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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Ho Suh 2007.jpg
비갠 퇴근길
시내에서 화구를 사려
조금 이른시간에 학사를 나섰다
봄비 갠 길은 조금 어스름 하고
바람 속엔 미미한 한기가 있었지만
어느덧 이젠 전연 춥지는 않았다
벌써 늦봄이니까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며
잠시 한 생각이 일었다 내 몸과 주변
내 안과 밖의 모든 것에 대한 새로운 감이다
나에게 불어오는 가벼운 바람 나와 바람의 문제다
나가수의 노래처럼 난 언제나 위험하니까
지금처럼 한파람의 공기가 내게 새로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의
내외의 간격의 문제다
나의 외부의 전선은 겨울엔 항상 굳게 막혀있다
나의 내부의 성채는 사시 내내 닫혀있다
감히 열지못하고 또 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열려고 할 수 조차 없었다
오직 전적을 읽는 순간이라든가 혹은
애호가들과 글을 읽을 때만 오로지
잠시 그 폐쇄선을 조금 허물 수 있었을 뿐이다
죽음의 영상처럼 난 언제나 두려우니까
지금같은 은은함과 평화로움이 내게 무심함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의
문의 개폐의 문제다
603호를 타고 시내에 들면서도 내내
생각했다 이유없는 평안에 대해서
내 몸과 마음의 틀을 이루는 폐곡선에
넓은 그물눈이 있음을 상기하면서
오랜만에 유일하게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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