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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명의 발전속도는 현기증을 넘어서서 자아가 분해될 정도의 괴력의 수치로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단 하루에 생성되는 지식의 총량이전근대 사회 100년의 지식의 양과 맞먹는다는
분석도 있다.

정말 진부한 이야기지만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달은 많은 경이적인 풍요와 생활의 편리함을 실현하여
준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불과 근백년래에 우리는 개인적 국가적 문화적 여러 측면에서 문자그대로 격변이 연속되는 삶을 살아
왔다.그리고 그 격변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우리는 실로 격동하는 역사의 바람소리나는 나아감을
수시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흐름은 과연 무엇을 향하여 나아가는지 오늘은 문득 그것 이 참 궁금하고 또
생각해보고 논해보고 싶어진다. 나의 오십년 개인사를 돌이켜 보는 것 만으로도 나는 많은 생각할
일들이 너무도 많은 것이다.

현대의 역동과 전근대의 삶의 구조를 비교해볼 때 가장 두드러진 것은 삶의 중심과 힘의 근원이 바뀌
었다는 점을 우선 지적해야하겠다.

우리는 역사상 4차례의 혁명이 있었다고 생각해왔다.(1)신석기 농업혁명 (2)청동기도시혁명 (3)철기
사상혁명 (4)산업혁명이 그것이다. 현재는 그런 관점에서보면 산업혁명의 여파속에 우리가 사는 것이
고 문명의 소재로 보면 현 싯점은 철기문명의 끝자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안전한 확보라는 차원에서 보았을 때 (1)개인
적으로는 소득의 증대 (2)사회적으로는 정치 사회운동의 발전 (3)국가적으로는 국가의 보위와 합리
적 경영이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게 된다. 삶의 새로운 가치 창조라는 측면에서 보면 문화적 향유의
문제가 크게 대두하게 된다.

이런 문제들과 공통적으로 관계되는 것으로는 기술과 지식의 중요성이 현저하게 고도화되어가고 있다
는 사실성이 있다.육탄전 보다는 전자전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현대전의 양상이라든가 생산자체보다는
소비와 유통등의 3차산업의 중요성이 증대하고 있는 현상 그리고 가격경쟁력를 높이기 위한 기술의
혁신과 경영구조의 조정문제의 부각 등에서 우리는 근력보다는 섬세한 사고와 기능과 기술의 진전이
오늘의 새로운 삶의 힘의 근저를 새롭게 구성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아시아는 세게의 선두국가에 비해서 많이 부족한 면이 있다.최근 일본이 초음속
여객기 모령의 발시실험에서 실패한 사실은 그 단적인 상징이다. 우리는 아직도 서구에 비해 기술적
발전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은 서구적 이념과 과학과 기술을 수용하고 개발하여 나아가는
것이 우선 제일 시급한 일일 것이다.

과연 그같은 발전의 욕구는 당연한 것이고 우리의 개인적 국가적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또 극히 필수
적인 일기기도하다. 즉 오늘의 우리들이 현재 걸어가고 있는 커다란 삶의 흐름을 유지하고 효율화하는
일이 긴요함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것은 논리적으로는필요조건에 해당하는 것이고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인식이 함께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바로 이것이 이글을 쓰는 이유이다.

생각하면 오늘날 전세계에 혁명이상의 영향을 주고 있는 서구형의 삶의 방식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광범
한 삶과 문화의 변혁을 불러일으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널리보아 인류의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는 없다. 물론 그에 따른 여러가지 환경적 가족적 개인적 문화적 역기능도 치명
적으로 존제하지만 이 역시 개선을 지향하고 있으므로역시 그 공이 과보다는 많은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것이 우리의 삶에 충분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듯이 우리들 삶의 본질과 의미를 완전하게
구현해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광범하게 글로벌한 현대문명의 나아감을 즐기고 있지만
아직은 세계문화란 초보단계이고 이 새문명의 가치와방향은 아직은 개선되고 정비되어야할 것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므로 아직은 세계문화란 솔직히는 보다 환상에 가까운 그무엇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그 서구화 세계화의 흐름을 추구해가는 보다 강화해가고 있고 이미
멈출 수 없는 대세로서 거대한 역사동력으로 가동되고있는 것이 현실이고 그것은 근본적으로 정당한 추세
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추세의 힘은 즉 그 힘의본질은 우리가 새롭고 자각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면
이 있다는 것을 결국 말하려는 것이다.

서구화와 세계화를 넘어서서 점점더 긴요한 가치를 지니는 본질이 삶의 내면에서 수립되기 시작해야한다
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건 서구화 일변도는 결국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상과 문화 삶
의양식과 우리의 일상의 정감과 사고라고하는 극히 광범한 우리의 삶의 양상이 그 균형을 잃어가고 있는
현상을 도처에서 볼 수 있고 그런 현상은 오랜 동양적인 지감으로 판단할 때 위험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동양적 사상과 사고와 문화는 전체적으로 균형성을 큰바탕으로 하여 쌓아온 것이다. 흔히 동양을 신비하
다고 하는 것은 서양사람들의 그릇된 이해일 뿐 우리들 동아사아의 문명의 바탕은 극히 경험적 체험적인
사실성에 근거한 것이다. 예를 들면 오늘날의 과학 학술을 능가하는 정밀한 경험분석과 논리가 그문명의
핵심적 초석이었다. 다만 그 확고한 경험성이 건조하게 보이지 않고 정서적이라거나 인간적이라거나 신
비한 미감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은 바로 그 경험의완벽한 조화를 추구하는 데서 억어진 것이다. 단적
인 예로 동아사아 사상사에서는 요즘말로 합리적 사고와 신비적 종교적 사유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그
양자간에도 균형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논어에 나오는 지화이화(知和而和) 즉 "조화의 의미를
알고 조화의 정신을 규현한다"는 말이나 대학의 격물치지라는 말은 그를 대표하는 말이다.

바로 조화의 정신을 일반적으로 그리고 영혼의 깊이에서까지 절실하게 구현하려는 것이 진정한 동아시아
적 사유이며 유교 혹은 유학적 사상이다.바로 이 정신을 오늘에 다시 불러내어 살아있는 힘으로서 회복
하는 일이 그 노력이 다시 시작되어야한다고 느낀다.


<夏夷案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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