지적 열정이 있었다. 이 열정은 중국대륙의 시대부들이 이끌어 왔다. 그 결과 유학의 부흥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성리학 이후는 중국에서는 지적열정에만 치우쳐 경학의 기본 정신이 즉 정통성이 다시 쇠하였다. 오직 조선 성리학이 경학의 근본을 견지하고 강한 사상성과 의리정신의 정통을 고수하였다. 이처럼 뒤바뀐 유학의 중심무대가 그 특수함의 하나다. 한국 땅이 지니고 있는 그 같은 깊은 책무를 지식인들이 통감해야할 것이다. 오늘의 세태에서는 사고무친의 상황에서도 의리를 위한 변명을 믿음으로 견지하며 그 외로운 부활의 노력을 수행해야하는 것이 역사적 당위다. 의리정신은 바로 그 중심에 있다.
의리란 철상철하한 인간적 생활표상이다. 전통적으로는 사람이 되는 법리이며 인간의 조건이었다. 오늘에는 단지 추억된 명분이며 박제된 기호다. 이상적 인간의 조건인 의리가 그 기능이 정지되었다면 그 사회는 탈 인간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누구나 의리를 거론하고 있음에도 왜 의리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가. 끊임없는 일관된 원칙으로 고수하지 않기 때문이며 명실상부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 기준삼음이 극히 자의적이고 제멋대로이기 때문이다. 탈 진리의 의리란 그런 것은 바른 의리는 아니며 전형적 의리도 아니다.
의리는 가까운 것이며 먼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매 순간의 삶에서 무엇이 의리인지 언제나 깨달을 수 있고 또 의리를 선택할 수 있다. 삶의 현장에서 나와 남 또는 어떤 상황 사이의 긴장 속에 의리가 작동하고 있고 그 절실한 삶의 긴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항시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일견 삶의 긴장관계에서 그 긴장을 주도하는 것이 세속적 현실적 권위를 힘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진정한 에너지는 아니다. 긴장을 조성할 수도 있고 긴장을 완화할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의리는 아니다. 그 긴장에서 일어나는 제3의 창조적 힘이 의리다. 나와 남의 중간을 지키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긴장의 상황에서 시시각각의 순간에 행동의 진자가 나와 남 사이를 고르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중용이다. 공자의 용서하는 마음이다. 그 끝에 나타나는 극단적인 의리로서 절의란 죽음과 삶의 선택이다. 중용과 서심은 의리의 중요한 원천이다.
맹자는 무한한 용기는 의리의 축적으로 나온다고 하였다. 의리를 고수하는 정신을 의지라고 한다. 맹자는 의지가 호연지기의 근원이며 지존한 것이라고 하였다. 우주를 채울만한 무한히 강한 기백의 머리이며 그 근거라고 본 것인데 과연 의리와 의지가 인생에서 가장 강한 힘일 수 있는가. 오늘의 배운 사람들은 아니라고 한다. 옛날의 배운 사람들은 이를 목숨처럼 신봉하였다.
의리란 삶의 최상 최대 덕목이다. 삶을 정화하고 강화하는 행동 강령이다. 누구나 느끼고 판단할 수 있는 친근한 도리다. 가장 오래고 변함없는 개인과 사회와 국가의 통용 지표다.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신분의 고하 그리고 삶의 어떤 상황에서도 통용되어야 하는 기초 원리이며 동시에 모든 도리의 끝이다. 의리를 반성적 삶의 중심으로 삼을 수 있다면 아마 새로운 삶은 스스로 눈떠 열릴 것이다. 그러므로 의리란 새로운 창조의 근원이다. 의리는 동아시아적인 문화 학문 예술의 영원한 본질이다. 결단의 의리는 마음에서 또 배움에서 나오므로 단순한 용기이거나 상무정신은 아닌 것이다.
4)일반화된 의미
개개 일반적인 의미에서 한국인들은 스스로 의리 있는 사람인 것으로 자신을 평가해왔다. 현재 널리 통용되는 뜻으로 보면 의리란 개인주의에 반대되는 생활 속의 실천 원리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대개 다소 특별한 경우에 발휘되는 의리는 일반인들이 누구나 공감하는 아름다운 극기의 행동의 양식이다. 물론 이 실천의리는 의리의 소박한 모습이다. 또한 의리의 뿌리이며 원 모습이다. 이 소박한 의미의 의리가 전형적 의리사상의 근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정신적 유전자다.
우리 누구나 ‘의리 없는 사람’이란 평가를 듣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마치 ‘불효자식’이란 말을 듣기를 두려워하듯이 의리는 거의 모두가 지키고자 하는 덕목이다. 우리 행동 선택을 지배하는 몇 가지 주요 가치개념의 하나가 바로 의리이다. 그 외에도 어질다든가 지혜롭다든가 예의 바르다든가 신의가 있다는 등의 인격 평가도 같은 범주에 있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으로 통칭되는 인격이 바로 일반인 누구나 지향하는 인격이다.
이 다섯 가지 원리는 인(仁)으로 대표될 수도 있고 의(義)로도 대표될 수 있다. 마음의 원리로 말하면 인으로 대표되고 의지적 실천적 원리로 말하면 의로 대표될 수 있다. 우리는 오랜 역사를 영위해오면서 어느덧 고전적으로 제시된 인격 덕목의 강력한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전은 아직도 엄연히 우리를 통치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아직은 희망이 있다. 아울러 부언할 것은 인의(仁義)는 질적으로는 불가분한 것이므로 같은 범주에 있다는 사실이다. 맹자는 이루장구 상에서
“ 인의 실상은 어버이 섬기는 것이 이것이요,
의의 실상은 형을 따르는 것이 이것이다 “
라고 하였다. 인과 의가 가장 절실한 덕목임을 말한 것이며 인과 의가 모두 실천적 행동을 전제로 하였음도 같다. 이어서 부연 설명한 것을 보면
“ 지혜의 실상은 이 두 가지를 알아서 떠나지 않는 것이요
예의 실상은 이 두 가지를 절도 있고 문채 있게 하는 것이요
악의 실상은 이 두 가지를 즐거워하는 것이요
즐거워하면 생기가 나고
생기가나면 어찌 그치겠으며
어찌 그치랴 하면 자신도 모르게 발이 뛰고 손이 춤춘다. “
고 하였다. 인과 의를 중심으로 하여 지혜와 예의나 악은 모두 이를 전제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지적하였다. 인의예지신이 실상은 인의일 뿐이라는 것이다.
고전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았어도 자신의 삶의 모든 장에서 이 의리를 고수할 수 있고 또 그 의리의 가치를 마음에 되새기며 넓혀가고자 노력한다면 즉 자신의 삶을 오직 의리로 영도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당당한 선비다. 공자 제자 자하가 말한 대로 ‘배우지 않았어도 배웠다’고 할 만하다. 남이 배울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맹자는 이 같이 배울만한 사람을 ‘선인(善人)’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맹자의 선인은 신인(信人) 미인(美人) 대인(大人) 성인(聖人) 신인(神人)의 단계로 높아지는 인격의 제1단계이다. 공자는 선인(善人)의 도리를 물은 자장에게 “선인은 성현들을 배워 실천하는 사람은 아니며 성현의 경지에 든 사람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공자의 뜻은 선인이란 착한사람이지만 학문을 하여 높은 경지에 든 사람은 아니란 뜻이다. 그 사람의 바탕이 착하고 그 행동이 착한 것만으로는 부족함이 있다는 뜻이다. 배움과 공부 그리고 의지적 실천이 더 축적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 부족함이란 학문과 공부를 통해서 의리의 소재를 명확히 각성하지 않는다면 그 선인의 인격을 온전히 고수하거나 관철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몇 가지 이욕에 무너지는 선인이라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학문을 깊이 한 사람이 또 중요한 직책을 맡은 사람이 의리를 저버리는 일을 자주 보게 된다. 의리란 지식의 배움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움을 절실히 공부한 후에 확고한 의리를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움과 공부는 유사하지만 매우 다른 개념이다.
공부는 배움을 수행하는 것이며 절절한 받아들임이며 확신의 실을 거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논어 서두에서 배움(學)과 익힘(習)을 동시에 말하였다. 공자의 ‘학습’이란 이같이 배움과 수행을 동시에 말하는 것이었으며 그 익힘 곧 수행이 의리의 주체적 실천이다. 학습을 통해서 굳게 고수된 의리를 세워 나아간다(立)라고 한다. 공자가 논어에서 ‘삼십이 되어서는 세워 나아갔다’고 한 바로 그것이다.
5)의미의 극대화
의리란 의(義)와 이(理)가 합체된 말이다. 이때의 의란 마땅한 것(宜) 합당한 것(當) 맞는 것(合) 좋은 것(好) 선한 것(善) 아름다운 것(美) 적절한 것(適) 의좋은 것(誼) 등을 의미한다. 이(理)란 원리 도리 이치 원리 법 등을 뜻하는 말로서 천(天) 명(命) 도(道) 인(仁) 법(法) 등의 어의와 동질적인 위치에 있다. 이 두 의미가 합쳐져서 의리가 되었으므로 이 의리라는 용어는 의(義)가 가진 내외의 뜻을 종합한 의의가 있고 아울러 일상의 어의로 친근함을 더하는 효과도 있다. 의리라고 하면 의(義)라고 하였을 때 뒤따를 의미의 막연함을 정리하고 의(義)가 지닌 의미를 온전히 지칭할 수 있다.
그러나 의(義)가 갑자기 스스로 그렇게 의미의 진화나 발전을 이룩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의(義)가 의리의 뜻으로 무엇보다 강한 생활정신으로 수립된 것은 맹자의 공헌에 의해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상의 뜻으로 애용돼온 의가 의리정신으로 승화된 것은 결국 맹자의 한마디 말에 의한다.
맹자에서 사생취의(捨生取義)를 설파한 뒤로 이 의(義)는 유력한 정신지표로 우뚝 서게 되었다. 기원전 4세기 중 후반의 일이다. 사생취의 장에서 맹자는 의란 행동의 선택이며 궁극의 선택은 생명을 초월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 생명을 초탈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사람의 본성에 스스로 갖추어졌다고 보았다. 사생취의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순수한 인간 본성이 온전히 발휘된 자연스런 선택이라는 뜻이다. 이로 인해 의는 철학의 최고 명제로 수립되었으며 의를 인간의 본성과 결부 연결하여 통일된 일관의 정신을 구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제한 없는 광대한 사유의 길을 열고 아울러 행동의 절대지표를 수립한 것이다.
생명을 버리고 의를 선택한다는 이 맹자의 철학적 명제는 한편으로는 공자의 인(仁)사상을 수호하는 의미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맹자 당시 전국시대의 처절한 민생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짙은 배려에서 나온 것이었으므로 강한 역사성과 맥동하는 사상성을 동시에 갖추었다. 의리정신의 수립이야말로 맹자의 위상을 증명하는 최고의 요목이다.
그러한 사상성과 역사성을 얻게 된 것은 바로 이 의리정신의 강조가 모든 사람 모든 시대의 삶에 무엇보다 긴요한 것으로서 또 조건 없는 아름다움이며 생의 힘으로서 무엇보다 바람직한 것으로 모든 지성적 인간이 동의하였기 때문이며 모든 생활인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민심과 민생 속에 뿌리를 내릴만한 불변의 진실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리는 민심 천심의 덕목인 셈이다. 문제는 이제 오직 그 진실성의 축적과 집약 그리고 그 이념적 순도의 강화에 있게 되었다. 당시 의를 둘러싼 학자들의 활발한 논쟁이 그러한 사정을 잘 반영한다.
의리정신 이전에는 선악 시비 호오 당부만이 있었다. 그러나 그 선악 시비 호오 당부의 확고하고 높고 변할 수 없는 준거는 없었다. ‘희노애락(喜怒哀樂)’ ‘애오욕(愛惡欲)’ 있었고 그 감정이 어떤 가치로 드러나야 하는지 하는 방향은 없었다. 이해를 따짐이 있었으나 이를 삶의 각 차원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그 방법은 제시되지 못하였다. 이것은 결국 공사(公私)의 문제였다. 사사로운 자아에 가두임과 공적인 자아들의 상호융통의 문제였다. 사생활도 중요하고 공덕심도 중요하지만 사생활은 스스로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므로 맹자는 오직 자아의 이기심을 버릴 것을 강조하였다. 공자는 이익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서 이익초탈을 제시하였지만 맹자는 직접적 언명으로 그 초월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역시 모든 것은 결국 초월(超越)의 문제였고 극기의 문제였다.
6)의미의 창조적 확장
초월함은 모든 생활미학의 기법이다. 또한 각 영역의 문화를 여는 방편이기도 하다. 아울러 학문과 공부의 요체다. 시는 초월의 언어요 회화는 초월의 상징이며 정치는 초월의 권력이요 군사는 초월의 힘이다. 문제는 진정한 초월의 구현에 있었고 초월의 가치를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었다. 초월의 언어 상징 권력 힘이 넘치는데도 어째서 사람은 초월의 가치를 이루기 힘든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물음이었다. 초월이 없는 곳은 그저 잠자는 적막한 대지다. 초월이 없이는 누구도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 그럼에도 왜 초월을 지향하지 않는가가 문제다. 의리는 허다한 초월의 모든 양식을 집약하고 그 정법을 대변하고 창출한다.
증자가 하루에 세 번씩 반성한 것은 초월을 위한 진지한 몸짓이었다. 자로가 시비당부를 떠나서 의리로 죽은 것 역시 순정함을 실천한 것이었다. 자장이 공자에게 지적받을 정도로 배움에 파고 든 것도 순정함을 바라는 열망이었다. 자하가 공자 말씀을 깊이 받든 것도 순정함을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순정함을 향하는 것을 호학이라고 한다. 공자가 오직 안연만을 호학한다고 평가한 것은 안연이 가장 온전하게 배움에 임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든 군자들은 공자 제자들의 호학을 보고 경악하였다. 자공이 공자 3년 상을 치른 후에 다시 초막을 짓고 3년간 더 시묘한 것은 바로 호학의 행동이었다.
개개의 사랑을 초월하여 인이 되고 나의 아름다움 나의 정당함을 초월하여 의가 된다. 인과 의를 정의하기 어려운 것은 그것이 초월의 언어라서 모든 정의를 다시 초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인을 일정하게 말하지 않았고 맹자는 의를 무엇이라고 정의한 적이 없다. 정의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생명과 삶을 정의하는 순간 왜곡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삶은 고해다’라고 정의 한다면 인생이 얼마나 비참해지겠는가? “생명은 영원하지 않은 그 무엇이다.” 라고 정의한다면 삶이 얼마나 애처롭겠는가? 공자 맹자에 의해 인과 의는 자유로운 창조의 언어로서 재구성되었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사색하고 탐구하고 즐기는 삶의 동반자가 되었다.
인의를 반려로 하지 않은 삶은 드디어 야만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맹자는 그런 자를 금수(禽獸)라고 통렬하게 정의하였다. “인간이 아니다.”라고 직접 언명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의미를 새롭게 밝히는 것이 바로 대학의 명덕(明德)이며 일신(日新)이다. 공맹의 인의에 이르러 사람들은 드디어 신(神)을 대체하여 의지할 곳을 얻었다. 그러므로 맹자는 인을 넓은 거처라고 하였다. 인의에 이르러 사람은 드디어 의심 없는 당당한 길을 갈 수 있게 되었고 종교적 신앙을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맹자는 의를 사람이 걸어갈 큰길이라고 하였다. 인이란 본성마음이며 의란 의지의 실천이므로 불가분한 것이다. 둘이며 하나이고 하나이며 둘이라는 일반적 표현에 걸맞다.
세상에는 완전한 순결 물질은 없다. 모든 기물들도 순정품은 없다. 다이아몬드 금 은인들 100% 순도일까. 그러나 사람은 인의를 통해 순결 순정을 추구하게 되었다. 사람이 가장 고상한 이유이다. 순정함과 순결함으로 자아를 초월한 이가 바로 성인이며 그로 인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는 이가 신인이다. 우리는 이미 성인을 가지고 있고 배우고 있으며 신인을 지향하고 있다. 맹자가 신인을 말한 것은 영원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그 길이 바로 인의의 길이다.
모든 순정한 것은 강하고 빛난다. 그러므로 순정함을 불후하다고 하고 영광이라고도 한다. 말로 불후하다 함은 순정한 언어를 뜻하고 삶으로 불후하다 함은 행동이 순정함을 말한다. 전자는 경과 전을 말하고 후자는 성현을 말하고 군자를 말한다. 동이 나라에 군자가 죽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용감함으로 순정한 자를 유협 혹은 자객이라고 하였고 절의로 순정한 자를 충신이라고 하였다. 순정함의 모습은 제한 없는 것이었다.
역경에 의하면 공간에 유동하는 것이 생명의 기운인데 여기는 바로 천리가 행해지는 공간이다. 물질 사이의 공간과 물질이나 사람의 실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라이브니즈의 저술에서 말하는 아르케(Archei) 엔텔레피(Entelephy) 등 역시 유사한 생각이다. 영원불변 불사의 존재인 영혼의 드러남이며 마음으로 화하여 만물을 드러나게 하는 기제이다.
