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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經傳)이란 내적인 의미로서는 불변의 길을 의미합니다.전통적으로는 성인(聖人)의 글을 경(經)이라하고 현인(賢人)의 글을 전(傳)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경전(經典)이란 용어는 종교적으로 성경이나 코란 불경 등을 의미합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경전(經傳)도 그런 경전(經典)의 의미를 바탕에 두고 있고 아울러 그 경전(經典)이 각 시대에 전승되면서 각 시대의 독특한 환경과 여건 문제를 반영하여 그 새로운 의미가 모색되는데 바로 그 부분을 전(傳)이라고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 둘을 아울러 경전(經傳)이라고 합니다.물론 각 종교에도 전(傳)에 해당하는 기록이 있습니다.그러나 그 역할과 의미가 다릅니다.유교에서 유독 <전>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유교경전이 강한 역사성을 유지해왔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반면에 전(傳)이라는 말이 특히 성리학 이후 더 의미를 지니게 되는 까닭을 이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유교경전의 역사는 경(經) 해석의 역사입니다.그러나 그 해석의 역사에서는 언제나 경(經)의 정신에대한 불철저한 전승(傳承)이 문제가 되었습니다.예를 들어 공자 이후 그 제자 세대부터 공자학의 본 뜻이 바르게 가르쳐지고 이어지지 못했다는 비판이 항상 존재해왔습니다.지금 현재도 똑같은 문제상황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물론 유학이 오로지 공자학인 것은 아니나 예를 들어 그렇다는 말입니다.
경전의 정신을 순수하게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그 비판은 따라서 <이단론>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였습니다.그러나 그러한 경전정신의 순수한 전승의 중요성 을 견지하는 것 못지않게 각 시대 속에서 새 의미를 적극 모색해내지 못한다면 그 경전은 생존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새로움의 추구도 동등한 가치가 있다고 보아야하겠습니다.우리가 오늘의 마음 속에서 아무 전제 없이 경전을 읽고 음미해야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꼭 성인의 글과 현인의 글이라는 구분을 하여 그 가치를 고정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경(經:사서삼경/四書三經/論語 孟子 中庸 大學:詩經 書經 易經)을 통해서 새롭게 정립해낸 각 시대의 성과를 음미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經)이 불변의 길(常道)이라면 어떻게 각 시대문제를 소화하고 해소하여 새길을 모색할 수 있는가? 경전은 고집스런 어떤 사고의 결과물을 고수하여 지킨다는 의미에서의 <불변>이 아니고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눈의 위치를 일정하게 가질것을 요구한다는 의미에서의 <불변>입니다. 한 순간도 멈추어 있지 못하는 변화와 격동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심상(心像)과 사상(事像) 그 불안정함의 내면에 변치않고 영원의 에너지로 존재한다고 믿는 그 어떤 질서체(道)로서의 <불변>입니다.
과연 그러한 것이 있는지 우리는 경전을 읽으면서 자기의 삶과 마음 속에서 찾고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경전 문헌을 읽다가 2~3천년 전의 그 말들이 오늘의 사실과 심정을 말하는 것과 똑같은 전률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우선, 오늘의 세계에는 다양한 사상 문화가 있고 철학과 학문 금언이 있습니다.넘치는 그 <좋은 말씀> <매력적인 온갖 지성의 체제>가 있음에도 역시 자신의 고전과 경전을 왜 읽어야하는가?하는 문제를 제기해두고 평소의 소신을 틈틈이 올리려합니다.
