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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四書)의 바다(1) - 맹자 진심장구 1,2,3
<1>맹자왈:그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盡其心者) 그 본성을 아는(知其性) 것이다. 그 본성을 알면 하늘(天)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본심을 보존하고 그 본성을 기르는 것은 하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다(事天). 수명의 길고 짧음에 미혹되지 않고(夭壽不貳) 자신을 수양하여 기다리는 것을 천명을 세워나아간다고(立命) 한다.
<2>맹자왈:사람의 삶에 천명이 아닌 것이 없으나(莫非命也) 그 천명을 바르게 따라 받아들여야할 것이다.그러므로 천명을 아는자는 바위 돌이나 담장의 아래에 서지 않는 법이다.그 도(道)를 다하여 죽는 것이 정명(正命)이요 제한되어(桎梏) 죽는 것은 정명(正命)이 아니다.
<3>맹자왈:구하면 얻고 놓으면 잃는 것 이런 구함은 도(道)를 체득하는 데 유익하고(有益於得) 나에게 있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구하는 데 방도(方道)가 있고 얻게 되는 데에 천명이 작용하는 것 이런 구함은 천명(天命)을 체득하는 데 무익하고 밖에 있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
대학(大學) 경(經) 1장에 <대학의 도는 명덕(明德)을 밝히는 데 있다>고 하였고 서경 태갑 강고를 인용하고 <모두 스스로 밝히는 것(自明)>이라고 하였다.(康誥曰克明德,太甲曰顧是天之明命,皆自明也)
여기에서 우선 관찰해야하는 것은 삼경(三經) 시대의 천명(천命)과 명덕(明德)의 의미 관계가 그대로 대학의 도로 이어졌고 맹자의 천명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상사적 전승관계이다.
(1)삼경시대 - 천명(天命): 신적 세계관
명덕(明德): 신의 의지의 구현,실행 의미
(2)대학시대 - 천명 - 대학의 도(道) : 학문적 대상화
명덕 - 학문적 삶의 구현을 의미
(3)맹자시대 - 천명 - 심성(心性)적인 것으로 심화
명덕 - 자각 체득을 의미
위의 도식은 그 전승관계를 요약해 보인 것이다.
논어의 첫장에 보인 학이시습(學而時習)은 전통시대의 신교적 질서를 재편성하는 새로운 지성적 삶의 출발을 본격 제언한 것이다.새로운 지성적 삶을 학습적인 삶이라고 언명한 공자의 뜻은 삶의 행동의 새로운 지표로서 인간의 심성과 욕구를 스스로 성찰하고 자신의 행동과의 절제 조화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이것은 현상(모든 경험현상)을 담담히 바라봄으로써 그 심성적 의지적 지반을 마련하고 그 지반 위에 그대로 결행하여 나아가는 새로운 스타일의 삶, 즉 스스로의 결단과 의지로 선택함으로써 구현되는 삶의 힘을 말한다.
공자는 각개 경험현상의 이해를 통합(一貫)함으로써 신교에 대신한 우주와 인생의 새로운 의미체계를 상정하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이 새로운 의미체계는 그러나 신교적 질서를 배제한 것은 아니며 인간의 심성과 의지 속에 포용한 새로운 질서를 의미하고 있다. 그 새로운 질서를 인(仁0이라고 불렀다.그 질서를 수행하는 행동을 덕(德)이라고 하였다.그 새로운 지성적 삶의 체계를 명확히 이해하는 삶을 지혜(知)라고 하였고 그대로 행동하는 삶을 현(賢)이라고 하였다.지혜와 행동은 종종 불일치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특별히 둘로 나누어 각각의 삶의 기준을 정립한 것이라고 해야하겠다.이러한 입장은 대학에 그대로 집약되어 있다.
맹자의 시대에 이르면 공자의 학습론이 한껏 내면화하여 인간의 심성적 확신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하였다.그 이유는 춘추전국의 사회 정치여건의 변화로 인해 사람의 사욕이 크게 대두한 때문이라고 전통적으로는 이해해왔다.그러나 꼭 권력과 사치를 지향하는 사회적 풍조에만 원인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일반의 세속의 삶에서는 공자가 제정한 이미의 체계를 응시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의 여건이 크게 미비하였으므로 공자는 우선 선각자로서 새로운 삶의 체제의 당위성을 포괄적이고 친근하며 이해용이한 그러면서 강력한 언어로서 환기할 필요가 있었다.그 결과 나타난 것이 논어의 텍스트이다.공자가 <백성들이 모두 알게할 수는 없다>고 한 말이 그것이다.논어는 결국 생활의 텍스트였다.
