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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은 누구나 새로움을 지향한다.
그들의 삶이 시간을 따라 낡아가고 있음에도,
그 정신이 날로 쇠해지고 새로운 기억마저 잘 수용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음에도,
자신의 육체가 노화되어감을 거부할 수 없음에도
그럴수록 인간은 새로운 빛을 지향하기마련이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새로워질 수 없는 구조체이기 때문에 더 열열히 새로움을 지향하는
것이리라. 난 사실 새로움을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 삶이 지독히도 낡았고
그생각이 몸서리칠 정도로 갱신되지 못하는 자이다. 아니 아마 그래서 오히려 이렇게 오직
새로운 변환을 길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 것이다.
나는 얼마나 낡았는가? 부끄러워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지지리도 경제적 사고를 할 줄
모르고, 시세도 모르고 분위기도 모르고 십년 이십년 생활을 바꾸지도 못하는 무력함으로
지낸다. 고집은 있어서 아무거나 하며 살지도 못하고 재주는 없어서 공연히라도 빛날 일도 없다.
그래서 더 새로움이 생명이 되는 지도 모른다.오직 새로워지리라는 기도같은 믿음 뿐이다.
<2>
<<대학>>에 보면 "새로워지고자 하거든 매일 새로워지려하고 또 매일이 새로워지도록 하라"
고 하였다.이어서 말하기를 "스스로만이 새로워질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이 갈 수록 깊이
음미된다. 오직 자신 스스로만이 새로워질 수 있다는 말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대학>>
에서는 또한 그 새로워짐의 의미를 논하여두었다. <<대학>>의 3대 목표 가운데 하나로
"새로워지려는 의지로 충만한 인간"을 제시하였다. 요즘말로 "신인류"를 지향하라는 말이다.
<<중용>>에서는 또한 "오늘의 세상에 태어나서 옛날로 돌아가려는 자여 재앙이 미치리라"
하였다. 그 말이 맞는다면 나는 새로움을 말할 자격이 없을 뿐더러 재앙을 기다라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사실은 <<중용>>의 이 말은 단지 그 "새로움의 의미를 오해하는 것을 우려하여 성
인이 남긴" 말일다.
새로움이란 자기 역사의 이탈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지난 과거를 모두 버려야한다는
것도 아니다. 개인의 삶으로 친다면 삶 자체를 혁신하고 바꾸고 부단히 새 길만을 찾아가라
는 것이 아니다. <가치와 의미>의 새로움을 말한다. 세상을 보는 눈의 새로움을 말한다.
결국은 고집과 아집을 버리고 항시 새로운 눈을 뜨라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허용하려하지 않는다.새로운 생각을 가로막는 것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러나 애련한 삶에의 집착을 가진 사람이 꼭 고착된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충실하려
는 이가 꼭 자기혁신을 이루지 못한다는 그런 말도 아니다. 자신의 편안함 혹은 그반대로
현실의 고통 그런 것들로 인해 유연한 사고가 방해받아서는 안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이 세상은 마음을 유인하는 마귀로 가득한 것을! 사람의 내면
에는 동물과 같은 야성이 꿈틀대는 것을! 가면무도회와 같은 삶의 장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것을!
그러나 그런 것들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다 생명의 요소이고 필요한 것들이다. 부끄러워
해야마땅한 나의 욕구들, 또 타고난 자질과 양심, 나의 편의와 이익과 이기심과 남과 함께
있는 이유없는 오만함, 더불어 가야하는 사회성... 이 모든 것들은 모순인 채로 귀중한 것
이기도 하다. 우리가 우리의 육체 현상과 심리현상 가운데 버려야할 것은 사실은 없다고 단언
할 수 있고 또 실제로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일 버릴 수 있다면 그것은 최대의 사기
이다. 예술가 백남준이 "예술은 사기다"라고 했는데 그말이 그말이다.그게 다 고상함 말로
도(道)를 구성하는 요소이며 우리가 운용해야할 가장 명징한 자기 경험현상이다. 답은 그런
것들과의 대결에서 찾아질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은 여원한 속물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흙 속에 연꽃이 피는 이치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3>
"세상은 그저 내 한 맘 먹기에 달렸다" 고 하는 육두문자가 있다. 그말은 그대로 진리와
통할 것이다. 반대로 "집중"이나 "중용"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들이 서로 상반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역시 그말이 그말이다. 단지 욕심을 조금 만 덜부리라는 말이다. 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노릇인가? 가진 것이 많을 수록 또 이룬 것이
없을 수록 사람은 집착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집착을 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이런 생각을 한 순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런 생각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상의 길
일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원래 정해진 도란 없다.나의 도가 바로 도이며 내가 편안한 길이
바로 도일 것이다. 다만 진정으로 편안해야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찾아가는 길이 새로움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새로움을 지향한다.
