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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면서도 특별하지 않을 수 있고 민족적이면서도 문명권적이고 보편적 통달성을
구현할 수 있는 것 다시말하여 개체적인 특질과 보편적 작용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사상사의 목표일 것이다. 이것이 어느 하나에 편집될 때 그것은 단순한 이즘(ism)
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유학사상을 어느면에서 단순한 이즘으로 대해온 것이 저간
의 사정이었던 것 같다. 물론 각 시대 유교사상은 단순한 이즘으로 작동해온 적도 있었
을 터이다. 그러나 그것이 본령이 아니었다는 것을 절실히 반추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선입관이 작용한다면 우리가 아무리 경전과 문헌을 연구하더라도 진상에 도달하
지는 못할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세부탐구에 심입하기 전이나 그 후를 막론하고 끊임
없이 그 사상적 사상사적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그 가치와 효용의 보편성 그리고 창조
적 부면을 설정하는 방향성에 대한 성찰이 긴밀하게 유지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경전을 읽을 경우 그 의미를 자의적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쉽고 혹
은 우리 근대지성의 관습대로 지나치게 분석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 그
외에 독자적이고도 상밀한 이해의 길이 내재하고 있다는 믿음이 요구될 것이다. 나는
그것은 넓은 길이라고 부른다. 그 넓은 길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과 다른 특이한
길은 아니다. 다만 가장 균형있는 태도를 견지하는 길이다. 학문은 공의(公義)의 길이
라는 믿음이 오직 필요하며 그 외의 어떤 제한적 태도도 옳지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자의적 태도는 특히 금물일 것이다. 동아시아 사상을 신비로운 것으로 규정하는 일반
적 오류는 바로 자의성의 작용일 것이다. 모든 사상적 왜곡이 바로 그 자의성 이기성에
서 일어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선은 그와같은 사사로움을 초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전문학자의 경우에도 이런 현상은 심하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경전과 문헌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공과 자하와 자장
같은 공자의 제자들의 학문의 깊이와 방식이 달랐던 것이 결국은 그 자세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통할 수 있는 좋은 귀감일 것이다. 학문이라는 의미
에 부합하려면 그같은 공정성을 필수 전제로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나
서야 진정 그 깊이를 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공자가 인의를 행하고 나서 문을 배우라
한 것도 바로 그 자세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신이호고>라는 말은
학문적 가치와 사상사적 정당성에 대한 믿음 그리고 선현들에 대한 전폭적 신뢰를 의미
한다는 점에서 가장 기초적 자세를 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배울학>자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자기 사상사에 대한 믿음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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