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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의 역사는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역사로서는 그런대로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 필사적인 삶은 그 이념에 있어 편향적이었으므로 불가피하게 많은 손실을 감수해야했다.그 손실중에 가장 큰 것은 자신의 자존의식을 잃은 것이다.이는 그들의 역사에 대한 신뢰를 그들 문화에 대한 애정을 확립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왜곡된 역사의식과 자아관을 가지고 좁은 탈주체의 근대화를 수행했다는 말이다.

자기정체성을 직시하지 못해온 근현대사는 이미 문명적 비극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제3의 비극앞에 서 있음을 주목해야할 것이다.그 문명적 비극이 지금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려고 하고 있다.무서운 일이다.

역사상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힘의 중심은 선비였다.유학자들이었다.그런데 요즘의 지식인들은 입만열면 전통 유자를 비난하고 전통역사를 난도질하고 비난한다. 과연 그들이 그런 자격이 조금은 있는 것일까?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그들이 새로운 지식을 자랑하고 그를 비판의 근거로 한다면 새로운 지식이란 원래가 공유의 것이고 어느 정신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서는 안돤다는 점을 먼저 말해두고 싶다.지식은 정신을 구성하는 한 극소한 부분일 뿐이다.

유교 자체는 왜 비판받아서는 않되는가?
우리들의 사유의 핵이기 때문이다.그리고 비난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비판이 허용되는 범주>는 따로 있다. 바로 각 시대의 유자들의 행동과 사상은 당연히 평가되고 논의될 수 있다.그것은 유교정신을 한 시대에 적용하고 수행한 역사이기 때문에 <역사비판>의 입장에서 비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이를 각 시대의 유학이라고 할 수 있다.예를 들어 고려시대의 유학이나 사상 혹은 삼국시대의 사상 조선시대의 사상 등으로 논하여 그 공과를 거론할 수는 있다는 말이다.그러나 유교 자체를 공격하는 것은 무모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마치 오늘날 민주주의 자유경제가 이론대로 시행되지 않는다 하여 민주주의 자유주의의 가치를 매도할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에서이다.

유교는 그 내부의 정신적 본질의 중핵부에서는 불변의 당위성을 포장하고 있는 영원한 정신이며 그 외연은 각 시대를 수렴하며 갱신 발전되면서 각 시대에 창조적 임무를 수행해가야 하는 자유로운 범주성을 그 특장으로 하고 있다.유교사상은 중심지향성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형식적 제한이 없는 보편적이고 포용적인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유교 정신이 이루어진 과정을 보면 즉 유교의 형성사를 보면 우리는 그러한 믿음을 더욱 확인할 수 있다.이 점에 대해서는 별론하였으나 핵심을 말해보면 유교는 한국과 중국을 주축으로한 문명세계의 중심 문명정신이며 어느 한 국가의 성과는 아니다. 이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즉시 유교에 대한 왜곡이 나타나게 된다. 또한 유교가 역사상 수행해온 그 임무와 기능을 이해하지 못하면 즉 유교의 역사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늘날 역사지성 위주의 현대문명에서 낙후된 지식을 확대재생산하는 해악을 끼치게 된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역사로서의 유교 그리고 살아있는 문명으로서위 유교라는 이미지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반추할 필요가 강하게 제기된다.나는 현존하는 어떠한 사상 이념 철학의 체계도 유교적 사유법을 능가하거나 혹은 대체할 수 있거나 아니면 능가할 수 있는 체제는 전연없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그리고 그것을 비판하는 어떤 의견도 공파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그것은 오로지 유교가 지닌 사상적 포괄성과 균형성이라는 강력한 지상의 권위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다.유교의 그와 같은 우월한 힘은 역사와 문명 그리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조화로운 배려로부터 나온 것이다.그것이 우리 역사 문명 사상의 최대의 성과이다.

그 귀중한 보물을 버리려하는 지금 우리는 가장 어리석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어찌 위험한 비극의 순간이 아니랴! 다행히 최근 동양학 담론이 무성하여 새로운 반성의 분위기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혼란과 혼돈 속에 일어서는 유일한 희망이지만 이 움직임이 다시 유교에 대한 제3의 왜곡을 불러오고 마는 우를 범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리고 그 새로운 물결이 일반의 문화 정신 움직임으로 승화될 가능성이 많지 않다고 하는 강력한 장해요인으로 인해 비극적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대체 반만년 민족사 그리고 문명사에서 오늘과 같은 위기의 시대는 없었다는 것이 필자의 확신이다.그저 잘산다는 것 행복하다는 것은 뿌리를 심고서지 못할 때 완전히 허무한 것이 되고 말것이므로 오늘의 잘살기노력은 허망한 종착역을 향해 달리는 열차와 같다.지금 그 결과가 이민의 증가로 나타나고 사회적 불신의 팽배 이기주의의 확신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므로 비극은 이미 일어서고 있다.얼마나 무서운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직시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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