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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길의 의미-시대과제론


이 컬럼에서 이미 수차례 표현하려고 노력한 메시는 몇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유교사상이 단순히 수입된 사상이나 가치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역사상 형성돼온 민족적인 문명의 실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최근 어떤 논객은 서구문명도 수입 후 오래 지나면 우리의 전통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유교는 우리적인 것의 총체와 연관된다.서구문명은 많은 유용한 경험의 하나이다. 유교는 모든 경험을 수용하므로 유교이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서구적인 것이 유교적인 것으로 등식관계가 될 수는 없다.

이런 주장은 흔히 민족주의적인 열정의 산물인 것으로 또는 비이성적인 것으로 매도될 수 있으나 그것은 비학문적인사유의 결과일 경우에 한정되는 이야기이다.유교는 왜 우리 역사의 영원한 실체인가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잠시 역사자체를 살펴봐야할 것이다.

(2)유교가 한국역사의 실체라는 이유는 두가지 면에서 논의가능하다.

하나는 유학의 형성사가 민족사 나아가 동북아시아 문화권적 차원의 역사적 성과와 밀접 불가분하다는 인식이 그 하나이고 또 한 측면은 한국사의 국가사의 영위 과정에서 한국적 체질을 독특하게 구축하였던 과정과 직결된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국가형성사의 초가 한국과 중국은 보다 강한 공통성을 지니고 있었고 중원과 한반도로 그 역사영역이 고정되면서부터는 각기 그 공통성위에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분석할 수 있다.유교는 바로 그 공통성에 근원적 뿌리를두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흔히 우리가 유교를 수입된 사상으로 보게되는 것은 황하유역을 중심한 중국화된 유학 즉 경전화(텍스트화)된 유학만을 유학이라고 믿고 바로 그 유학이 한문문헌의 형태로 수입되었던 것이 유교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사실에 기인한다.

한국은 독자적인 사상 문화의 체질을 가지고 있었고 그 위에 문화권적 차원의 원유교적 지성을 발전해 오고 있었으며고 국가형성사가 완성되어 가면서 문헌화된 한자텍스트를 수용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바로 그수입된 텍스트화된 유교(즉 경전 중심의 유교)는 당연히 중국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 텍스트의 내용은 즉 유교의 내용물은 오로지 중국적일 뿐만이 아니었다고 생각된다.예를 들어 인(仁) 의(義)효(孝) 같은 유교사상의 핵삼사상의 주도자는 요(堯) 순(舜)이었다. 그런데 그 요와 순같은 전설상의 영웅이 중국인이 아니었다고 맹자는 지적하고 있다.(東西夷人說)

물론 후대에 중국사의 계보로 연결된 것은 사실이나 그 뿌리가 그렇다는 이야기이다.이 분야는 잎으로 밝혀야할 사실이 더 많지만 이유교 형성기의 역사를 상정하는 데는 역사학적으로 아무런 모순이나 문제는 없다.

(3)따라서 유교는 고대문화 형성기의 문화권적 특질에 의해 먼저 유교적 체질이 형성되었고 도시국가 시대를 지나면서 한국 중국은 각기 국가사를 영위하고 발전허면서 독특한 개성을 표출하였다.예컨데 중국은 유교를 텍스트화하고 전범화하고 제도화하는데 뛰어난 공헌을 하였다.

한국의유교적 역할은 고구려사에서 중심적으로 보듯이 유교적 이념의 실천적 부면에 강한 특질을 형성해왔다.(예컨데 호동왕자와 해명태자의 효-나아가서는 고려 이조시대의 이데올로기화) 이 분야는 깊은 천착이 더 요구된다.

우리가 유교경전을 대하고 유교적 적 삶을 자각하기위하여 그러한 일반적 유교사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고 한국민족의 문명사 건국사의 특질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아울러 이루어져야한다.유교는 역사적 문명사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4)유교가 과연 우리 사회의 영원한 그 무엇인가하는 문제에 회의를 던지는 사각이 많이 존재한다. 그것은 진정으로 역사를 이해하지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비역사적 지식의 소산이다.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듯이 서구의 세련된 학술 과학 예술이 역사주의의 소산임을 상기할 때 서구적 수준의 논의만을 목표로 한다고 하더라도 역사적 이해태도는필수적이다.