그들의 삶이 시간을 따라 낡아가고 있음에도,
그 정신이 날로 쇠해지고 새로운 기억마저 잘 수용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음에도,
자신의 육체가 노화되어감을 거부할 수 없음에도
그럴수록 인간은 새로운 빛을 지향하기마련이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새로워질 수 없는 구조체이기 때문에 더 열열히 새로움을 지향하는
것이리라. 난 사실 새로움을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 삶이 지독히도 낡았고
그생각이 몸서리칠 정도로 갱신되지 못하는 자이다. 아니 아마 그래서 오히려 이렇게 오직
새로운 변환을 길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 것이다.
나는 얼마나 낡았는가? 부끄러워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지지리도 경제적 사고를 할 줄
모르고, 시세도 모르고 분위기도 모르고 십년 이십년 생활을 바꾸지도 못하는 무력함으로
지낸다. 고집은 있어서 아무거나 하며 살지도 못하고 재주는 없어서 공연히라도 빛날 일도 없다.
그래서 더 새로움이 생명이 되는 지도 모른다.오직 새로워지리라는 기도같은 믿음 뿐이다.
<2>
<<대학>>에 보면 "새로워지고자 하거든 매일 새로워지려하고 또 매일이 새로워지도록 하라"
고 하였다.이어서 말하기를 "스스로만이 새로워질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이 갈 수록 깊이
음미된다. 오직 자신 스스로만이 새로워질 수 있다는 말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대학>>
에서는 또한 그 새로워짐의 의미를 논하여두었다. <<대학>>의 3대 목표 가운데 하나로
"새로워지려는 의지로 충만한 인간"을 제시하였다. 요즘말로 "신인류"를 지향하라는 말이다.
<<중용>>에서는 또한 "오늘의 세상에 태어나서 옛날로 돌아가려는 자여 재앙이 미치리라"
하였다. 그 말이 맞는다면 나는 새로움을 말할 자격이 없을 뿐더러 재앙을 기다라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사실은 <<중용>>의 이 말은 단지 그 "새로움의 의미를 오해하는 것을 우려하여 성
인이 남긴" 말일다.
새로움이란 자기 역사의 이탈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지난 과거를 모두 버려야한다는
것도 아니다. 개인의 삶으로 친다면 삶 자체를 혁신하고 바꾸고 부단히 새 길만을 찾아가라
는 것이 아니다. <가치와 의미>의 새로움을 말한다. 세상을 보는 눈의 새로움을 말한다.
결국은 고집과 아집을 버리고 항시 새로운 눈을 뜨라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허용하려하지 않는다.새로운 생각을 가로막는 것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러나 애련한 삶에의 집착을 가진 사람이 꼭 고착된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충실하려
는 이가 꼭 자기혁신을 이루지 못한다는 그런 말도 아니다. 자신의 편안함 혹은 그반대로
현실의 고통 그런 것들로 인해 유연한 사고가 방해받아서는 안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이 세상은 마음을 유인하는 마귀로 가득한 것을! 사람의 내면
에는 동물과 같은 야성이 꿈틀대는 것을! 가면무도회와 같은 삶의 장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것을!
그러나 그런 것들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다 생명의 요소이고 필요한 것들이다. 부끄러워
해야마땅한 나의 욕구들, 또 타고난 자질과 양심, 나의 편의와 이익과 이기심과 남과 함께
있는 이유없는 오만함, 더불어 가야하는 사회성... 이 모든 것들은 모순인 채로 귀중한 것
이기도 하다. 우리가 우리의 육체 현상과 심리현상 가운데 버려야할 것은 사실은 없다고 단언
할 수 있고 또 실제로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일 버릴 수 있다면 그것은 최대의 사기
이다. 예술가 백남준이 "예술은 사기다"라고 했는데 그말이 그말이다.그게 다 고상함 말로
도(道)를 구성하는 요소이며 우리가 운용해야할 가장 명징한 자기 경험현상이다. 답은 그런
것들과의 대결에서 찾아질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은 여원한 속물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흙 속에 연꽃이 피는 이치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3>
"세상은 그저 내 한 맘 먹기에 달렸다" 고 하는 육두문자가 있다. 그말은 그대로 진리와
통할 것이다. 반대로 "집중"이나 "중용"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들이 서로 상반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역시 그말이 그말이다. 단지 욕심을 조금 만 덜부리라는 말이다. 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노릇인가? 가진 것이 많을 수록 또 이룬 것이
없을 수록 사람은 집착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집착을 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이런 생각을 한 순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런 생각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상의 길
일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원래 정해진 도란 없다.나의 도가 바로 도이며 내가 편안한 길이
바로 도일 것이다. 다만 진정으로 편안해야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찾아가는 길이 새로움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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