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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아직 다음과 같은 이런 보편적 논의를 하기에 충분한 <보편인>은 못된다. 그러나 용열한 자일지라도 어느 순간 통달된 사고에 도달하는 때가 있는 법이다. 소위 <어리석은 자도 많은 세월이면 한번은 도를 납득할 수 있다>는 그런 것이 갑남을녀 그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특히 이번의 월드컵대회가 일으킨 여러가지 도발적 현상들은 우리들의 잠자던 어떤 의식을 불러 일깨우고 있어 자꾸 자꾸 돌아보게 된다. 그 돌아봄은 당연히 자신의 본질과도 관계되고 또 우리가 열정적으로 추구해왔던 서구화 또는 근대화 그리고 현재의 개념으로는 그것은 아마 세계화와 관계되는 것일것이다.히딩크에게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라고 경의를 표한 한국인은 분명 세계의 충분한 주목거리였다. 그 <경의>는 히딩크식의 달변의 수사를 동원한다면 <합당하고 적절한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 스스로를 슬프게 하는> 그런 면이 있다.

우리가 오래 추구해왔던 서구지향에서의 경이로운 성취라는 쪽을 바라보면 경이로운 기쁨을 느껴도 좋을 것이다.그러나 서구화가 현대사의 지고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한 최근의 조류적 사고에서 본다면 우리것이 충분히 발양되지 못하고 서구적인 것을 앞세워서만이 우리의 힘을 발양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여러 징후들은 깊은 슬픔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단적으로 아직은 우리에게 발로 차는 운동(FOOT BALL)은 축구(蹴球)가 아니고 사커(SOCCER)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그러나 실은 월드컵에서 새로움을 보여준 이번의 돌풍의 핵심은 사실은 <자기적인 것> <새로운 것>이라는 본질성을 지니고 있다. 그 새로운 것이란 <세계문명의 차원>에서 표현된 적이 없는 그 어떤 것이고 각 민족이 가지고 있는 힘의 본질을 의미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팀이 보여준 힘의 원천은 사실은 그 주제가 서구적 기술이 아니고 한국적 신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들 동양인에게 그동안 부족하였던 것이 오히려 자신에 대한 믿음이며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축구는 넓은 의미에서 하나의 문화양식이다. 각각의 예술 문화활동 학술 종교 정치와 더불어 하나의 삶의 양식이다. 다만 오늘날의 대중사회의 힘에 의해서 그리고 광범한 매스커뮤니케이션의 극성과 아이티 기술의 정밀화로 인하여 그리고 특히 삶의 여유와 함께 문명화의 뒷편으로 숨으려하는 인성의 어떤 본질을 지키고자하는 균형욕에 의하여 스포츠는 아주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온지 이미 오래이다.

그러나 그 스포츠로서의 축구가 이제 보다 새로운 의미를 우리에게 가지게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새로운 의미가 무엇인지 음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 기존의 세계적 흐름을 반영하는 면이 있는 동시에 전연 다른 내질성을 확보하기 시작하였음을 느껴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특히 여러 문회적 분야와 공통되는 그 어떤 본질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찾아야할 의미의 또하나의 진정한 방향이다.

그런 자각을 반영한다면 2002년 월드컵 선수의 미름을 태극전사로 불렀지만 2006년에는 또하나의 본 이름이 불리워야 할 것이다. 그것은 <아리랑전사>이다. 사물놀이에서 보여주는 신명을 그 바탕으로하고 이를 유장하게 표현할 줄 아는 전통적 극기복례(克己復禮)의 행동가락이다.우리 동양에서는 모든 예의와 행동은 깊은 사색을 거치고 최종적으로 음악으로 요약되기 마련인데 아리랑은 우리의 요약적 본질(要約的本質)이다.태극전사란 우리 축구가 깊은 사색을 추구해야 함을 나타내고 아리랑전사란 우리의 역사와 기질로 완성되는 길을 가야함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드높은 자제력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명의 척도이다.

우리의 텍스트로 소화하는 세계화 그것이 미래의 길일것이므로....

夏夷案者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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