우리 단군신화의 명제인 홍익인간 사상은 바로 그 사이간 자의 존재로 말미암아서 공간사상이 될 수 있다.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공간이 가진 생명요소와 그 영원성에 바탕을 두었다. 나아가 사람의 사이도 공간이 아닌 것이 없으므로 천리는 도처에 있는 것이 된다. ‘사람의 사이 공간’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역시 의리를 말한다. 의와 배합된 것이 ‘리(利:益)’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인간이라고도 부른다. 틀린 말이 아니다. 사람의 내부에도 순수공간이 개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7)인과 의리의 관계
공자는 인을 정의하지 않았다. 정의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인으로 가는 길을 구체적으로 말하였다. 안연에게 ‘자신을 극복하여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이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인은 의미상 사랑의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 진실로 사랑하는가. 정말로 순수한 사랑인가. 절대의 사랑인가. “ 하는 세 가지 물음이 더 있을 뿐이다. 맹자는 의를 정의 하지 않았다. 다만 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말하였다.’ 차마하지 못하는 애틋한 마음‘ 즉 인이 그것이다. 의는 바로 이 인을 절실히 느끼고 견지하는 것이므로 의미상 극히 옳은 것일 뿐이다. ” 옳고자 하는 마음을 순수하게 가졌는가. 변함이 없는가. 절대로 지키는가. “ 하는 세 가지 질문에 직결돼 있을 뿐이다. 인의는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정화하고 견지하기가 어려울 뿐이며 넓혀 나아가기가 어려울 뿐이다. 인의란 단지 순수함이며 절대적인 그 무엇일 뿐이다. 아울러 그 가운데서 공과 사의 균형과 중용 즉 순수한 마음과의 일치 만남이 또한 어려울 뿐이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인의 경지를 허용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마음을 속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인은 영원히 추구해야하는 끝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맹자 역시 누구에게 의를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의는 죽음으로 지킬 수 있다면 완결될 수 있으므로 백이와 숙제를 성인이라고 평가하였다. 맹자는 자신도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여 자신에게도 허용하지 않았었다.
인은 마음속에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인은 인(人)이라고도 정의한다. 사람답게 하는 마음이란 결국 사람이 배움으로 이루어 가는 것이므로 문화적인 마음이다. 가치를 주구하는 마음이다. 의란 그 마음을 고수하는 의지이며 믿음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의는 내안에 있다고 하였다. 인은 마음이며 의는 의지에서 나온다. 의지란 영혼 마음과 행동을 이어주는 직결된 통로를 연다. 의지가 있으면 삶이 굳건해지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의지가 호연지기의 우두머리이며 장수이며 지존한 것이라고 하였다. 물론 무한한 기상인 호연지기는 의리의 축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았다.
의리는 용기 있는 결단적 삶의 근거인 것이다. 용기와 결단이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참되고 새로운 가치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물론 공과 사가 만나는 장에 서 있는 인간으로서 의는 고뇌를 수반할 수밖에 없으므로 의리는 고뇌의 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공자의 극기(克己)는 인에도 의에도 똑같이 통하는 원리다. 공자는 이미 인을 말함으로써 의도 같이 동시에 표현한 것이었다. 인의는 정의돼야하는 지적인 문제가 아니다. 인의는 모든 삶의 장에서 느끼고 정화해야하는 생명의 문제다.
그러나 밝은 통찰이 없이는 뚜렷이 자각할 수 없고 사물을 성찰하지 않고는 그 가치를 진실로 확신할 수 없으므로 지혜가 요구된다. 그러므로 대학에서 격물치지가 근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격물치지란 사람의 전인적 체험으로부터 이루어진다. 지식의 탐구도 그 하나이고 사물의 분석도 그 하나이지만 직접적으로 삶 속에서 부딪는 여러 경험을 제한 없는 받아들임과 그 반추를 통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므로 그 배움과 공부의 영역은 제한이 없다. 문자 그대로 사물의 진상과 의미에 바르고 지극하게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것은 끊임없어야하는 영원한 길이다.
맹자는 천하의 넓은 거처에 살며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대도를 행한다고 하였다. 이어서 부귀도 이를 변하게 할 수 없고 빈천도 이를 옮기게 할 수 없으며 위무도 이를 굽게 할 수 없는 것을 대장부라고 한다고 하였다. 맹자의 이 대장부론은 바로 인의의 대도를 행하는 자를 지칭한다고 한 것이다. 여기서 주자는 넓은 거처를 인을 나타내는 것으로 바른 자리는 예를 뜻하는 것으로 대도는 의를 가리키는 것으로 풀고 있다.
그러나 바른 자리란 바로 의를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넓은 거처나 바른 자리 대도란 사실은 똑같은 내용을 거듭 칭한 것으로 생각되며 다만 거처는 어짊을 베푸는 일상생활을 강조한 것으로, 자리는 고수 선택하는 의리를 말하는 것으로, 대도는 천명과 이치의 중핵인 인의를 통칭한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른 자리를 예(禮)라고 보는 것은 의(義)의 원 뜻과 다소 어긋나는 점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의는 본래가 ‘바르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8)예와 의의 관계
예는 이행한다는 의미에서 왔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실천적인 의미에서는 의리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다만 실천하거나 이행한다는 것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본질에서는 인 즉 어짐을 행하는 것이며 철상철하한 면에서는 의리를 행하는 것이기도 하다는것이다. 예란 결국 인의를 행하는 준비된 행동양식이다. 이 준비된 행동 양식을 절문(節文)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에기에서는 예는 인의도덕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그러나 인이 적극적 펼침의 의미를 바탕으로 하는 반면에 의는 절제의 의미를 기초로 하였다. 인은 ‘무소불위(無所不爲)’가 허용되는 순수영역이고 의는 ‘유소불위(有所不爲)’ 해야 하는 영역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천명에서 나왔으므로 총칭하면 도(道)라고 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예와 의는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예는 ‘천리의 절문이라’고 하였듯이 때 예는 인위적이거나 장식적인 면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천도와 천리 등 이치를 따르는 행실이다. 천명을 따른다는 말 그대로 순리적인 면을 지칭한 것으로 이해해야할 것이다. 이런 사실은 예가의 설을 살펴보면 대개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에 비하여 의란 인간행동 가운데 절제적인 면을 지칭하는 말이다. 인을 말할 때도 극기복례란 말처럼 절체가 요구된다. 절제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는 인이나 예도 마찬가지이다. 그 일반적 절제의 의미가 의와는 어떻게 다른가가 문제일 것이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였듯이 인의 절제는 마음의 절제다. 사욕이라든가 지나친 정서를 정돈함을 주로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예의 절제는 행동의 모양을 위한 동작적인 절제이다. 물론 이 때는 아울러 예기(禮器)가 사용되어 보조하게 된다. 제사라든가 만남의 예절 등에서 술이나 제물 예물 등이 함께 사용된다. 이에 비하여 의는 행동의 본질에 관계하는 질적인 절제다. 질적인 절제라 함은 의지(意志) 또는 의향(意向) 자체의 절제란 뜻이다. 의향이란 삶의 많은 국면에 대응하는 일반적 절제란 뜻이다. 국가의 존망 상황이라든가 가족의 삶의 논란 혹은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선택적 상황에서 결단하게 되는 ‘일반적 결단의 중심’에 있는 것이 의리다. 그 상황은 중차대한 것일 수 있고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고 공동제에 관계된 것일 수 있으며 삶의 모든 국면에서 명확히 가려야하는 상황을 말한다. 그러므로 의리란 반드시 생애나 생명을 건 것만이 아니라 일반적 삶의 결단의 양식이라고 총괄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9)신의와 의리
신의란 충실한 진심을 행함이다. 맹자는 실제로 있는 것(實有)을 신이라고 하였다. 의리는 진심이 아닌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이며, 진심을 수호하는 것이다. 두 말은 같으면서 다른 말일 것이다. 진심이란 천혜의 참마음이며 이는 인의 본질이기도 하다. 물론 예의 바탕이기도 하다. 예의 대전제인 천명과 성(性)과 성(誠 : 眞誠)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의란 그 일반적 실체 자체를 지적한 말이다.
사과도 아름답고 딸기도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맛이 인이라면 각개의 아름다움의 실상 자체가 신의가 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다 모인다면 인일 것이며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도록 힘을 경주하여 행한다면 그것이 의리일 것이다. 그러므로 신의는 인의예지의 공통된 질료가 되는 그런 것일 것이다. 대개 오행에 비견하면 신의는 토에 해당되고 토는 나머지 사행의 불가결한 바탕이다. 토가 없이는 오행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토는 물질이나 실체를 이루는 것이므로 오늘의 개념으로 말하면 분자나 입자를 구성하는 기초단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분자결합을 통해 실제로 나타난 것이기도 하다. 다만 그 결합과 성취의 바탕을 이루는 실체를 주로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오행 상생 상극의 출발선에 토가 있는 것이므로 토는 만물의 기초다. 인의예지 역시 인물이든 사물이든 물적인 어떤 것으로 최종 드러날 수밖에 없으므로 토를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신의는 물론 만물의 기초 속성이기도 하지만 단적으로는 인격적 기초 속성이다. 신의가 없다면 어떤 가치든지 ‘있다 없다’ 할 것이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의지할 수 없다는 뜻이며 무엇이든 이룰 수도 없다는 뜻이다. 공자는 이를 수레의 끌채나 멍에에 비유하여 수레가 갈수 없는 것과 비교하였다. 신의가 없다면 세워 나아갈 것이 없다는 것이다. 신의는 ‘믿을 신(信)’자로 표현되는데 ‘사람’과 ‘말’로 구성된 자다. 사람과 말의 사이에 진성이 없다면 허무하게 될 것이다.
2.의리의 새로운 모색
1)이해의 여러 방향
전범 추구 사람의 태어남이 극히 정연한, 그리고 불변의 영원한 자연의 이법에 따라 가능하였듯이 우리의 살아감 또한 스스로 강력하고 영구하고 일정한 질서와 규율의 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우리가 원칙 없는 무질서와 혼란을 꺼리는 것도 원초적으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우리들 삶을 위태하고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주어진 불가항력의 막강한 규율과 이법을 무의식적 혹은 선험적으로 그대로 추종하여 살아가는 말하자면 자연 상태에 가까운 삶에는 만족을 하지 못한다. 이는 아마도 사람의 강한 삶의 욕구와 조건에 의해 역설적으로 그 거대한 이법의 힘이 자의적으로 왜곡 변형되고 나아가 스스로 합리화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창조적으로 그 이법을 당당하게 적극적으로 펼치고 강화하고 확장하려는 인간 고유의 본원적 지적 의욕 즉 품은 이상 때문이기도 하다.
이법의 왜곡이란 이법이 소실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이법이 균형성을 잃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이법의 존재이기 때문에 이를 떠날 수는 없으며 이법은 우리 생명의 고향이므로 이를 떠나면 심중이 공허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자연심이다. 그러나 다만 사람의 자유의지는 비록 그것이 이법이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자각적으로 수행할 때 더 가치 있을 수 있지만 동시에 또한 왜곡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의리란 그 같은 유동성 위에서 자각적으로 걸어가는 흔들림 없는 이법의 길일 것이다.
이법에 대한 적절한 각성의 결여는 생물학적인 여러 종류의 공복감 외에도 정신적 감성적 이상을 따라감에 따른 제3의 공복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당당한 명예를 추구한다는 것도 그 하나의 증좌다. 그러므로 적어도 그 이법에 저항하거나 지나치거나 혹은 부족함으로 인해 우리의 순수 영성은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 것이다. 이법은 영혼의 근저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 경전에서는 항시 과불급을 경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러나 이법을 온전히 객관적으로 명각하여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무한히 절실한 감각으로 접근할 뿐이다. 그 접근의 노력과 결과가 바로 역사상 이룩된 고전적인 이상과 전범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전범이 부단히 재해석되어 경신되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면서 사상이 발전하는 이유일 것이다.
예를 들면 사람이 불로장생 하고자 하는 소망을 누구나 가지고 있는데 이는 명백히 자연의 이법에는 반하는 것이다. 물론 영원한 삶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유한한 삶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함’ 그것이 바로 인간의 특징이며 도전적 명운이기도 하다. 새로움을 지향하고 바람을 지향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도록 그치지 않는 인간의 막한 생명적 의욕이다.
인간은 드디어 나아가 자신이 우주와 자연과 함께 3대 주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주에서 인간이 가장 존귀하다는 자긍의 태도에 이르기도 하였다. 오르테가 · Y · 가세트(Ortega Y Gasset, José)가 우주는 위대함에도 자신의 위대함을 모르지만 사람은 스스로 이를 자각한다고 한 것이 그 한 예다. 물론 사람이 아무리 이법에 이탈하고자 하여도 이를 벗어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법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함으로 인해 수시로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우선 자연적으로 주어진 몸으로 살지 않는다. 의상을 걸치고 집을 짓고 무언가를 스스로 마음대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문화적 창조라는 것도 자연의 이법을 따름에 만족하지 않고 그 자연의 이법을 이용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나아가서는 이용하는 그 일환이다. 사람의 삶의 역사가 그렇게 이루어졌으므로 그들의 전체 생활 자체도 역시 스스로 자각해낸 이법의 범주에 따라 더 나아가서 인위적 창조적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창조적 삶도 결국은 그 자연의 위대한 이법의 안에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므로 ‘인위적인 것마저도 이법이다.’ 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만들어가는 삶은 자연이 만드는 것보다 더 단순하고 명백하고 가시적이다. 자연의 이법보다는 교묘하지는 못한 것이다. 그러나 뛰어난 감성과 현상성을 확보함으로서 그 단순함을 빛나게 한다. 단순함의 아름다움이다.
삶에서 추구하는 창조적 적극적 인위적 이법의 운용은 그 자각한 이법 자체의 이해의 내용과 방식에 따라서 많이 달라진다. 어느 면에서든 사람의 다양한 삶의 모습 자체는 의식적 무의식적 여러 수준에서 가지게 되는 이법자각의 표현이기도 하다. 물론 꼭 배움으로만 자각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삶 스스로가 이법의 깨달음과 느낌의 기회인 것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배움 자체를 자각하고 배움을 적극적으로 영위하는 것이 제일이다. 나아가 그 배움의 영역을 현실 자연 역사에 까지 넓혀가는 것은 이법을 이해하는 최상의 방도일 것이다. 맹자의 상우(尙友)가 역시 그런 것이다.
의리란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이법 자각내용을 요약하고 이를 재정비하고 정돈하여 이법 자체와 일치되게 하고자 하는 궁극의 노력이다. 의리란 크게 보면 역시 배움과 공부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배움과 공부 그 자체이기도 하다. 위대한 이법 자체와 일치되기 위해서는 이법 이해의 수준과 질이 증진되어야 하고 또 그것이 명백하고 절실하게 느끼고 자각하여 알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깨달음의 끝없는 경신이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삶을 구현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 깨달음을 높여 나아가기 위해서 전 삶의 장을 배움과 공부의 장으로 전환할 필요가 절실한 것이다.
의리는 배움과 공부를 통해 도달하게 되는 궁극의 생활태다. 의리란 그냥 본성이나 성격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과 행동을 제어하는 배움을 통해서 인생의 무지로 인한 막연함 혼미함이나 방황 무절제함 제멋대로임을 정돈하고 하나의 삶의 전범을 찾아 나아간다. 그 삶의 전범은 사람에 따라 개성이 발휘될 수 있어 다양하다. 말하자면 인생의 정돈된 작품과 같다. 의리란 인생의 하나의 전범적인 주제를 표현한 노작이다.
그 배움과 공부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전통적 측면이다. 이른바 성경현전이 보여주는 의리전범을 배우는 것이 그것이다. 인간의 사상은 자율적 발전의 모델을 유지해왔다. 물론 시대와 호흡하지만 그 내면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범들은 영원한 가치를 지니며 역사를 초월한다. 자율적 특성 아래서 각 시대에 취사선택의 과정을 거치지만 큰 삶의 틀은 굳게 유지되었으므로 비약이나 특별한 이인은 없는 것이 정통사상의 특질이다. 그런 점에서 성경현전은 의리의 자율적 측면을 보여주는 보고이다.
다음은 내면공부다. 나 자신의 마음이 유리같이 투명할 수 있다면 삼라만상의 현상들이 내 마음을 지나면서 그대로 일치되는 감동을 맛보게 될것이다. 그 일치된 감동이야말로 진실의 표상이다. 예술적 문학적 경지에서 느끼는 감동도 있지만 학문적 감동은 더 강렬하고 진하고 영구하다. 이것이 역시 사상적 자율성의 모델의 또 하나이다.
마지막으로는 시대를 숨 쉬고 여건과 환경을 숨 쉬는 것이다. 당 시대와 호흡하지 못한다면 사상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현실과 같이 동일화될 것인가 하는 것이 또한 의리의 과제다. 이는 역사적 환경과 또 다른 절실하고 절대적인 삶의 명제와 연관 지워져야 하고 시대의 모순이나 과제에 응답하여야 한다.
