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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상사로서 유교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사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반대로 사상사를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하면 우리 역사의 이해가 깊어진다. 즉 바로
역사와 사상사는 문명사적 공통성을 지님과 동시에 서로 불가분한 절실한 괸계에 있다.

나는 우리사회의 지식층이 그 세대를 막론하고 자신의 역사와 사상사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이 오늘의 커다람 문제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한다. 공자가 신이호고(信而好古)
라고 하였을 때 그 말은 단순한 옛것을 숭상한다는 의미는 적어도 전연 아니다.
자신의 역사의 전통과 성과를 확신한다는 의미이므로 그 사상은 오늘날의 근대정신이
자향하는 역사주의를 능가한다. 특히 믿는다는 것은 선대의 지성인의 양식을 믿는다는
말이므로 자신의 선대의 인격적 정신적 전통과 유산을 확신한다는 말이다.
그런 믿음은 섣부른 역사나 사상비판보다 수천배 가치가 있다. 비판이전에 왜곡이 없도록
하는 일이 우섭 급한 일이고 비판은 극히 부분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대체로
우리의 역사에서 그 지성의 전통은 적어도 혁신할 것은 없으며 혁명적으로 바꿔야할 것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이 지성적 전통은 이미 보편적 정당성과 경험적
균형성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이 점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마
이 글을 읽고 그 의미를 접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화적으로 응분의 책임을 지고
있는 계층의 사람이 자신의 역사와 문명의 진실은 접수할 수 없다는 것보다
더 큰 비극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정신과 문화에 대한 자기왜곡은 확실히
진정 쓰리린 비극일 것이다.

나는 그 비극을 너무도 일상으로 느끼고 있고 지금의 문화적 정신적 상황 아래서 그
해소의 길은 너무나 멀고 막연하여 당황스러울 뿐이다, 그에 대한 의견을 적고싶은 경우에도
무슨 이야가로부터 해야할지 너무나 막막함을 느낄 때가 많다. 소통되지 않는 상대와
대화하려는 것과 같은 무모함이 스스로에게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하려는
노력을 중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미래를 위해서다. 언젠가는 드디어 자신이 기질과
사상과 문화를 회복할 수 있고 꼭 그래야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날과 같이 틀에박힌 생각이 비판되고있는 시대에 그리고 개방적 사유를
특장으로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사화에서 이외로 자신의 민족성과 역사와 지성적
전통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지 못하고 있는 햔실은 솔직히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
왜 스스로의 가치와 전통에 대한 것은 다시 생각할 줄 모르는가? 하는 것이
진정 커다란 나의 오랜 답이 쉽지 않은 의문이다.

오늘 연구소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라디오 대담을 듣고 있는데 <성전환>자의
주민등록번호를 고쳐주는 입법에 대한 시청자의 의견을 듣는 프로가 나왔다.
어떤 시청자가 전화로 말하기를 <한국은 유교적 전통의 구속으로 인해 그런 문제에
관용을 베풀지 못한다> 전제하고 그 법에 찬성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여성운동가들의 주장 속에 경제현장의 분석글에서
사회운동가들의 주장 속에서 언제나 들어오던 말이었으나 오늘은 특히 더 귓전을 울리며
들려왔다. 많은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도 어째서 유교사상을 왜곡하고 마치
혁명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그 원인이 우리의 오늘의 지성이 자신의 역사와 문화 자신의 사상사에 대한 성찰이
결여된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자신들의 역사와 사상과 문화가 진정 그 스스로 가치있다는 것을 아는 일은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오늘의 지성을 성찰할 수 앖다면 우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안다는 것 그리고 민족의 가질과 가능성과 지성에 대한 객관적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진정 영통의 길이다. 예를 들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월드컵에서 승리의 원인을
히딩크 감독의 영명한 지도력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히딩크감독은
<한국의 선수들이 공손하고 착하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것이 진정 한국의
힘의 원천이다. 그는 우리보다 더 객관적으로 우리적인 것을 빨리 간취하였던 것이다.

그 착하다는 것은 전통지성의 힘이다. 개막식에서 보여준 사물놀이의 역동적인
리등은 한국적 기질이다. 개막식 끝의 조용필의 느리고 유장한 <아리랑>은
한국문화이 맥락이다. 아마 세계는 그 빠른 나라에서 어떻게 저렇게 절제된
리듬이 가능한지를 보고 듣고 경악하였을 터이다.

이미 우리의 문화 심성으로 구축된 자신의 진정한 역량을 돌아보는 것 그것이 진정
역사적인 삶이며 역사성은 서양 근대의 지성적 중심이므로 동시에 근대화의 가장 기초적인
명제이기도 한 것임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그와 같은 역사적 정신적 사고를 동원한다면 <히딩크감독>에 의해 발견된
한국적인 것은 이번 대회에서 위대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축구경지를 내내
지켜보면서 나의 믿음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한국적인 것의 위대함과 가치를
처음으로 이 개명된 문명 속에서 드러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아마
히딩크감독은 그의 객관적 이해력으로 <사물놀이>와 <아리랑> 사이의 모순을
모순이 아닌 절묘한 조화이며 균형이며 오랜 역사의 역량임을 깨달았을 것이고
이를 그의 전술로 사용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의 지성의 근대성을 믿기 때문이다.

이 전연 새로운 감각와 정신의 한국적인 축구는 얼마나 힘을 발휘할 것인가?
나는 단연코 오늘 10일의 미국전 승리는 당연한 것이고 아마 반드시 우승을
다투고 전세계를 완전히 경악시킬 것이라고 확고히 믿을 수 있다. 그러한 판단은
오로지 역사와 현재의 상황에 대한 분석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전제에 커다란 오류가 없다면 한국의 우승은 너무나 확실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의 한국인과 문화 가운데 월드컵행사와 국가대표팀보다
더 한국적인 정신을 발휘하고 있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며 한국적인 것은
세계에서 가장 넓고 균형된 정신사를 기초로하여 세워진 것이므로 오늘날 같이
편협해져가는 근대문명의 정신을 깨트리고 재편할 수 있는 최강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한국은 조선 중기 이후 동아시아 지성의 중심을 형성해온
것이 그 역사적 진실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제 분명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기 시작할 것이다.





하이안자(夏夷案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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