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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가 젊은 후배를 등용하여 지방장관에 임명하였을 때 공자는 이를 질책하여 <젊은 자제를 망치
는구나>하였다. 학문이 부족한 젊은이를 너무 일찍 벼슬에 발탁한 것을 비판한 것이었다.자로는 이
에 대하여 <관직을 수행하면서도 배울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자로의 행동은 확실히 경솔한 면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반면에 배움과 학문에 대하여 생
각하게 하는 면도 있다.

우리의 배움을 행동을 위한 것이므로 사실 학문이란 행동계획(Working program)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크고 작은 행동적 결단을 수행함에 반드시 텍스트적 공부에
만 의존해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반드시 엄청난 독서와 고요한 응찰의 시간을 항시 들일 수 있
지 못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순수한 학문이나 배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식의 제한성이나 자신의 판단의 오류를 미리 걱정
하는 데서 일종의 조급함에서 무리하게 이른바 궁리(窮理)를 행하는 경우도 많다고 느낀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이치에 대한 탐구가 아닌 때가 없을 것이다. 자신의 건실한 학문적 삶에 대
한 확신만 견지할 수 있다면 어떤 삶의 상황에서건 진리를 사유하고 배우는(공자의 이른바 학) 일
은 완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더 진절한 학문의 원의일 것이다.그러므
로 유학자들이 생활 속에서의 실천을 먼저 이룰 것을 말하였다고 믿는다.

우리는 흔히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의 학문에 경탄하곤한다.엄청난 독서량을 시사하는 깊이 있는
글에 압도당하는 경우도 있다.일개 관료가 중국의 문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하
는 문헌이 발견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유학은 주로 양반에 의해 수행되었고 유지되었다. 큰 학자들은 거의 생활고를 벗어나
서 학문에 전념할 수 있는 생활여유를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그 여유만큼의 방대한 독서를 하고 식
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반드시 새로운 아이디어를 샘솟게할 수는 없었던 경우도 많았다.자신의 지식
에 의해 오히려 제한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학문을 좋아하고 학문적 삶을 살아가고자 하지만 적지않은 많은 시간들을 생활자체를 해결
하기 위해 소비해야하는 일이 더 많다.조선시대로 치면 가난한 시골 유생인 셈이다. 많은 방대
한 독서를 할 여유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로의 생각처럼 반드시 글을 읽은 후
에 학문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라는 측면을 많이 느끼고 있다.(물론 자로를 찬양하고자하는 것
은 결코 아니다)

다행히 요즘은 전통시대에 비해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고 탐구의 삶을 살아갈 인생의 길이가(수
명) 길어졌으므로 조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그러므로 조선시대에 비하여 많은 문헌
을 정독하고 사유할 여유가 부족한 반면에 더 오랜 시간 궁리할 수 있고 또 어려움이 있더라도 다
양한 일을 하며 자신의 소망을 추구해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도 많아졌다는 장점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이와 같은 자신의 삶에 많은 여유를 할애하면서 학문하는 것은 <비귀족적 학문>이
라고 지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오히려 그로 인해서 문헌적 제한을 벗어나 경험과 텍스트
와 사유와 정감 사이의 균형을 보다 잘 견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요즘은 여러 사정
으로 문헌을 연구하는 많은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나의 삶에 불만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신에 어느순간 어느 상황에 처해서도 궁리의 삶을 견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학문에서
도 귀족주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요즘은 그러나 신귀족주의를 경계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신권위주라고하는 사회적 풍조와 연관
하여 학문에서도 새로운 귀족주의 권위주의가 아직 건재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학문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너무 안일하고 전근대적인 태도일 것이다. 특히 일부 학문에서 재야(在野)인사의 노
력을 비하하는 많은 태도들도 보게 된다. 과연 조선시대 재야사림의 존재가 진정 그시대를 이끌어
간 중심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조선 사림이 후일에는 권위화하고 이기
화하여 국난을 초래하였고 조선 역사의 진정한 힘을 감퇴되게 하였던 것은 역시 그 시대의 신권위
주의 혹은 그시대의 신귀족적 태도 때문이었다고 믿는다.귀족주위적 오만함은 역시 학문에 해롭
고 나아가서는 그 시대를 해치는 일일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학문에 대한 열정만큼 자신감의 구축도 필요하다. 우리가 맹자나 논어를 읽어서
얻게되는 가장 큰 소득은 의리에 대한 믿음과 그를 통해 확립되는 스스로 <비권위주의적>인 그러
나 <하늘을 찌르는> 자존과 자신감일 것이다. 경전을 읽으면 사람이 당당해진다. 그 이유는 바로
공적인 드넓은 사유의 힘과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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