맹자는 그 성과에 힘입어 공자가 미처 행하지못한 본격적인 내면화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이미 공자적 텍스트는 공자 개인의 의사를 반영한 것이 아니고 주(周) 왕조 개창이래 춘추시대에 까지 전승돼온 온각 지혜의 전통을 수용하고 포용하여 조율정돈 하였기 때문에 넓은 보편성을 수립할 수 있었고 공자는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랐다.공자가 성인이 된 것은 그의 텍스트가 이미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 성공하였음을 의미한다.일부의 지적처럼 공자학 혹은 유학은 현세적으로도 실패한 사상이 아닌 것이다.
맹자의 진심론(盡心論)은 바로 공자의 의미체제를 인간의 심성으로 오로지 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삼라만상의 경험의 일관을 추구했던 공자의 학문적 방식을 계승한 위에 오로지 사람의 정신의 세계 속에 그 경험의 만상을 포용하고 조절하여 일관의 의미를 실현할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주었다.그것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가능한 것이었고 그것은 맹자 성선설의 요체이다.삶에 있어 외부세계를 좌고우면할 필요 없이 자신의 내면을 응시함으로서 완전하게 공자의 의미체계를 자각하고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표명한 것이다.
따라서 맹자의 천명이나 도는 이념과 정신세계 속에 수용된 이념으로서의 천명과 도이다.객관적 경험의 세계는 그러한정신세계의 개별적 구현태로 받아들여진다.
그의 천명설은 공자보다 적극적이어서 천명을 탐구하고 이를 온전히 수행함을 삶의 이상으로 삼았다.<비명에 죽는 실수>야말로 인간이 가장 피해야할 일이라고 하였다.내면세계를 버리고 외면의 화려함에 이끌리는 삶이야말로 무의미한 것이라고 갈파하였다.
맹자는 공자의 의미체계를 계승하여 그 의지적 측면을 크게 발양하고 공자가 정한 의미체계의 인(仁)의 의미를 한 껏 발전시켜 성선설을 세우고 양지양능설을 수립하여 절대의 확신을 성공적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우리가 성선설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이유이다.성선설을 부정하는 사람은 그 성선설의 정신적 역사적 거느림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일 것이다.
맹자에 의해 성선설이라는 정의로 공자의 의미체계는 강력한 이념적 구조를 수립할 수 있었다.그러나 맹자의 성선설체제는 고대 사회 이래의 영성적 전통을 경시할 위험이 있다.여기에서 맹자의 성선설 체제는 다시 영성을 아우르는 다른 차원의 체제로 발전해야하는 당위성을 원래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된다.공자의 이념이 전통적 경험의 범주를 온존하고 포용하였음을 생각하면 유학사상에서 당연한 일이다. 맹자가 천명이라는 전통적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 역시 그 필요성을 자각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공맹의 텍스트는 시대를 잎선은 그 선각의 힘을 지녔으므로 그 텍스트 그대로도 2천년 이상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그 텍스트가 최초로 심각한 도전을 받았던 것이 남북조에서 당말에 이르는 기간이었다.한국에서는 실질적으로 그러한 직접적인 도전은 없었다.다만 도전적 가능성을 간접체험하였다.
송대의 성리학은 그 도전을 물리치려는 노력으로서 일어나 철학적 방면의 논리적 부족함을 채우면서 새로운 형식의 유학의 가능성을 열어보였다.맹자사상에 더 요구되었던 신비주의적 요소를 태극 성리론으로 보충하여 공자체제의 깊이를 추가해주었다.그러나 영성성의 그 본래적 의미에서는 만족된 것은 아니었다.
유학의 미래적 과제란 공자이전부터의 유학의 원질인 (1)현상경험의 분석 기법의 유지 (2)영성적 직관의 회복을 추가하면서 (3)공자의 체제 (4)맹자의 체계 (5)성리학적 세계관(자유로운 철학적 사유)을 조화롭게 운용하는 것일 것이다.