고금의 모든 문헌과 경전은 사실 의리의 기록이다. 서양의 철학이나 동아시아 유학에서 텍스트를 중시한 것은 결국 진실의 전범을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다. 상고시대의 무축이나 기술 공인집단 이래로 오늘의 내면화된 철학자에 이르기 까지, 전범을 추구하는 이들은 동질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는 예술이나 문학일지라도 수행의지를 담은 전범을 추구하지 않음이 없다. 바로 의리의지(義理意志)다. 문제는 의리의 수행 양식과 개성일 것이다.
공자가 나의 도는 하나로 일관된다고 하였을 때 증자는 이를 서(恕)라고 풀었다. 증자의 서심(恕心)이란 이미 공자가 언급한 충서(忠恕)를 말한 것인데 진정한 정성 즉 참마음 곧 진심을 말한 것으로 바로 그 진심을 통하게 하는 것 또는 펼쳐 나아가는 것 그것이 일관의 뜻이라고 풀이한 것일 것이다. 참마음은 실로 의리의 근거이며 바탕이므로 증자의 지적은 옳은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가장 뚜렷이 느끼고 감지할 수 있는 것이 마음이며 감정이다. 그러므로 이를 ‘은미하면서도 드러난다’고 하였다.
그러나 증자처럼 오래 마음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라면 서심과 의리의 관계를 절실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의 마음의 성찰이 없이는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증자의 제자 자사와 그 사숙(私淑) 제자인 맹자만이 그 의미를 바르게 깨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용서하는 마음과 이해하는 마음 사물을 궁리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모두 다 서심의 범주에 속할 수 있기 때문에 증자의 언명은 넓고 깊고 그러면서도 절실한 말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가까운 것 절실한 것을 느끼고 이를 성찰하여 배움으로 삼는 공부는 쉬운 일이 아니다. 증자가 매일 3가지로 자신을 반성하였다는 말이 바로 그 증좌다.
서심은 이미 의리행실의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의리행실은 서심보다는 더 앞의 시급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자학단에서 서심을 이야기 하는 것은 그곳이 배움의 장이므로 매우 유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의리는 더 일반적 의미로 통행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가깝고 절실한 언어로 풀어낼 수는 없는가 하는 의문도 들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배움의 언어일 것이다.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않은가”라고 한 한 마디가 더 절실한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배움의 자세로 살아간다면 우리 삶이 옳지 않은 쪽으로 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공자의 말씀을 따라갈 말은 아마 천하에 다시없을 것 같다.
증자의 서심이란 사실은 인심(仁心)을 말한 것인데 인을 안다는 것은 지극한 공부의 귀결일 것이다. 천지와 사물과 인간을 배움이 깊어질 때 확신하게 되는 경지일 것이다. 물론 맹자의 언명에 의하면 사람이 천성적으로 가진 인심(人心) 즉 사람다운 마음이지만 내안의 인심이 확고하게 갖추어진 것임을 깨달은 것이 인(仁)일 것이다. 의리란 그 인심의 깨달음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행하게 되는 보다 절실한 어떤 것이라고 생각된다. 맹자의 사단(四端)은 사람이 똑같이 가진 근원적인 심성이 인의예지의 단서라는 것인데 예컨대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이라든가 수치를 알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라든가 시비를 가리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이 다 절실한 것이지만 이 네 가지 마음은 서로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함께 뭉쳐져 있으면서 그중 한 쪽으로 일어나게 되는 그런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의는 수치를 알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지만 인과 예와 지를 함축여야 진정한 의리다. 마음의 종합적 발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단은 인으로 대표될 수도 있고 의로 대표될 수도 있고 예로 대표될 수도 있고 지로 대표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은 같은 본질을 지적한 것이므로 이것이 바로 일관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네 가지 가운데 아마도 의리가 가장 절실한 것일 것이다. 수치와 증오라는 두 가지 마음 작용이 아울러 있어서 어떤 경우에도 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치는 자기반성을 유도하며 증오는 바른 행동의 결의를 나타낸다. 마음과 행동을 아울러 나타낸 말이기 때문에 의리란 이 네 가지 마음을 항시 대표하기에 좋으며 특히는 무도한 시대 행동적 결단이 요구되는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맹자의 언급대로 역사상 대개 잘 다스려지는 시대는 적었고 어지러운 시대가 많았으므로 의리로 말하는 것이 더 시의에 맞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맹자 시대에 비하여 공자 시대는 원칙과 제도가 비교적 많이 살아 있는 시대였다. 맹자시대는 원리와 원칙이 무너진 혼란이 극한 시대였다. 의리용어가 더 절실했던 것이다. 공자는 진리를 말했으며 맹자는 이를 수호하고 이어가야 하였으므로 인의(仁義)를 강조하여 의리(義理)를 부각하였던 것이다.
수립의 미학 우리의 태어남은 자연의 이치이므로 우리가 근본적으로 자연스럽게 살아야 하는 것이 생명체로서 부여받은 지상명령이다. 자연스럽게 살지 않고는 그 자연의 생명을 보존하거나 영위할 수 없다. 이를 순리라고 한다. 우리는 어떤 삶의 내용이든 크게 자연의 영역에서 창출되고 이루어져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맹자는 이를 ‘천형(踐形)’이라고 하였다. 온전히 자연스러움을 따라 산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인만이 ‘천형’할 수 있다고 하였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늘 자신의 인위적 생각에 얽매이고 자신의 욕구에 제한 당하게 된다. 자신을 제어하고 이 천형의 원칙 위에 세워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문화이며 문명일 수 있을 것이다. 천리나 순리의 효험이 문화적 인간 활동에 의해 더욱 창조적이며 빛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는 인간을 위대하다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삶이란 극히 정상적인 자연의 이법의 구현이다. 그러므로 이를 ‘상도(常道)’라고 부른다. 나의 삶과 자연의 운행을 합치되게 하는 이상적인 삶이다. 그러나 그 상도 혹은 이법이란 그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뚜렷이 볼 수는 없다. 체험과 배움 속에서 형성되는 확신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탐구함으로서 비로소 느끼고 알게 되는 그런 것이다.
그 같은 자각을 얻게 되는 경험적 대상도 당연히 사람에 따라 다 다르다. 농사를 짓다가 불현듯이 깨달을 수도 있고 수레를 만들다가 갑자기 알 수도 있고 말하다가 그냥 느낄 수도 있다. 성실히 살면서 그냥 아는 것이다. 이를 자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그 자각의 내용도 일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주역 ‘계사전(繫辭傳)’에서는 ‘이일분수’를 강조하였다. 자연은 하나에서 나왔지만 나뉘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안연은 공자의 학문을 말하여 ‘앞인가 하면 뒤였다’고 하였다. 황홀난측하다는 것이다. 이 모두가 이법의 자각을 표현한 말일 것이다.
자연이란 느끼고 사유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스스로 동참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끼고 사유하는 것이 자연과 하나 되는 길이다. 이 때 느끼고 사유하고 행동하는 주체인 나는 자유로워야 하는 존재다. 자유롭다함은 나의 내면 외부 그 어디에 의해서도 강요되거나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 자체도 자유로운 존재다. 그러므로 그에서 비롯한 인간도 자유로워야 하는 이법의 가운데 있다. 그러나 그 자유롭다 함은 생물학적인 자유는 아니다. 생물로서 우리는 늘 그 삶의 욕구나 그 발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자유의 길은 결국 끈질긴 입체적 성찰이다. 공자가 현자를 배우기를 사랑하듯이 하라고 한 것도 그런 것이다. 인생의 고통과 기쁨까지도 성찰할 때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된다.
사람의 내부에는 자신을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충분히 성찰하지 못하게 하는 삶의 상황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를 이욕(利慾)이라고 한다. 사람의 칠정과 욕구들은 이 역시 정당한 생명의 요구이지만 오로지 여기에 매일 때 부정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비록 정당하지만 그 생명의 요구를 따르되 이에 지나치지 않도록 자연으로 순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것일지라도 지나친 것은 악이다. 부족함으로 병이되는 경우보다 지나침의 해악이 더 많다. 우리일상의 느낌과 생각이 다 그러할 것이다. 공자가 ‘어질되 배우지 않으면 어리석어진다’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과 같다‘고 한 것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극기가 필요하고 끈질긴 자성이 필요하고 배움이 필요하다. 그러한 갈등을 해소하고 자연적인 순화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 인생의 참 본질일 것이다. 이 같은 자기균형을 위한 노력을 대표하는 것이 배움이다. 성찰이 중요하지만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공자는 ‘배움만 못하다’고 하였다. 나 자신과 나의 환경적 모든 대상을 모두 배움의 이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배움만이 자신을 제대로 성찰하고 극기하고 모든 사물과 시원하고 밝고 화통하게 통달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움이란 겸손한 것이며 자신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여기서 나온다. 다만 배움이란 꼭 독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배움의 의미를 이해하고 산다면 모든 것이 다 배움일 것이다. 부족한 것도 넘치는 것도 좋은 것도 바쁜 것도 즐거운 것도 슬픈 것도 오욕과 명예마저도 다 배움일 뿐일 것이다. 배움을 통해 우리는 새 길을 세워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의리란 순수 사색으로 이루어진 논리적인 사상적 결론은 아니다. 존재의 의미를 고뇌한 철학적 신념도 아니다. 그렇다고 틀에 박힌 도덕도 아니다. 종교는 더욱 아니다. 전통사상이 조상숭배나 제례를 행한다고 하여 종교로 볼 수 없으며 남녀를 분별하는 사상을 지녔다고 하여 도덕이라고 할 수 없고 주역과 같은 추상적 논법이 있다고 하여 철학이나 형이상학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두 다 배움의 양식일 뿐이다.
그 어떤 영역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다만 온전히 언제나 배우고 깨닫고 수행하는 입체적인 것이다. 자연스런 그리고 무제한의 배움으로 인해 자연히 일어서게 되는 것은 진정한 나의 수립이다. 그 배움은 한이 없지만 대개는 1)나 자신의 내면을 잔잔히 성찰하고 2)빈 공간과 주변의 여러 현상을 그대로 수용하며 3)역사적 인물과 전통을 살피고 이해하는 등의 세 부류의 노력으로 구성된다. 중용의 ‘신독(愼獨)’이란 나의 생각에 가두어지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결국 위의 배움의 3자가 균형을 이루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이 삼자가 균형을 이루면서 통찰의 힘이 넓어지고 뚜렷해지고 깊어지는 것인데 그 밝은 생각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명쾌한 결단이 바로 의리다. 의리란 결국은 가시적으로 만들어지는 그 어떤 것이다. 당연히 이는 크고 작은 여러 단호한 선택과 행동으로 구현된다. 이를 역시 세운다고 이를 수 있다. 하나의 스마트한 행동 일관된 행실 결연한 선택과 같은 삶의 스타일이다. 그러므로 의리란 세워 나아가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세워 나아간다 함은 물론 새로운 것, 상상할 수 있지만 쉽지 않은 것, 예상을 넘어선 것, 나아가 놀라운 것 등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다만 절실히 누구에게나 공감되는 그 어떤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것은 단지 자연의 정상적인 이법 즉 상도를 순수하게 따라간 것일 뿐이다. 나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므로 공변되고 공정하고 공평한 것이기도 하다.
나의 내면적 자연적 일어섬을 넘어서서 결국은 누가 보아도 새로운 섬을 창조해 일구어내는 그런 것이다. 자신의 독특한 의지를 현실에서 가시적으로 구축해 나아가는 것이므로 새로운 수립의 미학이며 창조적 세움의 의지다. 인간은 직립함으로써 인간이 되었음에 만족하지 않고 무한한 세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 세움은 사소하고 작은 것일 수도 있고 거창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의리란 자연과 내면의 마음과 행실이 즉 자연과 나 사이에 적절한 조화를 이루도록 새로운 접점을 찾아가는 것이므로 역시 제3의 길이다. 단순한 이기의 길도 아니고 무심히 자기를 버리는 길도 아닌 조화의 길인 셈이다. 의리란 결코 자포자기(自暴自棄)가 아니다. 슬프고 애처로움 것이 아니다. 대인행이다.
그 같은 의지와 행동을 세움에 있어 절실한 새로움이 결국 문제인데 의로운 자가 진정 새로움을 이루고 향할 수 있는 것은 절실한 자각의 생생함에서 비로소 발원된다. 밝은 생각이라고 한 까닭이다. 대학에서는 이를 명덕(明德)이라고 하고 자명(自明)이라고 하였다. 바로 그 절실함의 에너지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의로운 행동이란 바로 절실한 의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전인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며 냉철한 상상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절실함에 대해서는 특별히 강조할 필요를 느낀다. 공부와 의리의 중핵이기 때문이다.
절실함이 없이는 사실 어떤 일도 진정으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뜬 인생이라고 한다. 허황되다는 것이다. 절실한 느낌 절실하게 다가오는 생각은 진정한 배움의 진실과 기쁨을 일으킨다. 그 절실함은 사실 우리 내면에 그리고 주위에 어디에나 무한정으로 항상 존재한다. 그 절실함을 요구하는 대상들과 상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배움이 장애되는 것일 것이다. 통달이라는 말은 그러므로 매우 적절한 어휘다. 의리란 통달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막힘이 없는 것이 통달이다.
공자는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30이 되어서부터는 세워 나아갔다고 하였다. 물론 이는 그의 모든 생활의 장에서 배움의 노력을 견지하면서 그 배움과 공부의 결과를 명백히 그리고 창조적으로 수행하였음을 의미한다. 모든 의미 있는 의지적 기립 그것이 바로 의리다. 가치 있는 일어섬은 생명의 표상이며 창조의 의표다. 산에 나무가 동산에 꽃이 하늘을 향해서 저마다의 몸짓으로 일어선다. 그 섬은 촌시도 변함이 없다. 죽음에 이르도록 변함없이 서있음이다. 나무와 꽃은 다름 아닌 의리의 자연적 정화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연적 정화를 자신의 의지로 적극적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 의리다. 그와 같이 확고함의 자격으로 서는 것이 의리다.
우리는 스스로 서는 자립으로 비로소 삶이 시작되지만 결국은 내 몸을 넘어서서 어떤 일을 수행하고 구현하는가가 중요할 것이다. 진정한 수립은 삶의 외연에서 객관적으로 가시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 나에게서 시작되므로 진정한 나 자신의 확대이며 그 확장이기도 하다. 의리란 바로 나 자신이며 또한 나의 분신이다. 환언하면 행동으로 인해 실로 창조하여 이루고자 하는 개성에 찬 나다운 절대의 가치다. 나가 서지 않으면 의리도 없을 것이다.
의리란 인생에서 어떤 일을 이루어 존립해 둘 것인가 하는 것을 문제 삼는 삶의 태도일 것이다. 평생에 아무것도 순수하게 세워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 삶이 의미 있는 것이었다고 말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인생은 결국 연륜이 깊을수록 순수함으로 승부가 나야 하는 그런 것이다. 또 하나의 필수적 문제는 삶을 시종하는 그 시공에서 얼마나 삶의 일관성을 견지하느냐가 의리의 관건일 것이다. 의리란 일회적인 속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의리란 강한 일관성으로 수행해 나아가는 것으로 귀결된다. 물론 그 결과물도 영속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의리의 바탕인 상도 이법의 특징이 바로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일관성 위에 영원한 자신을 세워 나아감은 진정 경이로운 것일 것이다.
채움의 기쁨 우리가 아직 건강하다할 때, 무얼 하다가 허전한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대개는 나 스스로의 감각과 사고가 잠시 진실의 실을 떠난 때문일 것이다. 한 순간 지나치거나 과도한 어떤 상태가 되었음을 뜻한다. 충실한 삶에서는 허전함이 있을 수 없다. 반대로 아무런 생각도 안 난다면 아마도 그 때는 우리가 어딘가에 마음이 팔려있거나 스스로의 울에 가두여서 심신이 시달리고 피곤한 때문일 것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면 역시 진실을 따라가는 삶에 커다란 장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일어난다면 이 역시 진실로부터 멀어져서 오는 하나의 혼란상이다. 진실을 추구하는 것만이 삶의 진정한 빛이며 힘일 것이다. 또 안정된 길일 것이다. 그 진실을 채움을 ‘충실’하다고 한다.
인생의 모든 것은 그 같은 실에 의해 좌우된다. 마음마저도 그러하다. 실로 보고 실로 느끼고 실로 생각하고 실로 말하고 실로 써야한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바로 그 실을 걱정한다. 실을 떠난다면 과장되거나 허황되거나 막연하거나 두려울 것이며 결국은 무의미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참 기쁨의 참이 그것이며, 참사랑의 참이 그것이며, 참인생의 참이 그것이다. 인생의 모든 것은 실에 의지해서 비로소 현실적이고 동시에 본질적인 가치를 튼튼히 확보한다.
물론 이 실은 꼭 세속의 물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가시적인 것을 넘어서서 진실의 실체와의 융통을 말한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실에 더 유의해야 하는 것일 것이다. 물론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것일지라도 가상적인 것일 수는 있다. 그러나 진실은 온 감각으로 느낌을 다할 또 그것이 영속적일 때 진정한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전제는 자신의 허울에 가두이지 있지 않다는 조건아래서다. 누차 공자가 서심(恕心)을 강조한 것은 바로 그래서 일 것이다.
