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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코리아-재팬 월드컵은 새로운 파란과 변화로 넘치고 있다. 이변이라고도 하고 축구실력의
평준화 현상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비록 운이라든가 우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축구의
승부라고 하지만 축구의 승패나 경기력의 향방은 단적으로 힘과 기술과 정신력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적어도 이변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월드컵이 열리기전까지 FIFA에서 평가한 랭킹은 어디까지나 지난 성적이며 전세계수준에서
벌어지는 축구현상의 전체를 반영한 공정한 것이거나 실시간적인 적확한 평가는 아니라는 점에서
이변은 너무나 당연하고 항상 가능한 것이다.
특히 기술과 힘은 기르고 연마할 수 있으므로 기술의 차이라든가 힘의 차이 같은 것은 사실
언제나 역전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신력은 인위적으로 연마하기가 쉽지않다는 점을 주목하여야
하겠다. 그 정신력은 단순한 집념이라거나 승리에의 집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스포츠인
축구가 승리를 최종 목표로 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승패위주의 축구열정은
사실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이 한국의선전을 평가하여 황선홍의 부상출장과 같은 투지가 중국팀에는 부족하다는 자평이
있었다는데 이는 상당히 잘못된 평가일 것이다. 한국인의 축구전력은 자신감이라는 힘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그 자신감은 오랜 삶의 양식상의 정당성에서 나오는 것일 것이다.
어제 중국 공안들이 한국의 외교관을 폭행하고
침입하여 탈북자를 연행해갔다고 하는데 그와 같은 비실체적 힘의 과시는 단지 허세일 뿐이며
특히 그 폭력성과 비지성적 행동은 중국 축구의 현주소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문화와
역사의 진실한 힘은 나라의 크기나 군사력의 강약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최대 약점이다.
그러나 역시 축구로 상징되는 어떤 역량이 승패로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므로 승패는 역시 중요한
관점임에는 변함없다. 다만 우리의 축구감상법이 좀 깊이를 더해야할 것이다.
<<2>>
축구 강대국의 전반적 퇴조는 오늘의 국제적 정신 문화 정치 경제의 여러 부면을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축구가 가진 문화적 정신적 측면이 축구문화의 실체적 힘으로 떠오르고
있는 역사성을 보아야하겠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소르망이 내한하여 <한국의 개막식은 지상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인류의 이상을 보여주었다>고 평하였고 또한 <각 민족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세계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평한 것은 극히 정확한 문화평이었으며 특히 조국 프랑스의
패전을 두고 <프랑스가 세네갈에 패한 것은 행복한 일이다>라고 말하였다. 놀랍고 의외의 평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으나 지식인 이라면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명언이었다. 프랑스
대통령이 자국의 팀을 격려하였다는 소식도 마찬가지로 귀한 몸짓일 것이다.
<<3>>
스포츠의 가치는 의외로 비폭력적 지성을 드러내려는 몸짓이라는 데에 있다. 축구는 그 스포츠의
대명사이다. 최근 축구평론가들이 축구는 남성적인 스포츠를 대표한다고 하고 있는데 웃기는
평가이다. 축구는 의외로 지성적이며 정신적이며 정서적인 스포츠이다.그 격렬한 동작과
전투성으로 인해 그런 평가를 내라는 것이지만 축구의 일정정도의 수준 이상의 전력은 전연
정신적인 것이다. 그리고 세밀하며 정교하고 힘차며 부드러운 종합적인 행동으로 표출된다.
한국의 전야제나 개막식이보여준 문화적 표현의지가 그 내면적인 힘을 구성하는 것이다.
한국이 문화올림픽을 표방하였을 때 서구의 일부 평자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문화적 이미지를
부각하는 것은 한국의 희망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역시 웃기는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의 <스>자도 모르는 이의 방언일것이다.
동아시아는 이미 무력은 스포츠로 전환해온 3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소위 육례(六禮)
가운데 활쏘기와 말타기가 그것인데 <예(禮)>의 범주 안에서 원시적 폭력성을 문화적인 행동으로
전환하였던 것이다.동아시아에서 스포츠는 <예>에 속하는 지성적인 극히 지성적인 행동이었다.
인류의 역사가 야성과 무지를 지성으로 전환해온 것이므로 스포츠는 인류사의 한 중심을 형성하는
것이다.
새로운 이 세기는 동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는 없다.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은 꿈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지성적인 인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데체 <예>로 대표되는 지성의 상징으로 볼 때 동아시아의 전통시대보다 깊은 정신적 거느림이
있는 문화는 없다. 동아시아의 <예>는 그들의 깊은 우주관과 지연관 인간관을 응축한 절묘한 것이다.
그 결론은 인(仁)이었다.
