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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가수 조영남이 지인들을 대거 거느리고 관람한 오페라가 열렸다고 한다.<레미제라불>을 공연하는 그 자리에는 이 나라의 문화계 주요인사가 400여명이 참석하였다고 하는데 동양학자로 널리알려진 도올(김용옥)이 참석하여 오페라가 열리기 전에 특강을 하였다고 소개되었고 그 특강에 시간을 할애하느라고 공연시간이 상당히 지체되었다.그 소개기사에는 공연전의 행사로 공연시간이 늦어진 것은 유럽과 아시아에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나는 그들처럼 오페라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도올은 그 특강에서 <레미제라불>의 인도주의에 대하여 논하였다고 한다. 나는 물론 그 자리에 참석할만한 문화적 상류계급이 못되므로 보지도못한 그 공연을 평할 수는 없지만 또 개인적으로는 구태여 평할만한 드높은 가치가 그리 있다고도 느끼지 않는다. 다만 우선 두가지 정도 할 말이 있을 뿐이다.

첫째 오페라의 평보다도 공연이 늦어진 공연행태를 <우리의 독특한 것>으로 이해하려는 무모함에 댜하여 먼저 생각할 필요를 느낀다. 독특하다는 것은 문화의 질에서 나와야할 것이다. 공연의 진행 순서나 공연을 음미하는 자세 공연을 대하는 감상자의 심오한 태도가 역시 하나의 문화적 특징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양적 주제를 서양적 미감으로 그리고 서양적 가치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므로 우리의 삶에 서양적인 것을 혼합하려는 움직임에 불과하다. 아직은 그렇다는 것이다.

최근에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에서도 마치 한국의 작품들이 서구의 작품들과 대등한 작품성을 가지고 또 그들이 주는 상을 받은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물론 그 분야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는 공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역시 서양의 문화를 우리 문화와 혼합하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근대이후 우리가 추구해온 서구지상주의를 재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함이 있다는 말을 단지 하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의 세계문화로서 영화나 오폐라는 매우 뛰어난 양식이고 우리가 받아들여 자기의 표현의 영역을 개척하고 발전되게 해야한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 표현의 양식들이 신이한 것이고 어떤 고정된 절대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다. 우리의 문화적 일반 심성으로 먼저 허심탄회하게 수용해야할 것이다. 문화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누리고 향유하는 내용과 방식에 의해 새로운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새로운 것으로서 서양문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일정한 기존의 틀에 추종한다면 우리의 문화적 자아(自我)는 약화될 것이다.자아가 약화되는 문화는 사실은 해악(害惡)
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가수 조영남이 <나는 오폐라를 참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상당한 괴리와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가 좋아한다는 그 정체성을 일반적으로 공유하여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그도 스스로 그 좋아함의 본질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소개기사가 더이상의 설명이 없고 단지 오폐라를 많이 본 사람끼리 주고받는 어투로 말할 뿐이기 때문이다. 마치 오폐라 동호회의 알림글 같은 그 글로 그런 사정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조영남의 오페라뿐 아니라 현재의 여러 대중문화에서도 드러나는 현상이다. 영화평이나 나아가서는 문학평론 같은 분야도 예외는 아니며 앞의 도올의 동양학 담론도 그 범주를 넘어서는 것은 아니다. 요컨데 서구 문화에 대한 지나친 정도의 문화적 찬미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 매체들이 매체로서의 서술의 경중을 다룸에 있어 좀더 자기의 본질의 무게와 무한한 자존심를 좀더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흔히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감상자의 자유의 영역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예술적 존재론의 의미를 깊이 음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사실은 그 말 자체가 극히 오만하고 편견에 가득한 역설일 수 있음을 모른다. 감상자의 순수한 자유의지에 맡겨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무책임하게 자유의지에 맡겨진다는 것은 아니다.그 말은 새로운 해석과 음미의 가능성이 무한대로 열려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 아무렇게나 받아들여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 <아무렇게나 받아들여서는 않된다>는 이유는 자기 스스로의 자아의식으로 받아들여야함을 말한다. 그 자아의식은 개인적 사변이지만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와 호흡을 같아하지 않는 것이라면 사실은 그 가치가 반감되는 것일 것이다.