진실인가 실지인가 정말 그러한가 하고 항상 스스로 묻는 기회를 자주 갖는 것은 그러므로 좋은 일이다. 더욱이는 얼마나 절실히 생생하게 느껴지는가를 또한 물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실감함에 더없이 생생하고 전율하는 절실함일수록 더욱 좋을 것이다. 그만큼 진실에 가까웠다는 뜻이니까. 진실을 느끼려는 노력의 중요함은 아마 생각보다 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조되어야할 것 같다. 흔히 우리가 착한 것을 높이 사는 이유는 그것이 진실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위선이라면 높이 살 이유가 전연 없을 것이다.
의리란 바로 그 실을 채워 나아가도록 우리 삶의 영역을 지키는 일이다. 진실의 영역을 벗어남이 없도록 특히 어떤 경우에도 그리고 어떤 유혹에도 또는 어떤 욕구나 의욕에 의해서도 그러하도록 진실의 범주를 고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의로 인해서 그 진실이 우리 삶에 쌓일 수 있다는 것이며, 인생은 진실의 축적만이 그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행복과 안위 축복마저도 오로지 그 힘에 의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가상이나 억측과 상상과 비약으로 허술해진 그 막연하고 빈 마음을 진정으로 채우고, 있어야 할 것들을 부지런히 모으고 준비하여 허한 곳을 채워 쌓아서 충만해지는 기쁨을 위한 것 그것이 의리다. 쌓는 다는 것은 일정한 중심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나아가 일정한 외연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중심과 외연이 갖추어진 후에 쌓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채운다는 것은 사실은 자신과 모든 주변에 대한 진실한 주시이며 배려이며 받아들임에서 시작된다. 눈에 보이는 것, 마주하는 것, 나누는 대화 아니면 조용히 길을 걷다가 만나는 사람, 심지어는 지나가는 바람까지 그대로 왜곡 없이 응찰함으로써 진정은 일어날 것이다. 상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나의 느낌과 욕구에만 제한되지 않은 것이라면 언제나 진정이 일어날 것이다. 진정을 느끼지 않는다면 실의 의미는 부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이란 혹은 참 실이란 현실세계를 이루는 근본이며 나아가 동시에 또한 모든 이상의 언어다. 생활에 요구되는 물질이면서 동시에 꿈꾸어야 하는 향방이기도 하다. 그 실 가운데 가장 미묘한 것이 마음속에 있으므로 『중용』에서는 ‘신독(愼獨)’을 강조하였다. 홀로만 느끼고 자각할 수 있기 때문이며 마음의 진실이 모든 진실 중에 가장 근본이 되고 현실과 이치세계를 통관하는 미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마음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맹자는 “진실의 신의가 충만하여 아름답다”고 하였다. 그 때 ‘신(信)’이란 ‘실유(實有)’를 의미한다.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역시 채움의 미학을 말한 것이다. 맹자는 그 말에서 ‘대인’ 직전의 ‘미인’의 인격을 지적해 말한 것이다. 의리란 속 찬 것이다. 그 채움의 알갱이들은 영구히 참한 그 어떤 것들이다. 의리란 결코 허세가 아니며 참마음의 행실을 쌓아 나아가는 것이다. 끊임없이 축적하여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의리라기보다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세세한 시비선악을 가리는 부분적인 일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우연히도 선에 도달하고 의에 도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의행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의리란 그 끊임없는 축적의 결과로 나타나는 창조적 행동이다. 일화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맹자가 ‘호연지기’는 ‘의리의 집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한 것은 핵심을 잘 지적한 말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의리가 기(氣)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정기(正氣)인 것이다. 대개는 기를 리와 구분하여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다른 것은 아니다. 존재하는 것은 ‘이’이며 활동하는 것은 ‘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기권에 공기는 항상 있었지만 높은 가압차로 인해 강력한 운동을 일으킬 때 폭풍 태풍이 되는 이치와 같을 것이다. 리가 축적되어 형체가 생겨난다고 할 때 그 축적의 운동은 기에 속한다. 기가 없다면 모든 ‘이’는 우주상에서 산만하게 흩어진 채 그냥 있어야 할 것이다.
기를 말할 때 순기와 탁기를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순정한 기운이 모여 사람이 되었고 탁한 기운이 모여 동물이 되었다는 식이다. 그러나 기나 이에 원래부터 순정한 것과 탁한 것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리와 기의 모임과 움직임은 내적 축적의 과정과 외적 활동의 과정으로 양분될 것인데 내적 응축의 과정이 기 본래의 활동의 과정보다 강화될 때 무거워진다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탁한 것이란 일종의 비만현상일 것이다. 이와 기는 원래 모습을 조금도 변용함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기이원론이나 기일원론이 언급되기도 하였지만 이와 기를 강조하는 의미일 뿐 실제도 이와 기가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어떤 경우는 이를 통해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한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기를 통해서 설명하는 것이 좋은 경우도 있음은 당연하다. 예컨대 영혼의 존재라든가 죽음의 문제를 거론할 때는 이의 방향이 더 논리적으로 유용할 것이다. 예컨대 불변의 이가 전제되어야 영혼불멸이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사의 문제에 들어가면 기의 통제를 통해서 삶이 가능하고 기가 일정한 질서를 상실할 때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살아감에 천성적인 의욕이 있다고 보고 그것은 ‘인의예지’라고 하였을 때 어짊 명철함 사양함 선악의 분별 등 인간적인 요소들은 이 스스로 자아내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요소 중에 강력한 어떤 욕구가 생겨나고 또 이를 억제하는 것은 격렬한 마음의 작용이므로 이는 기 부분에서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우리 심신이 스스로 자아내지는 요소가 있고 이것이 격하게 움직이는 경우가 있는 것은 당연한데 스스로 자아내지는 경우를 우리는 실 혹은 진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진실들이 어우러지면서 의욕거ㅘ 결합하여 과하게 움직일 때 이는 기의 영역이며 의리의 영역이다. 우리는 삶의 현장을 살아가면서 많은 부딪음이 있게 된다. 생의 어려움이나 위험 같은 것인데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본원적인 그 자아내짐이 격하게 활동할 수 있다. 또한 삶의 풍요를 누리는 과정에서도 그 스스로 자아내짐이 어느 한 쪽으로 과도해 질 수도 있다. 이 역시 기의 문제다. 심신의 내면에서 어떤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났을 때 이는 역시 기다. 그 기를 명확히 감지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뚜렷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과도함을 느낄 때 이를 자각하고 통제하는 것이 바로 의리다. 그러므로 의리란 생동의 선택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처음 본성의 그릇을 가지고 태어난다. 물론 그 그릇은 위의 진실을 담는 그릇이다. 마음과 육신이 본성의 그릇인데 이 그릇은 진정한 본성을 담아야만 활기차고 기쁨으로 충만하게 된다. 그러므로 충만의 기쁨이란 본성을 채우는 기쁨이기도 하다. 진실이 쌓여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쌓이는 곳이 바로 그릇이며 사람 자신이다. 의리란 바로 그 쌓임의 영역 속에 있다. 그릇의 크기와 형상을 정하는 것은 결국 기다. 기의 운동과 중심의 힘의 여하에 따라 그로부터 그어지는 경역이 있게 되고 그것이 진정한 그릇이 된다. 인격이란 신체의 크기나 아름다움을 말한 것이 아니듯이 그릇이란 역시 하나의 구체적 질서체계다.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것이 그대로 행동체계로 전환되기 때문에 이를 의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의를 지키다가 목숨을 버릴 수도 있는데 이를 실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의리를 지키다가 치명적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는데 이것이 실일까. 사실 무의미한 삶은 허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며 의미 있는 생명의 향연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삶은 요령으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며 영악함으로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교묘한 기술로 되는 일도 아닐 것이다. 어리석어 보여도 실을 잃는 것 같아도 결국은 진실이며 그 행실인 의리다. 이를 떠난다면 취생몽사라는 표현이 이에 적합할 것이다. 의리를 지키다가 순절하기도 하지만 의리를 지켜 더 행복하고 보람 있을 것이다. 기쁘고 당당할 수 있을 것이다.
꺼지지 않는 불빛 사람이 지성의 불빛을 열었던 것은 매우 오래된 유구한 일이다. 이미 네안데르탈인이 추상적 사고 능력이 있었다든다 하는 사실들은 접어두고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3000년 전 경의 신정정치시대라 할지라도 지성의 빛이 빛나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은나라 갑골점법이 나라를 지배하던 시기에도 그 이면에 매우 밝은 사리의 분별이 있었다. 왕궁창고에 보관된 갑골편의 예언들이 모두 적중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뚜렷한 증거다. 대개는 국가가 형성되면서 이미 지성의 빛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던 것이었다. 한국사의 예로는 아마도 고조선 시기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이것은 문화접변의 문제 이전에 개별적 개성적 국가적 삶의 영위 자체가 이미 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의리란 빛나는 것이다. 모든 진정 빛나는 것들의 모체다. 지적 광원이다. 그것도 꺼지지 않는 불빛이다. 태우는 빛은 유한하고 반사하는 빛은 번뜩일 뿐이지만 속과 몸이 하나 되어 우러나는 빛은 장구하고 무한하다. 맹자는 신실함의 아름다움이 축적되고 커져서 빛난다고 하였다. 대인을 칭한 것이다. 의리의 빛남은 진실의 빛남이며 그 진실의 충만함이 드러나다가 확산되어 발하는 빛이며 아름답기 때문에 또 광명하기 때문에 누구나 받아들이는 찬연한 빛이다. 의리행실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빛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밝고 뚜렷한 정신의 소산이며 의지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역사상 발휘해온 모든 빛을 바로 이 의리가 대변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빛이란 당연히 밝은 것이다. 밝은 것이란 뚜렷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현저한 것이 바로 빛의 속성이다. 혼돈을 밀어내고 명백한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의리가 빛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진실의 힘에 의한 것이므로 의리란 결코 막연히 추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단순한 일시적인 의기로 가능한 것도 아니다. 가장 진정한 진실은 순수 공간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의리란 어떤 면에서는 공간의 힘이기도 하다. 공간은 또한 빛을 수용하는 무제한의 영역이기도 하다. 물론 공간은 허무한 곳이 아니다. 이와 기가 어우러지는 공유의 장이다.
그 빛을 만들고 빛을 통행하게 하는 힘이 바로 공간에 순수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공간의 알갱이다. 공간은 텅 비어 허무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실체를 알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 알갱이들이 고요히 있을 때 그것은 이이다. 이들이 움직일 때 이것은 기이다. 움직여 축적되고 형태를 이룰 때 이것은 만물이 되며 이들 역시 크게 공간에 내재한 미묘한 힘에 의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형성되고 작동한다. 그 끝에 나온 것이 생명체다. 이기설은 추상론이 아니다. 진실의 발론이다. 알갱이들은 빛을 받아 빛나고 그 스스로도 응축하여 빛을 낸다. 응축하여 빛나는 것 그것이 의리일 것이다. 다만 어느 점을 중심으로 응축하느냐가 의리를 빛나게 하는 초점이다. 조국애 민족애 가족애 등등 그 어느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초점을 가능하게 하고 이를 중심으로 모든 행실이 응축될 수 있는 것 그것이 의리라는 뜻이다.
지킴의 의지 의리란 지켜 나아가는 것이다. 생명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견고한 전위적인 의지다. 의리는 그러므로 생명의 축도이며 죽음의 제전이 아니다. 삶의 장을 무한으로 열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리는 활력을 일으키고 진전하는 그 무엇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이를 호연지기의 머리라고 하였다. 내안의 의지에서 의기가 나오고 그것이 바로 의리라는 말씀이다. 의리는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하면 그것은 단지 삶이다. 죽음의 제전일지라도 이를 생명으로 대할 때 의리가 된다는 것이다.
나날이 달라지는 것 의리란 나날이 달라지는 것이다. 의리란 생명의 진실을 위한 것이므로 그 실체를 명확히 깨달을수록 강해지고 살아가는 매순간에 삶을 따라 경신되고 진전한다. 의리란 살아 있어야 하는 그 무엇이다. 의리란 사는 것이므로 생명의 이상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배우는 진실의 범위가 시시각각 넓어진다면 우리의 믿음과 의리의 실체는 확대되고 변화하며 발전한다. 의리란 깨달음으로 피어난 모든 생명적 경이의 실체다.
생활의 미학 의리란 꼭 학자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다. ‘하고자 할 만한 행실’을 동조하고 행하는 데서 나왔다. 그런 행실을 맹자는 선인(善人)이라고 하였다.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스런 아름다운 행실이 의리의 바탕이다. 이 행실이 쌓여 의리의 실을 이룬다. 그러므로 맹자는 ‘적선하는 가문에 많은 경사가 있다“고 하였다. 의리란 결국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는데서 시작되지만 결국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데서 완성된다.
생명의 제의 의리란 사는 것이다. 의리란 어떤 죽음의 찬미가 아니다. 살기 싫어도 죽지 않는 것은 죽음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워도 죽이지 않는 것은 죽임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남이 다 사는 것 그것이 의리의 끝이다. 진실은 신과 같다. 진실이 없다면 인간계가 있을 수 없고 진실이 없는 것 그것이 다만 죽음일 뿐이다. 온 세상을 이루는 진실은 극미하고 미력하지만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없앨 수 없다. 그 속도 없고 밖도 없는 무한히 작은 것이 쌓여 나타나는 그런 것이다. 그 존재와 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의리다.
의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쌓고 배워야하지만 누구나 의리의 길을 갈 수 있다. 그러므로 맹자는 “의리는 인간의 대로”라고 하였다. 왜 대로인가 누구나 갈수 있는 탄탄한 길이며 무한한 길이며 막힘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것은 의리의 길을 막는 작은 걸어감의 길이며 나 하고자 함을 절제할 때 의리의 길이 열린다.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므로 맹자는 이를 두고 “왜 이 길을 걸어가지 않는가?” 하고 물었다.
의리의 절정 우리가 자기에게 가두인 사심이 없이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의리이므로 의리란 순수한 길이다. 식혜 한 사발 마시고 싶다면 이 역시 의리다. 삼겹살 한 조각 구워 먹고 싶다면 이것 역시 의리다. 순수한 순리이기 때문이다. 의리는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며 다만 선택하는 것이다. 최상의 선택이 의리다. 그러므로 공자는 “70이 되어서는 하고 싶은 것을 따라가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하였다. 맹자는 “살고도 싶고 죽고도 싶을 때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최상일 때도 있으며 이 역시 내 하고 싶은 것”이라고 하였다. 의리는 나의 아름다운 선택이다. 맹자는 “생선도 맛이 있고 곰의 발바닥도 맛이 있지만 나는 곰의 발바닥을 택하겠다.”고 하였다. 이 역시 의리다.
2)의리의 실천적 측면
춘추대의란 말이 있다. 공자 춘추의 역사에 기록된 선악 시비를 평가한 의리를 말한다. 천자 군주의 일을 말한 것이므로 대의라고 하였으나 그 대의는 개개의 군자들의 행실에서 구현되었으므로 결국은 의리의 기록이다. 의리행실을 평가한 것이 춘추다. 대의를 평가하는 바탕을 이루는 것은 신의가 있는가? 어진가? 예에 맞는가? 결단력이 있는가? 순수하였는가? 하는 것과 사사로운 이욕에 빠졌는가? 안일하거나 방탕하였는가? 아집이나 고집이 있었는가? 오만하였는가? 하는 구체적인 것들이다. 의는 포괄적인 시비선악의 행동평가다.
이는 지혜와 비교될 수 있지만 시비선악을 아는 것이 지혜이고 시비선악을 느끼고 행하는 것이 의리이므로 서로 다른 의미차원을 지닌다. 의리는 예와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예란 사양지심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삶의 여유다. 시비선악을 넘어 이를 제도화하여 아름답게 창출된 미학적 형식이다. 예는 사단의 꽃이다. 예는 예술과 같은 것이므로 예악(禮樂)을 병칭하고 회화(繪畫)가 필수적으로 함축되며 안무(按舞)로 상징되는 종합예술이다. 의리의 꽃인 셈이다.
자족하는 것 의리란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해하지도 않고 남에게 구하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 혹은 스스로 만족하는 길을 찾아간다면 사람들은 서로 편안할 것이다. 물론 서로 만족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과 더불어 선을 행한다고 하였고 천하와 더불어 근심하고 천하와 더불어 즐거워한다고 하였다. 스스로 기쁨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러므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분하지 않다고 하였다. 먼 곳에서 벗이 오면 기쁘다고 하였다. 여럿이 음악을 하면 더 즐겁다고 하였다.
조화를 이루는 것 의리란 무서운 것 같지만 지극히 화락한 것이다. 화합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내 안으로 나의 마음의 사단칠정을 조화롭게 견지하고 밖으로 남의 칠정을 건드리지 않고 함께 하는 것이다. 다만 그 조화를 해하고자 할 때 조화를 지키기 위해 결단을 내린다. 조화를 위한 용기를 말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하였다. ‘부동‘이란 반 조화에 대한 결연한 절대적 금기를 의미한다.