동아시아인 가운데 강력한 유교국가인 한국의 전통적 역사가 구현한 <정신가치구현>의 역량은
세계적이며 중국과 서구의 어떤 역사에서도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지성의 승리의 역사였다.
그 힘이 한국 축구를 뒷받침하고 있고 그 힘은 오늘날 한국인의 힘의 원천이다. 한국인이 자각하든
혹은 서구문화에 현혹되어 자각하지 못하든 이미 그 힘은 한국의 역사역량으로서 이어지고 있다.
그 가치와 정신의 정당성과 힘이 새로이 빛날것임을 예고하는 의외의 상징성을 이번 월드컵이
충분히 발양하고 있다. 그것이 한국축구의 새로운 물결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단순한 예를 보면 <한국은 남을 침략한 일이 없는 나라>라는 사실과 <수많은 외침을 이겨낸 나라>
라는 단순한 역사외형만으로도 충분히 한국인의 정신을 정당하고 힘차게 하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소극적인 나라가 아니라는데 다시 놀라게 된다. 용광로 같은 조화적
창조력이 숨쉬는 역사, 정신적 지표를 강렬하게 추구해온 문화 즉 효의 문화로 대변되는 생활이
그를 대표한다.
나는 한국축구의 승리는 정신과 문화의 승리라고 미리 선언하고자 한다. 도대체 문화적 바탕으로
보아 한국보다 정당하고 힘찬 예가 또 있는가 하고 선언적으로 묻고자 한다. 단적으로 한국이
우승하지 못할 이유가 전연 없다는 것이다.
<<4>>
아마 세계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3번 놀랄 것이다.
한국과 일본 북미와 아프라카의 선전에
놀랄 것이고 축구의 힘이 문화와 정신이라는 사실에 또 놀랄 것이며 그것이 <예>라는 구현양식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에 또 놀랄 것이다.
<예>란 자신의 사욕의 극복을 의미한다. 단적으로는 예를 들어 자만심은 무기력함을 부른다는
것을 나타내고 그 징후는 <무례하다>는 데 있다. 아마 앞으로는 무례한 팀은 승리를 맛보기
어려울 것이다. 겸양과 겸손의 미덕이 축구의 새로운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 새로운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서 한국은 놀라운 경악의 선전을 이어갈 것이다.그것은 이미 세계사의 새로운
힘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러한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한국팀이 선언하게 될 것이다.
한국-포루투갈 대전일 새벽 03시
하이안자 씀
이번 코리아-재팬 월드컵은 새로운 파란과 변화로 넘치고 있다. 이변이라고도 하고 축구실력의
평준화 현상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비록 운이라든가 우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축구의
승부라고 하지만 축구의 승패나 경기력의 향방은 단적으로 힘과 기술과 정신력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적어도 이변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월드컵이 열리기전까지 FIFA에서 평가한 랭킹은 어디까지나 지난 성적이며 전세계수준에서
벌어지는 축구현상의 전체를 반영한 공정한 것이거나 실시간적인 적확한 평가는 아니라는 점에서
이변은 너무나 당연하고 항상 가능한 것이다.
특히 기술과 힘은 기르고 연마할 수 있으므로 기술의 차이라든가 힘의 차이 같은 것은 사실
언제나 역전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신력은 인위적으로 연마하기가 쉽지않다는 점을 주목하여야
하겠다. 그 정신력은 단순한 집념이라거나 승리에의 집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스포츠인
축구가 승리를 최종 목표로 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승패위주의 축구열정은
사실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이 한국의선전을 평가하여 황선홍의 부상출장과 같은 투지가 중국팀에는 부족하다는 자평이
있었다는데 이는 상당히 잘못된 평가일 것이다. 한국인의 축구전력은 자신감이라는 힘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그 자신감은 오랜 삶의 양식상의 정당성에서 나오는 것일 것이다.
어제 중국 공안들이 한국의 외교관을 폭행하고
침입하여 탈북자를 연행해갔다고 하는데 그와 같은 비실체적 힘의 과시는 단지 허세일 뿐이며
특히 그 폭력성과 비지성적 행동은 중국 축구의 현주소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문화와
역사의 진실한 힘은 나라의 크기나 군사력의 강약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최대 약점이다.
그러나 역시 축구로 상징되는 어떤 역량이 승패로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므로 승패는 역시 중요한
관점임에는 변함없다. 다만 우리의 축구감상법이 좀 깊이를 더해야할 것이다.
