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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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구여
전화 못해 미안하다네
휴대폰이 이리도 흔한 세상이건만
난 수화기를 들 수 없었다네
지척의 D동 사거리에 두고
가보지도 못했네
난 어스름한 오후
어둠 속에서 친구와 통화하다가
나도 모르는 새 어느 버튼을 눌러
통화가 끊긴것이네
내 끊은 것이 아니라네
난 수첩을 찾다가
그만두었네
이제 연말인데
만나자고 할 텐데
요즘은 너무 시간이 없다네
또 다른 이유도 있지만
그건 말하기가 곤란하네
너무 부끄러울지 모르니까말이야
<2>
친구여
벌서 만난지 십년이 넘었군
우리 만나지 못해도
어떤가 우린 이미 추억속에 영원한 것을
도심의 산사에서보낸 나의 십수년에
우리들 추억은 진정 추억으로 완성되었네
이미 완성된 것들은 던져두세나
그리고 새로운 또다른 완성을 위해
시간을 쓰세나
<3>
친구여
지난해엔 공주를 지나며
전화할까 망설인 적도 있었다네
저 지난해 만났을 때 친군
이미 옛친구가 아니더군
난 함께 노닐었던 수년을 그대로
간직하고싶어서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네
<4>
친구여
간간히 그대 직원을 통해
몰래 소식은 듣는다네
자네 근무하는 스타일 까지
친구는 여전하더군
난 친구와 지냈던 낭만을
간직하고 싶어
만나지 않기로 했다네
<5>
친구여
그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로
한번도 찾아가지 못해
미안하네
내 자주 갔다면
우린 지금도 만나고 있을테지
그러나 친구여
우린 모두 변했네
K교수가 말하더군
난 예전의 내가 아니야
업적도 많고
이제 국내 일인자라네
라고 말이야
친구는 그렇게 변하진 않았지만
우리들 우정은 이미 추억이니
그대로 완성되게 하세나
추억은 추억의 존재세계에
영원히 변함없도록
<6>
친구여
세상은 변하고
우리도 변한다네
우린 흐르는 물에
두번 발을 담글 수 없다네
우리 이제는
단 한번으로 완성된
동양화 필법같은
꿈의 공간을
그대로 두세나
<7>
친구여
지난 동창회에
못나가 미안하네
일부러 내 가까이서
모임을 하였는데도
끝내 시간을 내지 못하였네
그러나 친구여
그날 날 찾아주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네
아마 모임 뒤에 왔다면
우리들의 오랜 공간이
혹 훼손됐을지도 모른다네
<8>
친구여
우정은 역시 영원한 것
추억은 불변하는 것
그것을 알겠네
정말로 지극히
아름답다는 것도
그대로
하나의 장으로
남겨두세나
우리도 이젠
새로운 준비를
해야하지 않나
진정 영원한 것
그것을 위하여
<9>
친구여
몇 달 전엔
Y군이 다녀갔네
황토방이 좋아
여기 왔다더군
우린
가가운 곳에서
칼국수 나누어 먹고
헤어졌다네
옛 문자 몇글자
물어보고
갔다네
<10>
친구여
미안하네
내 여력이 없어
술 한 잔
나누지 못한다네
그러나 우리들
지난날이
여전히 보존되어 있으니
무슨 걱정인가
우린
만나지 못해도
여전한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친구여
- 하이안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