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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미래를 열어 갈
문물조화 정신의 지혜
-하이안자-
(1)
오늘의 사회와 문화의 현저한 특징은 1)기술혁신 2)물질적 진보 3) 정치 사회의 조직의 고도화 3)개인의 역량과 민간 세력의 공적 영향력 증대 등이다. 반면 우리의 여건으로는 1)남북긴장의 장기 지속 2)기술혁신과 물적 토대의 확충 3)사회와 문화의 생활의 급속한 서구화를 지적할 수 있고, 불가피하게 전통의 단절과 왜곡을 수반하고 있다.
물적 탐구 조작기술의 진전은 모든 나라의 공통 현안이다. 그것이 생존과 번영을 위한 불가결항 요소라고 보기 때문이며 그 사실성을 의심할 수는 없어 보인다.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 그리고 그 힘과 권능는 매력적인 것이며 현대사를 주도하여온 주된 에너지였다.
우리는 근대 초, 절대 빈곤의 탈피가 지상과제였다. 냉엄한 국제경쟁 속에서 국민의 삶을 지키고 모든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 과학 기술을 적극 수용해야 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으며, 오직 “전방위적 서구화”가 살길이었다.
그러나 물적 풍요와 기술이 삶의 궁극의 전모일 수 없다. 결국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가 문제다. 빈곤문제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좋을 여유가 어느 정도 가능해진 이후는 마이카시대로 대변되듯 즉시 삶의 질이 문제되었다. 그 움직임은 최근 점점 강화되고 있다. 문화와 가치를 지향하는 질적인 삶이 대두한 것이다. 주 5일제의 실시는 그 단적인 상징이다.
(2)
이미 80년대를 지나면서 어느 언론은 “우리 문화의 위상은 마치 활주로를 질주하는 항공기에 비유할 수 있다”고 했었다. 얼마 후에는 땅을 박차고 비행기가 날아오르듯이 문화 생활이 크게 진보할 것이라는 기대를 말한 것이었다.
실로 과학 기술의 진전과 함께 대중문화가 일어나고 영화 미술 문학 그리고 인문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무엇보다 우리 국학 곧 고고학 한국사학이나 국문학 민속학 등에서 독립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하였다. 외국이 주도하고있었던 국학의 역량이 비로소 역전되었다. 90년대 중반부터는 사회과학을 중심한 분야에서부터 동아시아적인 것 특히 고전적 가치에 대한 자각이 일어났다. 그러나 아직도 일반 지성계에서는 동아시아 문명과 사상에 대한 통찰의 부족 현상 지속되고 있다.
한 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 이르러서도 기대했던 만큼 문화적 진전을 이룩하지 못한 것은 결국 지적 전통 성찰의 부재에 있었다. 새로움을 지향하였으나 역사적 성찰이 부족했고 물질적 안락에 치우쳤다. 격동의 근대화과정에서 각 계층간 갈등이 심화되었고 민주화와 시민운동은 개혁의 에너지를 이루었으나 스스로를 응찰할 기회를 갖지는 못하였다. 특히 남북대립 구조 속에서 국민정서는 전반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어서 문화적 심성이 깊이 뿌리를 내리기 어려웠다. 최근의 한류현상은 우리의 개성 있는 목소리로 가능한 것이었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나 아직은 정서적 의지적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격류 가운데 자아상실 역사를 피하기 어려웠고, 제국주의적 침탈이 있었으며 아울러 우리 역사 내부의 모순도 작용하였다. 그 모순이란 전통정신이 계급사회 구조로 인해 왜곡되어 그 지성적 기능을 다하지 못하였다는 문제로, 이미 율곡 이래의 명현들이 누누이 지적해오던 것이었다. 격몽요결에서 성리학 공부를 강조한 것이나 송자대전 서두에서 지적 혼란을 탄식하고 있는 것이 그 예일 것이다.
그 내부 모순의 개선노력은 우리 근대사에서 급격하게 서구 지향적 개혁론으로 대체되었었다. 국권회복과 국민의 생존권 확보가 절대의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 같은 지적 문제가 현대에 이르러서도 해결되기보다는 크게 증폭되었다. 서세동점의 여진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고, 오늘에는 불가피한 상황을 넘어 고착화되고 있어 심각한 문제이다. 이는 반미나 반 외세 운동을 필요로 하는 문제는 아니며 지성적 문제이고, 자신의 힘의 진정한 원천을 돌아보지 않는 데서 비롯하므로 ‘역사 지성의 결여현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3)
우리 전통지성은 현세적 명리와 거리를 둘 줄 아는 여유 만만한 것이었다. 반면에 우리 근대사는 전통단절의 역사였다. 우리는 서구 근대문명이 역사적 지성의 산물임을 알고 있다. 지성과 문화가 역사성을 경시할 때 개성과 힘을 잃게되고 특히는 새로운 지적 발견의 기술일 그 상상력과 창조력을 상실하게 된다. 우리 문명의 전성기인 18세기 후반까지 역사서가 활발히 편찬되었음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전통과 역사를 존중하는 여유를 회복함으로써 우리 고유의 사고역량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통의 핵을 이루는 것은 단순한 이념이 아니다. 예컨대 성리학은 본질적으로는 역사적 전통성을 회복하려는 지적 르네상스운동으로서 출발되었으나, 역사적 본질을 회복하려는 것이었으며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실현하려는 것이었다. 이 천인조화사상을 회복하려는 동아시아 근세의 동향은 조선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그 결과 한국은 동아시아 지적 주도권을 차지하게 되었었다. 그 높은 사상성과 위상을 회복하는 것이 오늘의 중대한 과제이다.
