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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일간지 홈페이지 커뮤니티에 유교문화복원문제 게시판을 연지 1년이 다 되어갑니다.2000년 5월 15일 시작되었으니까요.그동안 여러가지 운영상의 부족함도 있었고 또 그런대로 보람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잊지못할 일도 있었습니다만 특히 게시판을 시작한지 열흘뒤인 2000년 5월 25일에 추기경이 유학자 김창숙 선생 묘소를 참배하였다는 기사를 접하였고 더우기 추기경께서 <나의 피 속에 유교적 전통이 흐르고 있다는>선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당시 곧바로 환영의 글을 올렸었습니다.(`00년 5월 25일 11번 게시물) 이미 교계의 반성적 세미나가 있어왔었고 추기경의 선언은 교계의 자성을 대표할만한 것이었습니다.물론 그 뒤로도 신교측에서 유교를 부정하는 글들이 매체에 등장했고 그때마다 이 게시판에 반론을 올렸었습니다.물론 사회의 저변에서도 관성적으로 유교비판이나 부정의 움직임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00년 10월 18일에는 마침 시작된 도올의 k.b.s논어강의를 환영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39번 게시물) 유교적 자성의 필요성이 사회문화의 중요한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음과 때를 같이하여 적절한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이어서 얼마 후에는 도올의 강의를 우려한다는 글이 올라왔고 그에 대한 답으로 긍정적인 면이 강하다는 글을 올렸었습니다(154.155게시물) 물론 그간에는 도올의 강의에 대한 여러 측면의 반응이 주지하시듯이 폭주하기도 했었습니다.
최근까지의 해석관련 문제를 정리해 올린 것이 `01년 3월 5일(224번 게시물)이었습니다.

`01년 4월 8일에는 추기경과 도올의 대담 방영이 보도되었고 (역시 환영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오늘(4월 27일) 그 방송을 경청했습니다.사실 그동안 도올의 강의는 다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구체적인 내용에서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문화적 반성의 필요에 부응한다는 대국적인 당위성이 있었습니다.그리고 실제로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이제는 그 반향의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환영의 글을 올리면서 그 점을 지적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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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천주교 그리고 추기경에 대한 소개 담론은 대개 세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1)천주교가 세계 전교사상 유례가 없이 한국인 스스로 주체적으로 자발적으로 수용한 것이라는 점 (2)유학자가 유학의 모순과 문제를 풀기 위해 수용하였다는 의견 (3)추기경의 종교적 포용론 즉 불교든 유교든 사랑과 인의 정신을 중심으로 사는 삶은 구원을 받는다는 설은 세계포교사상 극히 혁신적인 포페르니쿠스적인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한 것이 그것입니다.

실제 대담의 진행은 도올의 소개말에 이어 추기경의 발표형식으로
<그리스도교와 유교와의 대화>에 대한 담론을 위주로 방송이 진행되었습니다.거기에 도올이 한 두가지 질의를 더하는 형식이었습니다.추기경의 주제에대한 견해는 집중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것이었습니다.

먼저 인상깊었던 것은 관중들의 태도였습니다.추기경이 입장할 때 모든 관중들은 일어서서 기립박수로 환영했습니다.그야말로 진지한 기립으로서 자발적인 <말씀에의 갈망>을 담고있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었습니다.퇴장의 순간에도 기립박수가 크게 일어났고 추기경이 지나는 주변의 사람들은 거의 다 목례로서 예의를 표하였습니다.<원로로서의 추기경의 목소리>에 고마움을 전하는 몸짓임에 틀림없어보였습니다.사회적 갈망의 응축된 축도로 보였습니다.

반면에 도올이 코멘트중에 <천주교는 유학에 의해 그 당시 박해를 받았지만 지금 현재는 유교는 천주교를 박해할 힘이 없다>는 말과 <그 당시 박해를 가했던 유교는 지금 쇠하고 반대로 기독교가 융성하고 있지만 이제는 도리어 기독교가 유교와 같은 모순에 빠지고 있다.>는 말도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인상적인 언급일것입니다.

추기경의 강론은 도올의 저서 가운데서<논어 1/176페이지> "공자는 유교를 말한 적이 없다.인간을 위해 인간을 말했을 뿐이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되었고 충(忠/中+心)과 서(恕/如+心)의 개념설명을 연관지웠습니다.이어서 논어의 인(仁) 애(愛) 개념을 인용하면서 공자의 논어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증명하려하였습니다.

아울러 공자의 유교가 천인합일을 추구하는 천(天)의 정신을 기초로 하고 있고 특히 공자는 천(天)의 주재자로서의 인격성을 신앙했다는 점을 설명하고자 하였습니다.<나를 알아줄 것은 오직 하늘이시다>는 등의 말씀을 기독교 교리와 통하는 것으로보고 인격적 절대자를 신앙하고 있었다고 설명하려하였습니다.