(5)역사를 방기하는 태도는 단적으로 자신의 문명과 사상을 경시하는 마음을 불러오고 자신의 역사를 부정하는 진실이 아닌 상념을 유발하기 쉽다.

역사적이란 무엇인가 단적으로 계승적인 것이되 계기적인 그 무엇이다.그런 면에서 유교를 보면 유교란 아집과 고수를 주무기로 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개성과 활력 역사를 추동하는 힘의 원천 그리고 그 바탕의 불변의 정신구조와 성향을 조성하고 운용하는 그 무엇이다.그리고 더 본질적으로는 사물을 바라보고 경험하고 수용하는 태도와 해석방식이며 그리고 그로부터 인기되는 창조력이다. 그러므로 민족과 삶의 방향설정의 에너지 같은 그 주제들이 당연히 깊이 생각되어야한다.

(6)유교는 단지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지적 발견의 기술로서 출발하였고 그 발견의 성과를 바탕으로 문명을 지어 만들어온 심성의 기록이다.

지금의 시대를 풍미하는 지식과 기술과 과학이 완전한 지적발견 기술의 전형이라는 증거는 사실 없다.또 그것은 유교에서도 늘 해오던 그 무엇이기도 하다.오히려 유교는 현재의그 여러 지적인 기술을 포함하고 그리고 보다 포용력이 더 넓은 그 무엇이다.유교 속에 다 포괄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7)우리들 스스로 유교를 좁히고 낮추는 일은 진정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구악(舊惡)의 대명사 혹은 개선되어야할 대상으로 유교를 질타하는 것이 지금의 유행인데 그러한 발언을 하는 이들이야말로 진정 지적인 개선의 대상임을 생각해야할 것이다.

예를 들면 1)여성차별도 유교이념 때문이요 2)권위주의도 유교 때문이요 3)세대간의 괴리도 지역감정도 유교 때문이요 4)경제 부진도 유교 때문이요 5)서구화 즉 선진화된 것의 모든 반대 구조가 유교인 것으로 지칭하는 이들이 넘치고 있다.가부장제 관료주의 ...그 모든 것이 다 유교때문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 말이 맞을까?

현대의 제 현상의 책임은 사실은 현재를 살아온 사람들의 서구적 교육과 가치관에 오히려 그 원인이 있고 그 내부에 전통적 의식의 한계가 작용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역사적 모순이다.

세계어느 문명된 나라에서 자기 역사에 모순이 있다고 자신의 전통정신을 파괴하려하는가? 서양인들은 더 심한 모순을 겪으면서도 왜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도교를 파괴하려한 적이 없는가 그것은 그것이 그들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본질을 잃는 순간 어떤 존재도 스스로의 독립성을 상실하고 이 삭막한 세상과 우주간에 자존적으로 존재할 자격을 상실할 것이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특히 일본에서는 왜 겁도 없이 전통을 부정하는가 자신들의 원인은 자신들의 역사를 이유도 없이 비하하는 태도 때문이다. 자기를 부정하고는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 문화권은 현대에 가난했다.힘이없었다. 그것이 자기비하의 큰 이유이겠으나 그것이 그들의 역사나 문명의 가치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오직 무력이나 힘만이 세상을 밀고가는 힘인 것은 아닐것이다.

아마 자신의 지성을 다시 주목하는 순간 문득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세계사상 최고의 문명국민임을 실로 생생히 느끼고 용기와 힘에 넘치게 될 것이다. 역사선성에서는 그런 힘이 더 중요하고 더 실효적인 힘이다.

그 원 힘을 회복하지 않고 어떻게 새 세기를 자신있게 개척해 나아갈 수 있을까.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알고보면 유교의 근본은 바로 우리의 원기이다.어떤 종교나 철학과 비교될 수 있는 그런 평면적 대상이 결코 아니다.


하이안자(夏夷案者)

the 1st.haia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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