(4)
동아시아는 역사상 전통지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항시 경주하여 왔다. 그러나 성리학에 이르러서도 그 본질 회복은 완전하지 못하였다. 성리학은 사람의 보편한 사유능력을 극대화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전통지성은 사람의 순수한 본성을 발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조화정신을 구현하였다는 데 핵심적 의의가 있었다. 이미 공자가 문질빈빈(文質彬彬)을 언급하였듯이 그것은 문물조화(文物調和)의 모습으로 구현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음악으로 완성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문물조화사상은 단순한 논리적 이념이 아니며 견실한 경험성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우리가 오래 간과하여 온 것이 바로 그 ‘전통지성의 경험성’이었다. 공자의 일이관지(一以貫之)란 가르침을 증자가 충서(忠恕)라고 해석하였는데 이 충서의 정신은 사람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사물과 사람 그리고 그들의 문화적 성과를 통관하는 지적 통일성을 뜻하였기 때문에 ‘일(一)’이라고 하였다. ‘일이관지’나 ‘충서’는 결국 일치의 사상이다. 그로부터 모든 가치와 덕목들이 창출되어 효와 예 삼강오륜이 정립되었다.
그 경험주의가 곧 삼재사상(三才思想)이다. 삼재란 3가지 바탕이라는 의미로 천․ 지․ 인이다. ‘천(天)’이란 모든 존재의 궁극 근원이며, 신(神)일 수 있고, 인(仁)일 수 있다. 고대 그리이스의 본체론으로 물 불 공기 흙이거나 아톰(ATOM)이며, 오늘의 원소나 우주물질 미립자이다. 전체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구조이다. ‘지(地)’란 우리 세계의 모든 경험적 현상 즉 지상적인 것, 자연적인 것이다. 사람 동물 식물 하천 바람 등 삼라만상이다. ‘인(人)’이란 사람이 창출한 유의미한 성과이다. 오늘의 개념으로 문화다. 학문 건축 제도 사상 역사 예술 과학 도덕 기술 등이 그것이다.
삼재사상에서 하늘과 자연과 문명은 구분된 별도의 것이 아니다. 도가에서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은 전통사상의 그 경험적 기초를 경시한 것이다. 유가사상을 문화주의 인간주의(humanism)라고 보는 것도 그 경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인간주의나 문화주의는 스스로는 의미 없으며 삼자의 조화가 중요하다.
전통사상을 불변의 도(道) 즉 상도(常道)라고 하였을 때 이는 그 경험적 조화를 말한다. 중용(中庸)에서 “깊은 물 속에서 하늘 끝까지 관찰한다”, “모래알에서 지구 전체를 사유한다”는 말은 바로 삼재조화(三才調和)를 말한 것이다. 이를 공자는 ‘문물조화’라고 말하였다. 삼재는 자연적인 것, 창조적인 것으로 양분되며 이를 문물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문물조화의 의의를 성찰하지 못하여 왔었다. 바로 그 조화의 정신은 서구적 과학기술마저 동아시아적 가치로 수용하는 길이며 난맥화된 우리 삶을 성찰하는 기준이다.
16세기 유럽인들은 노자 장자를 탐독한 이래, 자연주의를 하나의 전통으로 유지해왔다. 이미 그리이스 철학은 자연을 위주로 하였고 서구 근세지성도 자연을 교과서로 인식했다. 오늘의 서구 과학은 자연주의의 금자탑이다. 최근의 한국 지성인과 예술가들이 자연주의를 선호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그 영향이다. 그러나 노장철학의 자연주의가 인위성을 배제하였지만 그것이 궁극의 본의는 아니다. 유학사상에서도 역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최고 이상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인위로 인해 자연만 해쳐지는 것이 아니고 삼재의 조화를 그르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 ‘서세동점(西勢東漸)’은 아직 계속되고 있지만 그것이 영원한 가치“는 아니며 동아시아의 전통적 가치는 불후한 것이다. 오래되고도 영원한 새 삶의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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