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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사상과 문명의 재발견(7)
-중심이념의 포용성과 창조성
유교사상의 최고 이념은 천(天)이다. 그 목적과 귀결은 당연히 인(人=仁=創造主體)이다, 그래서 천인조화(天人調和)라고 한다. 이를 실천하는 장은 넓어서 우리 현상계 전체이다. 이를 천지합일(天地合一)이라고 한다. 천은 무제한하고 인은 일반적이며, 천은 추상적이고 지는 명징한 경험계 전체다. 그러므로 유교적 사유는 추상적 경험적 사유의 무한한 집적일 수밖에 없다. 이 때 그 경험 선택의 대상은 열려있고 그 사유는 자유로움을 전제로 한다. 이를 포용성과 창조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유교사상은 중심이 있는 사상일 뿐, 결코 형식을 강조하고 체제를 고수하려는 사상일 수는 없다. 유교사상을 비역사적 용어로 <봉건적>이라고 보는 학설이 공산당 지배하의 중국과 탈아시아적 성향의 일본에서 제기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순수한 탐구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유교사상이 전근대 동아시아세계의 창조적 발전을 리드하지 못하였다는 비판적 학설도 있었는데 우쯔노미야 기요요시 같은 예가 그것이다. 아시아의 근대화논의 가운데 '아시아적 가치논쟁'이 일어난 것은 그와 같은 유교사상 이해의 미비에 기인한다.
내가 알고 있는 시인 한 분은 현재는 스스로 시작 활동의 방학기라고 선언하고 시적 내면성의 천착에 몰두하고 있는데 그는 불교문학의 연구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대화중에 '유교사상에는 반대자가 있고 일반성이 없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아마 현재 우리의 풍토를 언급한 것일 것이다. 나는 그가 젊은 시절에 열성적으로 시작활동을 하면서 사물의 새로운 이해를 위해 부단히 애쓰는 모습을 보고 그것은 전통선비의 자세와 완전히 같은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때 그에게 선비일 것을 요구한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서 '유교에는 반대자가 있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우리 전통사상이 소외된 이 엄연한 현실에서 크게 분발하지 않을 수 없다.
유교사상은 천인관계의 추구라는 틀을 유지하면서 그 천인 사이의 구체적 사색 공간에서 음양설 오행설과 같은 도식을 창출하기도 하였다. 주역의 64괘 같은 범주적 사고를 유지해오기도 하였다. 또 오륜(五倫) 삼강(三綱)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 이진(二眞) 삼무(三無) 육기(六氣) 팔풍(八風) 등등 수학적으로 현상을 구분하고 다시 통합하는 경험적 시도도 유지되었다. 그러나 그 자체가 사색의 중심은 아니다. 시종일관된 유교적 관심은 역시 인(仁)으로 대표되는 오덕(五德-仁義禮智信)이다. 그리고 이는 경험 해석의 소산이다.
중심이념의 존재로 인하여 형식적 사상이라는 오해를 받았지만 유수한 사상에서 중심 개념이 없는 경우란 없다. 유교의 중심이념은 그 사상을 규제하거나 형식화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인(仁)의 사상은 하나의 생명사상으로서 "낳는다"는 의미에서 출발한다. 이는 창조를 의미하며 우주와 인생의 본의가 창조와 성장에 있다는 경험적 믿음을 표현한다. 그 이상 자세한 생각은 지성인이 구체적으로 탐구해 가도록 맡겨져 있다. 논어에서 공자는 인(仁)의 뜻을 질문한 제자들에게 모두 다른 대답을 해주고 있다. 안연에게는 "극기복례"라고 하고 사마우에게는 "말을 참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중궁에게는 "내가 하고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결국 유교의 중심이 새로운 사색을 열어가는 개척의 문호이며 창조적 삶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외엔 어떤 사유도 포용할 수 있고 어떤 상념도 수용하며 어떤 신앙마저도 배제하지 않는다. 유교사회에서도 불교나 관습은 민속이나 신앙으로서 역시 공존하도록 허용되었다. 그 포용성을 주목하는 일로부터 진정한 유교적 사유가 창조적으로 시작된다.
하이안자
(Haian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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