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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의 절대 다수가 <성족문화의 철폐>를 원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폐연을 중심한
<폐지운동> 측은 1)국민여론을 왜곡하고 2)문화적 류임을 자처하는 많은 이들을 앞세워 사회적
주요공기를 독점적으로 사용하면서 3)기득권 역량을 총집결하고 물리적 힘을 구사하면서 본격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1.전 국회의원을 상대로한 로비활동의 전개
2.지식인 문화인의 폐지 성명 릴레이 운동
등이 그것이다.
호폐연 측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호폐문제를 <유림과 여성계>의 대립'인 것으로 몰고 갔고 많은
매체들은 이를 답습하여 오로지"유림과 여성계"만이 대립하는 것으로 되받아 널리 알려왔다. 이는
폐지운동이 세련된 근대적 행동이라는 환상을 많은 이들에게 심어주었다. 유림을 갓 쓴 노인으로
치부하는 일부의 반감을 이용한 전략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합의된 행동'에 의해 이 인위적 대립구도가 광포되었었고 그 이면에 어떤 의식과 작용
이 개재되어 있는지는 지금 논할 여유가 없다. 다만 그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호폐의 반대
는 일반문화인의 문화적 거부감이 보다 강한 것이다. 그 점을 호도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운동의
정당성을 무력화할 만한 오류이다.
유림이란 막연히 유교의 형식을 유지하는 일부 인사들의 지칭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호폐연측이 그
대상으로 싱정하고 있는 것은 성균관과 지방 유도회를 주로 지칭하는 듯하다. '유림'이 진정 한국
전통 유교를 온전히 대표할 수 있는지도 정확히는 검증된 적은 없거니와(아마 동양학자 동양사학자나
동양철학자들은 유림에 속한다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이가 많을 것이다.) 유림이란 원래가 보편적
용어로서 어느 단체나 집단으로 특정화할 수 없다.
'유림'이라는 보편적 이름을 자의적으로 단정하여 '이용'하는 풍조 자체가 민족 사상과 민족
문화를 아끼는 인사들에 대한 모독이다. 이는 한국 주류임을 자처하는 지성들이 가지고 있는 자
학사관에 입각한 유교에 대한 반감의 표출일뿐이다. 그 자체가 지극히 비역사적인 일임은 백번 강
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유교 유림의 외연에 광범히 존재하는 유교 문화인의 실존을 무시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스스로
문화적 주류임을 자처하는 호폐연이 당장 운동의 역량이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주류로 상정된 대
상만을 상대로 여기고 광범히 존재하는 - 그들이 비주류라고 치부한 - 다수인을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구태'일 것이다. 그런 개혁의 방식이 진정한 개혁의 개념 범주에 들 수
없는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인권을 존중하고 양성평들을 지향하는 것은 나무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형평의 추구는
개인적인 편안함이나 행복 혹은 어떤 사회문제를 풀기위하여 주로 발동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문화를 해체하는 것이 그 목표인 것은 더구나 아니다.성족제도의 개변은 전통문화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라는 문화사적 의미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법의 문제가 아니다. 오로지 법에 의존해 국민의 문화를 그렇게 쾌도난마로 재단하려 할
수는 없다. 새롭게 피어나야할 전통문화에 또 하나의 가상의 근대적인 덧을 씌우는 일이다.
개혁이란 서구화를 오직 의미할 수 없다는 인식은 비교적 널리 확산되고 있으나 오히려 특정 집단
이나 개인에 의해 독자적 규율이 소실된 채 자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깊이
우려된다. 또한 서구에서 추구되는 해체주의 문화란 전통에 대한 해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근대지성에 대한 반성의 의미가 강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해체론의 표피를 추종하는
것은 문화운동으로서 천박한 것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민족 문화가 또 민족의 사상전통이 상당한
수준으로 정상화 되면서 모든 문화적 제도적 발전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주의를 기울여
자신의 전통을 탐구할 때라는 것이다.
혹시 호폐연이나 나아가 혁운동인사들이 스스로 전통문화와 사상사 상의 개념을 오늘의 문화를 해
석하는 용어로 독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동아시아 지성능력을 구비하지 못하였거든 자신
의 주장이 크게 편향되었고 문화적 사상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번 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의 운동이 선각자적인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기에 덧붙이는 말이다. 결국 스스로 자아
의 본질을 성찰하지 않고 진정 개혁을 할 수가 있는가 묻고 싶다.
