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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ing of life/경전산책

기초적 사유

하이안자 2002. 10. 13. 01:30
<1>

우리는 많은 기초적 원리를 망각하고 살아갈 때가 많다.예를 들어 인간이 육체와 심성으로 이루
어졌다는 그 간단 명료한 사실을 우리가 항시 명각하며 사는 것 만으로도 생의 많은 혼란이 정리
될 수도 있다.꼭 엄청나고 심오한 구체 원리를 정밀하게 대입할 수 있는 지식과 지혜로써만 나의
생을 힘차고 평화롭고 의미있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식많은 박사 석학과 앞서가는 지식인이나 고급 전문가가 꼭 균형된 지성을 갖추었다고 볼 근거도
우리는 실제의 삶에서 확인할 수도 솔직히 없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우리 지식이나 식견 판단력은
한심할 정도로 공허할 때가 많다는 것을 갈수록 느끼고 있다. 모두 나 속에서 균형을 이루지 못하
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과 행동은 기질과 양식으로 구성된다.기질적인 삶은 물리적 활력을 의미하고 양식 있는
삶은 심성적 조화를 추구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아는 명심보감에 "나의 장점을 믿지말고
남의 단점을 말하지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의 생활윤리를 말하는 데 그친 것은 아니다.나의
것과 남의 것을 아울러 사유하고 받아들이는 삶을 말하고 있고 공자의서(恕)의 정신이며 인(仁)의
기초이다. 명심보감의 말을 하나의 단일 윤리 중에 하나를 말한 것이라고 생각할 때 그 법어(法語)
는 하챦은 지식으로 전락한다.그렇게 생각해야하는 이유와 그렇게 생각하게 위한 전제를 느끼고
사유해야한다.

일전에는 어느 지방의 훈장선생님이 방송에나와 듣는이에게 귀감이 될 좋은 말을 부탁받고는 역시
명심보감의 귀절을 인용하여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캄캄한 어둠 속에 가는 것 같다"는말을 인용
하고 이는 새로운 지식을 쌓아야 하는 중요성을 말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지식
은 중요하나 그 지식을 사유할 수 없다면 별로 소용이 없는 지식일 것이다. 배움이라는 것이 무
엇인가 하는 경전의 언어를 단발적 텍스트로 보았기에 지식을 쌓는다는 해설이 나온 것일 것이
다. 배울학자의 의미에 대해서는 앞의 논설에서 누누히 지적하였으므로 중복해 말하지 않겠으나
초두에 말한 <기초적 생각>을 정리하고 견지하려는 노력이 역시 중요하다.이를 공자는 "하나로 통
관한다"고 하였다. 단발적 지식에 빠질 위험을 가장 간명하고 절실하게 지적한 것이다.



<2>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의 해약과 여파를 아직도 걷어내지 못하고 있는 이 독립된 자유 자주 한국
에서 어느정도 풍요한 사회를 이루어가고 있는 오늘에 심성과 기질의 충돌로 인한 국가의식과 역
사와 자아인식, 삶의 이해방식 등 모든 분야에서 끝없는 혼돈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일반인들의 삶은 지식의 유희를 할 수 없으니 직접 자신의 기질과 인내력으로 사투를 벌이며 스스
로를 다듬어 나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문제는 먹물들이다.

먹물들은 왜 문자를 읽고 쓰는가? 근본적으로 문자는 객관적인 사유를 구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이
다. 예를 들어 내가 고요히 눈을 감고 혹은 뜨고서라도 어떤 중요한 문제를 생각해보라. 어느 주제
이던 그 주제에 대한 나의 판단이 세워지는 순간마다 곧바로 기질적 욕구와 본능 자아적 욕구와 희
망 등이 부딛어 나타나 나와 사고활동은 순조로울 수 없다. 그러나 그 주제를 손으로 혹은 타이핑
으로 문자화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적어나아가다보면 생각보다 상당한 수준에서 객관적 사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곧 알게된다.보다 나은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문헌은 바로 그래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재미가 있어서 읽는 것은> 이미 진정한 독서는 아니다. 독서는 그와같
은 나의 생각의 과정을 전후하여 남이 제시하고 써서 사유한 결과를 참조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한편의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그 주제와 전연 관계없이 새로운 사물에 대한 생각을 도출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영상도 객관적인 것이므로 자유로운 사고에 유익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는 그 영상은 하나의 문헌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타인들을 보고 나를 생각하
는 것과 유사한 원리이다. 공자가 "3사람이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인> <서>의 기초가 역시 그것이다.


<3>

사실은 최근에 한국의 피압박시대 친일파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기도하는 역사 학자들의 글을 몇차례
읽고 상당히 우려되는 마음에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그 글들은 어느정도 <자기합리화> 혹
은 자신의 치부를 호도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학술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제국주의론이나
근대화론 같은 거대한 이론체계가 있는 듯한 막연한 지식에 의지하여 그런 주장들이 너무 당당하
게 나와도 그에 대한 일반 지식계의평가의 글들은 거의 없었다. 해당 분야사람들의 흔한 공방이
있을 뿐이었다.

아마 최근 외국에서 일어난 한국학 가운데 합리주의를 가장한 한국사 분석에서 영향을 받은 듯하
다.그들은 근본적으로 동아시아의 역사학의 수준을 낮게 평가하고 있는데 그들의 기준에서는 분
명 그러하다. 그러나 정통 사상사의 이해가 없이 그 역사를 논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동
아시아는 그들의 문명에 따라 독자적인 역사이해를 해 왔고 이 방식이 낙후된 것은 결코아니다.

이 경우에도 역시 <기초적 생각>이 미비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생각에 동조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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