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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명) -
이번 달은 너무 급박한 사건들이 많아 글을 올리지 못해 읽어주시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다.
국내의 새로운 정치 사회 환경의 변화의 움직임과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국제정세 등은 한동안
여러가지를 재성찰하게 만들었었다.
몇 군데 글쓰는 곳을 돌며 약간의 글을 올리고 토론에 참여하였었다. 또 친지중에 전시회를
여는 분이 있어 화론을 써주어야할 일도 있었다. 집안 조상의 한시를 번역하는 작업도 시작
하였다. 어떤 변명으로도 긴 의지를 가지고 여기 칼럼에 글쓰기를 시도한 초심에 성의를 다
하지 못한 점은 나 스스로에게도 부끄럽다.전에도 두어번 그런 일이 있었다. 거듭 사죄를 드
려야하겠다. 그러나 잠시 잠시 글을 올리지 못하는 달이 또 있겠지만 아마도 나의 능력과
체력의 부족에 기인하는 사정도 있을터이나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다. 생활인의 고충을 이
해해주시리라 믿으며....다만 더욱 분발하여 여기 인터넷의 새로운 주류문화를 건설하려는
대장정 텍스트 창조의 열기-그새로운 대망-을 불태워가고 싶은 것이 진정한 소망임을 밝힌다.
:: :: 시국론
전통시대 유교지식인들은 시세를 모르면 '고루한 선비'라고 치지도외하였다. 그토록 오래
시국에 관심을 가졌던 그들도 바른 시국관을 확립하지 못하여 근세사의 쇠퇴를 막지 못하
였었다.
아마 그 나라의 진운을 열기 위해 일면 계승 일면 개혁하면서 새로운 관점의 쇄신을 이루지
못한 원인은 참으로 여러가지 사정이 있겠으나 문화양태의 면에서 생각해보면 다름아닌
소통의 제한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일부의 계층들로 구획되어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거나 서로의 격막을 굳건히 유지하거나
자신의 생존형식에 안주하여 자포자기하거나 부와 권력을 독점하려하였던 것이 그것이다.
비록 군주지배체제 였다고 하더라도 계층과 파벌간의 격막을 해소하려고 하였다면 어떤
격막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었다. 현재 극도로 발달한 자유민주주의
사회 속에서도 그러한 소통의 격막은 만족할만큼은 전연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새로운 소통의 공기로서 인터넷에 무한한 기대를 거는 이유이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의 소통단절의 원인은 사람의 이상보다는 기질적 욕구의 정당화 현상
이라든가 물욕의 과다한 유혹, 안일함을 추구하는 나약함 그리고 비교적 상대적 가치를 추
구하는 현상... 즉 자신의 절대가치를 집적하고 유지하는 노력이 약화된 데 주로 있다고
생각된다.
말하자면 서구적 사회제도 가족제도 가치관과 철학 문화양식 같은 것에 너무 높은 기대를
걸고 비중을 둔 데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서구적인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전통적 삶의 양식과 정신과 정서와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솔직한 욕구의 가치를 발견한 것이 서구근대문화의 공헌이었다. 몸의 철학이 유행
하는 이유이다. 세계적으로 만연했던 종교적 계급적 의식적 엄숙주의를 완화한 것은 문화와
삶의 탄성과 창조력의 회복을 위하여 분명 축복스런 이었다.
서구문화는 원래 자연성 중심의 사유를 바탕으로하여 자연철학이라는 깊은 삶전통에
기초하여 그들의 삶을 살아왔다. 그 결과 인간적인 부면의 경험성을 추가할 필요가 생
기면서 휴머니즘이 추가되었다. 말하자면 자연과 인간 사이에 사유의 무게중심이 번갈아
가며 바뀌었다. 이것을 그들의 말로 혁명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역사에서는 따라서
혁명이란 발전의 양식이 필수적이다.
역사상 아시아는 반대로 혁명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필요하지도 않았다. 왕조의 교체는 정
권의 교체이며 일부 제도의 개선과 개혁이 있었지만 가치관과 사유방식의 개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놀랍게도 그들의 사유의 기초를 이루는 경험대상의 수용이 극히 균형되었던 데
기인한다. 무슨 말이냐하면 서양이 자연경험을 주된 사색의 기초로 삼아 발전 변화해온 데
비하여 동아시아는 (1)자연 (2)인간 (3)역사상 창조된 문물 의 3대 경험대상을 차별없이
중시하였다. 천지인(天地人) 삼재사상이 그것이다.
그 일찍 개발된 경이로운 균형사상은 사람의 삶을 지극히 편안하게 해주었고 어떤 고난에
도 스스로 편안함을 개척하면서 안주하기에 충분한 지성적 활로를 열어주었다. 중용사상
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오랜 사상적 편안함은 시간에 따라 그 원래의 경험성을 이탈하여 이념화하고
이데올로기화하여 사상적 본질에 대한 성찰을 미약하게 하였다. 그에대한 반성이 성리학
이었다.
