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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지적 함정 (2) 역사인식의 함정
한국의 역사는 북방에서 기원하였다. 한랭한 북방 대륙이 민족의 요람이었고 대한반도는 그 요람
을 벗어나 문명의 일가를 이루고 완성을 지향해야할 터전이었다. 즉 우리 민족사는 가장 크게는
대륙북방기와 대한반도기로 양분된다는 것이다. 이 구분되는 민족사의 의미는 각기 각별한 것이
며 민족사의 영원한 바탕을 제공하는 민족사의 기본 구조체이다. 대륙북방기에 한민족은 그들의
정신과 문화의 본질을 구축하였고 대한반도기를 통해서 그 민족사의 질체를 보편화하는 역사를
진행해왔다고 생각해야하겠다.
대륙북방기의 활동은 한민족적 특질을 배타적으로 발휘하기보다는 민족의 바탕을 형성하면서 동
아시아 문명권의 바탕을 형성하는 아시아적 역사본질성이라는 역사적 의미로 귀결된다. 대륙북방
기에 한민족은 9이로 나뉘어살면서 동서문화교류의 중심통로에 위치하여 유라시아를 통관하는 문
화적 융통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새로운 역사적 삶을 선도하였다. 황하강 연변에 삶의 터전을
확충 발전하여나아가고 있던 한족은 그 광역의 생산력을 포장한 지리적 환경적 도전에 대응하여
정착적 지연적 구조 속에 한족의 민족사를 형성하는데 주력하고 있었고 항하강을 중심으로 인
적 사회적 질서를 지리적 공간에 구축하는 장대한 역사적 사명에 부응하고 있었다. 한민족은 동
적인 대륙 북방의 환경에 대응하면서 그 지리적 개활성에 대응하여 치열하게 생존을 모색하면서
주로 인적 결속을 통해서 그리고 지리적 생산력보다는 기술과 정신 이념 등의 인격적 요소의
심화 발전을 통해서 환경적 격동을 극복하고 있었다. 즉 한족은 지연적 사회적 구조적 제도적
방식으로 그들의 정주생활을 축적하였고 한민족은 인격적 개별적 자의의 유대를 통해서 이념적
정신적 기술적 가능적으로 그들의 생존의 힘을 성장하여 나아갔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한민족은
혈연적 유대를 기초로 이를 공적 이념으로 승화하는 과정에서 깊은 정신적 모색을 하게 되고
이념과 이상을 중심으로 의지적 인격적 결속력을 발전하였다. 중국사는 제도적 구조적 본질성을
생명으로하는 반면에 한민족은 인격적 사상적 이념적 가능적 본질성을 중심으로 역사를 영위하
였다. 단적으로 중국은 땅의 인력이 한민족은 인격적 인력이 그 역사의 중추적 힘의 근원이었다.
그러므로 중국은 홍범구주라는 영역적 구조 개념이 철학의 근간이 되었고 한국은 홍익인간이라는
인간중심의 활동개념이 철학의 초석이 되었다. 중국은 공간적 중심지향적인데 비하여 한국은
인격적 조화지향적이었다. 중국은 개념중심적인데 비하여 한국은 사유중심적이었다. 중국은 텍
스트 중심적인데 비하여 한국은 창조적 의지중심적이었다. 따라서 양대민족의 융화는 동이시아
문명의 숙명이며 생명이었다. 바로 이것이 한국 양기사의 핵심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역사적 진상 즉 한국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의 역사 문명의 형성 발전
의 역사를 왜곡 없이 통찰할 필요가 절실하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시대주의> 혹은 <중화주
의> 특히는 한국문화와 중국문화의 상호관계이해에서 일어나는 왜곡된 <문명비하적 자기의식> 같
은 주제들은 중대한 문제로서 명백히 그 몰역사성이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
하이안자
한국의 역사는 북방에서 기원하였다. 한랭한 북방 대륙이 민족의 요람이었고 대한반도는 그 요람
을 벗어나 문명의 일가를 이루고 완성을 지향해야할 터전이었다. 즉 우리 민족사는 가장 크게는
대륙북방기와 대한반도기로 양분된다는 것이다. 이 구분되는 민족사의 의미는 각기 각별한 것이
며 민족사의 영원한 바탕을 제공하는 민족사의 기본 구조체이다. 대륙북방기에 한민족은 그들의
정신과 문화의 본질을 구축하였고 대한반도기를 통해서 그 민족사의 질체를 보편화하는 역사를
진행해왔다고 생각해야하겠다.
대륙북방기의 활동은 한민족적 특질을 배타적으로 발휘하기보다는 민족의 바탕을 형성하면서 동
아시아 문명권의 바탕을 형성하는 아시아적 역사본질성이라는 역사적 의미로 귀결된다. 대륙북방
기에 한민족은 9이로 나뉘어살면서 동서문화교류의 중심통로에 위치하여 유라시아를 통관하는 문
화적 융통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새로운 역사적 삶을 선도하였다. 황하강 연변에 삶의 터전을
확충 발전하여나아가고 있던 한족은 그 광역의 생산력을 포장한 지리적 환경적 도전에 대응하여
정착적 지연적 구조 속에 한족의 민족사를 형성하는데 주력하고 있었고 항하강을 중심으로 인
적 사회적 질서를 지리적 공간에 구축하는 장대한 역사적 사명에 부응하고 있었다. 한민족은 동
적인 대륙 북방의 환경에 대응하면서 그 지리적 개활성에 대응하여 치열하게 생존을 모색하면서
주로 인적 결속을 통해서 그리고 지리적 생산력보다는 기술과 정신 이념 등의 인격적 요소의
심화 발전을 통해서 환경적 격동을 극복하고 있었다. 즉 한족은 지연적 사회적 구조적 제도적
방식으로 그들의 정주생활을 축적하였고 한민족은 인격적 개별적 자의의 유대를 통해서 이념적
정신적 기술적 가능적으로 그들의 생존의 힘을 성장하여 나아갔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한민족은
혈연적 유대를 기초로 이를 공적 이념으로 승화하는 과정에서 깊은 정신적 모색을 하게 되고
이념과 이상을 중심으로 의지적 인격적 결속력을 발전하였다. 중국사는 제도적 구조적 본질성을
생명으로하는 반면에 한민족은 인격적 사상적 이념적 가능적 본질성을 중심으로 역사를 영위하
였다. 단적으로 중국은 땅의 인력이 한민족은 인격적 인력이 그 역사의 중추적 힘의 근원이었다.
그러므로 중국은 홍범구주라는 영역적 구조 개념이 철학의 근간이 되었고 한국은 홍익인간이라는
인간중심의 활동개념이 철학의 초석이 되었다. 중국은 공간적 중심지향적인데 비하여 한국은
인격적 조화지향적이었다. 중국은 개념중심적인데 비하여 한국은 사유중심적이었다. 중국은 텍
스트 중심적인데 비하여 한국은 창조적 의지중심적이었다. 따라서 양대민족의 융화는 동이시아
문명의 숙명이며 생명이었다. 바로 이것이 한국 양기사의 핵심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역사적 진상 즉 한국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의 역사 문명의 형성 발전
의 역사를 왜곡 없이 통찰할 필요가 절실하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시대주의> 혹은 <중화주
의> 특히는 한국문화와 중국문화의 상호관계이해에서 일어나는 왜곡된 <문명비하적 자기의식> 같
은 주제들은 중대한 문제로서 명백히 그 몰역사성이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
하이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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