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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유교와 현상 경험 우리는 이미 중용(中庸)의 의미를 알고 있고 그 뜻은 불편부당(不偏不黨)한 것이라고이해하고 있다.그러나 중용의 의미는 이념적 조화(調和)나 정념적 혼융(渾融)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 바탕에 제반의 경험에 대한 포용과 조화라고 하는 대원칙이 놓여져 있다. 전통적인 중용사상을 하나의 철학이나 생활이념 혹은 삶에 있어서의 경험율(經驗律) 정도로 받아들여 왔었고 그것만으로도 소위 동양적 정신을 표현하는데 큰 유감은 없었다. 왜냐하면 중용정신을 궁극적으로 수행해 자신의 삶의 중심으로 유지하고 있다면 그 내부에서 자연히 경험의 조화가 이루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용정신을 보다 자각적으로 수용하려고 할 경우는 역시 그 사상의 토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중용정신이 유학의 심법(心法)을 전승한 중심경전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기성의 가공된 이념보다는 그 기초에 있다는 생각을 할 경우 유학의 본질성에 대한 이해도 새로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일 그 경험적 기초를 무시하고 개념언어의 표면의의에만 주목한다면 사실 중용의 조화사상이란 피타고라스의 하모니 이론과 크게 다른 점을 발견하기 어렵다.동양이 천인조화(天人調和)를 내세우지만 서양철학도 자연과 우주 나아가 그 내면에 대한 상상력까지 동원한 심오함이 있으므로 천인조화사상만 심오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같은 개념적 일치성은 유학사상이 인류 공통의 사유에 바탕을 둔 보편사상임을 의미하기에 족하다.그이상의 본질 이해는 역시 경험처리적 특징 속에서 찾아 세워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세절한 논의는 뒤로 미루겠으나 예컨데 사람들의 일상의 삶의 경험과 정감 판단과 선택 등의 생태 속에서 스스로 이루어지고 형성되는 삶의 결과물들이 그대로 유학의 기초가 된다는 뜻을 우선 말하고 싶다. 유교적 사유에서는 어떤 현상이나 경험도 배제되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그리고 자연과 인공 혹은 인위를 차별화한 적도 없다.경험적 합리적 신비적 현상을 모두 온존하고 포용하는 힘이 그 사유력의 가장 특징적인 본질이라고보아야하겠다. 오늘의 삶을 돌이키고 직시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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