<폐지운동> 측은 1)국민여론을 왜곡하고 2)문화적 류임을 자처하는 많은 이들을 앞세워 사회적
주요공기를 독점적으로 사용하면서 3)기득권 역량을 총집결하고 물리적 힘을 구사하면서 본격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1.전 국회의원을 상대로한 로비활동의 전개
2.지식인 문화인의 폐지 성명 릴레이 운동
등이 그것이다.
호폐연 측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호폐문제를 <유림과 여성계>의 대립'인 것으로 몰고 갔고 많은
매체들은 이를 답습하여 오로지"유림과 여성계"만이 대립하는 것으로 되받아 널리 알려왔다. 이는
폐지운동이 세련된 근대적 행동이라는 환상을 많은 이들에게 심어주었다. 유림을 갓 쓴 노인으로
치부하는 일부의 반감을 이용한 전략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합의된 행동'에 의해 이 인위적 대립구도가 광포되었었고 그 이면에 어떤 의식과 작용
이 개재되어 있는지는 지금 논할 여유가 없다. 다만 그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호폐의 반대
는 일반문화인의 문화적 거부감이 보다 강한 것이다. 그 점을 호도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운동의
정당성을 무력화할 만한 오류이다.
유림이란 막연히 유교의 형식을 유지하는 일부 인사들의 지칭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호폐연측이 그
대상으로 싱정하고 있는 것은 성균관과 지방 유도회를 주로 지칭하는 듯하다. '유림'이 진정 한국
전통 유교를 온전히 대표할 수 있는지도 정확히는 검증된 적은 없거니와(아마 동양학자 동양사학자나
동양철학자들은 유림에 속한다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이가 많을 것이다.) 유림이란 원래가 보편적
용어로서 어느 단체나 집단으로 특정화할 수 없다.
'유림'이라는 보편적 이름을 자의적으로 단정하여 '이용'하는 풍조 자체가 민족 사상과 민족
문화를 아끼는 인사들에 대한 모독이다. 이는 한국 주류임을 자처하는 지성들이 가지고 있는 자
학사관에 입각한 유교에 대한 반감의 표출일뿐이다. 그 자체가 지극히 비역사적인 일임은 백번 강
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유교 유림의 외연에 광범히 존재하는 유교 문화인의 실존을 무시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스스로
문화적 주류임을 자처하는 호폐연이 당장 운동의 역량이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주류로 상정된 대
상만을 상대로 여기고 광범히 존재하는 - 그들이 비주류라고 치부한 - 다수인을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구태'일 것이다. 그런 개혁의 방식이 진정한 개혁의 개념 범주에 들 수
없는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인권을 존중하고 양성평들을 지향하는 것은 나무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형평의 추구는
개인적인 편안함이나 행복 혹은 어떤 사회문제를 풀기위하여 주로 발동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문화를 해체하는 것이 그 목표인 것은 더구나 아니다.성족제도의 개변은 전통문화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라는 문화사적 의미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법의 문제가 아니다. 오로지 법에 의존해 국민의 문화를 그렇게 쾌도난마로 재단하려 할
수는 없다. 새롭게 피어나야할 전통문화에 또 하나의 가상의 근대적인 덧을 씌우는 일이다.
개혁이란 서구화를 오직 의미할 수 없다는 인식은 비교적 널리 확산되고 있으나 오히려 특정 집단
이나 개인에 의해 독자적 규율이 소실된 채 자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깊이
우려된다. 또한 서구에서 추구되는 해체주의 문화란 전통에 대한 해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근대지성에 대한 반성의 의미가 강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해체론의 표피를 추종하는
것은 문화운동으로서 천박한 것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민족 문화가 또 민족의 사상전통이 상당한
수준으로 정상화 되면서 모든 문화적 제도적 발전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주의를 기울여
자신의 전통을 탐구할 때라는 것이다.
혹시 호폐연이나 나아가 혁운동인사들이 스스로 전통문화와 사상사 상의 개념을 오늘의 문화를 해
석하는 용어로 독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동아시아 지성능력을 구비하지 못하였거든 자신
의 주장이 크게 편향되었고 문화적 사상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번 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의 운동이 선각자적인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기에 덧붙이는 말이다. 결국 스스로 자아
의 본질을 성찰하지 않고 진정 개혁을 할 수가 있는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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