사실은 모든 표현은 귀중하다. 오페라나 영화, 음악만이 그 시대의 문화를 잘 표현한다고 볼 수는 없다. 사람의 행동과 언어는 무엇이나 똑같이 귀중하다. 우리가 말도안되는 스릴러물 영화를 아주 수준높게 감상할 수도 있다.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그대로 감상할 수도 있다.반면에 수준높은 평론이 우리의 감상과 음미의 자유의 눈을 상하게 할 수도 았다.(사실은 매우 빈번하다)

또 한 가지는 특강이라는 형식에 관한 것인데 서구적 공연을 동양적으로 이해하려는 몸짓으로서는 괜챦겠으나
사실 도올의 동양학담론은 역시 혼합문화적 범주를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오페라의 동양적 이해의 진수를 보여주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인도주의>라는 서구적 개념을 쓰고 있는 것이 그 가장 큰 이유이다. 사실 <레미제라불>의 주제는 서구 근대 시민사회의 성장의 애환을 표현항 것이다. 우리에게 그렇게 특별한 주제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왜 그것이 서구인에게 절실한 주제인가를 묻고서야 우리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위에서 그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공연의 정신보다도 노래와 춤으로 이루어지는 높은 수준을 감상할 수도 있으므로 어떤 감상자의 어떠한 감상이든 가치있는 일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대중문화와 괴리되는 방향으로 문화적 힘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와 같은 전형적 서구문화 양식에 대한 비중이 일반의 문화 해석과 균형을 이루어주었으면 좋겠다.그리고 그보다 앞서서 우리의 문화적 자아는 무엇인가를 더 열심히 묻는 움직임이 일어나야할 것이다. 오직 그런 이유로 이 글을 쓰는 것이지 그 행사나 기사 자체에 다른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유럽이 주름잡는 축구나 오페라로 대표되는 서구문화 같은 문화적 양식의 뛰어남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고 또 그러한 문화에서 우리가 쇄국적이되어야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다만 그것이 우리가 전력을 기울여 환호해야할 대상은 적어도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의 언어와 사상으로서 새롭게 이해하고 해석할 길은 없는 것인지를 보다 절실하게 그리고 항상 물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라와 국민의 역량이 보다 진정한 자아실현 쪽으로 집중되기를 바랄 뿐이다.

<夏夷案者>

참고기사.......................


(조선일보/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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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조영남이 만난 400명 ‘레 미제라블’ 단체관람 (2002.07.12)


▲사진설명 : 뮤지컬 ‘레 미제라블 ’의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 장면./조선일보 DB사진

첫날 만큼은 ‘공연 내용’ 보다도 ‘유명인사 눈요기’ 만으로도 특별한 공연이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레 미제라블’ 개막공연이 열린 12일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문화예술계는 물론 정계 등 각계 주요 인사들이 대거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 최인호(작가) 김동호(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양희은·김수철(가수) 앙드레김(패션디자이너) 이상벽(방송인) 박정자·윤석화(연극인) 주병진·전유성·이홍렬·이성미(개그맨) 노영심(작곡가) 박기현(한국오페라단장) 등등…. 아마도 신년 교례회가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규모의 이들 ‘VIP 군단’은 가수 조영남씨가 개별적으로 돌린 초청장을 들고 공연장을 찾았다. 모두 400명. ‘조영남이 만난 사람들’ 총출동이다.
초청받은 인사 중에는 도올 김용옥씨도 보였다. 김씨는 공연 시작 전 무대에 올라 10분간 ‘레 미제라블이 주는 교훈’이라는 제목의 특강을 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 공연 시작 시각을 늦추면서 특별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는 미국·영국 등 이 뮤지컬이 공연되고 있는 나라를 통틀어 처음이었다. (공연 시작시각은 당초 7시30분이었으나 특강 편성으로 7시 45분으로 늦춰졌다)

이날 각계 인사들이 ‘조영남의 친구’가 되어 세종문화회관을 찾은 배경은 이렇다. 조씨는 지난해 겨울 도쿄에서 지휘자 정명훈을 인터뷰했다. 인터뷰 내용은 KBS 위성TV를 통해 지난 1월 방송됐다. 조씨는 이때 동석했던 정명훈씨의 형 정명근씨와 뮤지컬에 대한 관심을 나누었다. 정명근씨는 이번 ‘레 미제라블’ 브로드웨이 공연팀을 초청한 공연기획사 CMI 대표다. 뮤지컬 애호가이기도 한 조영남씨는 이 자리서 ‘레 미제라블 대사’를 자청, 개막에 맞춰 대규모 초청장을 뿌린 것.