추기경은 그의 화두를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으로 열었습니다.그러나 인간존엄의 절대근거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당연히 종교적 살파의 방식을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함은 어떤 과학으로도 증명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오직 종교적으로만 인간의 존엄성을 확립할 수 있다고 논증하려하였습니다.그것은 절대자인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고 세상을 지배할 권능을 부여하였다는 논리입니다.이와 연관 헌법학자 이철수씨의 저서를 통해 인간의 존업성을 천부적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그리고 과학적 생명기원논의 우연설(생명은 우연히 만들어졌다는)을 예시하고 과학의 헛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존엄성의 문제와 함께 또 주중한 문제는 신앙심의 기원이었습니다.구복신앙의 가벼움을 논하되 박완서씨의 신앙역정을 소개하며 불행을 당하는 경험으로 신앙심이 일시 의심될 수 있지만 고통과 불행은 결국은 신앙의 적이 아님을 말하고 맹자의 한 구절 <하늘이 이사람에게 큰 사명을 내릴 때는 여려움을 주어 단련시킨다>는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끝으로 호주의 방문경험을 통해 한국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회가 되기에 부족함을 말하고 호주에서는 아이 노약자 장애인 여성 동물의 순으로 대우받고 있고 남성은 그렇지 못하다(남성이 그렇게 해야한다는 의미)는 견문을 소개하였습니다.아울어 한국에서는 생명의 문화보다는 죽음의 문화가 성하다고 하였습니다.생명과 사랑의 정신이 부족하다는 분석이었습니다.

요컨데 추기경의 견해는 유학의 전통적인 천(天) 제(帝/天의 인격적 표현-실은 최고 조상신으로서 후일 절대신으로 발전함)을 중심한 천인합일 사상에 뿌리를 두고 그 사상이 인(仁)의 정신으로 요약되며 그리스도의 정신과 상통한다는 견해로서 <불교든 유교든 진성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설법을 구사하였습니다.이점은 전통적인 교의를 발전적으로 재해석 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그 연장선상에서 이수현군이 의로운 죽음을 그와 같은 차원의 삶으로 정의하였고 김기섭 소방관이 친구에게 보낸 e-mail에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성직으로 여긴다>는 결의를 사제와 같은 성직자의 삶과 같은 것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바로 이점 때문에 도올이 추기경의 설교가 코페르니쿠스적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새로운 교설임에 틀림없습니다

도올은 두어차례 유교의 천(天) 즉 공자의 하늘이 반드시 인격적이며 또한 신이라고 해석할 근거가 있는가를 묻고 싶은 속내를 질문으로 던졌지만 성직자로서 순논리적인 토론에는 추기경이 응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도올도 그 질문을 더이상 관철하지는 않았습니다.실은도올의 경우도 뚜렷한 반론이 아마 준비된 것이 없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도올은 또 생명기원론의 우연설이 과학적 설명의 한 국부적 한계를 인정하는 솔직한 견해임을 말하고 싶었으나 우연설은 사실 오랜 것입니다) 이 역시 관철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추기경과 도올의 대담에서 그같은 핵심문제를 깊이 토론할 여유는 없었을 것입니다.오히려 더 중요한 것으로 유교와 기독교와의 상통의 가능성을 열어보인점은 커다란 진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추기경의 말씀대로 종교적 설명은 비유적인 부분이 있고 또 직관적인 부분이 있어 상호 토론을 위해서는 하나의 여과기술이 필요할 것입니다.아마 그 여과역을 수행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문학중에 시일 것입니다.아니면 일상의 생활담론 즉 수필일 것입니다.박완서씨의 시를 인용한 것중 (남편과 이들을 잃고 절망 속에 쓴) -나는 신을 죽이고 또 죽였다....죽여야할 신 이 있어야하므로 신은 존재해야한다-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자유롭게 직관과 감정을 담을 수 있는 형식의 글이기 때문입니다.(박완서씨는 그 후 더욱 깊은 신앙인이 되었다고합니다)

이 게시판에는 4월 18일에 추기경과 도올의 대담을 환영한다는 글을 올렸었고 그 환영의 이유는 최근 성햏하는 유교담론이 보다 구체적인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할 시점이라서 기대된다는 요지였습니다.

대담은 기대를 일단 만족시킬만한 성공적인 것이었다고 보고 싶습니다.특히 기독교나 종교에 대해 새로운 교리의 발전적 확립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과 인간에 대한 존엄이라는 이 시대의 과제에 봉사될 수 있는 중대한 의식이 유교와 종교 속에 있다는 강한 목소리가 그것입니다.

아마 새로운 문화 정신이 방향으로서 그 이상의 지침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다만 앞으로의 보다 발전적인 문화 정신 환경으로서의 가능성을 더 열어두었으면 하는 더이상의 기대감도 없지는 않습니다.예컨데 과학 학문 종교 유학의 관계를 발전적으로 재정립할 필요성 같은 것을 두고 생각해본 것입니다.

아울러 시간의 제한이 있었고 국내 유학사상 연구의 정밀성의 문제이겠으나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유교의 천사상(天思想)이 경험적으로 충분히 논의될 수 있다면 강의의 주제를 보다 더 부각하고 이해의 깊이를 남겨둘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夏夷案者
兪德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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