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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대 문명과 사상을 통하여 오늘을 통찰하는 힘을 강화할 수 있다. 명심보감에 소개된
것과 같이 "역사와 오늘을 알지 못하면 새나 짐승에게 옷을 입힌 것과 같다"는 말은 어느정도
믿어도 좋은 이야기다. 동북아시아의 오랜 지혜의 전통을 이루어온 유학사상에서 "옛것을 익혀
새로히 깨닫는다"는 명제는 분명 오늘에도 유효한 살아있는 논리이다. 그 깨달음은 <새로운
지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지성적 안목의 개안을 의미한다. 그것은 거의 서구의
근대 역사적 지성과 같은 의미적 범주를 지닌다. 우리들이 주목해 볼 경우에 한하여 그렇다.

보다 넓은 시야로 역사성에 염두를 두고 오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새로운 시야를 가질 수 있
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새로운 시야란 별다른 것이아니고 자신들의 현재적 위상과 상황을
새로운 각도 새로운 차원에서 사고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되고 한층더 적실하게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이다.

왜 이런 장황한 서론을 말해두느냐 하면 지금 열리고 있는 <코리아재팬 월드컵> 행사가 의미
심장한 문명적 상징성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의외로 얻게되는 빛나는 상징성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2>>

한국팀은 반세기의 숙원이었던 <월드컵 1승>을 달성했다.일본은 <비겼>고 중국은 <패배>하였다.
특히 동북아시아인의 승패의 명암은 그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다. 일본과 한국의
좋은 성적은 그만큼 서구화가 진전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중국과 사우디의 패전은 적어도
축구 분야에서 서구화가 미진하였기 때문이라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서구화의 정도로만 말할 수 없는 점을 <한국>과 <일본>의 차이에서 발견하게 된다.
서구화의 정도로만 한 나라의 진정한 힘을 말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오히려 소구화에는 일본이 더 적극적이었고 서구의 가치와 제도 그리고 문명적 빛과 그림자를
아울러 더 열심히 받아들인 것이 일본이다. 그런데 축구에 한정해보아도 역대 전적에서 일본은
한국의 적이 되지 못하였었다. 물론 최근에 전력이 크게 상승하였고 한국을 능가하는 실력을
보이기도 한 적이 있었으나 그것은 과감한 축구유학 와국감독 영입의 결과였다. 서구식 축구의
직수입을 망설이던 한국이 히딩트를 등용하여 본격적인 축구 직수입을 단행한 최근 일본과
거의 같은 축구환경을 깆추고나서 이루어진 것이 이번의 격돌이었다. 한국의 성적이 더 좋은
것은 왜인가?

적어도 축구에는 서구적인 것 외에 그 무엇인가가 더 있다. 남미와 아프라카의 약진도 그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서구적인 것 외에 무엇이 더 있는가? 근대축구의 기술과 체력 전략과
전술 같은 것이 보편화되어가는 지금 이미 그것으로 승패를 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기술과
체력 전략과 전술의 본질을 이루는 <기질과 심성> <사상과 문화>가 그 내부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3>>

최근에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남자>>(인성기 역/들녘)이 출간되었는데 그 책을 소개한 어느
언론의 글은 "남자들은 대체로 축구에 마친다>고 말하면서 남자를 정자에 축구공을 난자에
비유하고 남자를 덜 진화된 동물적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 조선일보선정-이달의 책 소개글 /장석주)

나는 과학적인 듯이 주장하는 그런 류의 남성-여성론 혹은 인간론을 무가치하게 여긴다.
서구적 지식의 결정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종합적 통찰이 결여된 지적 미숙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축구에 있어 서구적인 어떤 기준이 우월하다는 증거는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주목한다.

대개는 서구인의 체력 조건 때문에 아시아인은 그들을 따라갈 수 없었던 것은 어느정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 부국들은 서구적 생활 수준에 이미 도달해가고 있으므로
체격적인 조건도 거의 그 의미를 잃어갈 것이다. 즉 그것이 축구의 절대적 전력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정한 전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역시 기질과 문화와 사상이다. 높은 문화적 정신적
자신감이 모든 힘의 근원이며 역사적으로 발전해온 민족적 기질을 통찰하고 살리는 것이
또한 전력의 진정한 기초일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민족의 힘은 역사와 문화와 사상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다.

근대 서구축구가 한동안 세계를 지배한 것은 그들의 자신감에 기초한다.문화적 문명적
기술적 경제적 모든 분야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우수한 인종이라고 믿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었고 열등민족을 지배할 권리가 있다고 까지 믿었었다. 1-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그러한 민족우월주의는 퇴조하였지만 그들의 자긍심은 여전하였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그 힘으로 근대 축구를 지배해왔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이미 아시아의
각성이 크게 일어나고 경제 기술 문화의 분야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그들의 자긍심은
다소 위축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의 물리적 힘이 강하고 과학의 축적이 깊고 문화생활의발전
정도에서 아시아를 압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그러한 압도력이 진정한 역사의
힘의 전부는 아니며 그 최기층 바탕도 아니다. 문제는 역사와 사상이다. 특히 사상사이다.

최근 민감한 서구의 학자들은 아시아를 주목한다. 특히 동북아시아 유교문화권을 새삼
주목한다. 그들은 서구문명의 한계를 느끼면서 그 한계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아시아의
지성 속에 있다고 믿고 있다. 유교사상을 정밀하게 분석해보면 그것이 진정 사실임을 절실히
알게 된다. 동북아 지성의 중심 우리의 사상사는 새로운 구원의 신성한 역량을 가지고 있음을
그들은 부정하지 않는다. (이미 앞에서 말했지만 이조 중기 이후 유학의 중심이 한국으로
변환되었음은 중국학자들도 인정한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민족 기질과 사상적 전통 그것이 이미 우월한 한국의 축구가 그 위용을
드러낼 역사적 시간에 다다르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분석이 진실한 것이라면 <한국의 월드겁 우승>
은 가능성을 넘어 역사의 필연이다.

한국 축구선수나 감독이 그런 사실을 학문적으로 깊이 알지는 못하겠으나 이미 확고하게
실천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일부 각성된 지식인과 문화예술계인사들의 지성 속에 그 역사성이
자각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막식은 그 좋은 예가 된다. 자신감이 넘치는 장면과
음악 율동은 그와 같은 새로운 역사가 이미 열렸음을 선언하는데 전연 손색이 없었다.

그 새로운 깨달음의 길은 더 적극적으로 걸어가야할 때가 된것이다. 아직은 그 탐구가
일부의 의식에 그치고 있고 정밀하지 못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이다.

예컨데 일본이 그 높은 서구화 수준에도 불구하고 역대 한국와의 축구대전에거 밀렸던 것은
바로 역사적 문화적 자신감의 부족 때문이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일본도 최근 <자학사관>을
벗어나자고 주창하고 있으나 그 방향은 무리스런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자신감의 회복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동물적 감각으로 생생히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중국 일본은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서 극히 균형된 감각으로 유교사상의 나라 답게 역사를
응시함으로서 오직 그 힘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유교는 보편 균형의 정신을 오직
강조하는 점에서 세계성을 확고하게 구비하고 있다는 점도 아울러 주목해야 한다.이제부터는
역사적 지성만이 새시대의 진정한 힘이 될 것이다.




하이안자(夏夷案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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