“개인적으로 뮤지컬을 즐깁니다. 과거 ‘오페라의 유령’을 이성미 주병진 박미선 이경실 등, 대여섯분을 제가 초청해서 함께 관람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해요. 더우기 이번 ‘레 미제라블’은 본토 뮤지컬 아닙니까. 월드컵도 끝났고, 신바람을 좀 이어가자는 뜻에서 함께 모여서 뮤지컬을 즐기자고 깃대를 잡았죠.” 조영남씨의 초청 취지를 듣고 모 기업이 흔쾌히 경비를 대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KBS 1TV ‘도올의 논어이야기’ 방송을 돌연 중단하고 잠적했던 김용옥씨도 모처럼 대중앞에 ‘환한’ 모습을 드러냈다. 올해 초 인도에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함께 하는 모습을 언론에 잠깐 비쳤을 뿐 내내 칩거하다 공연장을 찾은 김씨는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에 담아낸 휴머니즘은 불교의 보살정신, 기독교 사랑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며 “부조리한 시대, 참담한 현실을 살아낸 한 개인의 성공담이 아니라 사회의 도덕적 진보를 이 작품에서 읽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연장에는 박관용 국회의장을 비롯해서, 정몽준(대한축구협회장) 의원 등 정치인들도 상당수 모습을 비쳤다.

캐머런 매킨토시가 제작하고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출연진과 오리지널 무대장치 그대로 나오는 이 뮤지컬은 8월 4일까지 총 30회 공연된다.



(金龍雲기자 proart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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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보고 ...... 윤호진 (2002.07.14)




브로드웨이 뮤지컬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이 지난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 8월 4일까지 공연을 하고 있다. 이 공연은 브로드웨이의 출연진과 스탭진이 직접 참여해 관심을 끈다. 첫날 공연을 본 뮤지컬연출가 윤호진씨가 리뷰를 보내왔다. (편집자주)


빅토르 위고의 원작 못지않게 뮤지컬 ‘레 미제라블’ 역시 ‘20세기의 오페라’로 불려도 손색없는 명작이다.

작품이 갖는 탄탄한 완성도, 중후한 연극적 분위기, 때론 장엄하고 때론 감미로운 음악은 화려한 볼거리 위주의 ‘쇼’ 뮤지컬과는 그 격을 달리 한다. 또한 선(善)-악(惡), 애(愛)-증(憎)의 이분법을 뛰어넘은 메시지는 보편적 휴머니즘의 가치를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한국 관객들은 96년 호주 팀의 내한 공연에 이어, ‘현대의 고전’으로 불리는 이 작품의 가치를 직접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사랑 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남자의 품에서 잠시 행복을 맛보는 에포닌의 눈물에서, 그리고 신의 이름을 걸고 수배자인 장발장을 평생 뒤쫓는 자베르 형사의 의무감과 양심 사이의 번민에서, 그리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바리케이트를 치고 기꺼이 죽음을 불사하는 젊은 청년들의 순수한 열정에서 관객들은 휴머니즘으로 응축된 인간 드라마의 단면을 목격할 수 있다.

이 뮤지컬이 어떤 영화도 이루지 못했던 방대한 원작 소설의 핵심적인 감동을 무대위에서 구체화시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남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을 때 인간은 신을 만난다”와 같은 시적인 가사는 언제 들어도 감미로운 멜로디와 함께 가슴을 적신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레 미제라블’은 “세계 최고의 뮤지컬”이란 명성이 허명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오랜 해외 공연 경험을 가진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력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관객들의 가슴에 와 닿고 있었다. 특히 장발장(란달 케이시)과 에포닌(미-앤 디오니시오)의 절제된 연기와 탁월한 가창력은 칭찬 받을 만 했다. 오히려 자베르 형사(조셉 마호와드)의 연기는 그 자체로는 좋았으나 장발장과 대립하는 감정의 교감이 좀더 긴박하고 섬세하게 표현되지 못하면서 극의 갈등구조가 약해지는 아쉬움을 남겼다.

런던이나 뉴욕에서 이 작품을 봤던 관객들은 이번 공연장이 뮤지컬 전용극장보다 규모가 커서 작품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공연장의 음향이 관객의 귀에 감기지 못하고 거친 느낌을 주는 것도 아쉬웠다. 무대 사정 때문에 장발장이 하수구로 도망치는 급박한 장면에서 바닥으로 사라지지 못하고 맨홀 뚜껑을 들었다 놓고는 무대 옆으로 뛰어나가게 처리한 것도 다소 어색해 보였다. 뮤지컬 애호가라면 80년대 당시에 센세이서녈했던 바리케이트 무대의 웅장함이 지금은 눈에 차지 않을 법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레 미제라블’ 한국 공연은 시간의 부식에도 녹슬지 않는 뮤지컬 음악의 감동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뮤지컬이 주는 감동의 본령이 아니겠는가.

(윤호진/뮤지컬 연출가·단국대 예술대 연극영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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