변함이 없는 것 의리란 최고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아무 것도 지키는 것이 없는 것을 방탕하다고 한다. 자기가 깨달은 가치가 비록 부족할 지라도 순수한 마음으로 지킨다면 바로 성인의 경지다. 맹자는 백이(伯夷)는 너무 좁고 유하혜(柳下惠)는 불공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을 성인이라고 평가한 것이 그것이다. 수시로 변하는 것을 변덕이라고 하고 변함이 없는 것을 상도(常道)라고 한다. 의리란 상도를 지키는 것이다. 변함없어야 하는 가치를 지킨다는 것이다.
생사를 넘어서는 것 의리란 미학적 창조의 궁극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삶에서 이루고 죽음으로도 이룬다. 시신으로서 간하였다는 것이 그것이며 자로가 공자의 우려를 뒤로하고 죽음의 길을 간 것도 그것이다.
국가 조직에 힘을 주고자 하는 것 나라의 조직이 없다면 사람은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국가 없는 티베트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고구려 해명태자는 자살의 검을 내려준 부왕의 명에 저항하지 않고 대동강 가에서 장렬히 자결하였다. 국가를 위한 희생이었다. 호동왕자는 부왕의 기쁨을 위해 자살을 택하였다. 역시 국가의 존립을 위한 헌신이었다. 이에 대해 중국 전설상의 순임금이 아버지 고수와 동생 상의 죽임의 위협을 넘어서서 요를 계승하고 천자가 되었던 것은 국가를 위한 참음 이었다. 그가 들에 나아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은 것은 가족적 슬픔의 표현이었다. 이를 이겨낸 것은 효심이었다고 평가해 왔지만 또한 역시 국가의식이었다고 보아도 무리 없을 것이다. 국가란 모두 함께 사는 생명의 장이다. 이 튼튼한 삶의 장이 없다면 누구나 위태해질 것이다. 국가의식이란 사사로움이 없어야 하는 최대의 영역이므로 국가의리는 모든 의리 중에 가장 큰 것이다. 물론 이보다 큰 의리도 있다. 성인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온천하의 편안함이다. 국가의리도 이 천하의리에 함축되어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또한 국가는 가정 가문과 표리를 이루고 있음도 말할 것이 없을 것이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의리의 범주가 4단계로 이루어져 있음을 말하고 있다.
성실한 것 의리는 매우 구체적인 것이며 특정 현실과 직결되는 것이다. 물론 그 현실이란 배움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인을 추구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맞이하는 대소의 곤란상황’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에 따라 매사에 세세히 분별해보고 치우침이 없는지 사려하고 조절해 나아가는 것이다. 공자는 자장은 너무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하였다. 의리에 도달하는 길은 자장 같은 탐구와 자하 같은 믿음 두 가지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 성실한 노력이 의리를 강화해 줄 것이다.
의리는 나아가 사람의 특유의 온전한 본성을 닦을 것이 요구된다. 본성을 직시하고 절실히 깨닫는 공부가 모든 배움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이를 상심(常心)이라고도 한다. 하늘이 준 타고난 아름다운 본성을 변함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정상적 인간이라는 전제 아래 얘기다. 본성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인간적인 것이므로 이를 금수(禽獸)라고 부른다. 물론 짐승도 어진 인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에 인물성동이론이 나왔었다.
의리란 1)본성 수치 2)공부 확충 3)실행을 통한 절실한 체험이라는 세 가지 과정을 성실하게 의식적으로 수행해 나아가는 데서 성장하는 가치다. 이를 두고 원시반본(原始反本)이라고 한다.
보다 큰 어짊을 향해 나아가는 것 성인교육프로그램 강의 중에 어느 분이 인에 대해 물었다. “ 인이란 한마디로 무어라 할 수 있습니까? “ 나는 먼저, ” 쉽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전연 어려운 뜻은 아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인이란 한마디로 아껴주는 것이다. 사랑인 것이다. 의미는 그 외에는 전연 없다. 다만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 떳떳함과 변함없음이 있을 뿐이다. 인은 사랑 중에 지극히 순수하고 정성스럽고 변함이 없는 것이다. 아울러 인이란 그 사랑의 가치를 인식하고 행하는 지혜의 결과이다. 무지해서는 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이란 또한 인과 불인을 철저히 가려서 어긋남이 없이 실행하는 것이다. 바로 의리로 구현되는 것이다. 의리를 빼놓고 인을 말할 수 없다. 성실한 신의를 빼놓고 인을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인의는 역사적으로는 예에서 나왔으므로 궁극적으로는 예를 모르고서는 인을 이해할 수도 없는 그런 것이다. 공자의 학문이 예에서 출발한 것임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인의(仁義)란 이란 결국 질과 깊이를 함축한 말일 뿐 모를 말은 아닌 것이다. 의리를 정의한다고 하더라도 이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스스로 묻는 것-자문자답 백이는 왜 좁은 의리를 행하였는데도 성인이라고 하였는가? 순수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에게 묻듯이 스스로에게도 묻는 것 그것이 의리다. 나에게 묻는 것은 남을 묻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그것이 의리다. 공자는 왜 소정묘를 죽였는가? 일벌백계를 위한 것이다. 다른 마음을 추호도 끼어있지 않았다. 순수하였으므로 성인의 행동이다. 수많은 순수한 물음들로 구성되는 것이 의리다. 공부하면서 느껴서 하는 것이 인이고 물어서 자답하여 하는 것이 의리다. 의리는 무한한 자문자답이다.
3)의리의 기원
공자는 논어 서두에서
“ 배우고 때로 익히면 곧 기쁘지 않은가? ”
“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 ”
“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하지 않는다면 역시 군자가 아닌가? “
라고 웅변하였다. 이 세 마디 말은 무한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모든 지적 소산들은 배움과 그에 따른 정서와 자신의 절실한 실행으로 완성된다. 배움이란 남과 타자에게서 마음으로 수용하는 것이며 정서란 스스로 마음속에서 일치되는 감동이다. 실행이란 그 마음 그대로 밟아 나아가는 것이다. ‘기쁘고’ ‘즐겁고’ ‘노하지 않는다.’ 는 것은 깊은 천심의 자연스런 발로다. ‘때로 익힌다.’는 것은 배움을 다지는 의미도 있지만 그 배움을 현시대에 적절하게 구현함을 의미한다. 때를 모르는 것을 ‘철모른다.’고 하듯이 때를 살피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천심을 온존하고 배우고 행하는 삶은 바로 어진 삶이다. 결국 노하지 않는 삶은 의로운 것이다. 인의가 따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배움과 공부 즉 학습은 하나 됨이다. 주자는 익힘과 때에 대하여 익히지 않는 때가 없는 것이라고 풀었다. 삶의 모든 장을 익힘으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익힘은 배움의 실질적 과정이며 진정한 일치 즉 하나 됨의 성취다. 그 성취된 결과를 행함이 인이며 이를 고수하여 지키는 것이 의다.
의리정신은 전통적 배움의 소산이며 특히는 그에 따른 공부의 소산이다. 배움과 공부는 정통적으로 ‘학습(學習)’이라고 칭해왔다. 배움과 과정과 익힘의 과정 즉 공부는 사실상 판이하게 다른 과정이다. 배움으로 얻은 새로운 안목은 학습 또는 공부를 통해서 절실한 자신의 정신과 행동의 강력한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부는 내면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기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새로운 현실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적 배움이 없는 의리는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또 굳건한 확신을 얻은 진정한 의리일 수도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전통적으로 실천(實踐)이라고 부르던 것이었다. 실천화되지 않는 공부는 사실상 인생에서 크게 유용한 것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삶의 중추적 힘이 될 수 없으며 창조적 삶의 에너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배움을 두고 ‘서자서아자아(書自書我自我)’라고 하였다. 지식은 지식대로 따로 있고 나의 의지와 행동지표는 또 따로 홀로 멋대로 있다는 뜻이다. 배움의 공부를 철두철미하게 고수하고 수행하는 것이 바로 의리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천성만을 잘 지키는 일도 유의미하며 이를 선인(善人)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선인에 머무른다면 철상철하(徹上徹下) 할 수 없을 것 이므로 의인이 요구되는 것일 것이다.
의리정신의 사람의 자연스런 감정과 사색에 기초하므로 천성적인 것이다. 그 천성은 명백히 자각될 때 보다 확고해 질 수 있으며 사물 보편의 대 원칙으로 재정립 될 때 완전해질 것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격물치지다. 내면적 자성과 사물에 대한 격물치지는 배움과 공부의 양대 기둥이다. 자성과 격치는 상호 표리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의리정신의 맹아는 어떻게 싹튼 것인가 하는 사상적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명쾌한 답이 없다. 공맹이 그 시초인 것은 분명하나 공자는 옛것을 배워서 전할 뿐이라고 자신의 학문을 말하였다. 맹자는 공자 학문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고 하였다. 그 이상의 기원이 있다는 말이므로 우리는 한 단계 더 소급하여 그 기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공맹학의 기원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환언하면 공자 학의 기원의 문제다. 이 문제는 역사적으로 확인되면 좋겠으나 아직은 역사학 분야에서 기원을 밝히는 일은 불가능하다. 철학 분야에서도 아직은 불가능하다. 결국은 종합적으로 정신과 문화생활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추적함으로써 그 기원 문제를 풀어보는 노력이 가능할 뿐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이러한 접근은 잠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노나라의 사기인 춘추을 보면 공자이전 혹은 당대에도 많은 지성인들이 있었다. 학문이 이미 강력한 전통으로 수립되어 있었다. 공자는 학문의 시초를 연 분은 아니다. 맹자는 이런 특성을 지적하여 공자를 집대성자(集大成者)라고 하였다. 공자 당대 때까지의 학문을 완전히 종합하고 대성하였다는 것이다. 바로 그 학문의 기원이 문제다.
전통적으로는 학문의 대성자들은 복희씨 문왕 주공 공자로 말해왔고 시대로 말하면 삼대 즉 하 은 주 시대가 이어서 발전한 것임을 말해왔다. 장구하게 역사적으로 발전해 온 것임을 자각한 것이다. 전설의 시대인 삼황오제시대로부터 출발한 것으로 보는 것도 역사적인 사실임을 자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구체적인 그 역사적 계기성이다. 주역을 예로 들면 복희씨가 팔괘를 그어 무언의 상으로 만물 이치를 표현하였고 문왕이 여기에 언어 형태로 단사를 붙였으며 주공이 효사를 지었고 공자는 계사전등 10익을 지어 오늘의 주역으로 구체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전승의 사실성 여하와 관계없이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역시 언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의리의 기원도 결국은 역사적으로 통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의에 대한 역사적 일반론 인의는 오랜 역사 가운데서 이루어진 정신사의 중핵이지만 현재의 현실적인 시대 요구에 부응한다면, 오늘의 처지에서 새롭게 그 이상을 표현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용어 중에서 선택한다면 “인이란 봉사하는 마음”에서, “의란 헌신적인 마음에서” 출발하는 모든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인의의 미래지향적 의미를 포괄하여 극대화한다면 아마도 “인은 절대적 사람의 마음이며 의란 어떤 경우라도 그 인을 구현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더없이 결연한 그 모든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의미를 확장하는 정의’만으로는 인의의 의의를 다할 수 없으므로 역사와 시대의 대응이라는 넓은 시각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인의는 역사상 몇 단계의 발전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고 변화 발전해오면서 매우 역동적인 의미의 진전을 보익 있다. 아마도 의가 먼저 나오고 인이 그다음으로 등장한 것으로 보게 된다. 인의가 표방되기 전에는 신(神)이 있을 뿐이었다. 이에 따라 나온 것이 경(敬:경건함)의 정신이다. 아마도 은 왕조 이전 혹은 직후까지의 일로 생각된다. 그러나 국가의 형성과 함께 사람의 조직적 능력 지혜 등이 발전하면서 사람의 능력이 새상을 죄우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명백히 자각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치지도자들의 방탕함을 의미하는 용어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신에게 경건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신 중심의 시대에는 덕(德;은덕)이라는 심상이 있었다. 자연과 인간계의 경이로운 현상을 처음 신의 은총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신의 은총을 확인하는 것 혹은 그 주도자 신관이 바로 덕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신이 시행하는 은혜로부터 인간이 행하는 은총 즉 사람이 더 중요하진 후에 비로소 인(仁)의 용어가 창출되었다고 생각된다. 인이란 신이 아닌 사람이 베푸는 은총이며 사랑이다. 그런데 이 덕과 인 사이를 매개하는 존재가 의(義)였다고 생각된다. 의란 글자는 희생을 의미하고 있어 제사 의미로부터 출발한 것인데 신을 섬기는 것은 복을 받기 위한 것이다.
즉 신의 사랑을 얻기 위한 인간주도의 적극적 행위가 정성스런 제사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것은 옳은 일이었기 때문에 의는 정당함 또는 합당하다는 뜻을 처음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고대 국가 공동체의 지지를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의의 정신을 이어 나타난 것이 인(仁)이었다고 믿어진다. 제례는 인간의 행위로 신의 의지를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표현이었다. 이는 자신의 지결 능력에 대한 신의이며 그 승리였다. 이 제례의 의미가 후일에 구체적으로 확대되고 제도화 된 것이 예였다. 덕이란 글자는 신의 뜻을 살펴 행한다는 뜻이므로 덕은 경건히 신의 뜻을 받드는 이름이었다. 종교지도자의 능력을 지칭한 것이었다. 제례를 통해 신에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은 덕에 대신할 새로운 의미 창출을 요구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제사의 의미는 관습적으로 쓰여 온 제(祭) 자가 있었으므로 이 새로운 의미는 의(義)가 대표하게 된 것이었다. 이 의(義)를 확대 재편한 것이 예(禮)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의의 등장과 함께 덕은 인덕(人德)으로 확대되었고 이 진전된 의미를 새로이 단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 인(仁)이었다. 인은 천신과 인간의 위상의 변화를 가져온 극적이 의미를 상징한다. 이제 인이란 신이 베푸는 사랑이 아니라 유능한 이 지도자 현자 등이 베푸는 사랑이 되었다. 인은 물론 정신적 이지적 역사의식적인 것이므로 일시적 혹은 우연한 베풂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삶 자체가 그래야 함을 의미한다. 이 인의 의미를 유도한 중개자인 의(義)는 이미 새로운 개념이기 때문에 그냥 사용되었다. 이것은 공자 시대의 일이었다. 인애를 베풀기 위해서는 믾은 내적 외적 난관을 돌파하여야 하였으므로 공자는 이를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표현하였다. 이어서 의의 의미가 달라졌으니 인의 보편적 절대적 시행의 의미하는 새로운 용어로서 경신되었다. 이것은 맹자시대에 일어난 일이었다. 의는 절대적 사랑을 의미하므로 맹자는 이를 칭하여 사생취의(捨生取義)라고 하였다. 의(義)는 맹자에 이르러 덕 인 예를 통일하는 의미로 사용되면서 인의(仁義)가 하나의 용어가 된 것이었다. 인의의 용어는 의리(義理)로 칭하게 된 것은 의를 강조하기 위한 말이었지만 오늘의 입장에서 그 역사성을 얹어서 새로이 정의될 필요가 있다.
의리개념 범주의 재편성 대개 초기 국가시대의 정신문화 상황이 어쩔 수 없이 종교적인 것이었음을 감안하면 오늘에 이어진 여러 중요한 언어들이 대개 <신>이나 <제의>와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덕(德)이라는 용어는 ‘은혜“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그 원의에서는 신의 은총과 연관되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예(禮)는 제례를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이 제례를 고안하고 시행한 내면에서는 매우 오랜 지적 정신적 진보가 반영되어 있다. 인신희생의 시대에는 신에 대한 복종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 주된 뜻이었을 것이나 예기에 나타난 여러 형식의 제의를 갖추고 의미를 부여한 것은 그 안에 막대한 지적 진보를 나타낸다. 인간이 하늘의 은혜에 적극적으로 자신 있게 참여하고 관여하게 된 것이다. 나아가서는 이를 주도하게 된 것이다. 그 주도의 중심에 의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바로 이 지적인 의미화 과정에서 새로이 나타난 것이 인이며 의였다. 시기적으로는 대개 전통적으로는 주공제례(周公制禮)의 시기 부터로 알려져 왔다. 신의가 중심이 된 은나라 이후 주나라에 이르러 드디어 이 같은 지적 주도권이 성장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공자가 주공을 추앙하고 존경하였던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하늘이나 신은 여전히 언급되었다. 이어지면서 그 가치와 의미가 변했을 뿐이다. 이 같은 현상을 우리는 역사적이라고 부른다. 이 같은 의미의 변화 발전은 오로지 역사적 진전의 현실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란 영명한 존재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일상의 삶이 스스로 신에게 얽매어 있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신을 강조하고 복종의례를 수행한 것은 아마도 조직의 지도자들의 의도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조직 사회 국가는 탈 인간적인 제3의 존재형식을 추구하기 때문에 가구(家國)의 구조는 일반의 삶을 통제하고 이끌고 그 구조의 존립에 봉사하도록 요구한다. 조직의 힘으로 삶을 개척해올 수 밖에 없었던 인간의 한 모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예의 제정은 언제나 순리를 벗어날 수 있으며 정치적 권위적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간이 야만에서 출발하였듯이 가국의 조직도 역시 야만으로부터 문명으로 진화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예의 발전사일 것이다. 조직과 사회가 합의하고 형식화 한 것이 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각 시대의 지적 성과들은 예의 형식으로 표현된다. 그 내부에서 역동적인 지적 진보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지적 진보는 개인적 느낌과 판단과 결의를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공동체의 동의와 지지를 얻는 말과 사상이 권위와 힘을 얻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예 가운데서 일어난 경이로운 일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예가 지적 성과에 의해 좌우되면서 과거의 공동체 조직의 권위를 위해서는 새로운 것이 필요하였다. 그것이 바로 법과 제도일 것이다. 예는 법과 제도 이전의 삶의 형식이다.