성리학은 절실한 반성과 성찰의 양식으로서 유학의 많은 부분을 개선하여주었으나 동아시아
적 사유의 본질 바탕인 경험성의 일탈을 지적하거나 회복하지 못한 것은 최대의 한계였다.
그것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의 존재 때문에 국가주의적
거대 이대올로기의 고수가 강요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한계였다고 생각한다. 국가적 강
력한 권위에 마주한 나약한 전통시대의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 그 막강한 규제를 벗어난
자유롭고 광대한 사색과 이념과 가치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탐닉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 즐거운 작업이 학문적 사색이었고 그 내용은 사상적 가치적 창조적 자유의
유희였다. 그 이상의 동아시아사상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시도할 여유는 부족하였다고
생각된다.
이런 일은 공자 사후에 즉시 일어났었다. 학문적 본질의 전승이 불완전한 상황 아래서
일어난 비판적 사유라고 할 수 있는 '이단'의 등장으로 인하여 자기방어에 급급할 수 밖
에 없었다. 이런 현상은 근세까지 이어졌었다.
사상적 문화적 르네상스가 지금 필요한 이유이다.
오늘날은 그 끝에서 자신의 정신과 문물을 비하할 수 밖에 없으므로 오늘의 제반 혼란이
야기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열린 인터넷의 무한한 소통성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문물간의 소통의 장
으로서 열려있으므로 당연히 아시아적 사유의 본질을 화복하는 중대한 움직임을 유발
회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오로지 우리의 경전과 문헌을 경험주의적으로 다시 읽고 전통사상을 다시 음미함
으로써만이 우리 문화와 사회의 길을 쇄신하여 열 수 있다고 믿는다. 학문과 사상과 도
덕과 철학 과학 등 어느분야든 그러하다. 그리고 전통사상과 문화로 포용하지 못한 문명적
경험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동아시아는 가장 역사적 문화적 가능성을 크게
가진 문명권이다.
끝으로 동서문화의 조화된 융화가 새시대의 최대의 과제일 터인데 나는 동아시아의 한국
과 중국 서양의 미국과 영국이 그 융합의 중심 주체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싶다. 한국
은 특히 동아시아사상의 원류 근원국가로서 그 중심적 역할을 수행할 역사적 능력과 사명과
책무를 동시에 확고하게 가지고 있다고 믿고있다.
이러한 현재적 과제의식을 공유하고 모색하는 과정을 시작한다면 우리의 사회적 문화적
여러 문제가 해결의 도정에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확고히 믿는다. 세계적 문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夏夷案子
禾芯
the Haianist, Whashim Deok Jo Yuu
이번 달은 너무 급박한 사건들이 많아 글을 올리지 못해 읽어주시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다.
국내의 새로운 정치 사회 환경의 변화의 움직임과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국제정세 등은 한동안
여러가지를 재성찰하게 만들었었다.
몇 군데 글쓰는 곳을 돌며 약간의 글을 올리고 토론에 참여하였었다. 또 친지중에 전시회를
여는 분이 있어 화론을 써주어야할 일도 있었다. 집안 조상의 한시를 번역하는 작업도 시작
하였다. 어떤 변명으로도 긴 의지를 가지고 여기 칼럼에 글쓰기를 시도한 초심에 성의를 다
하지 못한 점은 나 스스로에게도 부끄럽다.전에도 두어번 그런 일이 있었다. 거듭 사죄를 드
려야하겠다. 그러나 잠시 잠시 글을 올리지 못하는 달이 또 있겠지만 아마도 나의 능력과
체력의 부족에 기인하는 사정도 있을터이나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다. 생활인의 고충을 이
해해주시리라 믿으며....다만 더욱 분발하여 여기 인터넷의 새로운 주류문화를 건설하려는
대장정 텍스트 창조의 열기-그새로운 대망-을 불태워가고 싶은 것이 진정한 소망임을 밝힌다.
:: :: 시국론
전통시대 유교지식인들은 시세를 모르면 '고루한 선비'라고 치지도외하였다. 그토록 오래
시국에 관심을 가졌던 그들도 바른 시국관을 확립하지 못하여 근세사의 쇠퇴를 막지 못하
였었다.
아마 그 나라의 진운을 열기 위해 일면 계승 일면 개혁하면서 새로운 관점의 쇄신을 이루지
못한 원인은 참으로 여러가지 사정이 있겠으나 문화양태의 면에서 생각해보면 다름아닌
소통의 제한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일부의 계층들로 구획되어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거나 서로의 격막을 굳건히 유지하거나
자신의 생존형식에 안주하여 자포자기하거나 부와 권력을 독점하려하였던 것이 그것이다.
비록 군주지배체제 였다고 하더라도 계층과 파벌간의 격막을 해소하려고 하였다면 어떤
격막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었다. 현재 극도로 발달한 자유민주주의
사회 속에서도 그러한 소통의 격막은 만족할만큼은 전연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새로운 소통의 공기로서 인터넷에 무한한 기대를 거는 이유이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의 소통단절의 원인은 사람의 이상보다는 기질적 욕구의 정당화 현상
이라든가 물욕의 과다한 유혹, 안일함을 추구하는 나약함 그리고 비교적 상대적 가치를 추
구하는 현상... 즉 자신의 절대가치를 집적하고 유지하는 노력이 약화된 데 주로 있다고
생각된다.