<1>맹자왈:그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盡其心者) 그 본성을 아는(知其性) 것이다. 그 본성을 알면 하늘(天)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본심을 보존하고 그 본성을 기르는 것은 하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다(事天). 수명의 길고 짧음에 미혹되지 않고(夭壽不貳) 자신을 수양하여 기다리는 것을 천명을 세워나아간다고(立命) 한다.
<2>맹자왈:사람의 삶에 천명이 아닌 것이 없으나(莫非命也) 그 천명을 바르게 따라 받아들여야할 것이다.그러므로 천명을 아는자는 바위 돌이나 담장의 아래에 서지 않는 법이다.그 도(道)를 다하여 죽는 것이 정명(正命)이요 제한되어(桎梏) 죽는 것은 정명(正命)이 아니다.
<3>맹자왈:구하면 얻고 놓으면 잃는 것 이런 구함은 도(道)를 체득하는 데 유익하고(有益於得) 나에게 있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구하는 데 방도(方道)가 있고 얻게 되는 데에 천명이 작용하는 것 이런 구함은 천명(天命)을 체득하는 데 무익하고 밖에 있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
대학(大學) 경(經) 1장에 <대학의 도는 명덕(明德)을 밝히는 데 있다>고 하였고 서경 태갑 강고를 인용하고 <모두 스스로 밝히는 것(自明)>이라고 하였다.(康誥曰克明德,太甲曰顧是天之明命,皆自明也)
여기에서 우선 관찰해야하는 것은 삼경(三經) 시대의 천명(천命)과 명덕(明德)의 의미 관계가 그대로 대학의 도로 이어졌고 맹자의 천명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상사적 전승관계이다.
(1)삼경시대 - 천명(天命): 신적 세계관
명덕(明德): 신의 의지의 구현,실행 의미
(2)대학시대 - 천명 - 대학의 도(道) : 학문적 대상화
명덕 - 학문적 삶의 구현을 의미
(3)맹자시대 - 천명 - 심성(心性)적인 것으로 심화
명덕 - 자각 체득을 의미
위의 도식은 그 전승관계를 요약해 보인 것이다.
논어의 첫장에 보인 학이시습(學而時習)은 전통시대의 신교적 질서를 재편성하는 새로운 지성적 삶의 출발을 본격 제언한 것이다.새로운 지성적 삶을 학습적인 삶이라고 언명한 공자의 뜻은 삶의 행동의 새로운 지표로서 인간의 심성과 욕구를 스스로 성찰하고 자신의 행동과의 절제 조화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이것은 현상(모든 경험현상)을 담담히 바라봄으로써 그 심성적 의지적 지반을 마련하고 그 지반 위에 그대로 결행하여 나아가는 새로운 스타일의 삶, 즉 스스로의 결단과 의지로 선택함으로써 구현되는 삶의 힘을 말한다.
공자는 각개 경험현상의 이해를 통합(一貫)함으로써 신교에 대신한 우주와 인생의 새로운 의미체계를 상정하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이 새로운 의미체계는 그러나 신교적 질서를 배제한 것은 아니며 인간의 심성과 의지 속에 포용한 새로운 질서를 의미하고 있다. 그 새로운 질서를 인(仁0이라고 불렀다.그 질서를 수행하는 행동을 덕(德)이라고 하였다.그 새로운 지성적 삶의 체계를 명확히 이해하는 삶을 지혜(知)라고 하였고 그대로 행동하는 삶을 현(賢)이라고 하였다.지혜와 행동은 종종 불일치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특별히 둘로 나누어 각각의 삶의 기준을 정립한 것이라고 해야하겠다.이러한 입장은 대학에 그대로 집약되어 있다.
맹자의 시대에 이르면 공자의 학습론이 한껏 내면화하여 인간의 심성적 확신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하였다.그 이유는 춘추전국의 사회 정치여건의 변화로 인해 사람의 사욕이 크게 대두한 때문이라고 전통적으로는 이해해왔다.그러나 꼭 권력과 사치를 지향하는 사회적 풍조에만 원인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일반의 세속의 삶에서는 공자가 제정한 이미의 체계를 응시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의 여건이 크게 미비하였으므로 공자는 우선 선각자로서 새로운 삶의 체제의 당위성을 포괄적이고 친근하며 이해용이한 그러면서 강력한 언어로서 환기할 필요가 있었다.그 결과 나타난 것이 논어의 텍스트이다.공자가 <백성들이 모두 알게할 수는 없다>고 한 말이 그것이다.논어는 결국 생활의 텍스트였다.