4)오늘의 의리
그동안의 배움의 삶을 돌이켜보면 너무 상황에 얽매이거나 아니면 문헌이나 타의 전범을 찾아보려는 생각이 앞섰던 것 같다. 특히 주로 읽는 고전에서 어떤 전거를 찾거나 의지하고자 하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나를 중심한 생각의 문제이며 나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직솔한 부딪음이 정도라고 생각된다. ‘절실한 공부를 하라.’든가 ‘가까운데서 찾으라.’ 하는 언명들이 결국 정답이었던 것이다.
나의 안에서 공부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나 스스로의 정화의 정도를 스스로 가늠할 때는, 스스로의 마음을 따라가는 것이 역시 도의 길이라고 믿는다. 선현들이 마음공부를 강조한 것이 별다른 초월의 이상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인이란 혼연한 덕이며 의리란 결연한 덕이다. 혼연함과 결연함은 여전히 우리들 삶의 양대 지주이지만 오늘의 세계는 전통 역사시대와 판이하게 달라졌다. 우리들 삶의 세계가 달라진 것이다. 지리상의 인식의 변화는 우주에 나이르고 있고 사람과 일의 만남은 국가를 초월하여 세계화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그 혼연함과 결연함의 내용은 무한대 시각으로 새로이 조절되어야 한다. 어느 때 보다도 보편적 가치가 새로운 기준으로 작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동서양에 복수법의 전통이 무의미해진 사실과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란 시대배경과 환경에 대응한 최선의 선택이며 의리란 그 선택의 핵심이다.
전통시대의 의리는 역사를 밀고 온 위대한 동력이었지만 오늘의 의리는 이를 더 확대하여 일상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 자체가 의리의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동아시아 성인들이 처음 발견한 것은 배움의 삶이었다. 인생의 본질을 잘 간파한 가르침이었고 역사의 위대한 진전을 이루었다. 동아시아 문명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이 바로 배움이었기 때문이다. 공자에 의해 활짝 열린 배움의 삶이라는 삶의 양식은 인간다운 가치를 진전하는 진정한 삶을 열어준 것이었다. 그 배움의 삶은 모든 경건함의 기초였으며 진실함의 근거였고 근면함의 바탕이었다. 배움의 삶으로 도달한 최고의 경지가 인이었고 의였다. 다만 인은 이해하기 어렵고 의는 실행하기 어렵다는 오해가 있어 왔었다. 그 같은 오해는 매우 오랜 동안 유지되어 왔는데 이는 정신사를 이해하는 약간의 오류였다. 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가 있고 의가 실행하기 어려운 경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인의의 본질은 아니다. 이해하기 쉽고 행하기 어려운 것이 인의의 실제면모라고 생각된다. 이 같은 본래의 면모를 회복할 때다.
의를 일상화 일반화하는 일은 실로 중차대한 과제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의리란 말을 세속적인 용법에 그치지 않고 그 의미의 본질을 다시 일으키고자 한다면 제일 먼저 만나는 벽이 의리의 초월성이다. 어려 측면에서 현실과 거리를 느끼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은 매우 생활에 절실한 말이면서도 거리가 멀다고 느끼는 것은 그 본질을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리를 일반화 혹은 일상화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전면적으로 의리화하자는 말이다. 공허한 공맹학의 부활을 외치는 것 보다는 그 요핵인 의리를 일상 속에 부활함으로써 정신사의 맥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의리를 부활하기 위해서는 단 한가지 질문만 있으면 된다. “이것은 의리에 맞는가?” 각자의 의리관이 다소 잘못될 수도 있고 꼭 같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의리를 향한 걸음이 굳건하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의리에 맞는가 스스로 묻고 그리고 스스로 답을 내고 혹은 내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이 바로 의리의 길을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리의 길을 가면서 우리는 자연히 의리란 무엇인가 묻게 되고 그 본질도 더 알게 된다. 행동하며 배우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공자가 인을 물은 제자들에게 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오직 가르쳤다. 인의 속성들을 행하면서 인을 깨닫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의의 실천적 속성표 : 의리의 속성을 응용하여 연관 지워보면 다음과 같다.
1)극기 2)결단 3명철 4)확신 5)공감 6)독행 7)엄정 8)무사 9)전일 10)강건 11)용약 12)혼후 13)항구 14)직솔 15)천연 16)무의 17)불변 18)무혹 19)순리 20)일념 21)적응 22)통합 23)조화 24)개성 25)자유 26)풍부 27)건강 28)진실 29)미려 30)탈민족 31)인류애 32)역사성 33)언어화 34)철학화 35)과학화 36)기술화 37)예술화 37)물질초월 38)물질향유 39)장수 40)자기개발 41)복지 44)자연친화 45)힘의 추구 46)에너지화 47)우주의식 48)평안함 49)행복 50)즐거움 51)창조적 성취 52)편리 53)일치 54)탈권위 55)시스템 56)가르침 57)가족애 58)동료의식 59)국민의식 60)문화권 인식 61)동서융화 62)종교와의 대화 63)논리화 64)조형화 65)미려스타일 66)패션 67)소통 68)통달 69)치료 70)양생 80)전문화 81)순수화 82)탈규제 83)억압의 반대 84)탈인위 85)탈권세 86)탈부귀 88)소박함 89)자동화 90)기계화 91)의식화 92)경제화 93)아마츄어리즘의 애호 온존 94)취미화 95)인간화 96)사회화 97)추상화 97)물질화 97)동기화 98)경쟁 99)승리 100)자아화 101)예방 102)내면화 103)영광과 명예 104)신사와 선비 105)여성시대 106)양성일치 107)가족화 108)조직화 109)전쟁 110)스포츠 111)오락 112)사교 113)논쟁 114)정쟁 115)권력투쟁 116)압도 117)희생 118)진전진보 119)오만과 자긍 120)성취 121)편견 122)정화 123)향락 124)방임 125)계산 126)술수 127)연극 128)속임 129)예단 130)절감
5) 의리의 미래
의리는 동아시아 고전의 정신이며 동시에 우리의 고전적인 정신이다. 문헌으로 전해오므로 고전의 정신이고 역사상 우리 삶의 지표였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나아가는 굳건한 틀을 이루어 상구불변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진정 고전적이다.
현재의 세태에서 보면 의리정신은 사실상 형상만 남았다. 지도층이 의리정신을 목숨처럼 철저히 견지하지 않고 있고 일반 생활인들의 문화로서도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리를 칭하는 말이라든가 글은 많지만 의리가 무엇인지 되새기도 그 뜻을 삶으로 구현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은 의리정신으로 돌아올 것으로 믿으며 미래로 나아갈수록 그 위상은 뚜렷하게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는 것은 의리가 역사의 산물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의리는 순국열사만이 하는 것이 아니며 목숨을 건 의인의 행적만 의로운 것은 아니다.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의리가 의리의 본분이다. 의리란 결코 꼭 과도한 것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 의리는 우리들 삶의 골간이 되어 걸어가야 할 길이다. 그러므로 길이라고 한다. 의리야말로 궁극적으로는 잠시도 떠나지 않는 진정한 도인의 삶이다. 의리를 견지하는 것이 바로 도란 말이다.
현재 형상만 남은 의리는 이대로 의미쇠락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 삶의 절실한 도로서 다시 굳건히 펼쳐질 것인가. 라고 하는 문제는 결국 우리 삶이 역사적인 것으로 즉 오랜 본래의 궤도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임시방편적 방도(方途)를 능사로 하는 고식주의(姑息主義)를 이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역사란 실없는 이론이거나 꾸민 장식이 아니다. 국민적 삶의 실질을 이루는 영원한 도정 즉 오랜 국민생활에서 스스로 선택 개척된 길이다. 길을 벗어난 삶은 위태롭고 불안하다. 그리고 혼란스럽게 된다. 누구나 편안하고 건강한 삶을 바라고 있으므로 우리가 도로 돌아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의리는 우리들 삶의 궤도이기 때문이다.
비록 기복이 있겠지만 우리의 도는 회복되는 것이 민족사의 순리다. 그러므로 의리의 미래는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의리는 우리가 역사적으로 이루어온 모든 가치 있는 것을 상징하는데 우리는 역사적이라는 말에 익숙하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익숙하지 않다. 나름의 이해에 그치기 때문이다. 오늘날 역사적이라는 말은 세계 보편지성의 언어이며 현대에 들어 의미가 경신되고 재정립된 새로운 용어이지만 이미 동아시아는 스스로 역사적이었다. 그 역사와 문화가 분리되지 않고 공존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이란 말의 의미를 탐구하지 않고는 의리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역사적이란 무엇인 위에서 의리가 ‘역사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오랜 말로는 고전적이라고 하였다. 고전적이란 말과 역사적이라는 말은 가치의 본질에서는 같은 말이지만 의미는 매우 다르다. 고전적이란 영원한 전범이라는 가치를 지적한 말이지만 역사적이란 말은 미래에 까지 변함없이 이어가는 실질적 힘이라는 뜻이 함축된다. 아울러 민족사의 처음부터 변함없이 지켜온 것이라는 뜻이 추가된다. 또한 각 시대에 따라서 계승 변전 발전해온 것이라는 역동적인 의미가 더해진다. 역사적이란 이렇게 입체적인 의미가 있다. 시간성 공간성 가치성을 아우르는 의미라는 말이다. 우리 언어가 이미 역사적이고 우리 문화가 역사적이고 우리 삶의 태도가 역사적이다. 의리는 바로 그 속에 자리하는 근간이다.
서양의 학자들은 동아시아가 비역사적이라고 평가한다. 역사적이란 말은 자신들이 이를 최종 발견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신들의 발달한 제도와 문화와 과학 학술도 모두 역사적 탐구의 성과라고 믿는다. 자신들이 세계문화를 선도하고 있다고 믿는 그 맨 한가운데 자신들이야말로 역사의 선각자라는 의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연전에 한국에서 세계 철학자 대회가 열렸다. 그 때 외국 석학들은 동아시아에 고유한 철학이 있었는지 인정하지 않았다. 그 고답적인 자세 역시 역사에서 나왔다. 자신들의 철학은 철저하게 논리화 역사화 내면화 과학화 되었는데 동아시아는 그렇지 못하다는 뜻인 것이다.
나아가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비서구 세계의 근대화란 단적으로 자신들의 역사적 성과의 영향을 받아서 이를 따르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들의 최종성과인 역사학의 역사(Historiography)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인 것을 정의함을 의미한다. 과연 의리는 비역사적 신념인가. 그리고 동아시아의 문화와 가치들 역시 비역사적인가? 전혀 그렇게 볼 수는 없다.
근대화란 단지 서구화일 뿐이며 동아시아 역사는 스스로 역사적이었다. 그러나 냉정히 돌이켜보면 우리 근대의 국민적 의식은 매우 비역사적이었다. 서구화라는 외부지향적인 가치만을 따라왔기 때문이다. 외부지향적인 것은 자기화 내면화의 결여를 의미하므로 가깝게는 철학의 부재를 의미하지만 넓게는 다름 아닌 역사의 상실이다.
역사의 상실은 삶과 문화의 개성의 상실을 뜻한다. 우리는 근래의 한류현상을 보면서 우리 기질과 개성이 발휘되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발휘된 개성이 극히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우리 체질임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막연한 개성주의는 사실 의미가 없다. 그저 새로우면 되니까. 그러나 그저 새로운 것이란 바로 식상하며 지속될 수 없다. 무력한 개성인 셈이다. 역사적인 것이야 말로 최대의 개성이다.
역사의 새로움 역사는 낡은 것이 아니다. 새로움이다. 과거에 정지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잠시도 쉼이 없이 이어져 진화하는 것이 역사다. 물론 다만 그 진전이란 다소 느릴 수도 빠르거나 격할 수도 있을 뿐이다. 서구의 역사에서 르네상스란 중단되었던 어떤 역사의 실체가 부활하였다. 이는 그 내면에 역사적인 것의 단속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단속이 있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르네상스란 탈 역사적인 것을 반성함으로써 이룩된 것이다. 그 반성은 그리스 로마의 역사가 끝난 뒤에 중세의 끝에 이루어졌다. 역사의 부활인 셈이다. 그러나 시실은 중세의 신의 시대도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적인 것이다. 신앙의 역사에서는 중세야 말로 극성의 시대다. 다만 다른 문화요소들과 균형을 이루며 진전하지 못하여 그 진전의 형평과 조화가 흐트러졌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르네상스란 결국 역사적 조화의 회복이기도 하다. 의리란 그 같은 조화를 가능하게 하는 일반 생활의 힘일 것이다. 의리란 구식 가치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가치를 견지하면서 새로운 어떤 상황에서도 역사적 가치를 전승하여 나아감이다. 조선의 쇄국 정책이나 중국의 동도서기(東道西器) 노선은 형식상 역사를 이어감이며 자신의 역사에 대한 본능적 수호의 의지였다. 이 본능은 생리적 본능이라기보다는 문명적 본능이었다. 동아시아의 이 근대노선은 바로 새로움의 추구가 부족하였으므로 일시적으로 실패한 것이었다. 역사는 새로움의 추구라는 교훈을 얻게 하였다.
새로움의 고수 서경에 유명한 문구가 있으니 곧 ‘주나라는 비록 오랜 나라이지만 천명을 얻은 것은 새로움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은·주 혁명의 정당성을 설파한 말이지만 이는 그대로 역사의 본령이기도 하다. 경전에서는 새로움의 의미를 별도로 정의하지는 않았다. 다만 ”새로워지라“고 하였다. 대학에서 말한 것에 따르면 새로워짐이란 ’덕을 깨닫고 백성을 새롭게 하며 지극한 선에 머물고자‘ 하는 가운데의 새로움이다. 대학의 새로움이란 배움으로 진전되는 자각의 새로움이며 깨달음과 실천의 새로움이다. 대학에서 뜻하는 새로움은 새로움의 본질을 잘 직시한 말일 것이다.
아울러 새로움의 본질을 말하지 않았지만 이는 경전 원의를 대전제로 한 말이므로 당연히 덕의 새로움이며 인의 새로움이며 의리의 새로움이다. 그 새로움의 표현이 예의일 것이다. 그 근본 의미는 물론 천명 천리의 새로운 구현이다. 새로움이란 배운 만큼 깨달은 만큼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덕이란 천명 천리의 도(道)를 생각하는 삶이다. 인이란 도의 실체이며 의란 이를 수호함이다.
6)의리의 정의적 의미
현대는 과학과 기술, 물리적 힘과 경제력, 자본과 물질의 시대다. 이 3대 요소는 현재로서는 영원할 것처럼 보인다. 만일 사람이 야성적인 힘과 자연적 성능에 의해 그 삶이 결정될 수 있고 그것이 최상 최대의 생명의 요소라면 이들 요소들의 절대적 권위는 영원할 것이다. 이 여부를 판단하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들에 야생의 생명체들이 이미 30억년의 진화를 지속해오고 있음에 비추어보면 사람의 삶도 생물 일반의 그것에 포함되므로 자연과 야생의 생태라든가 자연 특히 그 물리적 파워가 가장 중요한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력은 자연에 반발함으로써 강화되었다는 것이 오랜 양생학의 결론이다. 자연에 반발한다는 것은 자연을 파괴하거나 무시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사람이 자연의 흐름에 부딪어 이겨냄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생각하면 사람의 직립함 자체가 이미 물리적 지구의 인력에 최대 저항한 결과가 아닌가. 어떤 동물도 사람처럼 꼿꼿이 서는 것은 없었다. 서있는 것에 물론 나무가 있다. 그러나 나무의 기립은 의지로 서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힘이 이룬 자연의 결과다. 산이 솟아 오르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사람의 이겨내려는 힘은 그 정체성이 자율의 영역을 확보하려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자율적이고 자유로움을 위해서 법칙에 저항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물리적 법칙에서는 저항이 되지만 사람을 중심으로 보면 자유 영역의 확보이며 그 창조해 나아감일 것이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그 같은 자유의 확보 결과가 바로 문명일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그것이 창조로 이루어진 문명사이기 때문에 진정한 역사일 것이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 보면, 힘으로 구성된 3대요소가 사람다움을 결정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우리가 동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사람다움을 이룩해온 1만년 문명사를 지탱했던 자유와 자율을 향한 의지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없고 문명과 정신이 역시 사람의 삶을 이끌어가는 중심이 되어야 함을 또한 알게 된다. 생각해보면 삼라만상이 우주의 의지가 아니고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며 사람의 문명이 역시 사람의 고유한 정신이 아니고는 일궈낼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삼라만상에 가까운 물적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신이나 우주의 정신과 질서를 재현하고자 하는 놀라운 존재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에서는 언제나 그 정신의 근원을 천명(天命)에 두었다. 천명이란 진리(眞理)라고 하는 지식의 언어보다 한 층 더 상위의 개념이다. 천명은 인간의 삶의 가치와 방향을 결정하는 유일한 지존의 핵이다. 후대에 와서는 이를 천리라고 불렀다. 의리란 바로 이러한 천명 천리를 따름이다. 천명 천리는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언제나 있는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이들 성선설이라고 한다. 이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의리란 마음을 따름이며 천리를 따름이다.