말하자면 서구적 사회제도 가족제도 가치관과 철학 문화양식 같은 것에 너무 높은 기대를
걸고 비중을 둔 데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서구적인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전통적 삶의 양식과 정신과 정서와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솔직한 욕구의 가치를 발견한 것이 서구근대문화의 공헌이었다. 몸의 철학이 유행
하는 이유이다. 세계적으로 만연했던 종교적 계급적 의식적 엄숙주의를 완화한 것은 문화와
삶의 탄성과 창조력의 회복을 위하여 분명 축복스런 이었다.
서구문화는 원래 자연성 중심의 사유를 바탕으로하여 자연철학이라는 깊은 삶전통에
기초하여 그들의 삶을 살아왔다. 그 결과 인간적인 부면의 경험성을 추가할 필요가 생
기면서 휴머니즘이 추가되었다. 말하자면 자연과 인간 사이에 사유의 무게중심이 번갈아
가며 바뀌었다. 이것을 그들의 말로 혁명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역사에서는 따라서
혁명이란 발전의 양식이 필수적이다.
역사상 아시아는 반대로 혁명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필요하지도 않았다. 왕조의 교체는 정
권의 교체이며 일부 제도의 개선과 개혁이 있었지만 가치관과 사유방식의 개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놀랍게도 그들의 사유의 기초를 이루는 경험대상의 수용이 극히 균형되었던 데
기인한다. 무슨 말이냐하면 서양이 자연경험을 주된 사색의 기초로 삼아 발전 변화해온 데
비하여 동아시아는 (1)자연 (2)인간 (3)역사상 창조된 문물 의 3대 경험대상을 차별없이
중시하였다. 천지인(天地人) 삼재사상이 그것이다.
그 일찍 개발된 경이로운 균형사상은 사람의 삶을 지극히 편안하게 해주었고 어떤 고난에
도 스스로 편안함을 개척하면서 안주하기에 충분한 지성적 활로를 열어주었다. 중용사상
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오랜 사상적 편안함은 시간에 따라 그 원래의 경험성을 이탈하여 이념화하고
이데올로기화하여 사상적 본질에 대한 성찰을 미약하게 하였다. 그에대한 반성이 성리학
이었다.
성리학은 절실한 반성과 성찰의 양식으로서 유학의 많은 부분을 개선하여주었으나 동아시아
적 사유의 본질 바탕인 경험성의 일탈을 지적하거나 회복하지 못한 것은 최대의 한계였다.
그것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의 존재 때문에 국가주의적
거대 이대올로기의 고수가 강요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한계였다고 생각한다. 국가적 강
력한 권위에 마주한 나약한 전통시대의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 그 막강한 규제를 벗어난
자유롭고 광대한 사색과 이념과 가치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탐닉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 즐거운 작업이 학문적 사색이었고 그 내용은 사상적 가치적 창조적 자유의
유희였다. 그 이상의 동아시아사상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시도할 여유는 부족하였다고
생각된다.
이런 일은 공자 사후에 즉시 일어났었다. 학문적 본질의 전승이 불완전한 상황 아래서
일어난 비판적 사유라고 할 수 있는 '이단'의 등장으로 인하여 자기방어에 급급할 수 밖
에 없었다. 이런 현상은 근세까지 이어졌었다.
사상적 문화적 르네상스가 지금 필요한 이유이다.
오늘날은 그 끝에서 자신의 정신과 문물을 비하할 수 밖에 없으므로 오늘의 제반 혼란이
야기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열린 인터넷의 무한한 소통성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문물간의 소통의 장
으로서 열려있으므로 당연히 아시아적 사유의 본질을 화복하는 중대한 움직임을 유발
회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오로지 우리의 경전과 문헌을 경험주의적으로 다시 읽고 전통사상을 다시 음미함
으로써만이 우리 문화와 사회의 길을 쇄신하여 열 수 있다고 믿는다. 학문과 사상과 도
덕과 철학 과학 등 어느분야든 그러하다. 그리고 전통사상과 문화로 포용하지 못한 문명적
경험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동아시아는 가장 역사적 문화적 가능성을 크게
가진 문명권이다.
끝으로 동서문화의 조화된 융화가 새시대의 최대의 과제일 터인데 나는 동아시아의 한국
과 중국 서양의 미국과 영국이 그 융합의 중심 주체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싶다. 한국
은 특히 동아시아사상의 원류 근원국가로서 그 중심적 역할을 수행할 역사적 능력과 사명과
책무를 동시에 확고하게 가지고 있다고 믿고있다.
이러한 현재적 과제의식을 공유하고 모색하는 과정을 시작한다면 우리의 사회적 문화적
여러 문제가 해결의 도정에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확고히 믿는다. 세계적 문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夏夷案子
禾芯
the Haianist, Whashim Deok Jo Y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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