오솔길이라고 이름한 것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살아가야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또한 그 길을 따라 걸어가는 몸짓 속에 진정한 불변을 찾는 심혼(心魂) 안정의 길(道)이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여기에서 꼭 확론(確論)을 싣는 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자유롭고 새롭고 편하며 그 뜻을 넓힐 수 있는 이해의 길이라면 어느 길이든 갈 수 있다는 자유로운 상념을 쓰려합니다.그러나 자신의 역사는 결국 버릴 수 없다는 확신을 쓰게될 것입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경전(經典)이란 용어는 종교적으로 성경이나 코란 불경 등을 의미합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경전(經傳)도 그런 경전(經典)의 의미를 바탕에 두고 있고 아울러 그 경전(經典)이 각 시대에 전승되면서 각 시대의 독특한 환경과 여건 문제를 반영하여 그 새로운 의미가 모색되는데 바로 그 부분을 전(傳)이라고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 둘을 아울러 경전(經傳)이라고 합니다.물론 각 종교에도 전(傳)에 해당하는 기록이 있습니다.그러나 그 역할과 의미가 다릅니다.유교에서 유독 <전>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유교경전이 강한 역사성을 유지해왔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반면에 전(傳)이라는 말이 특히 성리학 이후 더 의미를 지니게 되는 까닭을 이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유교경전의 역사는 경(經) 해석의 역사입니다.그러나 그 해석의 역사에서는 언제나 경(經)의 정신에대한 불철저한 전승(傳承)이 문제가 되었습니다.예를 들어 공자 이후 그 제자 세대부터 공자학의 본 뜻이 바르게 가르쳐지고 이어지지 못했다는 비판이 항상 존재해왔습니다.지금 현재도 똑같은 문제상황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물론 유학이 오로지 공자학인 것은 아니나 예를 들어 그렇다는 말입니다.
경전의 정신을 순수하게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그 비판은 따라서 <이단론>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였습니다.그러나 그러한 경전정신의 순수한 전승의 중요성 을 견지하는 것 못지않게 각 시대 속에서 새 의미를 적극 모색해내지 못한다면 그 경전은 생존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새로움의 추구도 동등한 가치가 있다고 보아야하겠습니다.우리가 오늘의 마음 속에서 아무 전제 없이 경전을 읽고 음미해야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꼭 성인의 글과 현인의 글이라는 구분을 하여 그 가치를 고정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경(經:사서삼경/四書三經/論語 孟子 中庸 大學:詩經 書經 易經)을 통해서 새롭게 정립해낸 각 시대의 성과를 음미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經)이 불변의 길(常道)이라면 어떻게 각 시대문제를 소화하고 해소하여 새길을 모색할 수 있는가? 경전은 고집스런 어떤 사고의 결과물을 고수하여 지킨다는 의미에서의 <불변>이 아니고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눈의 위치를 일정하게 가질것을 요구한다는 의미에서의 <불변>입니다. 한 순간도 멈추어 있지 못하는 변화와 격동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심상(心像)과 사상(事像) 그 불안정함의 내면에 변치않고 영원의 에너지로 존재한다고 믿는 그 어떤 질서체(道)로서의 <불변>입니다.
과연 그러한 것이 있는지 우리는 경전을 읽으면서 자기의 삶과 마음 속에서 찾고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경전 문헌을 읽다가 2~3천년 전의 그 말들이 오늘의 사실과 심정을 말하는 것과 똑같은 전률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우선, 오늘의 세계에는 다양한 사상 문화가 있고 철학과 학문 금언이 있습니다.넘치는 그 <좋은 말씀> <매력적인 온갖 지성의 체제>가 있음에도 역시 자신의 고전과 경전을 왜 읽어야하는가?하는 문제를 제기해두고 평소의 소신을 틈틈이 올리려합니다.
오솔길이라고 이름한 것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살아가야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또한 그 길을 따라 걸어가는 몸짓 속에 진정한 불변을 찾는 심혼(心魂) 안정의 길(道)이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여기에서 꼭 확론(確論)을 싣는 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자유롭고 새롭고 편하며 그 뜻을 넓힐 수 있는 이해의 길이라면 어느 길이든 갈 수 있다는 자유로운 상념을 쓰려합니다.그러나 자신의 역사는 결국 버릴 수 없다는 확신을 쓰게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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