맹자는 그 성과에 힘입어 공자가 미처 행하지못한 본격적인 내면화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이미 공자적 텍스트는 공자 개인의 의사를 반영한 것이 아니고 주(周) 왕조 개창이래 춘추시대에 까지 전승돼온 온각 지혜의 전통을 수용하고 포용하여 조율정돈 하였기 때문에 넓은 보편성을 수립할 수 있었고 공자는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랐다.공자가 성인이 된 것은 그의 텍스트가 이미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 성공하였음을 의미한다.일부의 지적처럼 공자학 혹은 유학은 현세적으로도 실패한 사상이 아닌 것이다.
맹자의 진심론(盡心論)은 바로 공자의 의미체제를 인간의 심성으로 오로지 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삼라만상의 경험의 일관을 추구했던 공자의 학문적 방식을 계승한 위에 오로지 사람의 정신의 세계 속에 그 경험의 만상을 포용하고 조절하여 일관의 의미를 실현할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주었다.그것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가능한 것이었고 그것은 맹자 성선설의 요체이다.삶에 있어 외부세계를 좌고우면할 필요 없이 자신의 내면을 응시함으로서 완전하게 공자의 의미체계를 자각하고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표명한 것이다.
따라서 맹자의 천명이나 도는 이념과 정신세계 속에 수용된 이념으로서의 천명과 도이다.객관적 경험의 세계는 그러한정신세계의 개별적 구현태로 받아들여진다.
그의 천명설은 공자보다 적극적이어서 천명을 탐구하고 이를 온전히 수행함을 삶의 이상으로 삼았다.<비명에 죽는 실수>야말로 인간이 가장 피해야할 일이라고 하였다.내면세계를 버리고 외면의 화려함에 이끌리는 삶이야말로 무의미한 것이라고 갈파하였다.
맹자는 공자의 의미체계를 계승하여 그 의지적 측면을 크게 발양하고 공자가 정한 의미체계의 인(仁)의 의미를 한 껏 발전시켜 성선설을 세우고 양지양능설을 수립하여 절대의 확신을 성공적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우리가 성선설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이유이다.성선설을 부정하는 사람은 그 성선설의 정신적 역사적 거느림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일 것이다.
맹자에 의해 성선설이라는 정의로 공자의 의미체계는 강력한 이념적 구조를 수립할 수 있었다.그러나 맹자의 성선설체제는 고대 사회 이래의 영성적 전통을 경시할 위험이 있다.여기에서 맹자의 성선설 체제는 다시 영성을 아우르는 다른 차원의 체제로 발전해야하는 당위성을 원래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된다.공자의 이념이 전통적 경험의 범주를 온존하고 포용하였음을 생각하면 유학사상에서 당연한 일이다. 맹자가 천명이라는 전통적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 역시 그 필요성을 자각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공맹의 텍스트는 시대를 잎선은 그 선각의 힘을 지녔으므로 그 텍스트 그대로도 2천년 이상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그 텍스트가 최초로 심각한 도전을 받았던 것이 남북조에서 당말에 이르는 기간이었다.한국에서는 실질적으로 그러한 직접적인 도전은 없었다.다만 도전적 가능성을 간접체험하였다.
송대의 성리학은 그 도전을 물리치려는 노력으로서 일어나 철학적 방면의 논리적 부족함을 채우면서 새로운 형식의 유학의 가능성을 열어보였다.맹자사상에 더 요구되었던 신비주의적 요소를 태극 성리론으로 보충하여 공자체제의 깊이를 추가해주었다.그러나 영성성의 그 본래적 의미에서는 만족된 것은 아니었다.
유학의 미래적 과제란 공자이전부터의 유학의 원질인 (1)현상경험의 분석 기법의 유지 (2)영성적 직관의 회복을 추가하면서 (3)공자의 체제 (4)맹자의 체계 (5)성리학적 세계관(자유로운 철학적 사유)을 조화롭게 운용하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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