인의는 자연의 길이며 인간의 길이고 동시에 문명의 길이다. 700만년 인류 진화의 역사를 밀고 온 원초적 힘이며 특히는 그 명백한 자각의 결과다. 사람이 생겨날 때 인의가 있었고 개개인이 태어날 때 인의가 있었다. 우주가 탄생할 때 인의가 있었고 지구가 이루어질 때 인의가 있었다. 만물이 화생할 때 그 자연의 조화 속에도 인의가 있었다. 인의는 천명 천리의 구체적 이름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고 물이 흐름이 인의이며 산이 서고 들이 펼쳐짐이 인의이며 숲이 자라고 못이 깊어짐이 인의이며 해와 달이 뜨고 별이 빛남이 인의이며 꽃이 피고 동물이 뛰놂이 인의이며 먹고 삶이 인의이고 일에 종사함이 인의이고 벗과 만남이 인의이고 집짓고 농사지음이 인의이며 대화하고 만남이 인의이며 잠자고 일어남이 인의이고 남녀가 만남이 인의며 낳고 죽음이 인의이고 만나고 헤어짐이 인의이다.
싸우고 전쟁함은 인의가 아니며 남을 해하고 책망함이 인의가 아니며 나만의 생각에 가두임이 인의가 아니며 경솔하고 조급함이 인의가 아니며 인위에 빠져 삶이 인의가 아니고 마음 놓고 안일한 것이 인의가 아니며 과욕을 부려 무리하는 것이 인의가 아니며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것이 인의가 아니고 삶을 경시하고 죽음을 피하려는 것도 인의가 아니다. 혼후함이 인이며 명쾌함이 의다. 혼후함은 편안하고 명쾌함은 빛나고 높다. 인의는 정의할 수 없는 넓고 깊은 뜻을 지녔다. 그 속성들을 일부 생각나는 것들만 열거해본다.
인의 본질 속성에서
잠시도 변하지 않으므로 인은 변함없는 사랑이다.
대상이 제한 없으므로 제한 없는 사랑이다.
자신의 능함을 다하므로 지극한 사랑이다.
다른 마음이 없으므로 사심이 없는 사랑이다.
언제나 베풀어지므로 일상의 사랑이다.
막을 수 없으므로 강한 사랑이다.
무한히 크고 넓으므로 한없는 사랑이다.
중단됨이 없으므로 강물 같은 사랑이다.
편안하므로 산 같은 사랑이다.
하늘과 땅에서 나왔으니 높고 깊은 사랑이다.
온화하고 기쁘니 꽃향기 같은 사랑이다.
순수함으로 이루어지니 순결한 사랑이다.
자식 어버이에서 처음 피어나니 자연스런 사랑이다.
누구에게나 미치니 공평한 사랑이다.
가까운데서 멀리로 이르니 정연한 사랑이다.
삶을 이루니 생명의 사랑이다.
아름답게 행하니 문명한 사랑이다.
기쁘고 즐거우니 열락의 사랑이다.
용기를 일으키니 힘의 사랑이다.
스스로 이루어야하니 자립 자유의 사랑이다.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니 신묘한 사랑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니 조화의 사랑이다.
새로움을 이루니 창조적 사랑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니 태평의 사랑이다.
사랑은 자라남이니 육성의 사랑이다.
역사를 나아가게 하니 불후한 사랑이다.
모든 이가 공감하니 통합 통일의 사랑이다.
자신의 어려움을 이겨내니 극복의 사랑이다.
우주심에서 뿌리를 두었으니 하늘같은 사랑이다.
모든 사랑의 기초이며 끝이니 사랑의 근본이다.
의의 본질 속성에서
의는 결단이며 절제다. 신실함이며 맑은 정신의 요약이다. 순수하고 학구적이며 천명 천리를 탐구함이다. 의미와 가치를 추구함이며 사사로움을 배제함이며 모든 가치를 종합 표현함이다. 호연지기는 인의 힘이요 의는 인의 결연함이요 예를 그 창의적 표현이요 지혜는 그 자각하고 응용함이다. 신은 인의 순결함이며 의의 그 개성이다. 의는 결국 최상의 선택이다.
부정함이 없으니 정의로운 선택이다.
잡된 마음이 없으니 순수한 선택이다.
자신만을 위하지 않으니 초탈된 선택이다.
무한한 공감을 부르니 감동적 선택이다.
한결 같은 마음이니 전일한 선택이다.
보다 큰 가치를 위함이니 위대한 선택이다.
천리에 따름이니 천사의 선택이다.
맑은 심혼에서 나오니 청명한 선택이다.
언제나 굴하지 않으니 불굴의 선택이다.
주저함이 없으니 용단의 선택이다.
막을 수 없으니 막강한 선택이다.
그 가치가 변함이 없으니 영원한 선택이다.
선현에게서 이어졌으니 배움의 선택이다.
같이 살고자 함이니 함께하는 선택이다.
누구나 밝게 보니 일월 같은 선택이다.
어떤 공을 세우고자 함이 아니니 무위의 선택이다.
인을 위한 것이니 어짊의 선택이다.
성심에서 나오니 신실한 선택이다.
본심에서 나오니 선한 선택이다.
수신에서 나오니 인격의 선택이다.
넓고 깊은 배움에서 나오니 지혜의 선택이다.
확신에서 나오니 확고한 선택이다.
극기에서 나오니 절제의 선택이다.
천인조화에서 나오니 낙천적 선택이다.
죽음으로도 삶을 이루니 생명의 선택이다.
누구나 기리니 명예의 선택이다.
자신을 버리니 무사함의 선택이다.
혼란을 반대하니 평화의 선택이다.
치우침 없는 마음이니 중용의 선택이다.
자신의 분노에서 나오지 않았으니 객관의 선택이다.
아름답게 빛나니 화려한 선택이다.
순간으로 영원하니 불후한 선택이다.
만난을 이겨내기 극기의 선택이다.
비극을 넘어서니 이상의 선택이다.
7) 문화와 정신의 수호
의는 개인을 수호하고 가족을 수호하고 공동체 나라를 수호하고 나아가서는 천하를 수호하여온 역동적 언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문화화 사상 정신을 지키고 발전되게 한 에너지요 동력이기도 하였다. 의리 아래서 모든 사상과 가치 있는 개념이 튼튼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의리가 하나의 준거가 되어 이에 미달되는지 넘어설 수 있는지를 항시 자성하며 염두에 두고서야 학구(學究)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의리인가를 묻는 순간에 강력한 문화 사상적 연관효과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의리와 문화란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잠시 학구라는 말이 왜 의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가를 생각해본다. 우선 먼저 여기서 학구란 오늘의 학구와는 의미가 매우 다르다. 의리개념이 성장하던 시기는 춘추전국시대인데 이때의 학구란 삶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삶과 동떨어진 혹은 삶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전 생활의 장 자체를 학구로서 유지하는 식의 삶이었으며 신 중심의 삶을 경과하고 나서 새로이 개척한 새로운 삶의 양식이기도 하였다. 그 학구의 무게는 오늘의 것과 비교할 수 없었다. 요컨대 실질적 삶의 방향이라든가 의미를 학구를 통해 발견하고 확정해 나아가는 것이었다. 따라서 의롭다는 것은 그대로 학구적이란 의미와 동의어이기도 하였다. 의란 학구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구자만이 의의 본질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문화와 사상은 학구로부터 나온 것이며 의리란 학구를 유지하면서 학구의 삶과 학구의 결과를 철두철미 실천하는 선두에 있는 것이므로 모든 문화와 사상이 의리로 인해 그 수호의지 아래서 성장할 수 있었다는 말이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학구의 결과가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이를 지키고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연 무의미한 것이며 유지되거나 발전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의리가 문화와 사상의 수호자이며 새로운 정신의 개척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행동과 실천이 전제되지 않은 정신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의리란 삶과 가족 사회의 존립을 위한 정의일 뿐만 아니라 그 삶의 보편적인 질을 향상하고 고양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의리란 넓은 의미에서 문화와 정신의 영역에 속한다는 뜻이다.
3.인과 의리의 범주
인은 무한한 가치의 경지를 제시한 정신의 성역이다. 성역이라고 함은 이를 통해서 무한한 사상과 가치의 창출이 가능한 신성하고 불가침한 정신적 에너지원이 된다는 의미다. 공자가 인을 일정하게 정의하지 않았지만 맹자는 끊임없이 새로운 정의를 시도하였다고 생각된다. 그 결과가 4단설이었다. 일반적으로 정작 인이 이해하거나 정의하기 어려운 까닭은 그 지칭의 난해함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의미의 본질의 정체성 특히는 그 의미적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한한 것에 대한 이해가 매우 곤란하다. 무한한 것의 궁극모습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한한 사랑을 의미하는 인이 잘 이해되지 않는 원인이다.
우리는 우주가 무한하다고 말하지만 우주의 무한함의 의미를 전연 공감하거나 실감할 수 없다. 우주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은 우주론과 같은 범주의 개념이다. 무한한 그 의미를 아울러 인의 속성을 인식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천도란 의미의 크기 혹은 천리란 의미의 본질 같은 것들은 항시 사용하는 말이면서도 잘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인은 천도 천리의 본질을 말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이해가 역시 하나의 관건이다. 인은 천리론과 불가분한 것이므로 하나의 우주론이라는 성격도 가지고 있다. 인은 인도를 말한 것이지만 이것이 동시에 천도가 되는 이유는 사람과 만물의 삶이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역설강령(易說綱領)에서 정자는 “위 하늘에 실린 것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나 그 체례는 역이라 하고 그 이치는 도라고 하고 그 작용을 신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그 같은 하늘의 덕이 인인 것이다. 냄새도 없고 소리도 없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이해한 하늘의 감각적 특징이었다. 그러나 냄새도 없고 소리도 없다는 것이 ‘허무’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속에 역리가 있고 도가 있고 신이 있다는 것이다. 인은 이치이며 도리이며 신이기도 한 그런 것이다.
우리는 시간의 영구함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우리가 체험하는 시간 개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주가 무한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러나 이해하기 어렵다. 무한한 공간을 지난 끝에는 언제나 종착역이 있는 법인데 그것이 없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것 그것은 인생이거나 땅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은 바로 우주인데 이 점이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주는 결국 개념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우주를 여행해보고고 무한한 곳을 향해 무한히 나아가볼 수 있다면 경험적으로 우주를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나 그것은 전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한한 조건에서 무한한 것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공간의 의미를 저 하늘위로 상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이해의 폭은 조금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기와 넓이 혹은 부피를 가진 어떤 영역을 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공간은 크게 물질공간과 비 물질공간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경험적인 물질적 공간의 덩어리와 경험적 특징이 없는 무의 공간이 상정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물질 공간 속에도 빈공간이 있고 우주 공간도 허무한 것이 아니므로 이 구분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오늘날 극미세계의 발견 이후에는 더구나 그러하다. 우주의 미립자가 존재함에 비추어 우주도 물질공간일 수 있다.
그 미립자를 제외한 순수공간이 즉 진정 허무공간이 존재하는가를 확신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현재로서 공간이란 상대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므로 잠정적으로 경험적 물질이 감지되지 않는 공간을 그냥 공간이라고 부르고 물질로 채워진 공간을 물질공간이라고 지칭한다면 공간의 상대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때는 이 양대 공간이 똑같이 물질과 순 공간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양대 공간의 공통성에 대해 인지하고 생각하면 우주는 별다른 것이 아니다. 하늘 끝 저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 이곳에도 그 공간이 있다는 생각이 가능하므로 우주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너의 공간 이것과 저것의 공간 즉 의미 있는 것 사이의 빈 곳이 다 공간이다. 바로 이곳의 공간에서 우주 공간을 충분히 체험하고 탐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가능하다. 우리의 ‘홍익인간’의 ‘인간 공간’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간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는 말은 유의한 물질 공간 외의 빈 공간이 물질공간의 기초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빈 공간이 순공간이라고 보든 아니면 물질공간과 크게 다름없는 물질과 공간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든 관계없이 우리가 주목한 물질과 그 물질성을 감지할 수 없는 무 물질성의 공간 사이의 관계가 허무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점을 지적하여 마음과 육체의 관계로 비유하기도 한다. 공간의 공능을 지칭하여 이치 신 이라고 한 것이며 그 공능을 특히 인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공간설이 아닌 것이 없다. 인은 본질적으로 넉넉한 공간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은 분명 공간과 사이를 이해한 개념일 것이다. 인간의 내적으로는 생명공간의 경이를 외적으로는 생명을 이루어지게 하는 타의 어떤 공간의 의미를 말한다. 하늘의 자손이라는 전통적인 논법이야 말로 인의 이해 형식을 대변하는 말일 것이다. 부모에 비유하여 부모심(父母心)이라고 한 것도 의미 있는 비유다. 인이 의리의 기초이다.
인·의·예·지-4단 맹자는 사단을 말하면서 인은 불인지심(不忍之心)이 실마리이며 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실마리이고 예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실마리이며 지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실마리라고 정의하였다. 이 사단을 말하면서 신(信)을 말하지 않은 점을 지적해왔는데 이는 대개 오행설로 이해해왔었다. 신은 토(土)에 속하며 인은 (목)에 예는 화(火)에 의는 금(金)에 지는 수(水)에 비견하고 토는 나머지 4행에 함축되어 있으므로 특별히 거론할 필요가 없었다고 해명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4단과 연관하여 오행으로 이해하고 말기에는 다소 서운한 감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형식적 구조적 이해 이전에 자연스럽고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것이 일반 학인들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역을 이해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음양설이나 오행설로만 이해하기에는 그 괘사와 효사의 말씀들이 너무도 의미 깊고 상징적 은유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적 비유의 요체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의리문제도 그러하다. 부언한다면 오행설 같은 형식적인 이해란 사색의 한 방식일 뿐이며 그 끝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마음으로부터의 이해 법 맹자는 4단을 말하면서 모두 마음에 근본을 두고 있다. 공자학이 증자 이래로 마음을 중요시하였고 자사에 이르러 중용을 지은 것도 그 심학의 전통을 발전시킨 것이었다. 증자 자사를 이어받은 맹자의 경우 역시 마음 심 자를 중심에 두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음의 내적 깊이를 표현하고 다시 그 마음의 드러남을 말한 것이라고 이해하여도 역시 새로운 해법이 가능해진다. 그의 불인지심이란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어진 마음의 출발이라고 본 것이며 그것이 곧 인인 것은 아니다. 불인지심은 더 나아가 사랑하는 마음(愛)이 되고 넘어서서 인의 경지에 이르는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불인지심은 후(厚)한 행위로 나타나고 이 후함이 나아가 은혜(惠)를 베풀게 되고 더 나아가 덕(德)을 행하게 된다.
이 때 불인지심과 은혜 인 사이, 그리고 후함과 은혜와 덕의 사이에는 정신적 발전모습이 게재된다. 즉 불인지심이 후함이 발단이며 아끼는 마음 은혜는 그 발전적 형태이고 인과 덕은 자각적으로 강화된 것이 인이므로 그 사이에는 발단-확장-자각의 단계별 진전이 요구된다.
이를 심상으로 말하면 불인지심과 후함은 본심(心)의 발동이며 애심과 은혜는 본심의 강화 발전이라고 생각된다. 이 강화된 본심이 명확이 지감되고 자각되고 확신된 결과가 인이며 덕일 것이다. 따라서 이들 사이의 과정을 발단(發端) 확장(擴張) 자각(自覺)이라고 명명할 수 있으며 이 3 과정에 나타나는 심적 변화는 심(心)-의(意)-지(志)로 표현할 수 있다. 심-의-지의 변화는 감정에 의해 구분하면 열(悅)-락(樂)-일(一:合·誠·實·信)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자각이란 바로 명덕(明德)이며 지(智)이다. 격물(格物)이기도 하다. 그 합일된 성심을 드러낸 것이 덕이며 그 덕을 고수하는 것이 의(義)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도해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단계 |
(1)단계 |
(2)단계 |
(3)단계 |
비고 |
본심 |
不忍
|
愛
|
仁
|
본심회복 |
베풂 |
厚
|
惠 |
德 |
본심구현 |
과정 |
發端 |
擴張 |
自覺 (明德智格物) |
경과 |
심태 |
心
|
意 |
志 |
심상변화 |
정의 |
悅 |
樂 |
一 (合誠信實) |
정의변화 |
결과 |
起 |
從 |
結 (義理禮義時宜) |
고수수행 |
부끄러움과의 관계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의리의 실마리라고 하였다. 이 수오지심을 두고 대개는 ‘자신의 악을 부끄럽게 여기고 남의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라고 풀이하였었다. 물론 주자집주의 설이다. 그러나 맹자가 언급하는 마음(心)은 본심 즉 양심을 중심으로 말한 것이므로 양심에 비추어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순리롭다고 생각된다. 수(羞)와 오(惡)는 모두 추(醜)한 것을 의미하며 부끄러운 것(恥)를 의미한다. 물론 ‘미워한다.’는 뜻도 있다.
