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우리가 주지하듯이 물리학에서는 관성이라는 개념을 익히
사용하고 있다. 속도를 가지고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
고자 하는 성질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법칙일 수 있으나 그 의미는 해석하기
에 따라서는 많은 새로운 시각을 확인해줄 수도있을 것이다
즉 하나의 형성된 속도와 움직임 자체가 우주의 실존의 한
영역일 수 있다는 생각이 가능하다. 실존의 영역에 있는 것
등은 지속하고자 하는 본질성을 지니기 때문이다.속도란 물
질 자체는 물론 아니지만 하나의 실존체가 부수적으로 일
으키는 현상으로서 우리가 실존체라고 부르는 것의 영역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면일 수 있다.실존이란 물질의 영역에
국한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움직임이란 실존체의 반영이라는 생각그리고
그 움직임 자체가 또한 일단의 실존이라는 생각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역사와 사회적 흐름 같은 현상경험도 실존의 엄
연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이른 우리의 사회 문화적 흐름과 분위
기들은 이 싯점에서의 우리의 진정한 어떤 본질성을 반영한
다는 생각에 당연히 도달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개별 움직임의 총체로서 유행이라든가세태라
든가 흐름이라고 하는 어떤 시회적 문화적 그리고 생태적 여
러 특징을 드러낸다.

그 모든 움직임들은 나름대로 절대적 의미와 당위를 가지며
존중되어야 마땅한 당당한 하나의 실존체이다.그러나 많은
실존체로 구성되는 우리의 삶과 역사는 결국은 모든 실존체
를 다 수용하고 유지하기에는 너무나도 제한적이이다. 우
선 인생이 유한하고 지구의 자원과 공간도 유한하다. 우리는
우주상에 특별히 제한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선택이 요구
된다.

인생과 문화와 역사는 결국 선택의 연속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사소하고 작은 선택이 모여 우리
의 큰 움직임과 관성을 이루어나아가므로 그리고 그 관성이
크면 클 수록 그 움직임의 궤도를 변경하기는 어려우므로
우리의 선택은 극히 중요할 것이다.

요컨데.....
빨리빨리문화로 규정되는 속도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속도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 결국 어디냐를 물어야할 것이다.
최근 천문학자들의 발표에 따르면 매우 긴 공전주기를 가
진 행성이 장래에 지구궤도와 부딪어 충돌할 가능성이 있
다고 한다. 과거에도 그와 같은 관측은 많이 나왔었으므로
걱정할 일이 아닐 수도 있으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우
주의 궤도도 우리의 삶과 똑같은 실존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주는 완벽한 조화를 지향하고 있으므로 우주의 힘은
당연히 그 충돌을 지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개인과 국가와 세계의 역사도 그와 같으므로 걱정할 것이
무어냐고 셍각할 수도 있다. 우리사회의 문제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오랜 우리 역사의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고 생각
된다는 데에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유행하는 무절제한 즐김의 문화가 그것이다.
요즘 피서철을 맞아 수없이 떠나는 사람들의 물결, 외국행 비
행기를 타는 행렬, 도로에 넘쳐나는 자동차의 질주들이 그런
느낌을 주고 있다. 아직 자동차 운전도 배우지 못한 나같은
원시인 차를 구임할 능력도 없는 경제약자라고 지칭되는 사
람들이 마냥 안타깝다가도 그렇게 따라 질주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고 스스로 자위하는 것이 속좁은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차라리 그랬으면 오죽 좋겠는가? 눈부신 희망이 빛난
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오늘 하루종일 뉴스에 넘쳐나는 기자들의 리포트를 적어본다.

해운대 인파 30만명/무더위를 날려버립니다/비치발리볼이
인기만점입니다/얼음같이 차거운 계곡에 발을 담그면 더위가
달아납니다///서해안과 남해안도 지지 않습니다/고속도로 답
답한 인파입니다/주 5일제로 이제 여행이 자리잡고 있고/가
족여행도 가능해졌습니다/동호회 활동도 크게 활성화되고 있
습니다/즐거움...행복...취미...전원주택....///기자들의 놀
기 권하는 보도는 거의 흥분에 가깝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이유인가? 묻고 싶다. 여름에 그렇게 해
야하나? 다 가야하고 안가면 뒤지는 것인가?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기자들의 비열하거나 줏대없는 상업주의 영합리포트
는 하루종일 짜증나고 신물이 날 수 밖에 없었다.다른 뉴스
도 가관인데다............걱정된다.

내 여유 있으면 고아하게 고전을 인용하고 경전론을 하고싶다.
그러나 요즘 같아서는 소 귀에 경읽기, 아니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무력해보이고 비겁해보이기 까지할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가난함이 자랑은 아니었지만 사치와 과욕과 방탕
을 꺼릴 줄 알았다. 오늘날 처럼 권력투쟁도 있었지만 그래
도 명분이 힘찼었다.(사극은 그런 것을 다 지우고 있지만)
국난시에 탈출하려고 외국 국적 확보한 사람들이 나라를 지
배한 적은 없었다. 관광입국이라는 미명아래 러브호텔을 지어
풍속을 타락하는 광란을 국책으로 삼은 적도 없었다.외국의
풍속을 제일로 여기고 외국의 풍광을 제일로 여긴 적도 없었다.....

국민의 시대 시민의 시대는 그렇게 열리는 것인가? 자연스런
놀이문화는 우리 삶에 활력을 준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엄숙주의 고대 문화로 절제주의 근세문화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표백된 도덕 이념을 강조하려는 것
도 아니다. 다만 적어도 우리들의 전통적 문명어인 문질(文質)
이념을 통해서 우리문화를 찬찬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
하는 것 뿐이다.

요즘 유행하는 서구적 <몸의 철학>이 삶과 문화의 전분야에
거대한 해일을 일으키고 있다는 느낌이다. 내 몸, 나자신의
자연스런 욕구와 바램이 극히 정당한 것이라는 단순하고 야
성적인 철학이 설익은 채로 강단까지 점유한 지금이 아닌가.

정체불명한 감정의 유희로 가득한 서구영화와 생활문화의 영
향을 하나 둘 걷어내야할 것이다.


夏夷案者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