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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학은 후세 유자들의 언.행으로 구현되어 역사로 되살아난 것이 사실이지만 예를 들어 정이천 선생이 정명도(程明道)에 바친 비문에서 맹자 이후 오직 한 사람이라고 평하였듯이 진정한 선비는 얻기 어려운 것이사실입니다.

그리고 각 시대의 유자들은 그 시대의 모순이나 과제의 해결에 몰두할 수 밖에 없으므로 시대적 제한이나 한계를 뛰어 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정신적으로 유학적인 것의 진수를 반추하기 위해서는 따라서 각시대 유자들의 언행에서 시대적 성분과 본질적 성분을 갈라낼 필요가 있습니다.현재의 지식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경전을 통해서 그 본원적인 의미를 끊임없이 성찰할 필요가제기되는 까닭입니다.실로 경전 자체가도 완벽한 이상과 사유법을 견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경전에서도 역시 그와 같은 역사적 제한이나 속성을 초월한 것은 아닐 것이므로 그와 같은 접근 태도가 같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경전은 누천년 동안 의미의 탐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경전시대의 모순이나 제한을 뛰어넘어 보편적 의미로 재편해석되는 오랜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문헌적으로 처리하고 다룰 수 있는 허다한 선례를 지니고 있고 이것이 일반적 사물이해의 깊이를 더해주는 것이 또한 사실일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전에 대한 자유로운 검토가 무한히 요구되는 것은 그 긴 경전해석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직 경전의 본원 정신의 중심에 성공적으로 접근하고 있지 못한 면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즉 경전이 언제나 당 시대에 적용되면서 왜곡될 여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현이란 거의 언제나 그 선행의 경전적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해석자로서 그 사고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음을 주목해야할 것입니다.

경전은 그와 같은 불변의 본질성과 역사성을 지니고 있음과 동시에 일상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어떤 고차원의 이념이라하더라도 현실의 삶 속에 구현되고 현재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그리고 자신의 삶의 전체와 전인적 연관을 맺을 수 있어야한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유학에서 항상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요컨데 온전한 자신을 회복하기 위해 일상 속에서 끊임 없이 경전의 구절을 생각하는 일이 가장 유용할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의 텍스트가 삶의 전 국면에서 귀중한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직접 경험하는 일 보다 앞설 것은 없을 것입니다.또 그위에서 어떤 치열하고 가치로운 생각이나 창의도 더 빛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바로 그래서 경전(불변의 도와 법을 적은 책이라는 의미의)이라는 존호가 부여된 것일 것입니다.

요즘의 유학과 연관한 담론들을 보면서 생각 해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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