수치를 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주어진 영능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수치를 모르면 인간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부Rm러움을 안다는 것은 타고난 본심의 아름다움을 믿음이며, 본심이 우주와 인간의 진실을 반영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우주적 진실 혹은 참 생명의 가치와 의미 이런 중요한 문제를 탐구하고 배우는 한 중요한 통로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뜻이다. 물론 마음만으로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격물치지가 강조되었던 것이며 격물이 되어야 진실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대학에서 말하고 있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주관적 해법이라면, 격물은 말하자면 객관적인 탐구이며 확인인 셈이다. 그 성찰과 지성을 발휘한 후에 감성적 일치라는 과정이 더 있었다. 기쁨을 느낄 때 즐거움을 느낄 때 일치감을 느낄 때가 그것이다.
도에 대하여 도(道)란 길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도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길을 간다는 의미이며 가면서 사려한다는 의미이며 깨닫는다는 의미다. 책받침에 머리 수자가 들어 있는 까닭이다. 도는 즉 공부인 것이다. 지성과 성찰과 감성을 다하여 생을 체험하고 그로부터 삶의 진체를 느껴보고 생각하며 공부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도를 통하여 다양한 도를 자각하였을 때 그 도의 집적된 결과를 수행하는 것이 덕(德)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도덕(道德)이라고 하여 도와 덕을 병칭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도란 덕의 일환이다.
덕에 대하여 덕이란 다닐행 변에 열십 눈목 한일 마음심이 결합된 자다. 다닐행은 물론 행한다는 뜻이며 열십자는 마음의 빛을 눈은 객관적 성찰을 한일은 진실과의 합일을 마음 심자는 지적 성서적 의지적 깨달음을 종합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열십자를 마음의 빛으로 보는 까닭은 열십자가 일만 만자(卍)자와 같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 덕자를 주술사의 그림이라고 보기도 한다. 얼마간의 연관성은 있다고 생각된다. 주술사야 말로 마음으로 신을 깨닫는 신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이라는 글자가 이루어진 은나라 시기에는 이미 상당한 지적 진보가 일어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오늘의 개념으로 확립된 것은 적어도 주나라에 들어서 일 것이므로 주술 일변도의 해석은 다소 문제가 될 것이다.
의리 의 전제 의(義)는 선(善) 혹은 미(美)라는 글자와 어원이 같은 것으로 대개 보고 있다. 후대에 대개 의는 절제(節制)의 의미로 이해해 왔었다. ‘의 자’의 일부를 구성하는 양 양자가 기른다다는 의미 음식이라는 의미로 전용될 수 있는 부호이므로 역시 절제라는 의미와 소박하게 연결된다. 하나의 일상생활 용어였던 것이다. 이것이 유의미한 의미로 전환될 수 있었던 계기는 아마도 그 원래의 의미로부터 진전 발전 과정을 경과하였기 때문인데 음식을 절제한다는 소박한 의미가 통용되는 것은 아마도 육식자인 고대 귀족과 왕족들 사이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식과 학식 기술의 독점자들이었기 때문에 그 진전과 함께 새로운 의미로 발전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 의리는 절제를 어원으로 하는 것은 문제가 없겠지만 의리라는 의미에서는 절제보다는 고수 견지라는 일반적 의미 또한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고수 견지의 내용이 없다면 절제란 어의는 너무 막연할 수 있다. 또한 고수 견지의 의미라고 보더라도 역시 그 의미적 전제가 필요함은 마찬가지다. 여기서 의리란 전제 개념과 긴밀한 연관 속에서 성장한 개념임을 알게 된다. ‘어질 인 자’가 그것이다. 인과 의는 불가분의 개인 것이다. 이같이 연관 개면 속에 성장하였다는 것은 언어적 논리적 체계가 갖추어지고 있었음을 의미하며 주요 글자들이 단독적인 발전의 범주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범주의 중요성 그 사상성의 탐구 없이는 의리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또한 분명할 것이다. 그러므로 위의 표에서 보듯이 여러 개념들이 상호 연관을 지우면서 존재하고 진전해온 특징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우리는 어떤 범주를 발견하고 그 범주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자의 ‘일이관지’란 말씀 역시 그런 뜻이라고 믿는다.
관계에 대하여 의리란 단독으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다. 경전과 학문의 다양한 개념을 상호 통합하여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유기적이며 통일지향적인 개념으로서 이를 단선적으로 파악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의리는 우선 인에서 나왔고 인의 실천적 모습인 덕이라는 개념을 궁극적으로 수행한 결과가 바로 의리다. 따라서 인-덕-의리라고 하는 정통라인이 형성된다. 의리란 정통적 개념인 것이며 통일 지향적 라인업을 추구하는 선구적 전위적 개념이다. 의리가 없다면 인과 덕의 강력한 수행이나 실험정신의 창조적 발휘는 아마 거의 불가능 할 것이다.
의리의 역동성 의리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매 순간 역동하는 선택과 행동을 추구하는 다이내믹한 의미 속에 존재한다. 의리는 언제나 동일한 것 같은 상황에서도 매우 다르고 특이하고 새로움을 추구한다. 구태의연함을 한 순간도 허용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보다 의로움을 추구함으로 그 길은 영원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오직 죽음으로만이 중단되는 가치의 새로움 그것이 의리다. 자로가 위나라 난리중에 죽었을 때 공자는 탄식하였지만 자로는 나름대로 새로운 의리를 구현한 것일 수도 있다. 아마 자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었을 것 같다. 의리는 ‘시의적절’이라는 4글자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요즘의 시대에 하필 도덕적으로 온전한 주군만을 섬길 수 있겠는가. 비록 정당하기 그지없는 군주가 아닐지라도 내 신명을 다 바쳐 그를 정당한 군주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는 것 역시 오늘의 신민의 분명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4. 인·의 병칭의 의미
공자 시대에는 ‘어질인’자만 강조할 수 있었다. 원칙이 아직 그런대로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춘추시대 이야기다. 공자가 춘추를 쓴 것도 원칙을 강조하다보면 원칙을 이루는 세상 즉 도를 구현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공자의 판단이었고 그로 인해서 공자는 인의를 말하되 인을 주로 강조하였다. 그러나 실제의 역사는 공자의 바람과는 달리 많은 원칙이 약화되고 폐기되며 나아가 변질되는 쪽으로 나아갔다.
역사는 이미 새로 써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공자는 역사가의 한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역사적 인간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변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실로 공자가 꿈꾸던 이상과는 매우 다른 쪽으로 중국 역사가 흘러갔기 때문이었다. 중국이 합중국과 같은 대규모 역사무대를 일사불란하게 권력으로 통치할 수 있다는 제국주의 사고는 아마 공자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공자에게 천하는 있었지만 천하 유일의 국가 그것도 대규모 영토와 신민을 거느리는 유일통치자로서 제국을 국가의 정상체제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자의 천자는 다만 도덕적 원리의 지도자였다. 그것이 춘추의 의리였다. 천하의 신민을 직접 통치하는 것은 천자의 소임이 아니라고 보았다. 고대봉건제를 이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은·주 국가는 천하의 지도국이었지만 천하의 직접적인 통치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주지하듯이 최초의 천하 직접적인 통치자는 진시황의 나라였다. 그 천하통치자의 선구자는 춘추오패였다. 이 다섯 명의 패자들은 힘으로 휘하의 나라들을 지배하였다. 이 경우에도 직접 천하를 통치한 것은 아니므로 진시황이 시작한 제국과는 달랐다. 춘추오패를 향한 당시대 중국의 역사는 공자의 뜻대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공자의 뜻과는 달리 모든 나라가 힘에 의한 지배와 피지배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격렬히 항쟁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이상의 문제가 아니며 권력자 귀족과 왕족의 생존의 문제일 뿐이었다. 새로 일어난 신흥의 경제가와 관료 지식인 새 기술 등을 통합하여 새로운 강한 나라가 이루어져 가고 있었고 그 새로운 힘에 의해 제국이 가능하다는 현실적 가능성을 삶들이 바라보기 시작하였던 것이었다. 물론 제국이란 일시적으로 가능하지만 영원하고 지속적인 경우는 없다. 로마제국 알렉산더제국 원나라제국 등이 이를 증명한다.
맹자의 시대는 전국시대다. 전국시대에 이르면 춘추시대의 명분은 거의 사라지고 개인과 국가 그리고 새로 등장할 제국의 그림만이 있었다. 공동체라든가 귀족이라든가 하는 중간계급은 주도자가 되지 못하고 각국의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군주에 의해 새로운 통일제국이 대망되었다. 맹자가 강조한 의리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새로운 의의를 담은 것이었다. 인의 이상은 이제 내면화하여 잠복하고 의의 결연한 수행이 요구되었다. 맹자 역시 인의를 말하였지만 공자와는 달리 의리를 주로 말하였고 의리를 중심으로 만사를 논하였다. 전국의 7웅 국가는 춘추오패와는 매우 달랐다. 많은 나라를 지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복하였다. 일종의 정복국가인 셈이다. 유목민족 출신의 정복국가와 다른 점은 천하의 신민들이 그 정복됨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천하의 합의된 의식아래 정복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에 비해 맹자의 왕도론은 당대 실세들에게는 매우 공허하게 들렸던 것이다. 맹자는 과거 천자제도의 이상을 계승하여 새로운 제국이 탄생하기를 바랐다. 맹자의 이상은 공자와 다른 것이었지만 그렇게 유사한 면이 있었다. 도덕적 지도력을 강조한 것이 그것이다.
모든 선현의 공부는 시대를 위한 것이며 시대를 느끼지 못할 때 그 공부는 현실의 의미를 얻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를 모르면 인간을 알 수 없듯이 현실을 제대로 호흡하지 못하면 절실한 공부가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할 것이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항상 인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바로 시간성의 자각이며 역사를 현재화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선현들의 언사가 다르고 실천이 차이가 나게 된 것은 역시 공부의 차이도 있으나 시대의 차이에 대한 민감한 대응이라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공맹이 모두 인의를 병칭하였는데 공자는 인을 보다 강조하였고 맹자는 의를 보다 강조하였다. 이 사실은 공자와 맹자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맹시대에는 근본적으로 인의가 병칭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강한 원리론에 대한 사회 일반의 지지가 심정적으로 매우 강고하게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상적 유효성의 실존상태가 생생하였던 것이다. 공맹이 성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천리론 인도로 대표되는 원리에 대한 위대한 권위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맹자가 만난 제나라 선왕이나 양나라 혜왕 등이 맹자에 대한 경의를 표함에 주저함이 없었지만 전국시대 집권세력의 반대로 인해 맹자가 집권할 수는 없었다. 공자 역시 위령공이나 계강자 등 집권자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공맹이후의 시대엔 유학이 표장되고 국교가 되었지만 오히려 순수한 인의의 권위는 퇴색하고 정치 제도 권력의 힘이 압도하여갔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유교자체라든가 유학자들이 공·맹 같은 권위를 창출할 수는 없으며 제도화된 이대올로기도 역시 생생한 실존적 원리의 권위를 높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인의 원리론의 약화현상이 장구한 동안 2000년의 역사를 이어온 것이었다. 그에 대체한 것이 제도였다. 학문 사상의 실체로서 인의 자체에 대한 새로운 정의나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그 결정적 증거다. 어느 시대이든지 인이라 무엇이며 의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물음을 통해서 그 본래의 정신적 권위를 부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공자가 주로 표방한 인은 단지 배움으로 이루어야 할 아름다운 마음의 경지이며 실천의 처신 방식이었다. 배움으로 높아지는 마음 바로 그것이었다. 인의라든가 원리주의란 결국은 배움과 공부의 원의를 진정으로 회복하는 일이다. 바로 혁신적 배움의 삶이며 추축시대에 이룩한 새로운 삶의 양식 즉 누천년동안 잃어버린 그 삶의 위대한 방식으로 돌아감이 절실하다. 맹자의 의리강조 역시 이 같은 원리주의를 고수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의 반영이었다. 본질적으로 공·맹이 인의를 병칭한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공맹은 절대군주가 신과같이 초월적이고 신성한 존재가 될 것을 기대한 적은 없었다. 천하의 중심은 민이었으며 사람의 중심은 인의의 의리였다.
5.한국 신화의 의리 사상
한국의 의리사상은 명쾌하다. 단군신화에 언명한 홍익인간이란 넉자 속에 온전히 함축되어 있다. 충분히 넉넉한 의리사상이다. 우리는 인의 사상과 의의 사상이 나온 것이 우리 신화의 뒤인지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홍익인간이란 사상은 모든 경전의 개념을 아우를 수 있는 크나큰 언어 ‘큰말’임에는 틀림이 없다.
홍익인간이란 특별한 설명을 요하지 않고도 보편적으로 요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일상의 용어이면서 모든 가치의 정점에 있는 언표 위상을 스스로 지닌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지표보다 더 숭고한 이념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사 우선 이욕의 투쟁사이며 권력의 쟁탈사라는 관점에서 비교해 본다면 이 홍익인간의 지표성은 빛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홍익인간을 위해서는 어질어야 하며 자신을 극복해야 하고 나아가 자기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이 어우러지지 않을 수 없으므로 진정한 의리관의 남상일 것이다. 이울러 홍익인간이 하느님의 이름을 빌어 선언되었으므로 지상 최고의 이념임을 나타낸다. 동아시아 사상사에서는 후일에 하늘이라든가 신이라는 용어마저 이치라든가 인격의 개념으로 발전하였다. 그런 점에서 홍인인간의 하늘 역시 이치이며 지고한 인격의 상징이다. 그 숭고한 경지에서 발표된 명제가 바로 인간을 널이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에 한정된 사상이 아니므로 보편사상이며 한국의 역사에서 발해진 사상이므로 한국사상이다. 신화를 전하는 문헌의 내용은 앞으로 더 구체적으로 탐구해야 하겠지만 이 넉자의 이념만 가지고도 우리 의리관은 이미 넉넉하다.
홍익인간 사상은 신화에 결코 머무르지 않았다. 각 시대에 이어지면서 국민정신의 핵심을 이루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안중근 의사의 살신성인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양 평화를 주창하였다. 홍익인간적인 심성이 없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생각일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목숨을 걸고 부산포 진격의 왕명을 어기고 백성을 보호하고자 한 어진 마음이나, 침략자의 사악함을 용서하려하지 아니한 단호하고 엄정함이 모두 그 정신에 투철함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의리정신이란 이 같은 넉넉함에서 나와서 엄정하게 결행되는 그런 것일 것이다.
홍익인간 사상의 깊이와 계승문제 홍익인간사상은 하늘에서 떨어지듯이 주장된 것은 아니다. 오랜 정신생활의 결과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단군신화가 신의 이야기였다면 신이 직접 내려와 세상을 다스리고 사상을 보급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가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한마디 말로인해서 응축된 고대 지성의 역사정신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고조선은 중국과의 패권다툼에서 패하여 멸망하였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며 그 후 삼국을 통해 부활하였다. 특히 고구려의 초기에 그 같은 의리정신의 계승을 보여주는 강력한 의리의 역사를 접하면서 놀라게 된다. 역사적 전승성을 명백히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여가 신흥 고구려의 정통성을 부인하고자 하였을 때 왕자 무휼은 단호한 의지를 밝힌 누란론(累卵論)을 통하여 강력한 의지를 외교적으로 전달하였다. 왕자 해명은 강궁을 꺾어 강국 황룡국왕을 수치스럽게 한 외교적 실책으로 인하여 부왕으로부터 자살 검을 받고 대동 강변에서 장렬한 죽음을 택하였다. 모두 개인보다는 국가의 존립과 생존을 위한 희생이며 결의였다. 백제는 건국 초부터 위민 정치를 내세워 어진 정치를 표방했다. 이 역시 사소한 듯이 보이지만 삼국 초기 시대성을 살펴보면 놀라운 이념이었던 것이다. 물론 홍익인간의 정신 계승 문제를 구체적으로 탐구하는 일은 아직 더 필요하다. 많은 작업이 요한다는 뜻이다.
'history & letters ... > 주석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교논설 논문목록 (0) | 2014.02.26 |
---|---|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 서문과 배경 (0) | 2012.08.31 |
간재사상연구 (0) | 2012.08.28 |
덕천선생 문목고/하이안자 글 (0) | 2012.05.23 |
한국의유교사상 (0) | 2010.11.22 |
- Total
- Today
- Yesterday
- Karin Batten
- 편향지지율
- Carmen Cicero
- 홀홀히
- 휘쳐
- 팔괘
- 새벽
- 한스 호프만
- 항적도
- Bruce Cohen
- 자연주의
- 해군항적도
- 폴헨리브리흐
- 열정
- 폴 레몬
- 요즘
- 삼재사상
- 헬렌후랑켄탈러
- 문명
- 이상
- Helmut Dorner
- 하늘그리기
- 존재
- 홍익인간 연의 논어
- 일기
- 문재인
- 회흑색
- 유교
- 시공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