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유교는 공자학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잘못된 믿음은 아니나 완전한 이해는 아니다. 공자가 집대성한 정신이라고 해야 정확한 이해이다

공자가 집대성했다는 것은 무엇인가? 공자이전의 천년이상의 긴 역사 중국으로치면 중국 고대 초기 국가의 역사요 한국사로 치면 동이족으로 출발하는 한국 국가 형성기의 역사이다. 이 기난긴 역사 속에서 하(夏/중국)와 이(夷/한국)의 역사상의 초기 민족이 문화와 정신 역사를 교류하면서 쌓아온 지혜의 역사의 성과 그것을 집대성한 것이 공자였다. 한문으로 경전으로 만든것은 중국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하이(夏夷) 공동의 문화세계에서 성숙된 빛나는 지혜이다. 그것이 바로 유교의 실체이다.

공자 집대성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역사의 무지이다. 하이 문명사에 대한 이해의 결여를 말한다 맹자가 순(舜) 문왕(文王)이 동이인(東夷人) 서이인(西夷人)이라고 밝혔는데 순과 문왕은 효(孝)와 인(仁)을 실천한 문화 정신의 영웅으로 중국문명사를 연 영걸이다.그들이 이인(夷人)임을 밝힌 것은 맹자가 양심적인 역사학자였음을 말한다.

<2> 유교는 우리의정신사를 반영한다. 유교는 우리의 정신이며 문화이다. 한국인이 효를 강조하는 삶을 이어온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랴! 의인 열사가 끊임없이 나온 것이 공연한 일이랴!

<3> 유교는 한개의 어떤 학파가 아니다. 넓고 보편적인 학문을 말하고 종교적 삶을 포함한다. 영성과 지성을 겸비한 유일한 삶의 체제요,그 정신 의지이다. 철학이며 과학이요 신앙이며 문학이요 인문학이요 사회학이요 정치학이며 또한 인류학임과 동시에 전반적 삶의 율칙이다.제한없는 탐구의 길이며 자신을 투명하게 하고 힘차게하는 정화의 길 심신 보양의 길이다.

유교를 좁게 바라보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유교는 완전한 삶의 길을 모색한다. 유교에 대한 왜곡된 생각은 모두 바뀌어야한다. 유교 이야기를 통해서 그점을 밝힐 수 있고 확신한다. 시로 문학으로 평론으로 기도로 학문으로 다 가능하다. 그러면서 원시시대 이래의 종교적 심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신앙이다. 유교적 경건함이란 바로 그 점을 웅변한다.



<시>새벽에 일어나



숙면하지 못하는 밤은 왜인가

곰곰히 헤어보니

제대로 된 논이 없는 삶 때문이었더라



수많은 날을 흘려보낸 그 강뚝 머리에 서서

새삼 돌아보며 지나온 나의 절규들

물결소리로 망각되지 않도록

그 메아리로 듣고싶어서였더라



봄바람에 실려와 여기 깃든

이방 저방 적막속의 기침 소리

딸애는 할머니 보온요 속으로 파고들더니

잘 자고 있겠지



겨울 끝의 냉기가 남긴 서늘함은

아내의 팔 관절 속에 아직 완강하다



흰 포말을 싣고가는 급한 물살은 깊고 넓어서

아직도 한가하게 구경하며 앉아 있을 여유는 없을 터인데...





깊은 밤이나

아니면 새벽녘이면

가끔 흐물한 내 유체에

최근 <유일한 희망>이라고 명명한 객기가 엄습하곤한다

아직 아직은 정말이지 노탐은 아닐것이다



철기(鐵氣(를 숨쉬는 영원한 나그네의 고달픈 생체에는

사실 물한방울 새어들 틈새도 없는 조여옴이 상시 있었다

그러나 그 긴장이 풀리는 한 순간의 열림이 있곤 했다

비록 그것이 휘황한 아침이면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일지라도

열림은 어딘가 새로움을 부르는 것은 확실하다



여러차례 반복된 바 있는 그 메시지는

알고보니

역시 새로우라는 것이었더라

아무 댓가나 성과 없어도 좋다는 그런 말이었더라



항우같은 패기 없어

어떤 기세는 자신없으나

조용히 더듬어 끝간 데 없는 하늘을 닮고자

흔적없는 사람의 긴 그림자를 만지고자

그럴 수 있다고 가슴이 뛰는걸 보니

지금은 그 드믄 한 마디 자유의 시간이더라

우화등선이 별거아니더라고 마음은 막간다



가장 가까운 시상을 되감으니

신문지 하나 펄럭하고 떨어진다

제목은 무슨 월요 연재기사

누군가가 삼교를 말하고 있더라

마음과 육체와 명분을 말하더라



그 자락을 따라 줄줄히 일어서는 문자들이 있더라

다 새시대를 말하고 있더라



신천지는 오직 시심으로 열리는 것

시적 텍스트의 기호들이 밀고 가는 것

그 리듬은 성인의 말씀을 닮았다

그 그릇은 인(仁(을 닮은 크기를 하고 있다.



음악은 먼저 가사가 창조하므로

악경이 먼저 있었다는 시경론은 아마 상상에 불과할 것이다

<사악함이 없는 마음>이 어찌 스스로 율동할 수 있으랴



서도를 갈아 뼈에 그 맘을 새기면서

그 필획의 굴곡을 눈물 방울이 채워흐르고

그 위로 한숨의 미풍이 지나며 골질의 섬유를 두드리는 소리

일어났었으리니



장작개비 태워 균열하는

길흉을 가르는 쩍 쩍하는 소리

들렸으리니



진정한 경전의 장구란 모두 그런 시어가 아니더냐



내 비록 헛배만 부른 백면서생일지라도

강폭을 가로막고 서서

모래건져 체질하며 사는 삶을 버리지 못함은

꼭 그래서이다



노두 탄광에서 선광하는 삶을 위하여

새로운 <탐구시>를 논하고 싶다

아무 양식과 조건 없이

문자의 행렬 자체가 스스로 절대의 의미를 보유할 수 있도록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