<<2>>
축구 강대국의 전반적 퇴조는 오늘의 국제적 정신 문화 정치 경제의 여러 부면을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축구가 가진 문화적 정신적 측면이 축구문화의 실체적 힘으로 떠오르고
있는 역사성을 보아야하겠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소르망이 내한하여 <한국의 개막식은 지상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인류의 이상을 보여주었다>고 평하였고 또한 <각 민족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세계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평한 것은 극히 정확한 문화평이었으며 특히 조국 프랑스의
패전을 두고 <프랑스가 세네갈에 패한 것은 행복한 일이다>라고 말하였다. 놀랍고 의외의 평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으나 지식인 이라면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명언이었다. 프랑스
대통령이 자국의 팀을 격려하였다는 소식도 마찬가지로 귀한 몸짓일 것이다.
<<3>>
스포츠의 가치는 의외로 비폭력적 지성을 드러내려는 몸짓이라는 데에 있다. 축구는 그 스포츠의
대명사이다. 최근 축구평론가들이 축구는 남성적인 스포츠를 대표한다고 하고 있는데 웃기는
평가이다. 축구는 의외로 지성적이며 정신적이며 정서적인 스포츠이다.그 격렬한 동작과
전투성으로 인해 그런 평가를 내라는 것이지만 축구의 일정정도의 수준 이상의 전력은 전연
정신적인 것이다. 그리고 세밀하며 정교하고 힘차며 부드러운 종합적인 행동으로 표출된다.
한국의 전야제나 개막식이보여준 문화적 표현의지가 그 내면적인 힘을 구성하는 것이다.
한국이 문화올림픽을 표방하였을 때 서구의 일부 평자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문화적 이미지를
부각하는 것은 한국의 희망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역시 웃기는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의 <스>자도 모르는 이의 방언일것이다.
동아시아는 이미 무력은 스포츠로 전환해온 3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소위 육례(六禮)
가운데 활쏘기와 말타기가 그것인데 <예(禮)>의 범주 안에서 원시적 폭력성을 문화적인 행동으로
전환하였던 것이다.동아시아에서 스포츠는 <예>에 속하는 지성적인 극히 지성적인 행동이었다.
인류의 역사가 야성과 무지를 지성으로 전환해온 것이므로 스포츠는 인류사의 한 중심을 형성하는
것이다.
새로운 이 세기는 동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는 없다.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은 꿈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지성적인 인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데체 <예>로 대표되는 지성의 상징으로 볼 때 동아시아의 전통시대보다 깊은 정신적 거느림이
있는 문화는 없다. 동아시아의 <예>는 그들의 깊은 우주관과 지연관 인간관을 응축한 절묘한 것이다.
그 결론은 인(仁)이었다.
동아시아인 가운데 강력한 유교국가인 한국의 전통적 역사가 구현한 <정신가치구현>의 역량은
세계적이며 중국과 서구의 어떤 역사에서도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지성의 승리의 역사였다.
그 힘이 한국 축구를 뒷받침하고 있고 그 힘은 오늘날 한국인의 힘의 원천이다. 한국인이 자각하든
혹은 서구문화에 현혹되어 자각하지 못하든 이미 그 힘은 한국의 역사역량으로서 이어지고 있다.
그 가치와 정신의 정당성과 힘이 새로이 빛날것임을 예고하는 의외의 상징성을 이번 월드컵이
충분히 발양하고 있다. 그것이 한국축구의 새로운 물결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단순한 예를 보면 <한국은 남을 침략한 일이 없는 나라>라는 사실과 <수많은 외침을 이겨낸 나라>
라는 단순한 역사외형만으로도 충분히 한국인의 정신을 정당하고 힘차게 하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소극적인 나라가 아니라는데 다시 놀라게 된다. 용광로 같은 조화적
창조력이 숨쉬는 역사, 정신적 지표를 강렬하게 추구해온 문화 즉 효의 문화로 대변되는 생활이
그를 대표한다.
나는 한국축구의 승리는 정신과 문화의 승리라고 미리 선언하고자 한다. 도대체 문화적 바탕으로
보아 한국보다 정당하고 힘찬 예가 또 있는가 하고 선언적으로 묻고자 한다. 단적으로 한국이
우승하지 못할 이유가 전연 없다는 것이다.
<<4>>
아마 세계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3번 놀랄 것이다.
한국과 일본 북미와 아프라카의 선전에
놀랄 것이고 축구의 힘이 문화와 정신이라는 사실에 또 놀랄 것이며 그것이 <예>라는 구현양식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에 또 놀랄 것이다.
<예>란 자신의 사욕의 극복을 의미한다. 단적으로는 예를 들어 자만심은 무기력함을 부른다는
것을 나타내고 그 징후는 <무례하다>는 데 있다. 아마 앞으로는 무례한 팀은 승리를 맛보기
어려울 것이다. 겸양과 겸손의 미덕이 축구의 새로운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 새로운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서 한국은 놀라운 경악의 선전을 이어갈 것이다.그것은 이미 세계사의 새로운
힘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러한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한국팀이 선언하게 될 것이다.
한국-포루투갈 대전일 새벽 03시
하이안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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