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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부에 문화중심주의를 기대한다 -


<1>
환란위기의 여진이 아직도 남아있는 우리는 그 위에 남북긴장이라는 난관을 만나고 있다. 국제정
세는 긴박해져가고 있고 경제와 산업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끊임없는 긴장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는 반만년동안 위기를 극복해온 민족으로서 어떤 고난도 이겨낼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
나 그 역사전통 자체가 민족의 삶을 나아가서는 번영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먼저 역사의 전
통적 힘을 계승하고 회복하고 이를 발양하려는 의지와 행동이 없다면 영광의 민족사도 의연한 민
족사도 없는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상실한다면 한국민은 세계사의 미아가 될 것이라는 것을 쉽
게 유추할 수 있다. 우선 우리 오늘이 과연 어떤 면에서 진정 위기의 순간으로 진단될 수 있는
가? 단적으로는 역사와 사상과 문화의 상실이 가장 큰 위기의 진원이라고 생각한다. 그 증좌는
부패의 만연과 이기주의의 확산으로 지적할 수 있겠다. 정의로운 시민운동이 충만하게 일어나
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는 노력이 크게 일어나고 있는 지금 어째서 이기주의가 만연한다고
진단하는가? 특히 나라를 이끌어갈 힘 있는 계층이 특히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광범
하게 번지고 있는 문화의 퇴폐는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은 정도이다. 부패와 퇴폐가 우리시대의
최대의 위기라고 볼 수 있겠다.

<2>
최근 한 석학은 <조선왕조시대의 이상주의 정치가 부패의 진원>이라고 선언하였다. 나는 그 진
단적 의견을 보고 한국지성의 몰역사성을 다시 한번 절감하였다. 전에 어떤 원로 서양사학자
는 <동아시아에는 역사학의 전통이 없다>고 단언하였다. 그것은 자끄 자르네라는 프랑스 역사
학자가 <동아시아 역사학의 수준은 아직 기초적인 사실탐구에 머무르고 있다>고 혹평했던 사실
과 일맥상통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서구적 역사학은 물론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역사학
이 없었다면 어떻게 위대한 사상과 행동이 나왔는가를 단적으로 묻고 싶었었다. 한국지성의
그와 같은 자기비하적 몰역사적 자기인식은 단적으로 자신의 전통과 역사와 문화의 탐구를 하
지 않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솔직한 우리문화 우리지성의 현주소이다.

사실 우리 현대사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집단이기주의 지역이기주의와 같은 해악은 반대로
우린민족사의 단절을 방치한 데 그 원인이 있다. 최근의 사회운동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전통
사상 특히 유교가 패거리문화 가족이기주의의 근원으로서 그 유교적 전통을 무너뜨리는 것이
근대화의 지름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성운동가들은 유교의 가부장권을 말하고 정치가들은
유교의 권위주의를 공격한다. 그러나 과연 유교사상이 진정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이
었고 현대사상의 한국인들이 유교가치를 중요 시책으로 교육하고 채택한 적이 있었는가 하는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현대사는 사실은 서구가치를 추구해
온 것이었으므로 사실은 현재의 문제는 현재의 추세를 반성하는 데서 찾는 것이 옳을 것이
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우선이다. 모든 해악을 조선왕조적 체제 속에서 찾으려고 하
는 것은 스스로에게 비겁한 행동이며 18세기 서양의 탈역사적 계몽주의적 수준의 지적능력일
것이다.

<3>
나는 우리나라의 개혁적 지성들이 청산론이라는 역사부정적 반역사적 시각으로 현대사를 다시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 고대문화를 찬양하고 그 높은 안목과 가치를 부정
하려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극히 모순된 태도이다. 역사적 성찰이 없이 왜곡된 역사관 아래서
역사를 중요 명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마치 중국고대의 왕망 같은 정치인들
이 자신의 정견을 정당화하기 위해 고대역사를 강조했던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자신의 역사와
전통에 관한한 보수와 혁신을 말하는 것은 진정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역사와 문화는 오로지
진전하고 계승되고 항시 새롭게 재발견되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과학은 인간을 만들어낼 수준에 도달
하였다. 과학과 기술은 우리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것으로서 가장 경제와 더불어 다
투어 발전해야할 분야임에는 틀림이 없다. 과학과 기술과 인간을 만들 수 있으나 문화 문명
은 만들 수 없다. 문명은 역사 속에서 사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는 생체보다
더 근원적인 우주의 보편적 질서 가운데 있으므로 성스러운 것 그 자체이다. 우리의 역사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사상과 문화의 회복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새 정부는
<문화주의> <역사주의>를 국정의 중심으로 표방해주었으면 한다.

<4>
역사주의란 민족의 역사와 문화와 사상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러나 민족
주의는 아니며 사실은 가장 균형된 보편주의를 말한다. 민족적이란 말의 진정한 어의는 한
민족이 특별한 시점과 상황에서 역사적으로 성취한 보편정신의 쇄신된 전연 새로운 발상과
그 수행양식과 체제를 지칭하는 것이다. 오늘의 세계주의가 역사주의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
이다. 보편성을 상실한 또는 쇄신의 정신을 방기한 역사주의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의미
에서 진절한 새로운 삶의 자기응찰을 강조하는 <문화주의> <역사주의>를 새 정부가 염두에
두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여 몇 자 적었다. 역사단절이 우리시대의 최대 비극이기 때문
이다. 물론 이 말 속에는 왜곡된 전통 역사의식의 경신도 포함된다. 과거 역사상에도 역사의
왜곡과 의미의 축소가 있었다. 그와 같은 비역사적인 면도 응찰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중화주의>는 비역사적 역사왜곡으로서 이 역시 창의력을 제한하는 비극에 속한다.
한국의 <자신의 역사성찰 방기>도 그와 동질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북경대학생
들이 서울대를 방문하여 토론한 적이 있는데 서울대 학생들이 <한국은 중국의 문화를 오래
받아왔는데...>라고 말한 부분이 있었다. 또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한국은 2000년간 중국의
것을 받아 왔는데 앞으로는 한국의 기술을 적극 받아 가달라>는 언급도 있었다. 이런 이해
들은 중대한 동아시아사와 한국사의 왜곡을 반영한 언급일 것이다. 그 왜곡을 교정하고 순수
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광범한 이념이 생활화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하이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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