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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에 서서라도
끝없는 나락에 서서도
한치 변함없는 비탈에 누울지라도
우리 의연히 존재해야한다
내 몸에 파고드는 이 가을의 영기가
너무나 엄연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세포 속에 아직 탱탱한 태엽의 탄력이
안타깝지 않은가
최소한의 필획으로 그려진 명화를 보라
존립을 위해서는 또 생명의 미학을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직 뼈로 서서 걸어간
선지자의 길도 있었다
속이 텅빈 조각상의
미려함을 보았는가
누구의 삶보다 긴 그들의
영생의 힘은 오직
굳건히 기립함 이었다
속이 막힌 석상을 보아라
답답한 육신인데도
그들 속에서는
어떤 갈등도 없다
서 있음은 성스러운 것
절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를 부수거나
부정할 수 없다
-와해산인 화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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